존 딜린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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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존 허버트 딜린저(John Herbert Dillinger)'''
'''출생'''
1903년 6월 22일, 미국 인디애나주 인디애나폴리스
'''사망'''
1934년 7월 22일, 일리노이주 시카고
'''국적'''
미국 [image]
'''직업'''
기계공, 해군 탈영병, 은행강도, '''갱스터'''
'''죄목'''
은행강도, 모살, 폭행, 경관폭행, 차량절도
'''사인'''
총탄에 의한 사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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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인생
2.1. 유년
2.2. 군입대와 체포
2.3. 분노와 탈옥
2.4. 두번째 탈옥
2.5. 깡패 생활
3. 죽음
4. 매체


1. 개요


존 딜린저는 미국의 갱스터이다. 무려 34개의 은행을 털었으며 4개의 경찰서를 공격했다. 그는 엄청나게 대담한 방식으로 조직범죄를 저지르며 언론에 대서특필 되었고 미국의 로빈 후드라는 별명을 얻었다. 수많은 살인을 저질렀지만 살인으로 기소된 것이 겨우 한번이고, 공공의 적 1호로 지정되어 1930년대의 범죄발호를 Dillinger's Day라고 부른다. 당시 미국정부는 딜린저를 필두로 이루어진 조직범죄를 소탕하기 위해 BOI(검찰국)를 FBI(연방 수사국)로 개명시켰다.

2. 인생



2.1. 유년


1903년 미국의 인디애나주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프랑스계 미국인이었으며 어머니는 독일계였다. 딜린저의 아버지는 식료품점을 했고 집은 가난했다. 그의 아버지는 "매를 아끼면 아이를 망친다"라는 신념을 가진 사람으로 굉장히 거친 인간이었다. 그리고 그의 친엄마는 딜린저가 4살일때 죽었다. 새엄마가 들어왔고 딜린저는 처음엔 새엄마를 싫어했지만 곧 그녀를 받아들였다.
10대 때 딜린저는 동년배들과 자주 싸웠으며, 좀도둑질을 했다. 또한 갈피를 잡기 어려운 성격을 갖고 있었고 자기보다 작은 아이들을 괴롭혔다. 그는 기계공이 되기 위해 학교를 그만뒀으며 딜린저의 아버지는 도시가 그를 위험하게 만든다고 생각해 당시 깡촌이던 인디애나주 무어스빌로 이주했다. 그러나 그의 반항적인 성격은 고쳐지지 않았고, 차량 절도로 검거됐다.

2.2. 군입대와 체포


1923년 그는 미합중국 해군수병으로 입대했지만 근무중인 전함에서 탈영하여 불명예 전역했다. 1924년, 무어스빌로 돌아온 딜린저는 베리 호이어스라는 여자와 결혼했다.
결혼 후로도 일자리를 찾을 수가 없었던 그는 에드 싱글턴(Ed Singleton)이라는 남자와 식료품점에서 권총을 갖고 $50달러를 강탈했다. 이들은 천장을 향해 발포를 했지만 사람을 쏘진 않았고 너트로 사람의 머리를 때린뒤 달아났다. 이내 이들의 얼굴을 본 점원이 경찰에 신고했다. 둘은 체포되었고, 싱글턴은 무죄를 주장했지만 딜린저의 아버지는 지역검사와 상의한 뒤 딜린저에게 유죄를 시인하라고 했다.
그리고 딜린저는 아버지의 말을 따랐다. 그러나 무죄를 주장한 싱글턴은 2년형이 나왔고 유죄를 시인한 딜린저는 12년형이 나왔다. 딜린저는 완력을 사용해 구속으로부터 잠시 이탈하면서까지 형의 삭감을 간청했지만 판사에 의해 기각되었다.

2.3. 분노와 탈옥


인디애나 교도소에 수감된 이후 딜린저는 미국 사회와 세상에 대한 엄청난 분노를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여기서 나가는 순간 세상에서 가장 사악한 녀석이 될 것이다"라고 선언했다. 당시 인디애나 교도소에는 소위 한국으로 말하자면 전국구급 은행강도들이 많았고 그는 그들과 인맥을 쌓으며 살인기술, 강도, 인질처리방법, 경찰과의 교전법을 배워나갔다. 그리고 그들은 범죄를 계획했다.
한편 딜린저의 아버지는 상당한 죄책감을 느꼈고 딜린저의 석방운동을 하며 178명의 서명을 받았다. 딜린저는 9년 8개월만에 가석방되었다. 가석방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의 새엄마는 사망했고 얼마 안되어 딜린저는 바로 오하이오 주에 있는 은행을 털었다가 9월 22일 체포되었다. 딜린저는 재판에 앞서 오하이오 주 리마에 있는 유치장으로 보내진다. 그러자 그의 강도 동료들은 유치장을 지키던 보안관에게 가석방 기간 도중 범죄를 저지른 딜린저를 인계받기 위해 오하이오 주립 교도소에서 왔다고 속인 다음 문을 열어준 보안관을 쏴죽인 뒤 탈옥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을 딜린저 갱(Dillinger Gang)이라고 불렀다.
이후 딜린저 갱은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다. 이들은 인디애나 주의 경찰서 세 곳에서 강도질을 벌여 권총, 소총, 자동화기, 탄약, 방탄조끼를 빼앗았다. 12월 14일에는 딜린저 갱 단원인 존 해밀턴(John Hamilton)이 시카고에서 형사 한 명을 살해하였다. 1934년 1월에는 인디애나 주 이스트시카고의 퍼스트 내셔널 뱅크(First National Bank)를 터는 등 인디애나 주, 일리노이 주, 위스콘신 주에서 수많은 범죄를 저질렀다. 하지만 한달도 지나지 않아 애리조나투싼에서 묵었던 호텔에 화재가 발생하는 바람에 피어몬트, 클라크, 마클리와 함께 경찰에게 붙잡혔다.

2.4. 두번째 탈옥


딜린저는 인디애나 주 크라운포인트의 교도소에 갇힌다. 이스트시카고에서 벌인 은행강도 도중 경찰관을 살해한 죄를 재판받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딜린저는 나무를 깎아 권총 모형을 만든 다음 그걸로 교도관을 위협해 감방에 가둔 다음 자동화기를 가지고 탈출한다. 그 후에는 교도관의 차를 훔쳐타고 일리노이 주 시카고까지 도망친다. 이로 인해 훔친 차량을 다른 주로 밀수했다는 혐의가 추가로 붙게 되며 FBI가 딜린저를 쫓기 시작한다. 한편 함께 붙잡힌 동료 세명은 딜린저의 탈옥을 도와주며 보안관을 살해한 일로 재판을 받게 된다. 재판 결과 피어몬트와 마클리는 사형을, 클라크는 무기징역을 선고받는다. 클라크와 마클리는 탈옥을 시도했으나 마클리는 탈옥 시도 중 사살되고 피어폰트는 부상을 입은 채로 붙잡혀 한 달 후 전기의자에서 생을 마친다.
탈출에 성공한 딜린저는 애인인 에블린 프래쳇(Evelyn Frechette)과 합류, 같은 주의 도시인 세인트폴로 가서 호머 밴 미터(Homer Van Meter), 레스터 길리스(Lester Gillis)[1], 에디 그린(Eddie Green), 토미 캐럴(Tommy Carroll)과 함께 새로운 갱단을 구성한다. 새로 구성된 딜린저 갱은 또다시 은행강도를 벌이기 시작했다.

2.5. 깡패 생활


1934년 3월 30일, 세인트폴의 링컨코트 아파트 관리인이 자신의 아파트에 거주하는 헬만 부부를 수상하다고 신고했다. 헬만 부부가 수상하게 행동하며. 관리인을 집 안으로 들이기 거부했다는 것이었다. 헬만 부부의 정체는 딜린저와 프래쳇이었다. 다음날 FBI는 경찰과 함께 그들의 은신처 문을 두들긴다. 문을 연 프래쳇은 이들을 본 즉시 문을 닫아버렸고, 즉시 증원 경력이 추가로 투입되어 링컨코트 아파트를 포위한다. 하지만 밴 미터가 나타나 경찰과 총격전을 벌인 사이 딜린저와 프래쳇은 뒷문으로 탈출한다. 이들은 그린의 은신처로 도망친다. 하지만 그린 역시 4월 3일 역시 FBI의 습격을 받고 총을 뽑다가 사살된다.
딜린저와 프래쳇은 다시 무어스빌로 도망간다. 딜린저는 그곳에서 링컨코트 아파트 탈출 당시 입었던 부상을 치료하는데 시간을 보냈지만 프래쳇은 친구를 만나러 시카고에 갔다가 FBI에게 체포당한다. 그녀는 범인 은닉죄로 징역 2년을 선고받는다. 완치된 딜린저는 밴 미터와 함께 인디애나 주 바르샤바의 경찰서를 털어 총과 방탄조끼를 습득한다.
같은 달, 리틀 보헤미아라는 산장에서 FBI에 신고 전화를 건다. 수상한 사람들이 호텔에 묵고 있다는 내용의 신고였다. 이들은 휴가를 즐기러 온 딜린저 갱단원들이었다. FBI와 경찰은 리틀 보헤미아 산장을 습격했지만 인명 피해만 내고 딜린저 갱을 놓치게 된다.
7월 21일, 안나 세이지(Anna Sage)라고 자칭하는 여성이 경찰에게 연락해온다. 그녀의 정체는 인디애나 주 게리에서 포주일을 하던 아나 쿰파나슈(Ana Cumpănaș)였다. 이민 귀화국에서는 이 루마니아 출신 포주를 국외추방하려고 하고 있었는데, 이에 위기감을 느낀 쿰파나슈는 보상금을 주고 미국에 남게 해준다면 존 딜린저에 대한 정보를 주겠다고 연락한 것이었다. FBI는 보상금은 약속할 수 있지만 국외추방에 관한건 노동부의 협조가 있어야 한다고 말하였다. 쿰파나슈는 이를 받아들였다.

3. 죽음


쿰파나슈는 자신의 친구인 폴리 해밀턴(Polly Hamilton)이 딜린저의 애인이라고 밝히며, 딜린저가 해밀턴과 함께 시카고에서 영화를 볼 수 있다고 밀고했다. 둘이 갈 가능성이 있는 극장은 바이오그래프 극장(Biograph)과 마르브로 극장(Marbro) 둘 중 하나였다. 그녀는 둘이 갈 극장이 어떤 극장인지를 알리고, 둘을 따라가면서 주황색 드레스를 입겠다고 말하였다.
7월 22일 오후. 딜린저, 해밀턴, 그리고 쿰파나슈는 영화를 보러 길을 나선다. 쿰파나스가 어떤 극장에 갈지 아직도 몰랐다는 문제가 있었지만 FBI와 경찰은 두 극장 모두 경찰을 배치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FBI 요원들은 세 명이 바이오그래프 극장으로 들어가는걸 목격하지만 사람들이 몰린 극장에서 딜린저가 저항할 위험을 피해 대기했다.
밤 10시 30분. 영화를 보고 난 딜린저는 두 여자를 데리고 극장 밖으로 나섰다. 극장 문 앞에 서있던 멜빈 퍼비스(Melvin Purvis) 특별 수사관이 시가에 불을 붙이는 것을 신호로, FBI 요원들과 경찰들이 딜린저에게 접근했다. 위기에 처했다는 걸 깨달은 딜린저는 바지 주머니에서 권총을 꺼내들고 골목길로 도망갔지만 그곳에는 FBI 요원들이 매복해 있었다. 세 발의 총알을 몸에 맞은 딜린저는 그대로 쓰러졌다. 20분 후, "공공의 적" 존 딜린저가 알렉시안 브라더즈 병원(Aliexian Brothers Hospital)에서 사망했다는 사실이 발표되었다.
딜린저에게 발포한 세 명의 FBI 요원인 찰스 B. 윈스티드, 클라렌스 O. 허트, 허먼 E. 홀리스는 겁 없고 용기있는 행동을 한 공로로 에드가 J. 후버 FBI 국장에게 칭찬받았다. 이들 중 누군가가 딜린저에게 치명타를 입혔는지는 알 수 없었다. 27명의 사람들이 존 딜린저를 은닉하거나 지원하고 범죄를 사주한 혐의로 연방 법원에 서게 되었다. 아나 쿰파나슈는 그녀의 공로에도 불구하고 루마니아로 추방당했다. 딜린저의 시체는 인디애나폴리스의 크라운 힐 공동묘지에 매장됐다.

4. 매체



[1] 조지 넬슨, 베이비페이스 넬슨이란 별명으로 더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