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봉전쟁

 

'''직봉전쟁'''
'''直奉戰爭'''
'''Zhili–Fengtian War'''
[image]
2차 직봉전쟁이 끝나고 전후 처리를 위해 열린 천진회의의 모습(1924)
(왼쪽부터 량훙즈, 펑위샹, 장쭤린, 돤치루이, 루융샹, 양위팅, 장수원. 서 있는 사람이 우광신)
'''시기'''
1922년 4월 28일 - 1922년 5월 5일 '''(1차 직봉전쟁)'''
1924년 9월 15일 - 1924년 11월 3일 '''(2차 직봉전쟁)'''
'''장소'''
중국 동북 지역
'''교전세력'''
[image] '''직예군벌'''
[image] '''봉천군벌'''
[image] '''국민혁명군'''
[image] '''안휘군벌'''
'''지휘관'''
[image] '''차오쿤'''
[image] '''우페이푸'''
[image] '''펑위샹'''*
[image] '''치셰위안'''
[image] '''왕회경'''
[image] '''팽수신'''
[image] '''장쭤린'''
[image] '''양위팅'''
[image] '''쑨원'''
[image] '''돤치루이'''
[image] '''루융샹'''
[image] '''펑위샹'''*
[image] '''옌시산'''
'''결과'''
'''직예군벌의 실각, 봉천군벌의 흥기 '''
* 펑위샹은 2차 직봉전쟁때 봉천파로 참전하였다.


1. 개요


'''직봉전쟁(直奉戰爭/奉直戰爭)'''은 북양군벌의 파벌인 직예파와 봉천파가 북양정부의 패권을 놓고 1922년1924년 두 차례에 걸쳐 일으킨 전쟁이다. 1차 전쟁은 북경정부를 장악한 직예군벌이 승리하였으나 2차 전쟁에서 최종적으로 봉천군벌이 승리하였다. 그 결과 총통 차오쿤을 위시한 직예파가 실각하였으며, 안휘군벌돤치루이펑위샹, 장쭤린 등의 추대로 임시 집정으로 취임하였다. 그러나 전쟁 이후에도 군벌 세력간의 반목은 그치지 않아 1920년대 중국의 정치적 혼란은 지속되었다.

2. 1차 직봉전쟁



1922년 발생한 첫번째 전쟁. 량스이 내각의 붕괴와 지방관 임명 문제 등이 겹쳐서 충돌이 벌어졌다. 직예군벌이 6일만에 봉천군벌을 격파하고 승리를 거두었으며 대총통 쉬스창이 하야하고 리위안훙이 총통이 되어 구국회, 약법 회복이 이루어졌다.
장쭤린은 공직에서 쫓겨났으나 동삼성 의회로부터 동삼성 보안사령관으로 추대, 동삼성의 독립을 선포하고 동북의 주인으로 계속 군림하였다.

3. 2차 직봉전쟁



1924년 발생한 두번째 전쟁. 강소독군 치셰위안안휘군벌인 절강독군 루융샹을 공격한 것이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 장쭤린은 루융샹과의 동맹을 구실로 관내로 진출, 11월까지 하북에서 직군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었으며 결정적으로 논공행상에 불만을 품은 3로군 총사령관 펑위샹북경정변을 일으켜 봉군에 호응하면서 직군은 붕괴되었다.
이로서 1923년 회선 사건으로 옹립된 차오쿤 대총통이 축출되었으며 돤치루이 임시집정 정부가 출범하였다.

4. 관련 문서



4.1. 인물



4.1.1. 정계



4.1.2. 직예군벌



4.1.3. 봉천군벌



4.1.4. 안휘군벌



4.1.5. 중국 국민당



4.2. 사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