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관희 섹스 스캔들

 



1. 개요
2. 여파

Edison Chen photo scandal[1]

1. 개요


2008년 발생한 '''홍콩 연예계 최대의 흑역사 중 하나로 손꼽히는 사건.''' 이 사건을 중국에서는 진관희 나조 사건(陳冠希裸照事件), 줄여서 염조문(豔照門; '19금 사진 게이트' 쯤 되겠다)이라 칭한다.
진관희종흔동, 가수 진문원, 유명 배우 장백지, 가수 용조아, 진사혜 매기 큐 등 12명 내외 정도로 추정되는 사람들과 '''19금 사진'''을 찍었고 이것이 유출된 사건이 발단이 되었는데, 앞에 언급한 연예인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연관되었다.
사건의 전개는 2008년 1월 진관희가 문제의 사진을 저장해놓은 노트북 수리를 컴퓨터 수리기사에게 몇 번 맡긴 적이 있는데, 수리기사가 그 중 일부를 브로커에게 거금을 받고 팔아넘겨서 이렇게 된 거라고 한다. 당시 사진을 유출했던 인물은 KIRA라는 아이디를 사용한 의문의 네티즌이며, 대체 이걸 왜 유출했는지 그 목적은 아직도 불명이다. 홍콩 경찰은 관련자를 여럿 잡아서 처벌하려 했지만, 공권력 남용이라는 홍콩 시민사회의 비판에 직면했으며 결국 결정적 유포자는 못잡고 블로그에 업로드하거나 이미 업로드한 잔챙이급 몇명을 체포해서 벌금을 물리는 수준에서 마무리됐다.
진관희의 진술을 보면 사진과 동영상을 삭제만 하고 휴지통 비우기조차도 하지 않은 것으로 추측된다...#

2. 여파


종흔동은 충격으로 자살 시도까지 했으며, 덕분에 1년 2개월간 활동을 못 해 한동안 그룹 Twins채탁연 혼자 돌아갔다. 그러다 2010년 3월이 되어서 간신히 Twins의 새 앨범인 '人人彈起'을 내고 정상적인 활동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2010년 10월에 또 앨범을 냈는데, 수록곡 '放低過去'에는 '陳年事[2]', 즉 진관희 스캔들을 잊고 새롭게 시작하겠다는 뜻의 가사가 달려있다. 이후 사업가 타일러 권과 사귀기도 했다.
장백지도 종흔동과 마찬가지로 활동을 접어야 했다. 국내에서도 일부 네티즌들에게 '백지'(...)라고 까이며 인기가 급락했다. 그래도 본인에겐 다행히 2010년에 복귀할 수 있었다. 사건이 터진 후 장백지는 남편 사정봉과 별거했다가 관계를 회복했지만 결국 2011년 6월 6일 이혼했다. 원래 사정봉과 진관희는 굉장히 친한 사이였는데 사건이 터지고 완전히 절연했으며, 이혼한 결정적인 계기도 장백지가 공항에서 우연히 만난 진관희와 반갑게 대화를 나눈 것을 사정봉이 목격한 것이었다. 연예계 복귀는 했지만 홍콩의 두기봉 감독은 도대체 장백지를 어떻게 쓰겠냐고 대놓고 언급할 정도로 대중들의 반응은 최악. 이 때문에 장백지의 둘째 아들이 사정봉과의 관계에서 낳은 아들인지 유전자 검사까지 했으며, 그 결과 '''사정봉의 아들이 아니라는 결과가 나왔다'''.
진문원은 그나마 위의 두 사람보다 충격이 덜했다. 덜할 만도 한 게, 2006년에 이미 은퇴했기 때문. 하지만 약혼자에게 파혼당하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그 외 용조아는 사실 이 사건과 별로 관련이 없다. 다만 이 분도 피해를 봤다. 원래 2008년 2월에 Twins 콘서트가 있었는데 거기에 종흔동이 말려버려서...
진관희는 이 사건으로 인해 홍콩 연예계를 떠났[4]... 지만 2010년 대만에서 복귀했다.
이 사건에 관련된 연예인들은 꽤나 오래동안 후유증을 앓았고, 당시엔 스타에 대한 환상이 깨진 일부 사람들의 마녀사냥으로 불청객이 던진 플라스틱병을 머리에 맞은 설개기(薛凱琪) 등 이 사건과 무관한 유명 인사들의 피해도 많았다.
이 사건은 이후 홍콩 aTV의 법정 관련 프로그램인 금일법정(今日法庭) '''1회'''에서 재현되기도 했는데, 진관희는 종역첨(鍾力添)으로 필터링되었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이 프로그램의 방송일은 2008년 3월 3일. 즉, 사건이 일어난지 2달밖에 안된 시점이었다.(...)
홍콩 드라마 감독인 등특희(鄧特希)가 만든 드라마 법망군영(法網群英; The Men of Justice)의 6화에서도 이 사건이 언급된다.
여담으로 이 사건 때문에 화제가 된 남성이 있었다. 중국의 한 지방 방송이 한 남성에게 '진관희 스캔들에 대해 한 마디 해주세요.'라고 인터뷰했었다. 그런데 그 남자는 ''''나랑 X상관이야. 난 간장 사러 나왔어.''''라고 해서 이 남자는 사이다라는 평을 받으며 간장남이라는 이름으로 유명해졌었다. 출처 '간장 산다'는 말도 현장에 있지만 사건에 참여하지 못했다는(혹은 안했다는) 의미의 유행어로 지금도 쓰인다.
[1] 영어 위키백과 기준[2] 단어 자체는 흔히 사용되는 "옛날 일"이란 뜻이지만, 진관희의 성인 陳 자가 들어갔기 때문에 다소 중의적이라고 볼 수 있다.[3] 장백지의 아버지가 삼합회의 간부다[4] 이 때 홍콩 신문에 대놓고, '''삼합회[3]가 진관희 손목 가져오는 데 현상금을 걸었다'''는 뉴스가 실리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