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기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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杜琪峰; Johnnie To, 1955. 4. 22.~
홍콩의 영화 감독. 주윤발와 임달화하고 동갑이다. 80~90년대 한국에서 서극, 오우삼, 임영동 등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던 시절에는 다른 걸작의 속편을 만드는 그저그런 감독 정도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홍콩 영화인들이 너도나도 해외로 진출하면서 경력을 말아먹는 동안에도 꾸준히 홍콩 영화계를 지키며 영화를 만들더니 90년대 말 2000년대 초에 들어설 즈음에는 문득 거장이 되고 말았다.[1] 작품의 수준은 그저 그런데 경쟁자가 없어져서 상대적으로 이름이 높아진 것도 아니고, 갑자기 스타일을 바꾸며 환골탈태한 것도 아니고, 데뷔 시절부터 꾸준히 자신의 스타일을 유지하면서 갈고 닦더니 어느 순간 경지에 올랐다는 점에서 노력형 대가의 모범이라 할 만하다. 지금은 소위 홍콩 느와르라고 불리는 홍콩식 범죄 장르영화를 만들면서도 이례적으로 칸, 베니스, 베를린을 비롯한 국제 영화제의 경쟁 부문에 꾸준히 초청받고 있으며, 세계 유수의 평론가들에게도 거장으로 칭송받는 위치에 이르렀다.
1980년에 〈벽수한산탈명금〉으로 데뷔한 이래 현재까지 32년 동안 48편의 극장용 장편영화를 만들었다. 1986년에 두 번째 장편 〈개심귀당귀〉를 내놓을 때까지의 공백을 제외하면 거의 매년 신작을 내놓고 있다.[2] 생존한 감독 중 이 정도로 작품 활동이 빠르고 꾸준한 사람은 미이케 다카시, 홍상수, 클린트 이스트우드 정도인 듯.
한 편의 영화를 완성하는 속도가 빠른 것으로도 유명한데, 가령 대표작인 〈미션〉은 촬영 기간이 19일 밖에 되지 않았다. 그의 영화 스타일이 카메라를 막 들이대서 빠르게 찍고 편집실에서 이리저리 붙여보는 방식이 아니라 매 쇼트의 구도와 순서를 엄격하게 정하는 식임을 생각하면 경이로울 정도다. 다만 촬영에 앞서 준비를 철저히 하는 모양.
게다가 '''배우들에게 대본을 안 준다.''' 촬영 당일 아침에 그 날 찍을 분량 대본만 줄 뿐, 전체 영화의 흐름 같은 건 가르쳐주지도 않는다. 다만 프랑스와 합작한 최근작 〈피의 복수〉의 경우 프랑스의 국민 가수이자 배우인 조니 할리데이가 주연을 맡았는데 할리데이에게만은 전체 대본을 줬다고 한다. 하지만 이때도 할리데이를 제외한 다른 중화권 배우들에게는 대본을 주지 않았다. 이런 식의 작업은 한국의 홍상수 감독도 곧잘 하는 일이지만 일상의 우연을 열어놓고 받아들이는 작품이 아니라 엄정하게 계산된 장르영화를 만드는 감독이 이런 식으로 작업을 한다는 사실은 경악스럽다.
더불어 한 번에 여러 작품을 만드는 일도 곧잘 한다. 배우 및 스탭들의 일정에 따라 촬영 계획을 잡은 다음 촬영이 없는 빈 시간에 다른 영화를 찍는다. 특히 '''하비 무비(hobby movie)'''라고 하여 '그냥 내가 정말 만들고 싶기 때문에 만드는, 취미로 만드는 영화'가 따로 있는데 이 경우 '''몇 년'''에 걸쳐 시간이 날 때마다 띄엄띄엄 촬영을 해서 영화를 완성하기도 한다. 〈PTU〉가 대표적인 예.(촬영'''만''' 3년 걸렸다) 직업도 영화 만들기고 취미도 영화 만들기인, 영화에 미친 감독이라 할 만하다.
자연히 감독으로서의 자의식도 대단하다. 홍콩의 TV 방송국 TVB에서 일하던 시절 TVB 연기자 훈련반에 들어갔는데[6] 그가 TVB 연기자 훈련반에 들어간 이유는 연기를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렇게 하면 촬영 현장에 더 가까워질 수 있어서였다고 한다. 또 TV 드라마 감독이 아니라 영화감독이 되고 싶었던 것도 TV 드라마 감독은 기교를 배운 다음 시키는대로 찍기만 하면 되는데 영화감독은 전체 기획을 총괄하면서 폭 넓은 창의력을 발휘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감독이라면 촬영 현장의 지휘뿐만 아니라 작품의 기획, 각본, 제작 등의 단계를 모두 관리하며 자신의 개성을 불어 넣어야 한다는 것이 지론이다.
두기봉은 데뷔 이후 두 번 영화 작업을 멈춘 적이 있다. TVB의 스타 배우 유송인(劉松仁)의 눈에 띄어 25세의 젊은 나이에 운 좋게 데뷔작 〈벽수한산탈명금〉으로 입봉한 후 영화 연출과 TV 드라마 연출은 다르며 자신은 아직 영화를 만들 실력은 못 된다고 생각해서 스스로 TVB로 돌아갔고[8] , 또 1992년 심사관의 감독은 자신이고 영화를 연출하면서 주연 배우인 주성치와 트러블도 심했는데도 영화가 성공하자 전부 자기 덕분에 흥행에 성공한 거라고 언급하는 주성치와 실제로 그 공이 배우에게 돌아가는 모습, 1993년 〈동방삼협〉 시리즈를 연출하면서 여배우들과 겪은 일들로 홍콩영화계가 천문학적인 몸값을 지닌 배우들만을 중심으로 끌려가는 것에 회의를 느끼고 '스타들에게 끌려가면서 영화를 만들 것인가, 스타가 없는 대신 나만의 스타일을 지닌 영화를 추구할 것인가'를 '''고민하느라''' 3년 동안 연출에서 손을 놓았다.[9] 결국 고민 끝에 자신만의 영화를 만들기로 하고는 '''직접 영화제작사를 세워버렸다.''' 그 정도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산업 내에서 살아남는 데에도 신경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종종 스타를 중심으로 한 로맨틱 코미디도 연출하는데, 이것은 대체로 자신의 제작사를 유지하기 위함이다. 제62회 칸 영화제 경쟁 부문 초청작 〈피의 복수〉가 흥행에 실패하자 바로 데이트용 영화 〈단신남녀〉를 만들었다. 자기가 운영하는 제작사가 있어야 감독으로서의 자유를 보장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느와르 영화 <익사일>은 제63회 베니스 국제 영화제에 초청되었다.
영화를 만들 때 출연하는 배우들을 보면 유덕화 같은 스타들이 출연하는 영화도 있지만 개성있는 배우들을 주로 출연시키는 편이다. 황추생[10] , 임달화[11] , 임설, 장가휘, 장요양, 유청운, 오진우[12] 등...
자신의 영화사 밀키웨이 이미지를 같이 창설한 위가휘와 공동감독을 많이 하는 편이다. 그 외에 정조강 촬영감독, 데이비드 M. 리처드슨 편집감독, 자비에 자모스 음악감독과 많이 일하는 편이다.
보통화 발음 두치펑과 영어식 이름 조니 토로도 알려졌으며 부산국제영화제에서는 이름이 조니 토로 굳은 모양이다. 최근에는 홍콩 정세 때문에 다작을 못하고 있는 듯.
杜琪峰; Johnnie To, 1955. 4. 22.~
1. 개요
홍콩의 영화 감독. 주윤발와 임달화하고 동갑이다. 80~90년대 한국에서 서극, 오우삼, 임영동 등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던 시절에는 다른 걸작의 속편을 만드는 그저그런 감독 정도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홍콩 영화인들이 너도나도 해외로 진출하면서 경력을 말아먹는 동안에도 꾸준히 홍콩 영화계를 지키며 영화를 만들더니 90년대 말 2000년대 초에 들어설 즈음에는 문득 거장이 되고 말았다.[1] 작품의 수준은 그저 그런데 경쟁자가 없어져서 상대적으로 이름이 높아진 것도 아니고, 갑자기 스타일을 바꾸며 환골탈태한 것도 아니고, 데뷔 시절부터 꾸준히 자신의 스타일을 유지하면서 갈고 닦더니 어느 순간 경지에 올랐다는 점에서 노력형 대가의 모범이라 할 만하다. 지금은 소위 홍콩 느와르라고 불리는 홍콩식 범죄 장르영화를 만들면서도 이례적으로 칸, 베니스, 베를린을 비롯한 국제 영화제의 경쟁 부문에 꾸준히 초청받고 있으며, 세계 유수의 평론가들에게도 거장으로 칭송받는 위치에 이르렀다.
2. 감독으로서의 성향
1980년에 〈벽수한산탈명금〉으로 데뷔한 이래 현재까지 32년 동안 48편의 극장용 장편영화를 만들었다. 1986년에 두 번째 장편 〈개심귀당귀〉를 내놓을 때까지의 공백을 제외하면 거의 매년 신작을 내놓고 있다.[2] 생존한 감독 중 이 정도로 작품 활동이 빠르고 꾸준한 사람은 미이케 다카시, 홍상수, 클린트 이스트우드 정도인 듯.
한 편의 영화를 완성하는 속도가 빠른 것으로도 유명한데, 가령 대표작인 〈미션〉은 촬영 기간이 19일 밖에 되지 않았다. 그의 영화 스타일이 카메라를 막 들이대서 빠르게 찍고 편집실에서 이리저리 붙여보는 방식이 아니라 매 쇼트의 구도와 순서를 엄격하게 정하는 식임을 생각하면 경이로울 정도다. 다만 촬영에 앞서 준비를 철저히 하는 모양.
게다가 '''배우들에게 대본을 안 준다.''' 촬영 당일 아침에 그 날 찍을 분량 대본만 줄 뿐, 전체 영화의 흐름 같은 건 가르쳐주지도 않는다. 다만 프랑스와 합작한 최근작 〈피의 복수〉의 경우 프랑스의 국민 가수이자 배우인 조니 할리데이가 주연을 맡았는데 할리데이에게만은 전체 대본을 줬다고 한다. 하지만 이때도 할리데이를 제외한 다른 중화권 배우들에게는 대본을 주지 않았다. 이런 식의 작업은 한국의 홍상수 감독도 곧잘 하는 일이지만 일상의 우연을 열어놓고 받아들이는 작품이 아니라 엄정하게 계산된 장르영화를 만드는 감독이 이런 식으로 작업을 한다는 사실은 경악스럽다.
더불어 한 번에 여러 작품을 만드는 일도 곧잘 한다. 배우 및 스탭들의 일정에 따라 촬영 계획을 잡은 다음 촬영이 없는 빈 시간에 다른 영화를 찍는다. 특히 '''하비 무비(hobby movie)'''라고 하여 '그냥 내가 정말 만들고 싶기 때문에 만드는, 취미로 만드는 영화'가 따로 있는데 이 경우 '''몇 년'''에 걸쳐 시간이 날 때마다 띄엄띄엄 촬영을 해서 영화를 완성하기도 한다. 〈PTU〉가 대표적인 예.(촬영'''만''' 3년 걸렸다) 직업도 영화 만들기고 취미도 영화 만들기인, 영화에 미친 감독이라 할 만하다.
자연히 감독으로서의 자의식도 대단하다. 홍콩의 TV 방송국 TVB에서 일하던 시절 TVB 연기자 훈련반에 들어갔는데[6] 그가 TVB 연기자 훈련반에 들어간 이유는 연기를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렇게 하면 촬영 현장에 더 가까워질 수 있어서였다고 한다. 또 TV 드라마 감독이 아니라 영화감독이 되고 싶었던 것도 TV 드라마 감독은 기교를 배운 다음 시키는대로 찍기만 하면 되는데 영화감독은 전체 기획을 총괄하면서 폭 넓은 창의력을 발휘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감독이라면 촬영 현장의 지휘뿐만 아니라 작품의 기획, 각본, 제작 등의 단계를 모두 관리하며 자신의 개성을 불어 넣어야 한다는 것이 지론이다.
두기봉은 데뷔 이후 두 번 영화 작업을 멈춘 적이 있다. TVB의 스타 배우 유송인(劉松仁)의 눈에 띄어 25세의 젊은 나이에 운 좋게 데뷔작 〈벽수한산탈명금〉으로 입봉한 후 영화 연출과 TV 드라마 연출은 다르며 자신은 아직 영화를 만들 실력은 못 된다고 생각해서 스스로 TVB로 돌아갔고[8] , 또 1992년 심사관의 감독은 자신이고 영화를 연출하면서 주연 배우인 주성치와 트러블도 심했는데도 영화가 성공하자 전부 자기 덕분에 흥행에 성공한 거라고 언급하는 주성치와 실제로 그 공이 배우에게 돌아가는 모습, 1993년 〈동방삼협〉 시리즈를 연출하면서 여배우들과 겪은 일들로 홍콩영화계가 천문학적인 몸값을 지닌 배우들만을 중심으로 끌려가는 것에 회의를 느끼고 '스타들에게 끌려가면서 영화를 만들 것인가, 스타가 없는 대신 나만의 스타일을 지닌 영화를 추구할 것인가'를 '''고민하느라''' 3년 동안 연출에서 손을 놓았다.[9] 결국 고민 끝에 자신만의 영화를 만들기로 하고는 '''직접 영화제작사를 세워버렸다.''' 그 정도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산업 내에서 살아남는 데에도 신경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종종 스타를 중심으로 한 로맨틱 코미디도 연출하는데, 이것은 대체로 자신의 제작사를 유지하기 위함이다. 제62회 칸 영화제 경쟁 부문 초청작 〈피의 복수〉가 흥행에 실패하자 바로 데이트용 영화 〈단신남녀〉를 만들었다. 자기가 운영하는 제작사가 있어야 감독으로서의 자유를 보장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느와르 영화 <익사일>은 제63회 베니스 국제 영화제에 초청되었다.
영화를 만들 때 출연하는 배우들을 보면 유덕화 같은 스타들이 출연하는 영화도 있지만 개성있는 배우들을 주로 출연시키는 편이다. 황추생[10] , 임달화[11] , 임설, 장가휘, 장요양, 유청운, 오진우[12] 등...
자신의 영화사 밀키웨이 이미지를 같이 창설한 위가휘와 공동감독을 많이 하는 편이다. 그 외에 정조강 촬영감독, 데이비드 M. 리처드슨 편집감독, 자비에 자모스 음악감독과 많이 일하는 편이다.
보통화 발음 두치펑과 영어식 이름 조니 토로도 알려졌으며 부산국제영화제에서는 이름이 조니 토로 굳은 모양이다. 최근에는 홍콩 정세 때문에 다작을 못하고 있는 듯.
3. 작품들
- 벽수한산탈명금 (The Enigmatic Case, 碧水寒山奪命金, 1980)
유송인, 종초홍 주연의 미스터리 무협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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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행동 (The Big Heat, 城市特警, 1988)
본 제목은 성시특경(城市特警). 한국 개봉제목은 대행동. 자세한 건 항목을 참고할 것.
- 우견아랑 (All About Ah Long, 阿郎的故事, 1989)
주윤발 주연의 드라마 영화. 이 작품으로 제9회 홍콩 금상장 시상식에서 주윤발에게 남우주연상을 안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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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장지구 (A Moment Of Romance, 天若有情, 1990)
원제목은 천약유정(天若有情)인데 한국에선 이 제목으로 개봉했다. 영웅본색 시리즈의 영향이 강해지자, 홍콩에서 영향을 많이 받은 작품들이 우후죽순으로 만들어진다. 그 영향이 강한 영화. 제작만 했으며 감독은 진목승[13] 1997년에 aTV에서 40부작 시리즈로 제작되어진 동명의 드라마는 이 작품과는 별개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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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존무상 2 - 영패천하 (Casino Raiders 2,至尊無上II之永霸天下, 1991)
한국 개봉명은 지존무상 2 - 영패천하. 유덕화, 왕걸 주연의 영화로, 왕정, 향화승이 감독을 맡았던 지존무상(1989)과는 일부 소재와 설정이 유사하나, 전작과 무관한 속편이다.
- 심사관 (Justice, My Foot!, 審死官, 1992)
- 적각비협 (The Bare-Footed Kid, 赤腳小子, 1993)
- 동방삼협 시리즈 (The Heroic Trio, 東方三俠, 1993)
- 무미신탐 (Loving You, 無味神探, 1995)
탁종화, 유청운 주연의 영화.
- 천장지구 3 - 풍화가인 (A Moment of Romance III, 天若有情III 烽火佳人, 1996)
- 캘리포니아 (The Odd One Dies, 兩個只能活一個, 1997)
- 화급 (十萬火急, Fireline, 1997)
유청운, 방중신 주연의 드라마 영화. <분노의 역류> 영향을 받았다.
- 더 히어로 (A Hero Never Dies, 真心英雄, 1998)
유청운, 여명 주연의 영화.
- 우견아랑 2 (Where a Goodman Goes, 再見阿郎, 1999)
유청운, 여요상 주연의 영화. 우견아랑과 전혀 상관없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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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션 (The Mission. 鎗火, 1999)
황추생, 임달화, 오진우 주연의 느와르 영화. 제 37회 금마장 감독상[14] , 제 19회 홍콩 영화 금상장영화제(2000년)에서 감독상을 수상함으로써 두기봉을 단숨에 홍콩의 차세대 대표 감독 반열에 오르게 만든 작품. 암살 위협에 시달리는 흑사회 보스의 보디가드로 임시 고용된 다섯 남자들의 이야기. 84분의 짧은 작품이지만, 담백하고 건조한 느낌의 시나리오와 쇼핑몰 총격전을 필두로 하는 참신한 화면 구성이 일품인 영화이다. 키보드로만 이어진 단조로우면서도 묘한 테마곡이 작품 내내 흐른다. 참고로 보스의 숙부 역할로 나오는 배우는 왕천림으로 과거의 다작으로 유명한 영화 감독이었으며, 그의 아들이 다름 아닌 왕정 감독이다. 왕천림은 이후에도 영화 <흑사회>에서 원로 역할로 나온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 <7인의 사무라이>에서 영향을 받은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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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암전 (Running out of time, 暗戰) 시리즈 (1999, 2001)
한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이 영화 시리즈는 두기봉에게 명성을 가져다 주었다. 주연은 유청운, 범인 역에는 유덕화(1편), 정이건(2편). 유덕화는 이 영화 출연으로 제 19회 홍콩 금상장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 니딩 유 (Needing You..., 孤男寡女, 2000)
유덕화, 정수문 주연의 멜로영화. 위가휘와 공동 감독을 했다.
- 날수회춘 (Help!!!, 辣手回春, 2000)
정이건, 장백지 주연의 코미디영화. 위가휘와 공동 감독을 했다.
- 풀타임 킬러 (Full-Time Killer, 全職殺手, 2001)
- 러브 온 다이어트 (Love On a Diet, 瘦身男女, 2001)
정수문, 유덕화 주연의 로맨스 코미디 영화. 두 배우는 특수분장으로 과체중 인물을 연기한다. 위가휘와 공동 감독을 했다.
- 아좌안견도귀 (My Left Eye Sees Ghosts, 我左眼見到鬼, 2002)
정수문, 유청운 주연의 판타지 로맨스 영화.
- 대척료 (Running On Karma, 大隻佬, 2003)
유덕화, 장백지 주연의 판타지 액션 영화. 유덕화의 근육 특수분장이 돋보이는데, 오프닝부터 스트립쇼를 하는 열연을 보여준다. 그러나 불교적인 사상 윤회를 다룸으로써 진지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2015년 IPTV 재개봉으로 <무적의 소림쿵푸 마스터>라는 해괴한 제목이 붙여졌다.
- PTU (2003)
임달화, 소미기, 임설 주연의 범죄 영화. 구로사와 아키라감독의 <들개>에 영향을 받았다. 촬영에 3년이 걸린 하비 무비이며, 건조한 분위기가 일품으로 오프닝의 훠궈집 장면과 엔딩의 충격전 장면이 백미이다. 자신의 제작사 밀키웨이 이미지에서 제작한 5개의 속편이[15] 나왔다.
- 왼쪽으로 가는 남자, 오른쪽으로 가는 여자 (Turn Left, Turn Right, 向左走.向右走, 2003)
금성무, 양영기 주연의 영화. 러브 코미디다. 두 남녀의 우연한 만남에서 출발하는 영화. 총기가 흔히 등장하는 느와르 영화들과는 다르다. 대만의 삽화가인 '기미(幾米, Jimmy Liao) 작가의 작품인 '왼쪽으로 가는 여자, 오른쪽으로 가는 남자(向左走,向右走)를 원작으로 하는 영화.
- 레드 써클 (제작 취소)
장 피에르 멜빌의 암흑가의 세 사람(원제가 레드 써클)의 리메이크 영화. 2003년 경에 올랜도 블룸, 리암 니슨이 출연하고 알랭 들롱도 출연할 예정 이었으나, 결국 리암니슨의 짤막한 인터뷰로 보아 엎어진 것으로 보인다. 2011년 자움 콜렛 세라를 감독으로 다시 진행예정이었으나, 소식이 들려오지 않는 걸 보면 엎어진 것으로 보인다.
- 용호방 (Throw Down, 柔道龍虎榜, 2004)
- 용봉투 (Yesterday Once More, 龍鳳鬥, 2004)
유덕화, 정수문 주연의 로맨틱 코미디 영화.
- 대사건 (Breaking News, 大事件, 2004)
임현제, 진혜림, 장가휘 주연의 범죄 액션 영화. 오프닝의 6분간 롱테이크 총격전이 인상적이다. 원래는 <반지의 제왕> 촬영기사를 기용하려고 했으나 각본을 보고 너무 동선이 복잡해서 거절하고 결국 제작진들이 7.57m의 크레인을 사용하고 동선을 면밀히 검토를 해서 찍었다고 한다.# 그리고 3000발의 공포탄이 쓰여졌다. 스케줄이 맞지 않아 이걸 한번도 끊지 않고 촬영했다는 게 엄청나다. 감독의 노하우가 잘 드러나있다. 두기봉 감독이 해외에 알려지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되어 준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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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흑사회 시리즈 (Election, 黑社會, 2005, 2006)
임달화, 양가휘, 고천락 주연의 범죄 영화. 잔혹하기 그지없는 중국 흑사회를 다룬 영화. 홍콩 삼합회의 보스 선출을 둘러싼 폭력배들의 권력투쟁을 냉철하게 묘사하고 있으며, 그를 통해 홍콩-중국 관계를 은유적으로 비판해낸 두기봉 최고의 수작이면서 홍콩 갱스터 영화의 걸작으로 칭해진다. 1편은 제58회 칸 영화제 경쟁부문 초청작이다. 혹자는 영웅본색(홍콩 반환 전)과 무간도(반환 직후)를 이어 현재 홍콩을 그리고 있는 새로운 홍콩느와르의 계보라 평하기도 했다. 제25회 홍콩 금상장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남우주연상(양가휘)을 수상하고, 제42회 대만 금마장 시상식에서 각본상, 음향상을 수상했다. MBC FM4U - 정성일,이주연의 영화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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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익사일 (Exiled, 放逐, 2006)
아시아의 알 파치노라 불린 황추생이 나온 액션영화. 제63회 베니스 국제 영화제 경쟁부문 초청작. 김혜리가 '좋은 폼, 탁월한 폼, 환상적인 폼' 으로 8점을 주고, 이동진이 '100점짜리 액션 시퀀스들이 있다.'고 8점을 주고 호평을 할 정도로 슬로우모션이 나오는 꿈결같은 총격전이 엄청 정교하고 화려하다. 결말부의 주인공 일행 4명이 캔을 찬 순간 동안의 무차별 슬로우모션 총격전 (수십명의 인원이 피아식별도 어렵게 총을 쏴댄다. 몸에서 나오는 빨간연기(피)가 나오는게...)가 인상적이다. 미션의 속편으로 기획했다가 그냥 별개의 영화로 제작되었는데 그래도 미션과의 연관성이 꽤 있는 편이다.
- 트라이앵글 (Triangle, 鐵三角, 2007)
- 매드 디텍티브 (Mad Detective, 神探, 2007)
유청운, 안지걸, 임가동 주연의 스릴러 영화. 제64회 베니스 국제 영화제 경쟁부문 초청작. 살인마의 살인방식을 직접 몸으로 겪어봄으로써 범인을 볼 수 있는 형사가 주인공이다. 유청운의 광기어린 원맨쇼 연기가 돋보인다. 결말부 오손 웰즈 감독의 <상하이에서 온 여인>을 오마주한 거울 총격전이 백미. 위가휘 감독과 공동 감독을 했다. 자신의 영화사 밀키웨이 이미지 창립 10주년 기념작.
- 호접비 (Linger, 蝴蝶飛, 2007)
리빙빙, 주유민의 로맨스 영화. 평과 흥행에 크게 실패해 두기봉 감독의 흑역사로 여겨진다.
- 스패로우 (Sparrow, 文雀, 2008)
임달화, 임희뢰의 로맨스 범죄 영화. 제58회 베를린 영화제 경쟁부문 초청작. 두기봉 감독의 옛 홍콩에 대한 노스텔지어와 애정어린 시선이 담겨있다. 후반부에 나오는 비오는 날의 주인공 소매치기 일당들과 소매치기 일당들의 횡단보도 우산으로 소매치기 대결하는 장면이 백미인 영화이다. 3년 동안 찍었다고 한다. 두기봉 감독의 작업에 많이 참여한 정조강 촬영감독에게 제45회 금마장 촬영상을 안긴 영화다.
- 피의 복수 (Vengeance, 復仇, 2009)
조니 할리데이, 임달화, 황추생 주연의 액션영화. 제62회 칸 영화제 경쟁부문 초청작. 장 피에르 멜빌의 <고독>의 주인공 코스텔로가 살아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에서 시작된 영화이다. 실제로 알랭 들롱에게 주인공 캐스팅 제의를 했었으나 각본이 형편없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 단신남녀 (Don't Go Breaking My Heart, 單身男女, 2011)
- 탈명금 : 사라진 천만 달러의 행방 (Life Without Principle, 奪命金, 2011)
유청운, 임현제, 하운시 주연의 범죄 영화. 제68회 베니스 국제 영화제 경쟁부문 초청작. 제85회 아카데미 시상식 외국어 영화상 부문 홍콩 출품작이다.
- 고해발지련 II (Romancing In Thin Air, 高海拔之戀Ⅱ, 2012)
고천락, 정수문 주연의 로맨스 멜로 영화.
- 마약전쟁 (Drug War, 毒戰, 2013)
해외에서도 준수한 평가를 받았지만 한국에서는 곧바로 IPTV로 직행. 프랑스 본 스릴러 국제영화제 공식 초청작. 마약전쟁은 2013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그의 또다른 작품인 <블라인드 디텍티브>와 같이 개봉하였다. 특유의 하드보일드함이 잘 살아있다. 그리고 2018년에 한국에서 독전으로 리메이크 되었다.
- 블라인드 디텍티브 (盲探 , Blind Detective , 2013)
유덕화, 정수문 주연의 로맨스 스릴러 범죄 영화.
- 단신남녀 2 (Don't Go Breaking My Heart 2, 單身男女2, 2014)
- 화려상반족: 오피스 (Office, 華麗上班族, 2015)
- 삼인행: 생존 게임 (Three, 三人行, 2016)
- 아적권왕남우 (Chasing Dream, 我的拳王男友, 2019)
황좌, 왕가여 주연의 로맨스 액션 영화.
- 칠중주: 홍콩 이야기 (Septet: The Story of Hong Kong, 七人樂隊, 2020)
홍금보, 허안화, 담가명, 원화평, 임영동, 서극 감독 6명과의 '홍콩'을 주제로 한 옴니버스 영화.
제25회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되었다. 두기봉 감독은 <보난자>에서 19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 아시아 금융위기와 닷컴 버블, 사스위기 등을 거친 극적 반전의 시대에 주식투자에 열중했던 청춘들의 모습을 그린다.
제25회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되었다. 두기봉 감독은 <보난자>에서 19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 아시아 금융위기와 닷컴 버블, 사스위기 등을 거친 극적 반전의 시대에 주식투자에 열중했던 청춘들의 모습을 그린다.
[1] 비슷한 인물로 유위강 감독이 있다. 무간도로 한때 느와르의 거장 소리를 들었으나 두기봉 감독에 비하면 한수 아래라는 평가를 받는다.[2] 1994년과 2010년에 신작이 없는데, 대신 1993년과 2009년에 각각 다섯 작품에 감독 및 제작자로 참여했다.[3] 前 TVB 프로듀서. 1948년생. 40여년간 TVB에 재직하며 수많은 작품을 제작했다가 2018년 5월에 퇴사했다.[4] 출신은 TVB였지만 정작 TVB에선 몇년밖에 있지 않았고 경쟁 방송사 RTV로 이적한 뒤 거기에서 활약했다(...) 1983년 ATV에서 나온 후 1986년 중국 대륙으로 터전을 옮겨 그곳에서 활동 중. 대표작은 신용문객잔, 94 의천도룡기 등. 감독 이외에도 드라마 출연을 하기도 했는데 2013년판 천룡팔부에서 왕검통 역을, 2014년판 녹정기에선 오배역을 맡기도 했다.[5] 前 TVB 프로듀서. 대표작은 서유기. 현재는 중국 대륙에서 활동 중이다.[6] 당시 제 4기 졸업생(1975년 졸업)으로 유명한 동기생은 반가덕(潘嘉德)[3] , 뇌수청(賴水清)[4] , 유사유(劉仕裕)[5] , 그리고 여배우 황행수(黃杏秀) 등이 있다. 한 기수 위의 선배로는 주윤발, 임영동, 오맹달, 임달화 등이 있다.[7] 왜 TVB의 흑역사였냐면 당시 시청률 경쟁에서 옆 방송사 RTV의 거작 대지은정(大地恩情)에게 발려서 원래 예정되었던 80부작에서 30부작으로 조기종영되었기 때문이다(...)[8] 돌아갔다는 표현은 사실 정확하지 않은게 <벽수한산탈명금>을 만들 당시에도 그는 여전히 1986년까지 TVB 소속인 상태에서 윤류전(輪流傳)[7] , 천왕지왕, 사조영웅전, 녹정기, 의천도룡기 등의 연출을 맡았었기 때문이다.[9] 부산국제영화제 마스터클래스에서 직접 발언한 내용이다. 그런데 필모그래피를 보면 1993년과 1995년에 작품이 있기 때문에 1년만 손을 놓았다고 할 수도 있다. 아마 당사자는 이 시기를 93~95년에 걸친 기간으로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생긴 차이일 것이다.[10] 무간도 시리즈의 황국장 역할.[11] 첩혈가두에서 킬러 역할로 처음 알려졌으나 그 후 한동안 그저그런 영화에 출연하다가 두기봉 영화에 출연하면서 재기에 성공하였다. 우리에게는 도둑들의 첸 역할로 익숙하다.[12] 무간도 2의 예영효 역할.[13] 홍콩 방송국 출신의 영화감독. 크레딧에 안 올랐다 뿐이지 실질적으로 연출했다는 얘기가 있다. 2020년 8월 23일 말기 비인암으로 타계.[14] 이때 경쟁작이 <와호장룡>과 <화양연화>였다.[15] 4개는 비디오용, 1개는 공식 속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