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칸 테무르

 


1. 개요
2. 상세
3. 평가
4. 여담


1. 개요


?~1362, 원나라장군이자 군벌. 원나라 말기 홍건적반란 세력과의 전투에서 대활약을 펼친 명장이다.

2. 상세


차칸 테무르는 나이만 부족 출신으로 중국 북정 지역, 지금의 신장 위구르 자치구 지역에서 태어나 일찍이 진사 시험 급제를 하면서 명성을 떨쳤다. 당시 원나라는 조정의 무능과 부패, 자연재해 등으로 인해 홍건적을 비롯한 수많은 농민 봉기와 군웅들의 등장으로 급속도로 쇠락해가고 있었다. 또한 원나라의 마지막 명재상이라 불리던 토크토아가 해임 이후 독살당하면서 원나라 군대는 구심점을 잃고 반란군에게 수세로 일관하면서 밀리고 있었다. 이 때 차칸 테무르는 1만이 넘는 군대를 조직해 반란 세력을 토벌하기 시작했다. 그는 1355년 하북에서 30만이 넘는 농민 반란군을 전멸시키면서 명성을 떨치기 시작했고, 1357년에는 하남, 산동, 산시성 등지에서 발생한 반란군을 모조리 전멸시켰다. 또한 1358년에 모귀, 유복통이 이끌던 홍건적을 모두 물리쳤다.
그러나 승승장구하던 차칸 테무르는 1362년, 투항한 홍건적 출신의 전풍에 의해 암살당하는 비운을 맞았다. 전풍은 이후 차칸 테무르의 양자 코케 테무르[1]에게 붙잡혀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하지만 차칸 테무르 사후 원나라 군대는 구심점을 잃음과 동시에 무너졌고 명나라를 건국한 주원장에 의해 결국 원 조정은 중국 대륙을 잃고 몽골로 철수하게 된다.

3. 평가


토크토아와 함께 사실상 원나라의 마지막 기둥이나 다름없었다. 원나라 군대가 홍건적 등 반란군에게 연패를 당할 때 혼자 자신의 사병만으로 수많은 반란군을 무찌르고 원나라의 멸망을 무려 10년 가량 늦췄다고 평가받는다.

4. 여담


주원장과는 동시대에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직접적인 대립이 없었는데 이는 주원장이 먼저 사람을 보내 협상을 제의했고 차칸 테무르는 이를 수용한 결과로 이후 서로가 대립하는 일은 차칸 테무르가 죽을 때까지도 벌어지지 않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차칸 테무르가 홍건적 및 반란군 군벌들을 진압하는 과정은 주원장의 경쟁 세력들을 약화시켰고 이 기회를 이용한 주원장은 오히려 세력을 키우고 공고히 하여 명나라 건국의 초석을 쌓는다.

5. 의천도룡기


의천도룡기에서는 원나라 왕족인 여양왕[2]이자 조민의 아버지로 등장한다. 조정의 병마대권을 쥐고 있으나, 탈탈을 비롯한 간신들의 견제를 받고 있어 뜻을 펴지 못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무림의 일에 대해서는 딸에게 상당 부분 위임하였는데, 그 딸이 결국 장무기와 눈이 맞게 되면서 난처하게 되었다. 장무기를 추격하던 여양왕은 결국 조민의 자살 소동에 병력을 물리고, 부녀 관계가 끊어지는 것으로 더 이상 등장하지 않게 된다.
드라마에서는 실제 인물처럼 상당한 명장으로 언급되며 반원 세력들이 무척이나 두려워하는 것으로[3] 나온다. 여기에 딸 조민을 지극히 사랑하면서도 그녀가 군율을 어기자 가차없이 처벌하는 모습과 최종화 장무기와 휴전 회담을 하는 장면에서 나름 안목이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휘하에는 현명이로 등의 고수를 부리고 있다. 그러나 장무기가 6대 문파를 만안사에서 구출하던 당시, 범요의 계략에 따라 차칸 테무르의 첩을 위일소가 납치해서 녹장객에게 넘겨주었던 사건 때문에 바람에 부하인 현명이로와 척을 지는 모습도 나온다. 원작소설에서는 조민이 녹장객을 모함하자 이에 분노한 현명이로가 여양왕 수하를 떠나는 것으로 묘사된다. 2019년 드라마에서는 현명이로가 주원장에게 매수되어 아예 여양왕 암살 음모에 가담하기까지 한다.
[1] 차칸 테무르의 외조카로 북원 건국 직후인 1372년 몽골 고원까지 진격해온 서달의 15만 명나라 대군을 격파하고 북원의 세력을 산서성 일대까지 일시적으로 확대시킨 명장이다.[2] 이 부분은 물론 작가 김용의 창작.[3] 후반부에 명교 사람들이 도망쳐온 조민을 죽이네 살리네 논쟁을 벌이는데 반대하는 사람들이 조민을 죽이면 여양왕이 현재 조정에서 받고 있는 혐의를 벗고 군대를 이끌고 쳐들오니까 안된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