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카

 



1. 개요
2. 역사
3. 의의

러시아어: Всероссийская чрезвычайная комиссия по борьбе с контрреволюцией и саботажем, ЧК (프쑈라씨스카야 츠레즈븨차이나야 까미씨야 빠 바리볘 쓰 꼰뜨례발류찌이 이 싸보따젬, 체까) (전러시아 반혁명 및 사보타지 분쇄 비상위원회)

1. 개요


체카는 1917년 12월 20일 창립된 소련정치경찰이다. 10월 혁명 이후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 내 좌, 우파에 의한 테러 예방, 반대세력 숙청을 담당했다. 주업무는 반혁명 세력의 테러 방지 및 반대세력 정치활동 탄압이었으며, 1918년에는 업무가 확대되어 투기와 부패 단속도 추가되었다.
체카는 10월 혁명 이후 러시아 내 볼셰비키 반대세력을 제압, 블라디미르 레닌이 이끌던 볼셰비키적백내전에서 승리하는데 큰 기여를 했다. 체카 요원들을 지칭하던 말이었던 체키스트(Чекист, Chekist)는 이후 소련 정치경찰의 대명사가 되었으며, 체카가 구축한 정치경찰 조직은 NKVD, KGB같은 소련 정보기관의 시초가 되었다.

2. 역사


1917년 11월 7일, 블라디미르 레닌이 이끌던 볼셰비키는 페트로그라드 전역에서 무장봉기를 일으켜 임시정부를 해산시켰다. 당시 기존 임시정부에서 근무하던 공무원들은 볼셰비키가 수립한 정부에서 근무하길 거부했다. 이로인해 볼셰비키 내에서는 기존의 정부를 대신할 새로운 역할을 할 조직이 필요했다. 특히 레닌은 앞으로 있을 국가 개편과정에서 반대파들의 테러 및 세력을 단속할 조직이 필요하다고 판단, 12월 20일 소비에트 대회에서 펠릭스 제르진스키(Феликс Дзержинский)와 예캅스 페테르스(Jēkabs Peterss)를 책임자로 선출하여 전러시아 반혁명 및 사보타지 분쇄 비상위원회, 줄여서 체카를 창설했다.
당시 볼셰비키는 임시정부 해산에 이어 1917년 12월에는 당시 볼셰비키와 경쟁관계였던 사회혁명당 우파(온건파)가 주도하는 제헌의회를 해산시켰다. 이어 1918년 3월에는 독일 제국과 단독으로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을 맺고 전쟁을 끝냈다. 이로 인해 볼셰비키는 10월 봉기에 반대했던 멘셰비키와 사회혁명당 우파(온건파)뿐만 아니라 이를 지지했던 사회혁명당 좌파와 아나키스트 정치세력과의 관계도 급격히 악화되었다. 특히 1918년 3월에는 사회혁명당 당원이었던 파니 카플란(Фанни Каплан)이 레닌을 암살하려던 시도가 벌어지면서 체카는 본격적으로 사회혁명당 좌우파 전체, 녹색군(Зелёная армия)[1], 그리고 흑위대[2]와 흑군[3] 같은 아나키스트 세력 역시 단속하게 되었다.
1918년 10월 러시아 공화국 정부가 수도를 페트로그라드에서 모스크바로 옮긴 이후, 크렘린에서 얼마 안 떨어진 위치에 있던 전러시아보험회사 건물을 본부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는 훗날 '''루뱐카'''로 알려진 소련 비밀경찰 본부의 상징이 되었다.
1922년 2월 6일 조직개편을 통해 인민위원회의[4] 직속 기관에서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 내무인민위원회 소속 국가정치국(ГПУ, GPU)으로 개편되었다.

3. 의의


체카는 반대세력 탄압이라는 점에서는 러시아 제국 시절 차르의 비밀경찰이었던 오흐라나와 비슷한 역할을 맡았다. 하지만 체카는 단순히 내부단속을 주로 맡았던 오흐라나에서 더 나아가 반대파에 대한 적극적인 테러 전략을 구사했다. 특히 적백내전에서 체카는 적색 테러(Красный террор, Red Terror)같은 반대파 정치인 암살 및 즉결재판, 총살을 통해 반체제세력을 단속하는데 크게 공헌했다.
체카는 당시 유럽에서 유행하던 여타 사회주의 계열 정당과는 달리, 공산당을 철저히 혁명을 기획하는 조직으로써 구축하고자 했던 레닌의 소실이었다. 사실 혁명 당시 체카가 보인 무자비함과 잔인한 처형은 프랑스 혁명 당시 로베스피에르가 통치하던 시기와 파시즘과 같은 전체주의 채재와 별반 다를 게 없였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보았을 때 반대세력을 체계적으로 제거한다는 점에서 체카는 러시아 내 다른 정당들이 갖추지 못했던 이점이였다. 이와 같이 볼셰비키는 혁명과 내전에서 승리하기 위해 차르 일가 총살, 크론슈타트 반란, 탐보프 반란 진압 등 반대파를 무자비하게 진압하는 모습을 보였고, 그 결과 내전에서 승리, 소련을 건국할 수 있었다.
체카는 반대파를 무자비하게 숙청하고 반대세력을 테러, 선동, 분열시키는 '''현대적 정치경찰'''의 모습을 처음으로 정립했고, 실제로 훗날 이오시프 스탈린이 주도한 대숙청의 완벽한 도구로써 이용되었다.


[1] 곡물 징발에 반발한 농민이 주축이 된 무장단체[2] 1917년 10월 혁명 이후 볼셰비키가 자체적인 무장집단인 적위대를 유지하자, 이에 대항하기 위해 러시아 전역에서 만들어진 아나키스트들의 무장 단체였다. 이후 체카와의 지속적인 충돌로 인해 세력이 와해되기 시작하고, 나머지는 후에 흑군에 흡수된다.[3] 마흐노가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이후 우크라이나 지역의 흑위대를 중심으로 결성한 무장 단체이다. 사실상 흑위대를 계승했다. 흑위대 보다 수는 적었던 대신 더욱 잘 조직되어 있었으며, 이러한 조직 구조는 이후 스페인 내전에서 아나키스트들의 민병대에 영향을 준다.[4] 훗날 소련 장관회의의 전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