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카이(중순양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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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카오급 중순양함 4번함으로, 일본군이 공식적으로 중순양함으로 발표한 군함 중에서는 최후의 배다. 성능은 타카오급 항목 참조.
1931년 4월 5일에 진수식을 거행했으며, 1932년 6월 30일에 취역했다. 1933년에는 특별대연습에서 함대 기함을 맡았다가 무선통신이 불통되는 '초카이 사건'을 일으켰다. 1941년에는 자매함인 타카오나 아타고처럼 개장공사를 받을 예정이었으나, 정세가 흉흉해서 개장공사는 취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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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전 초기에는 오자와 지사부로 제독의 기함으로서 남방작전에 투입되었고, 말라야 침공에 참가했으며, 프린스 오브 웨일즈를 추적하기도 했으나 오자와 휘하의 육상공격기들이 프린스 오브 웨일즈를 격침시켰으므로 교전은 벌이지 않았다. 이후에는 남방작전에 참가해서 네덜란드령 동인도제도와 보르네오 섬 점령에 공헌했지만 1942년 2월 22일에 암초에 충돌, 수리를 위해 싱가포르로 간다. 이후에는 남방작전에 복귀해서 지원임무를 수행했고, 인도양까지 진출해서 미국 화물선 1척과 영국 증기선 1척을 격침시킨다.
남방작전 이후 일본으로 귀환한 초카이는 미드웨이 해전에도 참가했지만 미군과 직접 교전을 벌이지는 않았으며, 1942년 7월에 제8함대의 기함이 된다. 함대 지휘관 미카와 군이치 제독과 함께 라바울로 이동한 초카이였지만, 제8함대의 사령부 시설은 다른 부대에 비해 상당히 초라했다고 한다.
과달카날에 미군이 상륙함으로서 과달카날 전역이 시작되었고, 미카와 제독은 기함 초카이와 제6전대(아오바, 키누가사, 후루타카, 카코)를 거느리고 야습을 감행하기로 한다. 그러나 오합지졸 3인방이 떼를 써서 작전에 참가했고, 이들은 미카와 제독의 작전구상에 지대한 방해가 된다. 문제의 군함은 구축함 유나기, 유바리, 그리고 잉여 경순양함 텐류였다. 무선통신도 안 되고 속도도 안 맞는 군함들이라, 일본어 위키에서도 대놓고 오합지졸들이라고 비하할 지경이었다. 과달카날에 '''엔터프라이즈'''를 포함한 강력한 미 함대가 있음을 감안하면 이 작전은 매우 위험했지만, 제8함대는 압승을 거뒀다. 이 해전이 바로 '''미 해군 역사상 최악의 해전'''으로 불리는 사보섬 해전이며, 초카이는 함대의 기함이면서도 선봉에 서서 돌격, 34명의 전사자를 내고 포탑과 함교에 손상을 입으면서도 대승리를 거두는데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날이 밝기 전에 과달카날의 미군을 공격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미카와 제독은 함대를 철수시켰다. 일본군이 입은 손실은 귀로에서 미군 잠수함의 매복공격을 당해 격침된 제6전대 소속 중순양함 카코 1척 뿐이다.
포탑 수리를 끝낸 초카이는 제6전대를 거느리고 동부 솔로몬 해전에 참가, 제2수뢰전대와 함께 과달카날에 상륙할 일본군 병력을 실은 수송선들을 호위했다. 그러나 일본군의 주력을 이룬 항공모함 쇼카쿠와 즈이카쿠가 수송함대를 놔두고 후퇴하는 바람에 미군의 공습을 당했고, 휘하인 제6전대 중순양함들과 경순양함 유라와 함께 정찰기로 핸더슨 비행장을 야간공습까지 하며 안간힘을 썼지만 과달카날 상륙에는 실패했다.
에스페란스 곶 해전에서 제6전대가 큰 피해를 입은 후, 초카이는 키누가사와 함께 핸더슨 비행장을 야간에 포격하여 큰 피해를 입히기도 했다. 그러나 과달카날 해전에서 핸더슨 비행장을 재차 포격했다가, 귀로에서 핸더슨 비행장의 칵터스 항공대와 '''엔터프라이즈''' 항공대의 공습을 당해 키누가사를 잃는다. 이것으로 제6전대는 아오바 1척을 제외하면 모두 침몰했으며, 일본군은 과달카날에서 패배했다.
과달카날 전투가 끝난 후 초카이는 제8함대 기함 임무에서 물러나 일본으로 돌아갔다.
일본에 돌아간 후 몇 가지 자잘한 임무를 수행하던 초카이는 1944년에 제4전대 기함이 된다. 이후 제5전대로 소속을 옮겼다가, 구리다 함대의 일원으로 레이테 만 해전에 참가한다. 구리다 함대는 무사시를 포함한 다수의 배를 잃지만, 홀시의 실수 덕분에 목표지점인 레이테 만 근처까지 도착했고, 여기서 태피 3을 만나면서 사마르 해전이 벌어진다.
사마르 해전에서 초카이는 치쿠마/노시로 등의 다른 순양함들과 함께 태피 3에 포격을 가했고, 미군의 호위항공모함 갬비어 베이가 격침된다. 갬비어 베이를 누가 격침시켰는지는 불분명하지만, 초카이가 갬비어 베이에 포격을 가한 것은 분명하므로 격침에 어느 정도 기여한 것은 사실로 보인다.
그러나 태피 3의 카사블랑카급 호위항공모함은 20mm나 40mm 기관포 이외에 '''5인치 단장포 1문'''을 장비[1] 하고 있었고, 그 중 한 척인 호위항모 화이트 플레인즈(White Plains, CVE-66)가 5인치 포의 최대 사정거리에 가까운 거리에서 6발을 초카이에 명중시켰다 [2] . 다만, 과거에는 하필이면 그 포탄이 어뢰발사관에 제대로 명중하여 초카이가 탑재한 산소어뢰를 유폭시키는 바람에, 엔진과 방향타가 나가버렸고, 이후 카사블랑카급 호위항공모함 USS 오마니 베이에서 출격한 기종불명 함재기에 의해 대파되어 이후 뇌격처분을 받고 자침되었다고 알려졌었다. 그러나 2019년에 진행된 R/V Petrel에 의한 심해탐사 조사에서 어뢰 보관창이 비교적 멀쩡한 반면 2번 포탑과 3번 포탑 사이에 큰 데미지가 발견되고, 함수부가 완전히 찢겨나가 함체로부터 300m 거리에서 발견됨에 따라 공고급 순양전함 공고에 의한 '''아군오사로 침몰되었다'''는 것이 현재 가장 신빙성이 높은 상황이다.
생존자들은 후지나미가 수습했는데 후지나미가 에식스급 항공모함 에식스에게 격침당하는 바람에 후지나미의 승무원과 같이 전멸해서 2차 세계대전에서 생존자가 전혀 나오지 못한 함선 중 최대라는 기록을 세워버렸다. 거기에 덤으로 침몰 지점이 '''필리핀 해구 바로 위'''인지라 잔해가 있을 예상 수심이 '''수심 8100m'''로 예상되어 세계에서 제일 깊은 바닷속에 있는 침몰선 중에 하나로 기록되기도 했다(...). 다만 2019년에 실제로 발견된 곳은 수심 5173m이다.영상 대신 세계에서 가장 깊은 바다속에 있는걸로 확인된건 수심 6220m의 같은 해전에서 침몰한 DD-557 존스턴이나 DD-533 호엘이 되었다.(2대가 쓰여진 이유는 플레처급 구축함 잔해를 발견했는데 존스턴인지 호엘인지 구분할 물건을 발견할정도로는 탐사를 못해서... 발견한 사람들은 도색을 생각하면 존스턴일걸로 추정하고 있다고 한다.)
초카이는 과달카날에서 제8함대 기함으로 크게 활약했고, 사마르 해전에서도 미군 호위항모 갬비어 베이의 격침에 기여하는 등, 일본군 중순양함 중에서도 매우 우수한 실적을 거두었다.
그러나 호위항공모함들을 상대로 고전하고, 더불어 아군 오사로 함생을 마무리 했다는 점에서 평가가 좀 떨어질 수 밖에 없다.
타카오급 중순양함들은 병사들이 지어준 별명을 갖고 있는데, 타카오는 '타카오 부인'이고 아타고는 '아타고 공주', 마야는 '마야 부인'이지만 초카이만은 '''초카이 법사'''였다(...). 헤이안 시대의 승려 쿠카이(空海) 법사와 이름이 비슷해서 붙은 별명으로 보인다.
드래곤볼의 유명한 캐릭터인 피콜로의 성우인 후루카와 토시오는 형이 이 초카이에서 복무했단다. 형이 전사한 후 후루카와 토시오가 태어나자 가족들은 형이 환생했다고 여겼다고.
2019년 10월 26일 폴 앨런 산하 발굴팀이 5173미터 해저에서 초카이의 선체를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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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카오급 중순양함 4번함으로, 일본군이 공식적으로 중순양함으로 발표한 군함 중에서는 최후의 배다. 성능은 타카오급 항목 참조.
1. 함생
1.1. 전쟁 이전
1931년 4월 5일에 진수식을 거행했으며, 1932년 6월 30일에 취역했다. 1933년에는 특별대연습에서 함대 기함을 맡았다가 무선통신이 불통되는 '초카이 사건'을 일으켰다. 1941년에는 자매함인 타카오나 아타고처럼 개장공사를 받을 예정이었으나, 정세가 흉흉해서 개장공사는 취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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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남방작전
개전 초기에는 오자와 지사부로 제독의 기함으로서 남방작전에 투입되었고, 말라야 침공에 참가했으며, 프린스 오브 웨일즈를 추적하기도 했으나 오자와 휘하의 육상공격기들이 프린스 오브 웨일즈를 격침시켰으므로 교전은 벌이지 않았다. 이후에는 남방작전에 참가해서 네덜란드령 동인도제도와 보르네오 섬 점령에 공헌했지만 1942년 2월 22일에 암초에 충돌, 수리를 위해 싱가포르로 간다. 이후에는 남방작전에 복귀해서 지원임무를 수행했고, 인도양까지 진출해서 미국 화물선 1척과 영국 증기선 1척을 격침시킨다.
1.3. 제8함대 기함
남방작전 이후 일본으로 귀환한 초카이는 미드웨이 해전에도 참가했지만 미군과 직접 교전을 벌이지는 않았으며, 1942년 7월에 제8함대의 기함이 된다. 함대 지휘관 미카와 군이치 제독과 함께 라바울로 이동한 초카이였지만, 제8함대의 사령부 시설은 다른 부대에 비해 상당히 초라했다고 한다.
과달카날에 미군이 상륙함으로서 과달카날 전역이 시작되었고, 미카와 제독은 기함 초카이와 제6전대(아오바, 키누가사, 후루타카, 카코)를 거느리고 야습을 감행하기로 한다. 그러나 오합지졸 3인방이 떼를 써서 작전에 참가했고, 이들은 미카와 제독의 작전구상에 지대한 방해가 된다. 문제의 군함은 구축함 유나기, 유바리, 그리고 잉여 경순양함 텐류였다. 무선통신도 안 되고 속도도 안 맞는 군함들이라, 일본어 위키에서도 대놓고 오합지졸들이라고 비하할 지경이었다. 과달카날에 '''엔터프라이즈'''를 포함한 강력한 미 함대가 있음을 감안하면 이 작전은 매우 위험했지만, 제8함대는 압승을 거뒀다. 이 해전이 바로 '''미 해군 역사상 최악의 해전'''으로 불리는 사보섬 해전이며, 초카이는 함대의 기함이면서도 선봉에 서서 돌격, 34명의 전사자를 내고 포탑과 함교에 손상을 입으면서도 대승리를 거두는데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날이 밝기 전에 과달카날의 미군을 공격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미카와 제독은 함대를 철수시켰다. 일본군이 입은 손실은 귀로에서 미군 잠수함의 매복공격을 당해 격침된 제6전대 소속 중순양함 카코 1척 뿐이다.
포탑 수리를 끝낸 초카이는 제6전대를 거느리고 동부 솔로몬 해전에 참가, 제2수뢰전대와 함께 과달카날에 상륙할 일본군 병력을 실은 수송선들을 호위했다. 그러나 일본군의 주력을 이룬 항공모함 쇼카쿠와 즈이카쿠가 수송함대를 놔두고 후퇴하는 바람에 미군의 공습을 당했고, 휘하인 제6전대 중순양함들과 경순양함 유라와 함께 정찰기로 핸더슨 비행장을 야간공습까지 하며 안간힘을 썼지만 과달카날 상륙에는 실패했다.
에스페란스 곶 해전에서 제6전대가 큰 피해를 입은 후, 초카이는 키누가사와 함께 핸더슨 비행장을 야간에 포격하여 큰 피해를 입히기도 했다. 그러나 과달카날 해전에서 핸더슨 비행장을 재차 포격했다가, 귀로에서 핸더슨 비행장의 칵터스 항공대와 '''엔터프라이즈''' 항공대의 공습을 당해 키누가사를 잃는다. 이것으로 제6전대는 아오바 1척을 제외하면 모두 침몰했으며, 일본군은 과달카날에서 패배했다.
과달카날 전투가 끝난 후 초카이는 제8함대 기함 임무에서 물러나 일본으로 돌아갔다.
1.4. 레이테 만 해전
일본에 돌아간 후 몇 가지 자잘한 임무를 수행하던 초카이는 1944년에 제4전대 기함이 된다. 이후 제5전대로 소속을 옮겼다가, 구리다 함대의 일원으로 레이테 만 해전에 참가한다. 구리다 함대는 무사시를 포함한 다수의 배를 잃지만, 홀시의 실수 덕분에 목표지점인 레이테 만 근처까지 도착했고, 여기서 태피 3을 만나면서 사마르 해전이 벌어진다.
사마르 해전에서 초카이는 치쿠마/노시로 등의 다른 순양함들과 함께 태피 3에 포격을 가했고, 미군의 호위항공모함 갬비어 베이가 격침된다. 갬비어 베이를 누가 격침시켰는지는 불분명하지만, 초카이가 갬비어 베이에 포격을 가한 것은 분명하므로 격침에 어느 정도 기여한 것은 사실로 보인다.
그러나 태피 3의 카사블랑카급 호위항공모함은 20mm나 40mm 기관포 이외에 '''5인치 단장포 1문'''을 장비[1] 하고 있었고, 그 중 한 척인 호위항모 화이트 플레인즈(White Plains, CVE-66)가 5인치 포의 최대 사정거리에 가까운 거리에서 6발을 초카이에 명중시켰다 [2] . 다만, 과거에는 하필이면 그 포탄이 어뢰발사관에 제대로 명중하여 초카이가 탑재한 산소어뢰를 유폭시키는 바람에, 엔진과 방향타가 나가버렸고, 이후 카사블랑카급 호위항공모함 USS 오마니 베이에서 출격한 기종불명 함재기에 의해 대파되어 이후 뇌격처분을 받고 자침되었다고 알려졌었다. 그러나 2019년에 진행된 R/V Petrel에 의한 심해탐사 조사에서 어뢰 보관창이 비교적 멀쩡한 반면 2번 포탑과 3번 포탑 사이에 큰 데미지가 발견되고, 함수부가 완전히 찢겨나가 함체로부터 300m 거리에서 발견됨에 따라 공고급 순양전함 공고에 의한 '''아군오사로 침몰되었다'''는 것이 현재 가장 신빙성이 높은 상황이다.
생존자들은 후지나미가 수습했는데 후지나미가 에식스급 항공모함 에식스에게 격침당하는 바람에 후지나미의 승무원과 같이 전멸해서 2차 세계대전에서 생존자가 전혀 나오지 못한 함선 중 최대라는 기록을 세워버렸다. 거기에 덤으로 침몰 지점이 '''필리핀 해구 바로 위'''인지라 잔해가 있을 예상 수심이 '''수심 8100m'''로 예상되어 세계에서 제일 깊은 바닷속에 있는 침몰선 중에 하나로 기록되기도 했다(...). 다만 2019년에 실제로 발견된 곳은 수심 5173m이다.영상 대신 세계에서 가장 깊은 바다속에 있는걸로 확인된건 수심 6220m의 같은 해전에서 침몰한 DD-557 존스턴이나 DD-533 호엘이 되었다.(2대가 쓰여진 이유는 플레처급 구축함 잔해를 발견했는데 존스턴인지 호엘인지 구분할 물건을 발견할정도로는 탐사를 못해서... 발견한 사람들은 도색을 생각하면 존스턴일걸로 추정하고 있다고 한다.)
2. 평가
초카이는 과달카날에서 제8함대 기함으로 크게 활약했고, 사마르 해전에서도 미군 호위항모 갬비어 베이의 격침에 기여하는 등, 일본군 중순양함 중에서도 매우 우수한 실적을 거두었다.
그러나 호위항공모함들을 상대로 고전하고, 더불어 아군 오사로 함생을 마무리 했다는 점에서 평가가 좀 떨어질 수 밖에 없다.
3. 기타
타카오급 중순양함들은 병사들이 지어준 별명을 갖고 있는데, 타카오는 '타카오 부인'이고 아타고는 '아타고 공주', 마야는 '마야 부인'이지만 초카이만은 '''초카이 법사'''였다(...). 헤이안 시대의 승려 쿠카이(空海) 법사와 이름이 비슷해서 붙은 별명으로 보인다.
드래곤볼의 유명한 캐릭터인 피콜로의 성우인 후루카와 토시오는 형이 이 초카이에서 복무했단다. 형이 전사한 후 후루카와 토시오가 태어나자 가족들은 형이 환생했다고 여겼다고.
2019년 10월 26일 폴 앨런 산하 발굴팀이 5173미터 해저에서 초카이의 선체를 발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