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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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崔奎東 (영천 최씨)
  • 아호: 백농(白儂)
  • 1882년[A] ~ 1950년 10월 18일[1]
1. 개요
2. 상세
3. 친일 논란


1. 개요


일제강점기, 대한민국의 교육자, 교육행정가.

2. 상세


1882년[A] 경상북도 성주군 가천면 창천동에서 최영한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서는 서당에서 한학을 수학했고, 19세 되던 1901년 신학문을 공부하기 위해 상경한다. 상경 도중 화성향교의 전신인 차씨 서당에서 하루를 묵으면서 처음 아라비아 숫자로 덧셈 뺄셈을 가르치는 것을 보게 되었고, 또 중교의숙[2]에 들렀다가 서양 산법을 보고 그 과학성과 명료함에 탄복하여 현대 셈법을 공부하겠다는 결심을 한다.
1905년부터 광성실업학교와 광신상업학교에서 산술을 배웠으며, 이 무렵 안일영[3]과 유일선[4]을 만나게 된다. 이후 유일선이 설립한 정리사[5] 수학연구과를 졸업[6]했다. 이 무렵 청년학관, 융희학교, 기호학교, 대성학교, 휘문의숙, 기명학교[7] 등에서 교편을 잡았다.
1912년 중동학교에 부임했다. 당시 최규동은 '최대수'로, 안일영은 '안기하'로 불리며 장안의 화제가 될 정도로 수학 강의가 유명했다.
1918년 중동학교를 인수하여 교장에 취임했다.
1919년 국내 최초로 중등교육 수학 교과서를 집필하여 출간했다.
1920년 6월 한규설, 남궁훈(南宮薰) 등과 함께 조선교육회(朝鮮敎育會)를 발기하여 평의원(評議員)에 선출되었으며, 노동독본 등 야학교재의 편찬 간행과 정기강연회를 실시했다.
1934년 5월에 국학 연구단체로서 진단학회(震檀學會)가 창립되자 그 찬조위원이 되어 이를 적극 지원하였으며, 덴마크코펜하겐에서 열린 세계언어학자 대회에 한국대표로 정인섭(鄭寅燮)을 파견하여 한글과 한국어의 과학성을 알리게 했다.
광복 후 미군정 학무국의 자문 기구인 한국교육위원회, 교육심의회 위원으로 교육행정을 담당하였고 서울시교육회 회장을 역임했다.
1948년 조선교육연합회 초대 회장에 취임하고 정기 간행물 '새교육'을 발간하였다.
1949년 제4대 서울대학교 총장에 취임했다. 1950년 6.25 전쟁 중 납북되어 1950년 10월 18일 평양 부군 용성 마림마을에서 공습으로 사망했다.
1968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3. 친일 논란


조선총독부 학무국의 관변단체인 조선교육회 기관지 〈문교의 조선〉에 중동학교장 최규동 명의로 '죽음으로써 군은(君恩)에 보답하다'라는 제목의 글을 기고했다.
이 글은 '징병제도 실시의 감격’이라는 특집기획에 실린 네 편의 글 가운데 하나로[8] 설사 강요에 의해서 집필했더라도 일제의 침략전쟁에 협조하는 친일행위임에는 틀림없다.관련기사
다만 당시 백농 선생 모르게 서무실 직원이 써 주었다는 증언이 있고, 서울대 총장 임명시에도 문제제기가 있었으나 직접 쓰지 않은 것으로 해명이 되어 임용된 사실이 있다. 관련기사
2015년 3월 교육부는 최규동을 '3월의 스승'으로 선정했다. 이에 대해 상기한 친일 행적을 한 인물이 스승으로 떠받들어질 자격이 있느냐는 논란이 일었다. 이에 대해 교육부는 “당시 심사과정에서 최 선생의 친일행적 여부를 확인했다. 창씨개명 거부, 건국훈장 추서 등 대한민국 초기 교육발전에 기여한 공적이 인정됐다”고 해명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 이 논란에 대해 “일부 자료만을 갖고 전 생애를 친일행위로 매도하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고 주장했다.#

[A] A B 1881년으로 기록된 자료도 있다.[1] 사망일 출처: 조선일보 1991년10월2일자 기사 '납북 인사 사망 경위 처음 밝혀져'[2] 中橋義塾. 1896년 민영기가 외국어를 가르치기 위해 종로구 중학동에 설립한 근대교육기관으로 1906년 폐교되었다.[3] 중동학교 발전에 큰 역할을 한 수학교사[4] 동경물리학교에서 수학을 전공했다. 한국인 최초로 근대수학을 전공한 인물로 정리사를 설립해 근대수학을 가르쳤다.[5] 精理舍. 1906년 서울에 설립되어 1912년까지 운영[6] 광성실업학교와 광신상업학교는 중도에 그만 두었다.[7] 箕明學校. 1905년 평양 성당에서 세운 가톨릭계 학교[8] 다른 세 편의 글을 쓴 사람은 연희전문학교장 윤치호, 한성상업학교장 김주익, 휘문학교장 홍산범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