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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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韓圭卨
1848년(헌종 14) ~ 1930년
조선 말기의 무신(武臣)이자 을사조약 당시 참정대신(현재의 부총리)을 지냈던 인물. 본관은 청주(淸州)[2] , 자는 순우(舜佑), 호는 강석(江石)이다.
1905년 일본의 을사조약 체결 강요 당시에 탁지대신(현재의 기획재정부 장관) 이용익과 함께 공개적으로 반대했던 둘뿐인 인물 중 한명이다.
갑신정변 당시에 살해당한 친군전영사(親軍前營使) 한규직(韓圭稷)이 형이다.
2. 생애
한규설은 1848년 한성부 남부 대평방(현 서울특별시 중구 장교동)#에서 부사를 지낸 아버지 한승렬(韓承烈)과 어머니 해주 오씨 오치현(吳致賢)의 딸 사이의 2남 1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이후 종조부 한원식(韓元植)의 봉사손으로 입양되었다.[3]
1876년(고종 13) 증광시 무과에 급제하여# 형조판서, 한성판윤, 포도대장을 지내다가 1905년 대한제국 참정대신[4] 으로 부임하여 의정대신 권한대행을 했다. 그 해 을사조약 체결 당일 어전회의 직후 대신 8인과 하야시 일본공사, 그리고 이토 히로부미가 모인 회의장에서 조약에 반대의견을 피력한 이후 회의 도중에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갑자기 엄귀비의 거처에 뛰어들어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길에 졸도하는 일이 있었다. 이 일이 빌미가 되어 의정부 참정대신의 자리에서 파면된다.[5][6] 그러나 1910년 경술국치 이후 조선총독부로부터 남작 작위를 수여받았으나 거절하였다. 작위를 거절 혹은 박탈당한 인구는 그 많은 작위 수혜자 중에서 불과 8명이다.[7]
1920년에는 월남 이상재 등과 함께 조선교육회를 창설하여 민립대학기성회로 발전시키는데 기여하였다.
3. 대중매체에서
- 1980년 MBC 8.15 특집극 <의친왕>에서 배우 한인수가 맡았다.
- 1984년 KBS 대하드라마 <독립문>에선 배우 김봉근이 맡았는데, 1996년 SBS 3.1절 특집드라마 <안중근>에서도 같은 배역으로 나왔다.
- 1984년 MBC 드라마 <조선총독부>에선 배우 백인철이 맡았다.
- 1990년 KBS1 8.15 특집극 <왕조의 세월>에선 배우 이대로가 맡았다.
- 1995년 KBS 대하드라마 <김구>에선 배우 김호영이 맡았다.
4. 기타
장지연은 그 유명한 시일야방성대곡에서 '''한규설 이 놈도 을사늑약을 못 막은 주제에 무슨 낯으로 살아 숨쉬는가?'''라며 폭풍같이 깠다.[8] 정작 장지연 자신은 경술국치 이후 말년에 자포자기하여 변절했음을 생각하면 아이러니한 부분.
한규설이 살던 한옥은 국민대학교에서 구입, 해체하여 정릉 소재지로 옮겨 짓고 학생들의 예절 교육관으로 쓰고 있다. 외부 손님의 교내 탐방 코스, 다도 수업 등에 쓴다. 원래 99칸의 큰 집이었다고 하나, 국민대학교의 위치가 산 중턱이라 일부만 옮겨 놓았다.
한규설의 아들 한양호는 당시 경성 서대문 무악재 위의 인왕산 자락에 경성여자상업학교를 설립했다. 오늘날 서울특별시 관악구 봉천동에 있는 서울문영여자중학교, 서울문영여자고등학교, 서울여자상업고등학교의 전신이다.
5. 둘러보기
[1] 안양공파 29세 규(圭) 항렬.[2] 안양공파 29세 규(圭) 항렬.[3] 생조부는 한의식(韓義植).[4] 의정부 의정대신의 다음 직위로, 내각의 좌의정, 지금의 부총리급. 조병세가 의정대신을 맡았다가 사직하여 국무총리 대행의 격이었다. 이전에 민영환이 자주 역임했고, 한규설이 을사늑약에 분노해 물러나가 일제가 이완용을 앉혔다. 실질적 총리로 보아도 무방하다.[5] 고종실록, 고종 42년 11월 17일[6] 고종실록, 고종 42년 12월 16일[7] 예외로 김석진의 경우 작위가 수여된 것을 수치로 여겨 자살했다.[8] 원문은 "아, 4천년의 강토와 5백년의 사직을 남에게 들어 바치고 2천만 생령(국민)들로 하여금 남의 노예되게 하였으니, 저 개돼지보다 못한 외무대신 박제순과 각 대신들이야 깊이 꾸짖을 것도 없다. 하지만 명색이 참정대신이란 자(한규설)는 정부의 수석임에도 단지 부(否)자로써 책임을 면하여 이름거리나 장만하려 했더란 말이냐. 김청음(金淸陰)처럼 통곡하며 문서를 찢지도 못했고, 정동계(鄭桐溪)처럼 배를 가르지도 못해 그저 살아남고자 했으니 그 무슨 면목으로 강경하신 황제폐하(고종)를 뵈올 것이며 그 무슨 면목으로 2천만 동포와 얼굴을 맞댈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