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병제/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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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징집을 알리는 소집영장. 종이 색깔이 빨간색이라서 '''아카가미(赤紙)'''라고도 부른다.
1. 임시소집영장(사진 원본이 있는 곳)
2. 충원소집영장(사진 원본이 있는 곳)
1. 개요
2. 역사
3. 부활?
4. 인턴십을 통한 징병제 떡밥
5. 관련 문서


1. 개요


일본 제국이 1872년부터 2차 세계대전 패망으로 일본군이 해체된 1945년 8월까지 일본의 남성을 일본군징집시킨 제도.

2. 역사


일본군 창군 초기인 1869년에는 무사 위주로 돌아갔지만 1872년 11월에 징병령이 발효되면서 일본의 평민을 병사로 징집하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농민이 죽창, 낫 등으로 무장봉기하여 관청을 습격하고 학교를 방화하거나 파괴하는 등 권력과 정면으로 대결하는 형태로 징병제를 반대하기도 했다.
이 일본의 징병제는 1889년에 대일본제국 헌법이 공포되면서 헌법화되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대일본제국헌법 제20조'''

일본 신민은 법률이 정한 바에 따라 병역의 의무를 진다.

위와 같이 당시 일본헌법은 일본인에게 병역의 의무를 부여했고 헌법제정 전부터 시행된 징병령도 일본의 병역의무를 정하는 틀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일본 제국에서 징병제를 시행한 초기에는 면제규정이 많아서 실제 현역병으로 입영하는 비율은 10% 미만이었다. 당시에는 일가의 주인인 자, 가정의 대를 이을 자, 가문을 승계할 자, 대인료 납부자, 관성부현의 공무원, 관립학교 생도, 양자로 들어간 자도 병역면제가 가능했다. 그래서 이런 규정을 이용해 합법적인 형태를 통해 병역을 피하는 경우도 생겼다. 대인료를 납부하거나 호적매매 또는 양자로 들어가는 경우가 속출했다. 그래서 당시 일본에서는 합법적으로 병역을 피하는 것을 가르치는 내용이 있는 출판물이 나올 정도였다.
징병제 시행 초기의 일본 제국에서는 특정 지역에 거주하면 병역이 면제되는 규정도 있었는데, 홋카이도, 오키나와, 오가사와라 등은 징병제 시행 초기에는 징병을 시행하지 않아 홋카이도, 오키나와, 오가사와라 거주자들은 징병이 면제되었다.[1] 이 규정은 1898년에 폐지되었다.
1927년 4월에는 징병령이 병역법으로 바뀌면서 일본의 병역제도가 바뀌었는데 일본의 병역법도 제국신민의 남자에게 병역의 의무를 부과하는 것이 기본적인 내용이며, 상비병역, 후비병역, 보충병역, 국민병역으로 병역의 종류가 규정되었다. 상비병역은 현역과 예비역으로 나뉘었고, 보충병역은 제1보충병역, 제2보충병역으로 나뉘었다. 국민병역도 제1국민병역과 제2국민병역으로 나뉘었다.
당연히 육군에서 영장이 날아왔는데 해군에 입대하면 육군의 영장은 무효 처리가 되었다.
1944년전까지는 '''일본 본토의 일본인 남성'''만을 상대로 징병제를 했고 일본 제국이 패망할때까지 일본의 식민지였던 조선대만은 지원제였는데 이것도 식민지 시절의 조선인과 대만인의 경우에는 식민지가 되고 거의 후반기까지 일본군 입대불가였다가 나중에 지원제를 실시해 입대가능으로 바뀐 것이다.
실제로 조선인의 경우 지원병 제도 도입된 1938년부터 일본군에 입대할 수 있었는데[2] 이마저도 육군 한정으로 해군의 경우 전쟁이 끝날때까지 조선인을 징병하지 않았다. 하지만 태평양 전쟁 발발 이후 후반기로 갈수록 본토 일본인만으로는 병력수가 모자라 병역법을 개정, 식민지 남성들 상대로도 징병제를 실시하였다.
정확히 1944년 이후부터 조선인뿐만 아니라 대만인도 징병할 수 있게 되었으며 조선인 징병검사가 1944년 4월부터 8월까지 이루어졌다. 이에따라 실제로 조선인 병사가 일본육군으로 배치된건 1944년 10월 즈음 이었다. 하지만 이미 너무 늦어버린 시점이라[3] 실전 투입 사례는 미미한 수준이고 대부분 한반도 방어부대로 배치되었다.
참고로 1944년 조선인을 상대로도 징병제가 시행됨과 동시에 1945년 1월을 기점으로 조선인에게도 참정권이 부여되었는데 이에따라 1945년 중의원 선거에서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 그이전에는 조선인에게는 일본신민으로서의 의무[4]가 없으니 권리도 보장할 수 없다는 입장이였지만 전세가 급박해지자 방침을 바꾼것이다.
일본 해군의 경우에는 원래 지원제 였지만 태평양 전쟁 발발 후에는 해군도 징병할 수 있게 되었다. 다만 순수 일본인 한정이였고 조선인, 대만인의 경우에는 아예 지원도 불가능했고 당연히 징병도 하지 않았다. 해방후 여러명의 일본육군 출신 한국인들의 경우 한국군에서 보직을 차지한 반면 왜 일본 해군 출신은 아무도 없는지 의아해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할수있다.
1945년 8월 15일 일본 제국의 항복 선언으로 인한 패전, 이에 따른 일본군 해체로 일본의 징병제가 폐지되었다.

3. 부활?


'''징병제가 헌법 위반이라는 것은 의사에 반한 노예 같은 고역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므로 절대 찬성할 수 없다.''' - 이시바 시게루 자민당 간사장

'''자위대원이 몇십 명 죽었을 때 지금 방식으로 자위대가 모집되겠느냐. 집단자위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하면 징병제로 갈 수밖에 없다.''' - 에다노 유키오 전 관방장관[5]

'''젊은이들에게 좀 더 인간의 연대감을 느끼게 하고 싶다. 자위대에 들어가도 좋고, 경찰에 들어가도 좋다. 무언가 무상(無償)의 행위를 하는 경험을 하는 편이 좋다. 실제로 (징병제를) 할지 안 할지는 동료와 상담해보겠다.''' - 이시하라 신타로 전 도쿄 도지사

'''전투에 참전하는 자위대에 지원하는 젊은이가 있겠느냐, 집단적 자위권 도입으로 지원제가 징병제로 전환될 것.''' - 가토 고이치 전 자민당 간사장

'''자위대 지원자가 없어지면 징병제는 나올 수밖에 없다.''' - 노나카 히로무 전 자민당 간사장

2014년 아베 신조 총리가 평화 헌법 개정을 계속 들먹이면서 '''언젠가 일본의 징병제가 부활될 것'''이라는 예상이 있다. 평화 헌법 개정으로 인해 일본이 집단적 자위권을 발동하여 직접적으로 군사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되면 결국 전쟁터에 나갈 일이 생길 수밖에 없으며, 이로 인해 부담을 느낀 자위대원들이 앞다퉈 전역을 신청하여 인원이 부족해져서 징병제를 도입할 수밖에 없을거라는 논리. # 그러나 아베 신조 총리를 비롯한 일본 정부의 관료들은 이구동성으로 징병제에 대해서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고 극구 부인하고 있다.
2015년 7월 아베 총리가 안보법 통과를 밀어붙이자 일본 민주당이 또 징병제를 언급하면서 일본인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물론 앞서 말했다시피 일본의 안보 환경상 징병제를 도입할 정도인 수준은 아니지만, 아전인수식으로 헌법을 해석해대는 아베 정권의 방식대로라면 징병제를 언제 시행해도 이상할게 없다는 것이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의 주장. # 실제로 헌법상 징병제를 금지한다는 명확한 문구가 없기 때문에 아베 정권처럼 아전인수격 해석을 한다면 징병제가 합헌이라고 하면서 강행할 여지도 있긴 하다.
다만 징병제를 할 경우 일본이 해외에 무력을 투사하거나 위험 지역에 병력을 투입하기가 지금보다 오히려 더 어려워진다는 문제가 있다. 대한민국 국군의 경우 해외파병은 특전사 위주로만 주로 가는데 이들이 정예병력이기도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특전사 전투병력은 전원이 자의로 지원한 부사관 이상의 인력들로[6] 구성되어 있어 투입이 용이하기 때문이다. 자위대 역시 징병제를 하게 될 경우 오히려 집단적 자위권의 행사가 지금보다 훨씬 어려워질 수도 있다. 대규모 해외파병을 추진할 경우 사상자 발생은 불가피한데 그나마 현 모병제 하에서는 사상자 발생이 직업군인인 그들만의 일로 치부되지만, 징병제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인명피해에 별 신경쓰지 않는다는 이미지가 퍼진 그 러시아군마저 징병된 자기 아들들을 체첸같은 분쟁지역에 보내지 말라는 어머니들의 시위가 계속되자 국방장관이 징병된 병사들을 절대 분쟁지역에 보내지 않겠다고 했을 정도이고, 실제로 분쟁지역에 파견되는 것은 계약병[7]들과 직업 특수부대원. 비정규 용병들로 채우고 있다.
여담으로 징병제 논란이 커지자 2ch을 비롯한 일본 내 여러 커뮤니티에서는 넷 우익들의 정신승리가 대부분인 가운데 몇몇 진지충을 중심으로 군대 가기 싫다는 절규가 판을 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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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8월 30일 안보법안을 반대하는 시위. 이날 일본 국회 앞에만 무려 12만명이 모였다.
한편 모병제 시행으로 현 자위대가 인생낙오자들의 집합소로 채워지는 문제점을 이유로 들어 징병제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기는 하다. 일본 자위대는 미군처럼 아예 1인 1실에 필수시설만 공동 사용하는 것도 아니고, 분대급 침대 생활관에서 사실상의 병영생활을 하기 때문에, 자질이 낮은 병사들을 모아놓으면 똥군기병영부조리, 가혹행위가 벌어지기가 한국군보다 더 쉽기도 하다. 덕분에 모병제에 병력수는 한국군의 절반이 못 되면서 한국군 자살수의 4배라는 충격과 공포급 비율을 자랑한다.
징병제는 반세기가 넘는 일본 자민당 독주 체제를 '''한순간에''' 완전히 끝낼 수 있을 정도의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는 주제이기 때문에 속마음이 어떨진 몰라도 표면상으로는 극구 부인하고 있다. 청년층의 정치 참여율이 낮은 일본이지만 다른것은 피부로 잘 와닿지 않는데 반해 징병제가 실시되면 '''당장 지가 끌려가게 되므로''' 청년층이 투표를 안할 수가 없게 된다. 게다가 위에도 나와있듯이 징병제를 실시해야 할 정도로 일본의 안보 상황이 나쁜 것도 아니기 때문에 설득력도 없다.
2015년 9월 19일에 집단적 자위권 법이 날치기로 통과되어 자위대의 활동반경이 훨씬 더 넓어짐에 따라 일본은 2차대전 종전 70년만에 전쟁을 할 수 있는 국가가 되었고, 만약에 정말 그렇게 할 마음이 있다면 모병 확대건 징병제건 병력 확충은 당연한 일이 되는데, 이로 인해서 일본의 징병제가 서서히 현실화되어 간다고 일본인들은 불안해 하는 중. 물론 자민당 측에선 징병제는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하고 있다.

4. 인턴십을 통한 징병제 떡밥


2015년 8월 29일부터 인턴쉽을 빙자한 꼼수로 징병제를 실시하려 한다는 떡밥이 인터넷에 돌았다. # 8월 26일에 일본 참의원 안보법제 특별위원회에서 나온 이야기로, 일본 방위성이 참의원에 이렇게 하자고 제의를 한 상황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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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 인턴쉽 프로그램(개요)

(기업과의 제휴를 통한 인재 확보 육성 프로그램)

(우수 인재의 "민-관-민 순환 프로그램")

● 방위성 / 자위대와 민간 기업 간의 협력으로 인력의 상호 활용을 도모

● 프로그램의 개요

① 기업 측에서 신규 채용자 등을 2년간 자위대에 '실습생'으로 파견

② 자위대 측에서 해당 실습생을 "1임기한정"(1임기=3년)의 임기제 사(士)로서 영입

③ 자위대 측은 해당 인원을 자위관으로 근무시키고 그 임기 내에 일정한 자격도 취득

④ 임기 종료 후 당해 실습생은 기업 측에 복귀하여 직원으로 근무

⑤ 자위대 근무 기간 동안의 급여 등은 정부 측 부담

기업 측의 메리트

○ 자위대에서 단련된 자위대 출신 "체육회계" 인재를 매년 일정 수 확보가능

○ 팀워크 능력, 행동력 등 "사회인 기초교육"을 자위대에서 실시

○ 국가 방위에 공헌

방위성 측의 메리트

○ 엄격한 모집 환경 속에서 "원호"가 필요없는 젊고 유능한 인재를 매년 일정 수 확보 가능

○ 기업과의 사이에서 젊은 인재 '쟁탈'을 방지하고 WIN-WIN 관계를 구축 가능

○ 기업 측과의 관계가 진전되면 향후에는 예비자(예비군)로서 활용 전망

과제

○ 본 프로그램에 대해서는 우선 모델 케이스의 확립이 필요

○ 임용 형태 등에 대해서는 검토 필요(채용 시험 필수)

○ 기업측에 대해 일정한 인센티브 부여가 필수적 #

그러나 이는 사실과는 크게 다르다. 2013년에 나왔던 떡밥이고, 방위성의 제안이 아니라 야당 의원이 질의를 하며 과거의 문제가 끄집어진 것이다. #

5. 관련 문서



[1] 이 규정 때문에 작가인 나쓰메 소세키가 홋카이도로 본적을 옮겨 징병을 피했다고 한다.[2] 다시 말하지만 일본군에 조선인 입대 자체가 '''가능''' 해진게 1938년이다. 따라서 1938년 이전 배경인데도 불과하고 일본군에 입대한 조선인을 묘사한 드라마나 영화는 거의 모두 고증오류라고 할 수 있다.(일본 본토에 살던 조선인 한정으로는 예외가 있다.)[3] 당장 일본 패망이 불과 1년조차 남지 않은 시점이고 미군은 일본 본토 바로밑인 오키나와까지 올라온 상태였다. [4] 병역의 의무 등[5] 다만 이게 농담이 아닌게 실제로 미군은 이라크전이 한창일 때 매일 평균 두명 이상 죽었고, 그때부터 아무나 다 신체등위 현역이면 받고 장기도 잘 해줘서 남은 사람들이 지금 군대 내 심각한 골칫거리다.[6] 특전병은 해외파병을 가지 않는다. 또한 해외 파병 간 일반병들도 심사를 통해 선발된 자원자들이다.[7] 군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매우 높은 수준의 급료를 받지만 아주 높은 확률로 다게스탄 반군 준동지 같은 위험 지역에 파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