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석채
1917년 11월 21일 ~ 1991년 4월 11일
대한민국의 전 언론인이다. 호는 몽향(夢鄕), 본관은 화순(和順).
최석채는 1917년 11월 21일 경상북도 김천군 조마면 신안리[1]#에서 태어났다. 1936년 일본 보통문관시험에 합격한 뒤 일본에서 유학하여 주쿄법률학교, 주오대학 법학부를 졸업하였다.
1942년 3월부터 1945년 8월까지 일본 잡지 호세이의 편집기자를 지냈다. 8.15 광복 후 건국공론 편집부장, 경북신문 편집국 차장, 부녀일보 편집국장 등을 지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경찰공무원으로 성주경찰서장, 문경경찰서장, 영주경찰서장 등을 역임하다가 1952년 발췌 개헌 소식을 듣고 사표를 냈다.
1954년부터 언론계로 돌아가 대구신문을 거쳐 대구매일신문에서 편집국장, 주필을 지냈다. 1955년 대구 매일신문 테러 사건 때 구속되기도 하였다. 1959년 조선일보로 이직하였다.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사회대중당 후보로 경상북도 대구시 갑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당 서동진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이후 경향신문 편집국장을 지내다가 다시 조선일보로 이직하여 편집국장, 주필 등을 지냈다. 1973년부터 1980년까지 및 1988년부터 1989년까지 문화방송 회장을 지냈으며 1979년부터 1980년까지 정수장학회 이사장도 지냈다.
2000년에는 1964년 언론윤리법 파동 때 언론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앞장선 공로로 국제언론인협회(IPI)가 선정하는 20세기 언론자유영웅(Press Freedom Hero) 50인에 뽑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