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195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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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제2공화국의 집권 여당. 1955년 9월 18일에 자유당의 사사오입 개헌이 동기가 되어 창당된 보수주의 성향의 민주당계 정당이다.
2020년 현재 대한민국의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이 민주당을 자신들 당의 뿌리로 보고 있다.#[5] 하지만 학계나 일반 국민들 사이엔 한국민주당[6] 이나 신한민주당[7] , 평화민주당[8] 등을 민주당계 정당의 뿌리로 보는 시각도 있다.
2. 역사
2.1. 창당과 통합
사사오입 개헌에 반발한 야당 세력이 모여 만든 정당이다. 한 정당에 여러 계파가 모여 있다 보니 창당 이후에도 이합집산으로 모인 계파와 과거 정당 출신들이 갈등을 벌였다. 구 한국민주당, 민주국민당 출신 구파, 자유당 탈당파, 흥사단계 등 신파의 내부적 갈등이 대표적이다.
한편 민주당 창당에는 이승만 정권에 참여했으나 권력투쟁 과정에서 밀려나있던 우익 정치인 장택상 전 국무총리와 초대 농림부 장관으로 농지개혁을 주도했으나 노선갈등으로 물러난 뒤에 독자적으로 활동하던 혁신계(진보세력)의 조봉암도 참여하려 했다. 장택상과 조봉암은 사상적으로 정반대였지만, 사적으로는 대단한 절친으로 장택상이 조봉암은 혁신계지만 사상적으로는 투철한 반공주의자라고 보증하면서 민주당에 참여시킬려고 하였다. 그러나 구 한민당, 민국당 출신들이 장택상의 보증에도 불구하고 "사상이 의심스러운 조봉암은 안 된다"면서 거부하면서 조봉암은 민주당에서 배제된다. 이렇게 되자 조봉암의 절친인 장택상도 민주당 창당에서 빠지고 자유당으로 돌아가버렸다. 한편 조봉암은 혁신계를 결집시켜서 독자적으로 진보당 창당에 나선다.
2.1.1. 창당에 동원된 정당과 계파
2.2. 제2공화국 시기
4.19 혁명 이후 치러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은 의석의 약 75%를 차지하는 압승을 거둔다.[10] 민주당은 제2공화국의 집권 여당이 되었다.
그러나 민주당의 신-구 갈등은 더욱 악화되어 따로 원내교섭단체를 등록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1960년 11월, 민주당을 탈당한 구파세력이 신민당을 창당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그래도 신파가 사실상 집권여당으로써 역할을 했지만 혼란기 속에서 지지율이 점차 떨어졌고 결국 5.16 군사정변이 터져서 와해되어버렸고, 헌정이 재개된 이후로는 절차부심해서 1963년 대선에서 윤보선을 단일후보로 내세웠지만 석패했고, 의회권력도 단일화 실패로 결국 민주공화당이 차지하고야 만다.
3. 구파와 신파
참고로 김영삼은 유진산과 가까운 구파, 김대중은 장면의 추천으로 정계에 입문해서 정일형과 가까웠던 신파이다.
구파는 '''구파동지회'''라는 원내 교섭단체를 구성하였으며, 분당파와 협상파로 나뉘어 대립하다가 분당파는 신민당을 창당하였고 협상파는 신파로 넘어가 합작파가 되었다.
신파는 '''민주당'''이라는 이름으로 원내 교섭단체를 구성하였고, 노장파, 소장파, 합작파로 분열되어 있었는데 소장파 의원 32명이 '''신풍회'''를 조직하였고, 합작파는 '''정안회'''를 조직하였다. 노장파에서도 비주류로 구성된 중도파는 신풍회와 협력하려 했다.
4. 역대 지도부
5. 역대 선거결과
- 1956년 지방선거
- 시장 0/6
- 읍장 1/30
- 면장 9/544
- 시의원 54/416
- 읍의원 57/990
- 면의원 231/16,051
- 특별시·도의원 98/437
-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 79/233 33.9%
- (무효)
-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
- 민의원 175/233 75.1%
- 참의원 31/58 53.4%
- 1960년 제4대 대통령 선거
- 대통령 윤보선 208/253 당선
- 국무총리 장면 117/224 당선
- 1960년 지방선거
- 특별시·도의원 195/486
- 시의원 129/420
- 읍의원 142/1,055
- 면의원 2,510/15,376
- 시장 12/26
- 읍장 23/82
- 면장 297/1,359
- 특별시장·도지사 6/10
6. 출신 정치인
7. 더불어민주당의 뿌리
현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이 민주당을 정치적 뿌리로 보고 매년 창당일 기념 행사를 열고있다.
8. 관련 문서
9. 둘러보기
[1] 당시 주소는 서울특별시 종로구 인사동 59번지로, 현 대일빌딩 자리다.(참고)[2] 내각제 총리[3] 이전에는 청록색이라고 되어있었는데, 당시 선거벽보의 색이 누렇게 변해서 청록색이 된 것일 뿐, 원래는 남색이 맞는 것으로 보인다.당시 벽보12[4] 현재 민주당계 정당인 더불어민주당, 열린민주당의 당색과 상당히 유사하다. 깨어있는시민연대당의 당색과는 거의 똑같다.[5] 다만 지금의 더불어민주당의 이념인 자유주의는 열린우리당부터 시작되었고 이 민주당의 보수주의 이념을 계승하지 않았다.[6] 이승만 정권기 최초의 야당. 이 문서에서 설명하는 민주당의 전신 격이다. 그러나 친일반민족 논란으로 인해 새정치민주연합에 의해 족보에서 파이는 굴욕을 맞았다. 1955년 민주당 창립 시점부터 60년 뒤인 2015년에 민주당 60주년을 기념했기 때문이다.[7] 전두환 집권기였던 1985년 1월 제12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어용야당 민주한국당에 반발해 생긴 정당. 본격적으로 양김이 이끄는 민주계의 시작이다.[8] 1987년 대선 당시 신한민주당의 후신인 통일민주당에서 분리된 당. 상도동계가 중심인 김영삼의 통일민주당에 대응해 김대중과 동교동계를 필두로 갈라져 나온 정당이다. 이후 통일민주당이 민주정의당과 3당 합당으로 민주자유당이라는 거대 여당이 되어버리면서 평화민주당은 유일하게 남은 민주계 정당이 되었다. 이후 이 평민당의 계보는 약간의 변화를 거쳐(분열, 재합당 등) 지금의 민주당까지 이르고 있다.[9] 대표적인 인물이 김영삼 전 대통령이다.[10] 이승만의 자유당이나 박정희의 민주공화당, 전두환의 민주정의당도 달성하지 못했던 마의 3/4선의 의석을 확보한 것이다. 90년대 초반의 민자당이 이에 비견되는 의석비율을 확보하긴 했지만 선거로 이루워진 건 아니었고, 92년 총선에서 149석(... 이후에 무소속 의원과 통일국민당 의원 영입으로 170석대까지 늘리긴 했다.)으로 쪼그라들았으니 뭐...[11] 계광순(桂珖淳)[12] 곽상훈(郭尙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