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1079)
崔梓
(1079 ~ 1151)
1. 개요
고려의 문관. 공암현 출신으로 자는 대용(大用)이다.
2. 생애
음서로 장사랑 장례승동정에 임명되고 숙종 7년(1102) 24세의 나이로 예부시에 병과 급제한다. 당시 지공거는 지주사 윤관, 동지공거는 사재경 이굉이다. 숙종 10년(1105) 제기도감판관에 임명되고 이후 산정도감의 어사, 공부의 관직, 위위시의 주부를 역임한다.
예종이 즉위한 뒤에는 전중내급사에 임명됐다가 수주(水州, 경기도 수원시)와 홍주(洪州, 충청남도 홍성군)의 수령을 지낸다. 임기를 마치고 교대한 뒤에는 대부주부 권지감찰어사에 임명됐고 수개월 뒤 감찰어사가 된다. 안찰사에서 최재가 두 주의 수령으로 남긴 공적을 보고해 인종이 최재를 전중시어사로 발탁한다. 어사로서 불법을 탄핵, 규찰했으며 3년 뒤 상서형부낭중이 된다. 이듬해 인종 4년(1126) 6월 예빈소경에 올라 3품의 관복을 받고, 안서대도호부에 자사로 나가게 된다. 3년 임기를 마친 뒤에는 도관낭중으로 좌천되는데, 형부낭중, 급사중을 거쳐 상서예부시랑에 오른다. 그 사이 인종 8년(1130)에는 금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천청절(天淸節)을 축하하고 온다.
인종 12년(1134) 조산대부 위위경에 오르고 서경부유수에 임명돼 서경에 나간다. 부유수에 있는 동안 서경에서 묘청의 난이 일어난다. 인종 14년(1136) 상서예부시랑 좌간의대부에 오르며 관직이 여러 번 바뀐다. 품계는 조의대부(정5품하)에 이르며 비서감 직문하성, 좌산기상시, 어사대부, 공부상서 등을 맡는다. 인종 23년(1145) 3월 동지추밀원사 태자빈객이 되고 12월에 호부상서 지추밀원사로 바뀌며, 의종 즉위년(1146) 12월에 은청광록대부(정3품) 검교사도 수사공 상서좌복야 참지정사 판예부사에 이른다.
의종 원년(1147) 최유청의 서경 열망편 강론을 청강한다. 의종 2년(1148) 검교태위에 오른 뒤 퇴직했고 자택에 돌아간 뒤에는 문을 닫아걸고 욕심 없는 삶을 살며 타인과의 일을 마음에 두지 않았다. 의종 5년(1151) 10월 15일 병으로 자택에서 죽는다.
3. 가족관계
- 증조부: 최후
- 조부: 최영
- 부: 최저
- 본인: 최재
- 부: 최저
- 조부: 최영
- 본인: 최재
- 처: 개성군부인 왕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