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넬 해전

 


'''Battle of Coronel'''
[image]
'''날짜'''
1914. 11. 01.
'''장소'''
칠레 서부 연안 코로넬 앞바다
'''이유'''
독일 슈페 제독이 아시아에서 철수하는 태평양 전대를 이끌고 본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교전국'''
[image] 영국
[image] 독일 제국
'''지휘관'''
[image] 크리스토퍼 크래독 경†
[image] 존 루스
[image] 막시밀리안 폰 슈페 백작
'''결과'''
영국 크래독 제독의 함대 대파, 이후 포클랜드 해전의 계기를 제공함
'''병력'''
본문 참조
'''피해규모'''
본문 참조
1. 해전의 배경
1.1. 첫 조우
1.2. 독일 함대 전력
1.3. 영국 함대 전력
2. 해전의 경과
3. 결과
4. 분석


1. 해전의 배경


세계 대전이 시작되기 전에도 독일 제국은 비단 유럽 뿐만이 아니라 아시아에까지도 그 영향력을 행사하려 하였다. 그 노력의 일환으로 독일은 1889년 청나라 칭다오에 해군기지를 건설하였으며, 이후 개전의 총성이 울릴 때 까지 캐롤라인, 마샬, 마리아나 제도 등 많은 해외 기지를 확보하고 있었다. 당시 독일의 태평양전대는 막시밀리안 폰 슈페 (Graf Maximilian von Spee) 제독이 지휘하고 캐롤라인 제도의 포나페(Ponape) 항을 모항으로 하는 순양함 6척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러던 중 사라예보 사건을 계기로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이전부터 독일에 대한 감정이 좋지 못했던 일본 제국영일동맹을 근거로 독일에 대한 선전포고를 하였다. 일본은 선전포고 이후 독일의 영향력 하에 있었던 칭다오를 무력 점령하며 칭다오 해전을 벌였으며, 이것으로 독일의 극동 아시아에 대한 영향력이 약화될 수 밖에 없었다. 이러한 일본의 진출의 영향으로 아시아에 산개해 있던 개별 함대들의 작전 수행이 어려워지고 위험도가 높아진 것을 우려한 슈페 제독은 그의 전대를 인솔해 칭다오와 태평양 군도의 태평양전대를 이끌고 남미대륙 서해안을 경유해 독일로 귀항하면서 통상파괴전을 수행하는 계획을 입안하였다. 또한 그는 경순양함 엠덴 (SMS Emden)을 인도양으로 파견해 통상파괴전을 수행하게 하였다.
한편 영국은 자신들이 설정한 봉쇄선 밖에서 독일 함정들이 실시하는 통상파괴전에 고심하며 이들을 물리치려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었다. 당시 남대서양의 함대를 지휘하던 영국 순양함전대 사령관 크리스토퍼 크래독 (Sir Christoper Cradock) 제독은 예하 함정들을 인솔해 포클랜드를 출항한 후 마젤란 해협을 통과, 태평양으로 진입하여 북쪽 침로를 취하면서 독일의 슈페 전대를 탐색하고 있었다. 그 이유는 물론, 그들이 귀항하기 전에 전대를 격침시키기 위함이었다.

1.1. 첫 조우


슈페 제독은 11월 말 경 칭다오와 태평양에서 긁어모은 군함들을 이끌고 칠레 외해에 도착했다. 그런데 그곳에서 슈페 제독은 영국 순양함이 이미 남미대륙 서부해안에 도착하여 작전을 수행 중 이라는 정보를 입수하게 된다. 화력에서 우세를 점하고 있다고 판단한 슈페 제독은 영국 함정과의 결전을 결심하고 이 해역에 독일 함정이 1척만 활동하는 것으로 영국이 믿도록 하기 위해 방어순양함 라이프치히 (SMS Leipzig)의 무선침묵을 해제하였다. 크래독 제독도 독일 함대의 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기 때문에 라이프치히의 무선침묵이 깨졌다는 것은 즉각 알아차렸으나, 그것이 슈페 제독의 계략임을 눈치채지는 못하였다. 슈페 제독이 판 함정에 빠진 크래독 제독은 주포의 열세를 우려해 구식전함 카노푸스 (HMS Canopus)가 빠진 상태에서는 교전하지 말라는 영국 해군성의 경고를 무시하고 라이프치히 함이 발하는 전파를 따라 빠른 속도로 북진하였다.
그렇게 슈페 제독의 기만작전에 당한 크래독 제독에 의해 구식 전함이었던 카노푸스는 신식 함정들의 속력을 따라가지 못해 뒤처지게 된다.

1.2. 독일 함대 전력


함명
함종
배수량
주포
속력
SMS Scharnhorst
CA
11,600t
8×8.2''
23.5kts
SMS Gneisenau
CA
11,600t
8×8.2''
23.5kts
SMS Leipzig
CP[1]
3,250t
10×4''
23kts
SMS Nurnberg
CL
3,450t
10×4''
24kts
SMS Dresden
CL
3,450t
10×4''
24kts

1.3. 영국 함대 전력


함명
함종
배수량
주포
속력
HMS Good Hope
CA
14,000t
2×9.2''
24kts
HMS Monmouth
CA
9,800t
4×6''
24kts
HMS Glasgow
CL
4,800t
2×6''
26.5kts
Otranto
CAu[2]
Unknown
4×4.7''
16kts
HMS Canopus
Pre-Dreadnought Class B[3]
12,950t
4×12''
16.5kts

2. 해전의 경과


1914년 11월 1일 아침, 코로넬 외해를 지나가던 독일 상선이 슈페 제독에게 영국 경순양함 글래스고 (HMS Glasgow)가 투묘해 있는것을 보았다는 사실을 전달했다. 기회를 잡았다 판단한 슈페 제독은 상선이 알려준 해역으로 급히 기동하였고, 같은 시각 크래독 제독의 함대는 북상하고 있었다. 1600시 경 두 함대는 육안 식별이 가능한 거리까지 접근하게 되었는데, 당초에 슈페 제독과 크래독 제독 모두 적함이 한 척 뿐일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서로의 함대를 보고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이후 1800시가 지난 시각 크래독 제독은 교전을 결심하고 침로를 남으로 변경하여 자신의 함대를 독일 함대의 서측에 평행하게 위치하게 하였다.
슈페 제독은 햇빛을 마주보는 상태에서 영국 함대가 사정거리 안에 들어올 때 까지 공격을 대기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 후 시간이 떨어지자 상황은 독일 함대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원래라면 전투에서 해를 마주보고 싸우는 것은 매우 불리하지만, 해가 기울자 영국 함대가 박명으로 인해 그 그림자가 독일 함대에 적나라하게 드러났고 반대로 영국 함대는 독일 함대를 볼 수 없게 되었다. 영국 함대와 독일 함대의 거리가 11,370yds 까지 좁혀졌을 때, 슈페 제독은 전 포문의 개방을 명령했다. 독일 함대는 사격 개시 명령이 떨어진 지 단 5분만에 영국의 장갑순양함 굿 호프(HMS Good Hope)의 전부 포대와 조함실을 파괴하는 성과를 거두었는데, 이는 독일 함대의 승조원들이 지난 3년 동안 같은 함정에서 근무하였으며 꾸준한 훈련으로 높은 수준의 전투 수행 능력을 보유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실례로 장갑순양함 샤른호르스트 (SMS Scharnhorst)는 1913년 독일 함정 중 Top Gun으로 선발되었고, 그 뒤를 이어 장갑순양함 그나이제나우 (SMS Gneisenau)가 2등을 수상했다. 반면에, 영국의 굿 호프는 예비 상태에서 해제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신임 장교와 신병들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심지어 오트란토 (Otranto)는 무장상선으로 장갑도 없고 속력도 변변치 못했다. 1850시에는 영국 장갑순양함 몬머스 (HMS Monmouth)의 선체에 화재가 발생하여 전선을 이탈하게 되었다. 결국 굿 호프와 몬머스는 승조원들과 함께 침몰하게 되고, 승기는 슈페 제독의 독일 함대가 쥐게 된다.

3. 결과


영국 함대의 피해
HMS Good Hope
CA
침몰
HMS Monmouth
CA
침몰
사망
1,600 여 명
독일 함대의 피해
SMS Scharnhorst
CA
2발 피탄
SMS Gneisenau
CA
4발 피탄
부상
3명
수치 상으로 판단하면 슈페 제독 지휘 하 독일 함대의 완벽한 승리로, 이전 헬리골란트-바이트에서의 굴욕을 확실하게 갚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독일 태평양 전대는 대서양을 지나 독일로 돌아가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는 점이다. 항로 상 마땅한 저탄기지도 없는 마당에, 독일 함대는 이 전투로 인해 많은 석탄과 8.2'' 포탄의 42%를 소모했다. 이는 이후 포클랜드 해전의 전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4. 분석


독일이 승리할 수 있었던 원인은 기본적으로 우수한 수상함 전력과, 주포 화력에서의 우위, 승조원들의 숙련도 및 우세한 위치 선점을 들 수 있다.
반면, 영국이 패배한 원인은 수상함 전력의 열세, 주포 화력에서의 열세, 미숙한 승조원들 및 불리한 위치를 들 수 있고, 추가적으로 영국 본국에서 증원된 구식전함 카노푸스의 전투 미참가를 꼽을 수 있다. 영국 해군성은 전력에서 열세인 순양함 전대가 독일의 태평양 전대에게 고전할 것을 우려하여 속력은 느리지만 무장이 매우 뛰어난 카노푸스를 출전시켰다. 하지만, 크래독 제독이 교전 직전에 독일의 기만작전에 당하여 속력이 느린 카노푸스를 남겨두고 무리하게 전투에 임하다가 해전에서 패배하게 되었다.
[1] Protected Cruiser, 방어순양함[2] Auxiliary Cruiser, 보조순양함[3] 1920년 이전에 건조된 전함의 기호는 BB가 아니라 B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