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카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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벵골어:কলকাতা
힌디어:कोलकाता
영어:Kolkata, Calcutta.[1]
1. 개요
인도 동부에 있는 도시이자 인도 서벵골 주의 주도. 캘커타는 영어식 이름이며, 2001년 1월 이후 현재 공식 명칭은 전통 명칭인 '콜카타(Kolkata)'로 개명하였다. 다만 콜카타로 개칭된 이후에도 캘커타였던 시절 콜카타에서 일어난 사건들은 굳이 콜카타라고 부르지 않고 캘커타로 부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예를 들어 캘커타 블랙홀 사건이라던가, 캘커타 대학살처럼 말이다.
17세기까지 칼리 여신 숭배의 본산지인 강 하구의 작은 마을이었으나,[2] 1690년 영국 동인도 회사가 이곳에 상관을 세우면서 도시로 발전했다. 또 1772년에는 영국령 인도의 수도가 되었으며, 이후 영국령 인도의 수도로써 엄청난 발전을 구가했고, 인도 제국이 세워진 후에도 인도 제국의 수도이자 인도 제 1의 도시로 기능하며 전성기를 구가했다. 지금은 콜카타보다 인구가 훨씬 많아진 뭄바이나, 광역권 인구에서 콜카타를 추월한 델리조차 1950년대까지는 콜카타보다 인구가 훨씬 적었다. 콜카타가 인도 전체의 수도라기엔 좀 동쪽에 있는 것이 아닌가 싶을 수도 있지만 이 시절엔 방글라데시나 미얀마도 인도 제국 소속이었으므로 아주 동쪽에 크게 치우친 위치는 아니었다.
그러다 1911년 영국이 인도 제국의 수도를 델리로 이전하면서 쇠락하기 시작했다. 이는 인도의 독립운동을 방해할 목적이 강했는데, 당시 콜카타는 찬드라 보세(출생지는 현재 인도 오디샤 주의 쿠탁이지만 찬드라 보세가 주로 활동한 곳은 콜카타였다.)같은 여러 독립운동가들이 활약하는 그야말로 인도 독립운동의 구심점이었던 도시였는데, 독립운동의 구심점을 홑뜨려놓을 목적으로 수도를 이전한 것이다.
거기다 수백만 명이 아사한 벵골 대기근과 수천 명의 사람들이 죽고 캘커타에 살던 수많은 무슬림들이 캘커타를 등지고 방글라데시로 이주하게 된 계기인 다이렉트 액션 데이 등을 겪으며 급격히 쇠락한데다, 방글라데시와 미얀마가 독립해 인도와 별개 나라가 되면서 교통의 요충지 역할도 약화되어 현재는 인도 10위권의 도시로 위상이 추락하게 되었다. 여튼 이런 역사에서 알 수 있듯, 영국에 의해 건설된 도시이고, 250여년 간 영국의 지배를 받았기 때문에 다른 도시들에 비해 영국색이 강하고, 영국색이 강한 건축물들이 도시에 많이 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2011년 기준 인구 450만의 대도시다. 메트로 인구까지 더하면 1,500만에 달한다. 겨우 국내 10위정도하는 도시의 도시권이 1500만에 달하는걸보면 인도도 엄청난 대국이란게 실감간다. 놀라운건 도시권이라고는 하지만 면적이 '''1,800km2'''밖에 안되는곳이라 도시권과 접한 지역들을 합치면 '''3천5백만명'''까지 올라간다.[3] 참고로 '''1,800km2'''을 서울 주위로 적용하면 서울+인천(도서지역 제외)+부천+광명+안양+과천+군포+의왕+안산(대부도 제외)+시흥이 1,800km2가 되는데 이 합친 구역의 인구는 1700만에 달한다.
인도의 시인 라빈드라나트 타고르와 영화 감독 사티야지트 레이가 이 도시 출신이다. 때문에 전후 인도 영화를 이끌었던 중심 도시기도 하다.[4] 그 외에도 출신지는 아니지만, 인도의 소설가인 사라트 찬드라 차토파디아야가 이 도시에서 살았으며, 그가 쓴 소설인 데브다스가 캘커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또한 테레사 수녀가 이 도시에서 활동했었다.
2. 매체에서의 등장
[1] 전자는 콜카타로 개명된 현재의 영어표기로 주로 쓰이고, 후자는 캘커타로 쓰이던 때의 영어표기이다.[2] 캘커타라는 이름이 칼리 여신에서 따온 것이라는 설도 있다.[3] 콜카타가 속한 서벵골주의 인구밀도가 무지하게 높은곳이다.[4] 사티야지트의 대표작인 외로운 아내도 타고르의 소설을 원작으로 콜커타를 배경으로 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