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버족
1. 개요
중국의 소수민족. 원어로는 시버(Sibe)족으로, 시보(锡伯)는 중국어 음차이다. 인구는 약 19만 명으로, 이 중 약 17만 명이 신장 위구르 자치구 일리 카자흐 자치주의 찹찰[1] 시버 자치현(중국어로는 이리 하사커 자치구 차부차얼 시보 자치현)에 살고 있다.
2. 역사
시버부는 15~17세기 현 창춘시 솽양구(双阳区) 일대에 거주하던 여진족 중 하나로, 그 추장은 솬(Suwan)부 괄갸(Gūwalgiya) 씨족의 니아합기(尼雅哈奇)라는 인물이다.[2] 16세기 중반 괄차(Gūwalca)부와 함께 후룬베이얼 지역으로 부터 이주해온 코르친부에 예속되어 간접지배를 받았다.
1636~40년대, 코르친에 대한 지배체제가 확립되면서 시버 씨족들은 좌령으로 편제되어 코르친 10기에 예속됐고, 이후 1692년에야 팔기로 편제되었다. 때문에 시버인들은 구만주와 달리 종족적 정체성을 어느정도 유지할 수 있었다. 그해 이들은 치치하르, 버두너 등으로 사민되었다.
1699년 버두너와 치치하르의 시버인 6만 5천여 명은 성경에, 그 외의 기린우라의 시버인 6천여 명은 북경에 이주했다. 이듬해 치치가르 출신 시버인 3만 6천여 명은 후호트 일대로 이주됐다. 한편 버두너 일대에 남아있던 시버인들은 코르친 고를로스기 영지에서 살면서 물고기를 황실에 공납했다. 건륭제 때 청 조정은 서북 변경의 국경 방비를 위해 성경 일대에 있던 20~40세 시버인 남성 1,020명과 그 가족 3,275명[3] 을 뽑아, 고향에서 4천㎞ 이상 떨어진 신강의 천산북로로 사민시켰다.
이 과정에서 생긴 험난한 현지 정착 과정은 현재 시버족들 사이에 슬픈 역사의 기록으로 남아 있고, 많은 전설과 민요의 원천이 되었다. 마치 이오시프 스탈린의 소수민족 강제 이주 정책을 생각나게 하는 대목이다.
일제가 1930년대에 만주사변을 일으키고 이듬해에 만주국을 설치하자 동북 시버인들은 동북항전에 동참하여 만주군과 관동군에 맞섰다. 한편 신강에 주둔한 팔기만주 시버영은 신강성자치정부가 하남현(河南县)을 설치한 1938년까지 유지됐는데, 이들은 1944년에 소련의 지원을 받은 위구르인이 수립한 동투르키스탄 제2공화국과 일부 러시아계 중국인 백군 난민 등과 협력하여 국민당을 적대했다.
3. 기원 논란
만주족, 우데게족, 나나이족과 같은 숙신계 민족이라는 주장과 선비족의 후예라는 주장이 대립하고 있다. 거주지역 및 풍습과 문화, 언어 체계는 만주족과 유사하나 청초[4] 와 달리 현재에는 만주계임을 부정하고 대다수가 스스로를 선비족의 후손이라고 믿고 있다.
4. 언어
학자에 따라 만주어의 방언으로 봐야 한다고도 하지만, 정설에 따르면 퉁구스어족 남퉁구스어파 시버어라는 만주어와 유사한 언어를 쓰는데, 음운 면에서는 만주어보다 복잡한 모음조화 규칙을 지녔다.
현재 동북에 있는 시버족은 한어를 사용하고, 내몽골 지역의 시버인은 몽골어와 몽골 문자를 사용한다고 하는데 자세히 알려진건 없다.
시버어와 만주어의 의사소통 정도를 알 수 있는 영상.
퉁구스어 계통의 역사를 추적하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신강으로 강제이주된 덕택에 여진어를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는 설도 있을 만큼 그 모습을 그대로 보존할 수 있어서 만주계 언어들의 연구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문자는 만주 문자를 살짝 변형해서 쓴다.
현재는 일리 카자흐 자치주의 일리사범학교에서 제2언어로 가르치고 있으며, 사용 인구는 약 3만 명으로 만주어보다 훨씬 많다. 또한 신문도 발행되고 있다.
신장위구르자치구 안에 있는 찹찰 시버족 자치현의 2008년 11월 25일자 뉴스 영상.
5. 여담
전통 음식 중에 만두에 해당하는 음식이 있는데, 특이하게도 소로 '''호박'''을 넣는다.
시버족 출신 유명인으로는 배우 퉁리야가 있다.
[1] Cabcal. 시버어로 곡창지대라는 뜻[2] 니아합기는 다른 사료에서 옥군한(玉军汗)으로도 기록되는데, 이는 그의 후손이 사시한 한호일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여담으로 그의 동생 주찰(珠察)의 8세손 피옹돈은 후금개국5대신 중 한 명으로 활약했으며, 9세손 오보이는 강희제의 섭정을 맡은 바 있다.[3] 이훈(2018). "만주족 이야기". 너머북스.[4] 청초 여행가이자 서예가인 양빈(楊賓)의 《유변기략(柳邊紀略)》에 의하면, 시버인들이 자신들이 만주와 같은 조상이라고 말하였다고 하며, 《만주원류고》에 의하면 숭덕제가 눈강의 시버인에게 동일한 선세라 말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