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라쿠프 자유시
오히려 이쪽은 삼국 간섭 아래 명목상 유지되는 '자유'시 중립지대라는 현실을 너무도 미묘하게 반영하고 있어서 안습할 따름이다(...).
총면적은 1164㎢에 불과하고 인구는 1843년 기준 146,000명 밖에 안 되어서 공화국이 아니라 자유시로도 불리며 사실상 폴란드-리투아니아가 남긴 '''최후의 불꽃'''이라고 할수 있다.
바르샤바 공국은 나폴레옹을 적극 지지하는 속국이었는데, 러시아 원정으로 나폴레옹이 몰락하자 빈 회의의 결정에 따라 도로 폴란드 분할이 일어나고 말았다. 바르샤바 인근은 폴란드 입헌왕국이란 이름 하에 제정 러시아와 동군연합으로 묶이고, 크라쿠프와 그 일대만이 독립하였다.
그런데 1830년에서 1831년까지 11월 봉기로 공화국이 일시적으로 무너졌다. 봉기 실패 이후 1846년에 오스트리아 제국의 일부이자 오스트리아 제국의 군주가 군주를 겸하는 동군연합인 갈리치아-로도메리아 왕국령에 속한 크라쿠프 대공국에 병합되며 멸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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