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찬 레이트너
1. 개요
미국의 전 농구선수. 그 유명한 1992년 올림픽 미국 농구 국가대표팀에 소속되었던 선수이기도 하다.
2. 커리어
2.1. NBA 데뷔 이전
듀크 대학교 소속으로 4년 연속 Final Four에 진출했으며 91년, 92년 2년 연속으로 NCAA 우승을 견인한 대학농구 역사상 최고의 스타 중 한명이었다. 버저비터로 듀크의 우승을 확정지은 것이 압권. 이 활약을 바탕으로 드림팀 1기에 대학생으로서는 유일하게 선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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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농구 국가대표팀 1기 시절
그러나 드림팀에서는 천덕꾸러기 신세. 유일하게 대학생이었기 때문에 아예 드림팀 안에서는 "College kid" 라고 불렸다. 실제 드림팀 멤버들은 20년이 지난 지금도 그를 "College kid" 라고 부른다. 1992년 드래프트에서 샤킬 오닐, 알론조 모닝에 이은 3순위로 지명되었지만 안타깝게도 NBA에서는 대학 시절의 포스를 이어가지 못하고 올스타 경력 1회의 수준급 빅맨 정도로 성장하는 데 그쳤다. 드림팀 내에서 '''유일하게 개인자격으로 명예의 전당에 오르지 못한 선수'''이며[1] All-NBA Team에 선정되지도 못했다. 말 그대로 신들의 전쟁에 혼자 끼어든 민간인 수준... 오히려 대학 시절 동료이자 후배였던 그랜트 힐이 짧은 전성기였지만 NBA의 스타플레이어로 자리잡아서 레이트너는 국내에선 "쟤 누구?" 정도의 인지도가 되어버렸다. 사실 원래 예정대로 대학팀들이 올림픽에 출전했다면 팀의 에이스가 됐을 인물이었다. 그래도 나름 4.8점을 기록하며 팀내 득점 순위에서 탈꼴찌는 했다. 꼴찌는 2.8점을 넣은 존 스탁턴. 물론 이 팀에서 개인기록은 큰 의미는 없었다.
2.2. NBA 데뷔 이후
2.2.1. 미네소타 팀버울브스 시절
1992 드래프트에서 3순위로 미네소타 팀버울브스의 지명을 받아 데뷔했다. 대학 시절의 포스에 잘생긴 외모까지 갖춰 아직 신생팀 딱지를 벗지 못한 미네소타의 간판 스타가 될 것이라 여겼으나 아쉽게도 생각보다 성장세가 더뎠다. 사실 미네소타 시절 경기당 평균 대략 17득점에 8리바운드 3어시스트에 스틸과 블락도 평균 1개 이상씩 기록해줬기 때문에 결코 나쁜 활약은 아니었다. 그러나 비교 대상이 하필 앞서 지명된 샤킬 오닐과 알론조 모닝인 덕택에... 게다가 이후 케빈 가넷이 입단하여 알력이 생기자 거의 내쫒기다시피 애틀란타 호크스로 트레이드됐다.
2.2.2. 애틀랜타 호크스 시절
그래도 이적 직후 당시 강팀이었던 애틀랜타의 한 축으로 활약했으며, 커리어에서 유일한 올스타 선정도 이 시절. 무키 블레이락, 스티브 스미스 등의 가드들과 뛰어난 센터 디켐베 무톰보 등 뛰어난 동료들과 함께했던 기간이었다. 그러나 애틀랜타에서의 2년차인 1997-98시즌에 부진에 빠지고 만다.
2.2.3. 이후
디트로이트 이적 후 부상을 당한 뒤 그나마 준 에이스급의 기량마저 거의 잃어버리고 말았다. 이후 댈러스, 워싱턴, 마이애미를 거치며 롤 플레어로 활약하다가 2005년에 은퇴했다.
커리어 전반을 한줄 요약하면 대학 농구계에서는 위대한 선수로 꼽히며, NBA에서도 수준급 자원이었지만 대학 시절 기대치와 위상을 그대로 이어가지는 못했다. 다만 그렇다고 아예 별볼일 선수로 기억되기는 뭣 한게, 나름 올스타 선정이라는 경력을 남겼고 통산 기록 자체도 썩 나쁘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대학 시절의 업적 및 기대치나 드림팀 1기 멤버라는 출신 성분에 비하면 아쉬운 족적이라는 것.
3. 플레이 스타일
4. 여담
[1] 드림팀은 "팀" 자체로 2012년에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