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위저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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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위저즈'''
'''Washington Wizards'''
'''창단'''
1961년 (63주년)
'''연고지'''
워싱턴 D.C.
'''컨퍼런스'''
동부 컨퍼런스
'''디비전'''
사우스이스트 디비전
'''구단 연고지 변천'''
시카고 (1961년~1963년)
볼티모어 (1963년~1973년)
워싱턴 D.C. (1973년~현재)
'''구단명 변천'''
시카고 패커스 (1961년~1962년)
시카고 제퍼스 (1962년~1963년)
볼티모어 불리츠 (1963년~1973년)
캐피털 불리츠 (1973년~1974년)
워싱턴 불리츠 (1974년~1997년)
'''워싱턴 위저즈''' (1997년~현재)
'''홈구장'''
시카고 국제 원형 경기장 (International Amphitheatre, 1961년~1962년)
시카고 콜리세움 (Chicago Coliseum, 1962년~1963년)
볼티모어 시빅 센터 (Baltimore Civic Center, 1963년~1973년)
캐피털 센터 (Capital Centre, 1973년~1997년)[A]
'''캐피털 원 아레나''' (Captial One Arena, 1997년~현재)[A]
'''저지 스폰서'''
가이코 (GEICO)
'''구단주'''
모뉴먼트 스포츠 & 엔터테인먼트 (Monumental Sports & Entertainment)[1]
'''단장'''
토미 셰퍼드 (Tommy Sheppard)
'''감독'''
스캇 브룩스 (Scott Brooks)
'''G 리그 제휴'''
캐피털 시티 Go-Go (Capital City Go-Go)
'''로컬 경기 중계'''
NBC Sports Washington
'''약칭'''
'''WAS '''
'''홈페이지'''

'''우승 기록'''
'''NBA 파이널 우승
(1회)'''

'''1978'''
'''컨퍼런스 우승
(4회)'''

1971, 1975, 1978, 1979
'''디비전 우승
(8회)'''

1969, 1971, 1972, 1973, 1974, 1975, 1979, 2017
'''프랜차이즈 팀 기록'''
'''최고 승률'''
'''.732''' - (1974-75시즌, 82경기 60승 22패)
'''최저 승률'''
'''.225''' - (1961-62시즌, 80경기 18승 62패)
'''최다 승'''
'''60승''' - (1974-75시즌, 82경기 60승 22패)
'''최다 패'''
'''63패''' - (2008-09시즌, 82경기 19승 63패)
'''최고 계약'''
'''$171,131,520''' - 2019년 존 월
'''팀 컬러 / 유니폼'''
[ 펼치기 · 접기 ]
'''팀컬러'''
적색 네이비 블루 은색 흰색
'''유니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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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sociation Edition
Icon Edition
Statement Edition
City Edition

1. 개요
2. 역사
2.1. 창단과 전성기
2.2. 격동기
2.3. 2013-14 시즌
2.4. 2014-15 시즌
2.5. 2015-16 시즌
2.6. 2016-17 시즌
2.7. 2017-18 시즌
2.8. 2018-19 시즌
2.9. 2019-20 시즌
2.10. 2020-21 시즌
3. 영구결번
4. 2020-2021 선수명단
5. G 리그 산하팀
6. 이모저모


1. 개요


NBA의 프로농구팀. 동부 컨퍼런스 사우스이스트 디비전 소속. 연고지는 워싱턴 D.C.. 시카고에서 시작해 볼티모어를 거쳐 워싱턴으로 연고를 이전한 팀이며, 팀명이 잘 바뀌지 않는 미국 프로팀 중에서 보기 드물게 팀 명을 무려 4번이나 바꾼 팀이다. 원 팀명은 시카고 패커스. 이것이 시카고 패커스 → 시카고 제피어스(Chicago Zephyrs) → 볼티모어 불리츠 → 워싱턴 불리츠를 거쳐 현재의 팀명인 워싱턴 위저즈라는 명칭으로 정해졌다.
국내에는 마이클 조던의 마지막 소속팀으로 이름이 알려졌다.

2. 역사



2.1. 창단과 전성기


1961년에 포장업체인 일리노이 패킹 컴퍼니 사주 데이빗 트래거에 의해 시카고를 연고로 하여 '시카고 패커스'라는 이름으로 창단했다. 이후 1시즌만에 산들바람이라는 뜻의 '제피어스(Zephyrs)'라는 이름으로 바꾸었으나, 흥행이 잘 안된 탓인지 1963년 볼티모어로 연고를 이전하고, 팀 명칭도 총알이라는 뜻의 불리츠로 바꾼 뒤,[2] 1964년에 건설업자 에이브 폴린이 인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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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저즈의 아버지' 에이브 폴린 전 구단주 (1923~2009)
초창기에는 어떤 신생팀이 다 그렇듯이 망했지만, 1966년에 진 슈(Gene Shue)가 감독으로 취임하고 1968년 드래프트에서 루이빌대 출신 웨스 언셀드를 2번으로 뽑아 선수진을 개편해 영광의 1970년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1970년대에만 컨퍼런스 타이틀을 4차례 차지하면서 그야말로 전성기를 맞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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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홈 구장인 캐피털 센터 (1973~1997 사용. 워싱턴 캐피털스와 공유했다.)
1970/71 시즌 들어 처음으로 파이널에 도달해 카림 압둘 자바와 오스카 로버트슨이 버틴 밀워키 벅스에게 0-4 떡실신을 당하기는 했지만, 팀의 미래는 분명 밝았다. 1971년 드래프트 때 UC버클리 출신 필 체니어를 하드십 4번으로 뽑고 1972년에 휴스턴 로켓츠로부터 앨빈 헤이즈를 사들여 전력 보강을 한 후, 이듬해에 연고지를 워싱턴 D.C.로 옮기고 단장에는 밥 페리[3], 감독에는 보스턴 셀틱스의 레전드 출신 KC 존스를 각각 선임해 팀을 개편했다. 1974/75 시즌에 또 다시 파이널에 도달했으나, 압도적인 우세를 점쳤던 예상을 깨고 릭 배리가 이끌던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에게 또 다시 0-4로 지면서 파이널 8연패를 당하는 치욕을 맛본다.
1976년에 폴린 구단주는 감독직에 전 시카고 불스 감독 딕 모타를 모셔오고, 1977년에 밀워키 벅스로부터 밥 댄드리지를 사들여 전력 보강을 해서 마침내 1977-78 시즌 파이널에서 시애틀 슈퍼소닉스와 7차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승리하면서 사상 처음으로 NBA 우승을 차지하게 되었다. 이 우승은 MLB워싱턴 세네터스가 우승한 이후, 36년만에 워싱턴 팀이 우승한 것이라고. 이듬해에도 다시 NBA 파이널에 올랐지만, 이 때는 시애틀에게 복수를 허용하면서 준우승에 그친다.

2.2. 격동기


1981년에 언셀드가 은퇴한 후, 팀은 이렇다 할 구심점을 찾지 못한 채 암흑기에 접어들었다. 1980년대 중반까지 플레이오프에 가기만 하면 1~2라운드 언저리에서 깨졌고, 1988/89 시즌부터 8년 연속으로 플옵 진출에 실패했다. 그나마 화제가 된 건 최장신 선수 마누트 볼호레이스 그랜트의 동생 하비 그랜트뿐이다. 1988년에 웨스 언셀드가 감독으로 복귀했으나 결과는 마찬가지였는데, 1990년대 초엔 퍼비스 엘리슨과 마이클 애덤스가 부상 등으로 빠져 많이 움직이는 속공에 허점이 생기고, 대체로 수비진의 키가 작아 상대 선수들에게 뚫리는 일이 다반사였다. 또 마이클 애덤스 외에 톰 구글리오타, 렉스 챕맨, 칼버트 체이니 등 아웃사이드 플레이어들을 갖추고 있었음에도 선수들의 민첩성이 취약해 미스 매치를 남발하는 경우가 흔했다. 1989년 드래프트 1번 출신 퍼비스 앨리슨도 1991/92 시즌 20득점 / 10리바운드로 기량발전상을 받았으나 부상이 많아 제대로 못 뛰었으며 후보선수진도 빈약했다.
다만 1993년에는 루마니아의 231cm짜리 최장신 선수 게오르게 뮤레산을 산 뒤 1994년 드래프트 때 미시건대 'Fab Five'의 일원이던 주완 하워드를 전체 5번으로 뽑고,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로부터 크리스 웨버를 사서 선수진을 젊게 개편했다. 1996년에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로부터 로드 스트릭랜드를 사서 1996/97 시즌에 웨버의 스틸과 활기찬 속공, 엘리웁, 턴 오버 등에 이르는 화려한 플레이를 선보여 플옵 진출을 이뤄냈으나, 유능한 스몰 포워드가 전무해 하프 코트에서 약점을 보여 시카고 불스에게 1라운드에서 3전 전패로 주저앉았다. 같은 시기 미국 전역에서 총기 난사 사고가 빈발하자, 수도에서 총알을 왜 팀 명칭으로 쓰냐고 하냐며 비난이 일자, 1995년에 폴린 구단주가 팀명 변경을 선언하고 1997년에 공모전을 열어 팀명을 위저즈로 변경한 뒤 정든 캐피털 센터를 떠나 신설구장 'MCI 센터'로 이전했고, 1998년에는 웨버를 새크라멘토 킹스에 팔았다.
1999년에는 AOL 창업주 테드 레온시스가 에이브 폴린의 지분 일부를 샀고, 2000년에 마이클 조던이 팀의 지분 일부를 사들여서 사장으로 재임했다.[4] 2000/01 시즌 도중 컴백해서 팀의 선두에 섰으며, 비록 플레이오프 진출에는 실패했으나 바로 전 시즌 19승을 거두던 팀이 조던이 뛰던 2년동안 각각 37승을 거두면서 성적이 거의 두배로 뛰었다. 바닥에서 헤메던 팀이 조던 한명의 합류[5] 로 플레이오프에 거의 진출할 뻔한, 동부에서 중간은 가는 팀이 된 것이다. 조던 본인의 명성에 미친 악영향을 떼놓고 팀 입장에서 보면 상당히 이득을 본 셈. 거기다가 조던의 인기로 인해 전국적인 관심과 전국방송+매진 행렬을 펼쳤다. 추가로 조던은 이때 베테랑 최소연봉을 받고 뛰었는데, 올스타급 선수를 겨우 연봉 백만달러 주고 2년이나 쓴 셈이다. 보통 올스타급은 천만불 이상받는다는 걸 생각하면 그야말로 염가봉사이다.[6][7] 어쨌든 조던도 떠나면서 다시 대중의 관심에서 줄어드는가 싶었지만, 의외로 워싱턴은 짧은 중흥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2002년에 밀워키 벅스에서 온 어니 그룬필드 단장은 2003년에 덕 콜린스 대신 전 뉴저지 네츠 코치 에디 조던을 새 감독으로 앉혔고,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에서 2라운드 출신 가드 '에이전트 제로' 길버트 아레나스를 사들였다.
에디 조던 감독은 새크라멘토 킹스에서 코치와 감독을 하던 시절에 배운 '프린스턴 모션 오펜스'를 팀에 이식시켜[8] 길버트와 앤트완 재미슨, 브랜든 헤이우드, 래리 휴즈로 이어지는 괜찮은 라인업으로 04-05시즌에 플레이오프 2라운드까지 진출하는 모습을 보여줬고, 특히 길버트는 포인트 가드임에도 슛을 많이 던져 '길버톨로지'란 신조어를 낳았다. 2005-06시즌 캐론 버틀러까지 영입하면서 아레나스 - 버틀러 - 재미슨의 짜임새있는 라인업을 구성했지만, 번번히 PO에서 신흥 리그의 스타로 자리잡은 르브론 제임스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에게 3년 연속 막혀 1라운드에서 탈락하는 안습함을 보였고, 08-09시즌에 재계약한 길버트 아레나스와 헤이우드가 부상당하면서 19승 63패로 완전히 망쳤고, 결국 아레나스가 총기 반입으로 인한 사고를 제대로 치면서 팀이 흔들리더니 캐론 버틀러와 브랜든 헤이우드를 댈러스 매버릭스로 보내고, 앤트완 재미슨을 클리블랜드로 보내버리면서 완전히 팀을 엎어버렸다.
그 사이 에이브 폴린 구단주는 2009년에 사망했고, 2010년에 공동 구단주였던 테드 레온시스가 폴린이 가졌던 지분을 인수해 대주주가 된 뒤 그해 드래프트에서 1순위로 존 월을 뽑으면서 리빌딩에 나섰지만, 팀 내에 베터랑이 없는 상황에서 주요멤버들이 팀플레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원숭이같은 농구를 하면서 개그 구단이라 조롱받았다. 그러자 또다시 팀을 갈아엎어 저베일 맥기와 안드레이 블라체, 닉 영을 타 팀에 보내버리고, 12시즌 드래프트에서 3순위로 브래들리 빌을 뽑아 존 월 - 브래들리 빌 - 트레버 아리자 - 네네 힐라리오 - 에메카 오카포의 라인업을 완성시켰다. 팀은 처음 33경기에서 5승 28패를 기록하며 부진했지만 이후 24승 25패로 그럭저럭 경쟁력을 보여주면서 시즌을 마감했고, 존 월이 나름대로 시즌동안 발전하면서 의미있는 시즌을 보냈다.

2.3. 2013-14 시즌


프리시즌 도중 주전 센터였던 에메카 오카포가 목 디스크로 인한 부상이라는 사태를 맞이하며 시즌 시작 전부터 골밑에서 약점을 보인 채 시즌을 시작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위저즈 프론트진은 존 월과 장기계약도 체결한 만큼 올 시즌은 플레이오프에 가겠다는 의지를 보이면서 결국 피닉스 선즈로부터 2014년 1라운드 픽과 오카포를 주면서 수준급 센터 마신 고탓을 영입하며 시즌을 시작했다.
네네가 2월에 6주 결장을 하기도 했으나 평균적으로 우수한 활약을 해주고, 베테랑 트레버 아리자가 FA로이드를 접종한건지 평균득점이 5점 가까이 상승했으며 2년차 브레들리 빌도 점차 활발한 득점력을 보여주면서 팀의 전력이 안정화되었다.

결국 2014년에 올스타가 된 월과 밸런스 좋은 멤버들을 앞세워 44승 38패로 동부 5위에 안착, 6년만에 다시 플레이오프 무대에 오르는데 성공했다. 상대는 4번 시드였던 시카고 불스. 불스와의 플레이오프 시리즈에서는 불스의 답답한 백코트진보다 네네와 아리자등의 포워드 진이 불스보다 확실한 우위를 가지고 들어간 덕택에 4승 1패로 가볍게 불스를 누르고 2라운드에 진출한다. 상대는 애틀랜타 호크스를 간신히 잡고 올라온 동부지구 시드1위 인디애나 페이서스.
인디애나는 후반기 들어 경기력이 많이 안좋아진게 눈에 보였으며 애틀란타와의 시리즈에서 정점을 찍었기에 잘하면 컨퍼런스 파이널가지 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되기도 했지만 워싱턴도 똑같이 못했다.(…) 원정경기인 1차전과 5차전에서 승리했지만 3차전에서는 KBL급 스코어인 63점밖에 못넣는 등 홈에서는 3번 모두 졸전을 펼친 끝에 2-4로 시리즈를 마쳤다. 존 월은 첫 플레이오프라 그런건지 정규시즌보다 못한 모습으로 아쉬움을 남겼다.

2.4. 2014-15 시즌


2014년 오프시즌에는 고탓을 5년 $60M의 장기계약으로 붙잡았으며 아리자를 휴스턴에 내줬으나 노장 폴 피어스를 영입해서 아리자의 빈자리를 메웠다. 12월까지는 제법 선전하는 듯 했지만 애초에 강팀이라고 부르기엔 미묘한 전력이었고, 46승 36패로 동부 5위에 머물렀다. 그래도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토론토 랩터스를 스윕하는 이변을 연출하기도 했다. 2라운드에서는 애틀란타 호크스와 맞붙는다.
1차전을 먼저 잡았으나 이 경기에서 존 월이 손목 골절을 당해 3경기를 결장하게 되었다. 3차전에 폴 피어스의 버저비터가 터지면서 2:2까지 만드는 등 선전했지만 5차전에서는 알 호포드의 결승 득점으로 반대로 경기를 놓치고, 6차전에서 다시 피어스가 동점 버저비터를 넣는 듯 했지만 이번에는 시간 초과로 무효처리가 되면서 지난 시즌처럼 세미파이널에서 2:4로 탈락하게 되었다.

2.5. 2015-16 시즌


시즌 초부터 브래들리 빌, 네네 등 여러선수들이 부상당하면서 어려운 시즌을 치뤘고, 네네와 고탓과 험프리스, 블레어의 빅맨진이 생각보다 꽤 부진해 강제적으로 스몰라인업이 동원되고 있다. 경기력이 들쭉날쭉해 전반기에 23승 28패를 기록했다.
이후 시즌중에 마키프 모리스, JJ 힉슨, 마커스 손튼등을 보강에 후반에는 더 나아진 경기력을 보였으나 이미 플레이오프 레이스에서 인디애나와 디트로이트가 우위를 점하고 있어서 결국 탈락했다.
시즌후 랜디 위트먼이 물러나고 후임으로 오클라호마의 감독이었던 스캇 브룩스를 5년 3500만 달러에 선임했다. 제한적 FA였던 브래들리 빌과는 5년 1억 3000만 달러의 맥시멈 계약을 체결했다.

2.6. 2016-17 시즌


'''월&빌과 함께하는 암흑기 탈출과 동부 대권도전'''
시즌 초에는 동부 하위권으로 떨어졌으나 12월에 10승 5패를 하고 반등해 16승 16패로 2016년을 마쳤다.
그리고 1월에는 12승 4패의 호성적으로 또 한번 도약해 어느새 동부 2,3등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스캇 브룩스 감독은 이 성적에 힘입어 1월의 감독상을 수상했다.
2017년 2월 2일 현재 29승 20패 동부 4위에 홈경기 16연승을 달리고 있다.
그리고 17연승까지 해냈지만 2017년 2월 6일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와 빅샷이[9] 오고가는 혈전끝에 연장전에서 패배하며 홈 연승이 종료되었다.
그렇지만 그 경기 이후 4연승을 거두며 전반기를 34승 21패 동부 3위로 기분좋게 마쳤다. 아직 원정 경기가 홈 경기보다 7경기가 더 남았기에 후반기 행보를 지켜봐야겠지만, 그래도 거의 답이 없었던 초반 분위기에서 멋지게 반등에 성공했다. 특히 오토 포터의 성장이 큰 힘이 되는중.
후반기에도 워싱턴의 상승세는 꾸준히 이어지고 있고, 보스턴이 덴버에게 패배한 날에 워싱턴은 새크라멘토전에서 대역전승을 거두어 보스턴에게 동부 2위를 뺏어왔다. 1위 클리블랜드와의 승차는 이제 2.5경기차로, 클리블랜드가 하락세인 것을 봤을 때 상승세를 잘 이어 나간다면 1위도 노릴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걸리는 점은 클리블랜드 상대로 이미 시즌 상대전적 열세가 확정되어 성적 동률시 순위에서 밀린다는것과 원정 경기 일정이 매우 험난하다는 것이다.
3월 11일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 원정 경기를 치렀는데 백투백인데다가 전반전을 21점차로 밀린채 마쳐서 힘들어지는가 했지만 기어이 따라잡아서 연장전으로 끌고가 결국 125-124 역전승을 거뒀다. 그러나 명경기였으나 마지막 마키프 모리스의 위닝샷 과정에서 모리스가 사이드라인을 한번 밟고 위닝샷을 성공시켰기에 다소 찝찝한 마무리가 된 점은 아쉬웠다. 포틀랜드측에서 항의했지만 라인 크로스는 리뷰 대상이 아니라 판정이 번복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승리 이후 2연패-1승-2연패의 부진에 빠지면서 클리블랜드까지도 넘봤던 기세는 사라졌고 어느새 4위 토론토에게도 0.5경기 차로 위협받게 되었다. 물론 시즌 초반 헤매던 것에 비하면 괄목상대한 성적이지만 말이다.
3월 23일 애틀랜타 호크스와의 홈경기에서 존 월이 초반 최악의 야투감을 보였지만 후반에 살아났으며 그 외에도 브래들리 빌 등의 활약으로 꾸역꾸역 104-100으로 이기며 연패 탈출에 성공했다. 여담으로 경기 결과와 상관없이 양 팀 모두 턴오버가 난무했던 경기라 스포TV에선 NBA에서도 이렇게 인간적인 경기가 나온다, D리그급 경기였다라는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백투백 일정에서 3월 25일 브루클린을 129:108로 대파한 데 이어 3월 26일 클리블랜드 원정에선 월-빌 듀오가 각각 37점에 11어시스트, 27점에 6어시스트를 합작한 가운데 켈리 오브레, 마키프 모리스도 16점, 14점을 보태며 클리블랜드를 115:127로 격파했다.
이로써 45승 28패를 기록하게 되었고, 남은 9경기에서 5승 이상을 거두면 1979시즌(1978-79시즌) 워싱턴 불릿츠 시절 때 54승을 거둔 이후 처음으로 50승을 달성하게 된다.
4월 11일 동부 4위가 확정되었으며, 동부 5위인 애틀란타 호크스와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만나게 되었다. 최종 성적은 49승 33패로 아쉽게 50승은 실패.
4월 29일 애틀란타 호크스를 꺾고 플레이오프 2라운드에 진출했다! 2연승 후 2연패를 하면서 설마..?했는데 다시 2연승으로 4-2.
2라운드에서는 정규시즌부터 불꽃튀는 신경전을 벌인 보스턴 셀틱스를 만나게 되었고, 시리즈에서도 양 팀은 계속 신경전을 주고받으며 명승부를 펼쳤지만 결국 홈 경기를 전부 잡았으나 보스턴 원정 경기를 전부 패배하며 아쉽게 3:4 패배로 컨퍼런스 파이널 진출에는 실패했다.
5월 20일 브래들리 빌이 CBS 스포츠와 인터뷰에서 캐빌리어스가 의도적으로 2라운드에서 우리를 안 만나려고 꼼수를 부렸다며 강하게 디스하였다. 이에 캐빌리어스 주전 스윙맨 JR 스미스는 그 말을 셀틱스를 7차전에서 이기고 난 후 해야하는 거 아니냐고 비웃었다.

2.7. 2017-18 시즌


브루클린에서 제한적 FA인 오토 포터와 1억 6백만 달러에 협상을 마쳤고, 워싱턴은 오토 포터를 붙잡기 위해 매치를 실행하면서 거액이 빠져나갔다. 이어 존 월과도 4년 1억 7천만 달러에 재계약을 완료하면서 일단 2016-17 시즌 베스트 전력은 엇비슷하게 유지하게 되었다. 다만 브루클린에서 워싱턴으로 트레이드되어 벤치에서 좋은 활약을 보여줬던 보얀 보그다노비치는 인디애나로 떠났다.
전체적으로 작년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 않다.
다행히 브루클린 덕분에 대형계약을 떠않게된 오토 포터가 작년보다 더 성장한 활약을 펼치며 리그 탑급 스윙맨 자원이 되었지만, 고탓이 이랑 존월이 작년같지 않다. 고탓은 노쇠화가 심하게 왔고, 존월은 부상으로 인해 결장이 매우 잦은편.
엎친데 덮친? 격으로, 존월이 부상으로 빠진 틈을타 워싱턴이 연승 행진을 거두고 있었는데, 이때 고탓이 트위터로 "우리팀 정말 대단해!" 했다가 존월이 삐져버렸다. 삐진 존월은 트위터로 "나에게 가장 떠먹여 주는 득점과 어시스트를 제공받는 자가 할 소리는 아닌것 같다" 라며 분위기가 되게 이상해 졌다. 결국 팀은 존월과 고탓을 서로 만나게 해서 오해를 풀고 화해시키려 하고있다.
이와 별개로 사토란스키가 존월의 공백을 잘 매워주고 있다. 켈리 오브레 Jr 도 성장하여 이제 팀의 핵심 식스맨이자 스몰라인업에서 주전으로 활용되고 있다. 마힌미는 얘기하지 말자. 3월 9일 현재 팀은 4위를 유지하고 있으며, 5위 인디애나와 승차없이 승률차로 앞선 상황이다.
그러나 한계가 있었던건지 시즌 막판에 패를 너무 많이 적립해 8위까지 미끄러졌다. 최종 성적은 43승 39패로 플레이오프에선 토론토 랩터스와 만나게 되었다.
플레이오프에서 동부1위인 랩터스를 상대했다. 1차전과 2차전에서는 압승을 당했지만, 존 월이 부상복귀 이후 경기에 서서히 적응하면서 3차전과 4차전에 맹활약을해 시리즈는 2:2로 팽팽하게 됐다. 하지만 시리즈가 길어져 워싱턴 위저즈의 벤치멤버가 빈약한 약점이 드러나면서 5차전과 6차전을 내리 패하게돼 플레이오프 행진을 멈추게 되었다.

2.8. 2018-19 시즌


시즌에 앞서 선수단에 변화가 있었다. 트레이드 등을 통해 마신 고탓, 마이크 스캇, 타이 로슨 등을 떠나보내는 한편 드와이트 하워드, 제프 그린, 오스틴 리버스 등을 영입, 로스터를 구축했다.
시즌 초반이 영 좋지 않다. 하워드가 정규시즌 개막부터 부상으로 드르렁하면서 경기에 나서지 못했고 첫 6경기에서 1승 5패라는 충격적인 성적표를 받아 들었다. 이 가운데 월과 빌이 선수단의 분발을 촉구했으나 오히려 역풍이 불었고 팀 분위기마저 x창이 나는 상황. 다행히 뉴욕 닉스를 잡고 연패 탈출에 성공했지만 댈러스, 올랜도에게 연달아 박살이 나면서 시즌 성적은 2승 9패. 동부 컨퍼런스 14위로 쳐지면서 컨텐더 팀과는 거리가 먼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 와중에 팀의 리더인 존 월은 감독에게 F-Word를 외치고# 브래들리 빌은 연습때 싸우는 꼬라지를 7년동안 보고 있다며 팀 전체를 까는 등#[10] 팀 분위기도 매우 좋지않다.
전반기 성적은 24승 34패로 동부 11위.
2019년 4월 들어서 어니 그룬필드 단장을 해고했다.

2.9. 2019-20 시즌


그렇게 돈을 받아먹으면서 여유롭게 학업 중이던 문무겸장 이 세상 최고의 부자 대학생이 플레잉 코치로 팀에 합류했다. '플레잉'은 이번 시즌도 어차피 안할테지만.(...)
수비는 거의 없는 수준이고, 브래들리 빌만 죽어라고 득점을 올리면서 팬들을 눈물짓게 하고 있다.
그래도 워싱턴 내셔널스가 우승컵을 가져다주면서 지역팬들은 위로를 받았다. 내셔널스가 우승을 확정지은 7차전날 (휴스턴 원정) 워싱턴 위자즈는 휴스턴 로켓츠를 홈으로 불러들여 격렬한 전투 끝에 159 vs 158로 패배했다. (연장경기 아님)
캐피탈스(2018년 4월) - 미스틱스 (2019년 9월) - 내셔널스 (2019년 10월) 이렇게 우승이 없던 지역 친구들이 2년이 지나기도 전에 모두 V1을 달성. 위자즈(V1)와 레드스킨스(V3, 이번 시즌 탱킹 중)는 조금 입장이 초라하게 되었다.
동부에서 바닥을 기고 있다. 수비는 아예 버려버리고 공격에 몰빵하면서 가~끔 가다가 상대팀이 같이 수비가 무너지면 몇 경기 이기고는 있다.
주전들이 부상으로 다 빠진 상태에서 G리그 멤버들까지 콜업하는 처참한 로스터로 잘 나가던 마이애미 히트를 상대로 승리를 따내면서 이변을 하나 썼다. 그 이후로도 간간히 상위권팀들에게서 승리했는데 공격만큼은 여전히 좋은 팀이다. 공격만 좋다는게 문제.
시즌 후반 기준 동부 9위인데, 8위와의 차이가 너무 커서 플옵은 어림도 없는 상황.
그래도 코로나 19 여파로 중단된 리그가 단축 스케줄로 재개되며 올랜도 디즈니 월드로 초대된 22개 팀 중 막차를 탔다. 플레이오프 경쟁 상대인 네츠와 매직과는 각각 6게임과 5.5게임이나 차이가 나지만 산술적 진출 가능성은 남아 있어 끝까지 실낱같은 희망을 이어가게 되었다. 하지만 팀의 절대적인 에이스 빌이 어깨 부상으로 남은 시즌 나오지 못하게 되어 일찌감치 탈락한 후 승점자판기행 루트를 벗어나기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역시나 미국시간으로 8월 7일 이뤄진 뉴올리언스와의 경기에 패하며 더이상 8위와 4게임 이내로 좁힐 수가 없게 되면서 플옵경쟁에서 떨어지게 되었다. 게다가 추가일정 8경기 중 7경기를 전패하며 오히려 버블에 가지 못한 샬럿보다 승률이 낮아졌다. 최종전까지 패배하면 역시 버블에 가지 못한 시카고보다도 승률이 낮아져 시즌을 마감하게 된다. 하지만 추가일정 이전에 시즌이 종료된 팀들은 순위결정이 마무리된 것으로 처리되어 워싱턴의 시즌 순위는 동부 11위가 아닌 9위로 기록된다.

2.10. 2020-21 시즌


시즌 개막을 앞두고 휴스턴에서 언해피를 선언한 웨스트브룩과 존 월을 트레이드 했다. 그러나 시즌 초 웨스트브룩의 심한 부진과 팀의 부족한 수비력을 해결하지 못해 하위권을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2월, 서부 원정에서 연승을 기록하는등 늦게나마 기세를 끌어올리고 있다.

3. 영구결번


'''워싱턴 위자즈 영구결번'''
No. 10
No. 11
No. 25
No. 41
No. 45
얼 먼로
엘빈 헤이즈
거스 존슨
웨스 언셀드
필 체니어
10.얼 먼로 (1967년-1971년) - 볼티모어
화려한 플레이로 'Pearl(진주)'라고 불린 공격수. 볼티모어 불리츠의 경영 악화로 사이가 좋지 않았던 라이벌팀 뉴욕 닉스로 이적하게되고 그 곳에서 우승 반지 1개(1973)를 얻었다. 위자즈(불리츠)와 닉스 양쪽에서 모두 영구결번 되었다.
11.엘빈 헤이즈 (1972년-1981년) - 볼티모어/워싱턴D.C
언셀드와 함께 70년대 최전성기를 이끈 선수. 득점과 리바운드에서 높은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선수다. 이 둘의 콤비는 상당히 강력해 NBA 파이널 3회 진출, 1회 우승을 이룬다. 휴스턴 대학교에서 학창시절을 보내고 데뷔한 팀이 휴스턴으로 연고이전을 하고, 은퇴도 고향에서 하고 싶어서 휴스턴으로 갔던 로컬 보이이기도하다. 반지는 1개(1978).
25.거스 존슨 (1963년-1972년) - 볼티모어
달콤한 플레이를 한다는 뜻에서 'Honeycomb'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던 볼티모어 불리츠의 프랜차이즈 스타. 팀의 전성기가 찾아오는 시점과 본인의 커리어 막바지가 겹치는 바람에 NBA 우승은 하지 못했으나 (준우승 1회 기록) 1973년 이적한 인디애나 페이서스(당시 ABA 소속)가 우승을 하면서 커리어 마지막 시즌에 우승을 경험하고 은퇴할 수 있게 되었다. 반지는 1개(1973).
41.웨스 언셀드 (1968년-1981년) - 볼티모어/워싱턴D.C
언더사이즈 빅맨의 대명사. 데뷔시즌에 신인왕과 MVP를 동시에 거머쥐었으며 '''201cm'''밖에 안되는 키로 엄청난 수의 리바운드를 잡아냈다. 참고로 이당시 리바운드 경쟁자들이 '''이 양반'''이라든가 '''저 양반'''이라든가... 빌 러셀이야 언셀드보다 딱 5cm더 크니 논외 [11]. 1988~1994년까지 감독, 1994~2000년까지 부사장 및 단장을 역임한 바 있다. 찰스 바클리와 더불어 통통한 단신이면서도 우승까지 팀을 이끌고 리그의 전설로 남은 유니크한 선수. 원클럽맨이며 우승반지는 1개(1978).
45.필 체니어(선수 : 1971년-1979년) (방송인 : 1985년-2017년) - 볼티모어/워싱턴D.C
70년대 불릿츠 최전성기 멤버. 2018년 동료들보다는 뒤늦게 영구결번되었다. 부상으로 인해서 10시즌밖에 선수생활을 하지 못했지만[12] 1985년부터 2017년까지 워싱턴 D.C 지역방송에서 스포츠 해설가로 활약했다. 우승반지는 1개(1978).
얼 먼로와 거스 존슨은 볼티모어 불리츠 시절에 뛰었던 선수로, 워싱턴 연고이전 전의 스타들이다. 1971년 첫 파이널 진출 이후 존슨과 먼로는 팀을 떠났고 헤이즈와 체니어가 팀에 합류한다.
영구결번자 모두가 우승을 한 번씩은 했다.

4. 2020-2021 선수명단


2020-21 시즌 워싱턴 위저즈 선수단
감독
스캇 브룩스 (Scott Brooks)
코치
돈 뉴먼, 돈 지르던, 로이 로저스, 팻 설리반, 하워드 에이슬리
가드
3. 브래들리 빌 4. 러셀 웨스트브룩 12. 제롬 로빈슨 14. 이시 스미스 17. 아이작 봉가 19. 하울 네투 24. 개리슨 매튜스
가드-포워드
6. 트로이 브라운 주니어
포워드
8. 하치무라 루이 9. 데니 아브디야 42. 다비스 베르탄스
포워드-센터
13. 토머스 브라이언트 21. 모리츠 바그너
센터
15. 로빈 로페즈

5. G 리그 산하팀


[image]
캐피털 시티 Go-Go
Capital City Go-Go
설립년도
2018년 (6주년)
역사
캐피털 시티 Go-Go (2018년~현재)
연고지
워싱턴 D.C.
컨퍼런스
동부 컨퍼런스
디비전
사우스이스트 디비전
홈구장
세인트 엘리자베트 이스트 엔터테인먼트 앤 스포츠 아레나[13]

6. 이모저모


  • 네이버에서 고품질 칼럼을 연재 중인 염용근 기자가 국내에서 대표적인 위저즈와 그 에이스 존 월의 팬이다. 존 월이 잦은 부상으로 결국 농구선수가 아니라 대학생이 되어버린 이후로는 언급을 하지는 않지만 수비를 내다버리고 브래들리 빌을 주축으로 공격에 올인 중인 워싱턴을 '불의 팀'이라고 표현하는 등 애정을 버리지 않고 있다.

[A] A B NHL 워싱턴 캐피털스와 공용[1] NHL 워싱턴 캐피털스를 소유하고 있다.[2] 해당 팀명의 유래는 연고지였던 볼티모어 근처에 탄약 제조 공장이 있었던 데서 유래한 것이며 진짜 의미는 총알처럼 빠른 농구를 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국가의 수도임에도 도시의 이미지가 워낙에 안 좋았던 까닭에 한때는 '미국에서 가장 위험한 도시'에 들어갈 정도로 막장 이미지였던 동네였다.[3] 전 애틀랜타 호크스 단장 대니 페리의 부친.[4] 그러나 경영자로서 조던은 별로 평가가 높지 않다. 그가 선택한 전체 1번 픽은 역대 최악의 픽 중 하나라는 콰미 브라운(...) 또 밥캣츠 구단주로서 행사한 첫번째 픽으로 뽑은 애덤 모리슨은 그냥저냥 평범한 선수로 있다가 몇년만에 레이커스로 트레이드되어, 여기서도 별 활약없이(...) 2010년 우승반지를 낀다. 특유의 장발과 수염으로 인한 노안으로 벤치에서 미친 존재감을 과시하기는 했다.(...) 2012년에 전체 2픽으로 뽑은 마이클 키드-길크리스트는 데뷔 후 삼년째 평균득점이 한 자리에 그치고 있다. 이 때 6번으로 뽑힌 대미언 릴라드는 올스타에까지 뽑혔고, 9픽으로 뽑힌 안드레 드레먼드는 2014시즌에 두자리수 득점과 리바운드를 해줬다는 걸 생각하면, 정말 못 뽑은 셈이다.[5] 조던이 은퇴한 바로 다음 시즌인 03-04시즌에는 성적이 다시 25승으로 12승이나 떨어진다. 심지어 이때 길버트 아레나스가 합류했음에도! 물론 그 다음 시즌에는 앤트완 재미슨을 추가로 영입하는 등 전력보강을 통해 플레이오프에 진출한다.[6] 일부 팬들의 오해와 달리 이때 조던은 복귀 전에 자기가 갖고 있던 팀 지분을 전부 매각했다. NBA는 선수가 구단 지분을 소유하는 것을 금지한다.[7] 강압적인 조던의 존재로 인해 유망주들이 못 컸다는 의견도 있지만, 조던탓을 하기엔 이 선수들이 보여준게 너무 없다. 타이론 루는 01파이널에 아이버슨 막은게 유일하게 커리어에서 빛난 부분이고 콰미 브라운은 조던이 떠난지 10년간 제자리걸음만 했다. 즉, 냉정히 말하면 조던탓을 할것도 없이 애초에 그 정도밖에 안되는 선수들이었다는 소리. 오히려 조던은 03시즌 초반에는 식스맨을 자처했지만 동료들이 워낙 답이 없기에 주전으로 나선 것이다.[8] 전임 덕 콜린스 감독도 2002/03 시즌부터 모션 오펜스를 써먹으려 했으나, 주전들의 잦은 부상과 아이솔레이션 의존, 빅맨들의 능력 부족 등으로 실패했다.[9] 정말장난아니였다 르브론의 0.3초를 남긴 연장전 직행 3점슛, 어빙의 연장전 1분을 남기고 성공한 3점;;[10] 참고로 브래들리 빌은 7년차다. 본인 말에 따르면 입단이후 내내 이랬다는 뜻이다.[11] 기존 버전에는 빌 러셀이 언더사이즈라고 적혀 있었는데 러셀은 키가 206~208이며(당시는 신장 측정이 정확하지 않음) 이 정도 키는 60년대 센터치고 작은 키가 아니었다. 당시는 180후반의 슈팅가드나(레이커스의 막강 백코트인 제리 웨스트, 게일 굿리치 등은 188,185에 불과했다) 190대 후반~2미터 초반의 파워포워드들도 많았다. 윌리스 리드 역시 208로 표기되었는데 본인 증언에 따르면 러셀과 키가 똑같았다고. 실제로 러셀과 동년배 센터들은 윌트 챔벌린(216), 월터 듀크스(213) 정도를 제외하면 조니 커(206), 웨인 엠브리(203), 제리 루카스(203), 모리스 스톡스(203)등 전체적으로 러셀과 비슷했으며 그를 신체적으로 압도할만한 선수는 별로 없었다.[12] 우승시즌인 1977-78년 초반의 부상으로 인해서 기량을 잃어버렸다.[13] WNBA 워싱턴 미스틱스와 홈구장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