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토프 폰 미켈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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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ristopf von Michaelsen (クリストフ・フォン・ミヒャールゼン)
은하영웅전설 외전 5권 <나선미궁>의 등장인물. 구 번역본에서는 크리스토퍼 폰 미하르젠으로 번역되었는데, 이타카판에서 크리스토프 폰 미켈젠으로 번역됐다.
은하제국 백작 가문의 둘째 아들로 제국력 379년, 우주력 688년에 태어났으며, 남작 칭호를 가졌다는 점에서 분가하였거나 또는 남작가의 양자로 들어간 인물로 추정할 수 있다. 어쨌든 남작 칭호를 얻게된 계기는 구체적으로 언급되지 않는다.
전선지휘관으로서의 능력은 완전히 낙제점이었고, 대신 군무성이나 후방의 행정근무를 하는 인물이었다. 통수본부와 군무성 등지에서 활동하며 뚜렷한 공적을 세운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큰 실책을 저지른 적이 없는 무난한 인재라고 외부에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사실 그는 마르틴 오토 폰 지크마이스터 대장의 동지로서 '''은하제국 심장부에까지 뻗어 있는 은하제국 역사상 최대의 스파이망을 완성시킨 인물이었다.''' 지크마이스터 장군의 경우에는 은하제국의 부조리에 대한 실망과 민주공화주의에 대한 막연한 동경에서 시작한 작업이라면, 미켈젠은 비합법적인 비밀조직을 구축하고 이를 운영하는 것에서 오는 스릴을 즐기는 스타일이었다. 그 영향으로 스파이망 구축과 관리에 자신의 모든 열정과 능력을 쏟아부은 조금은 괴짜 같은 인물이었다.
지크마이스터 장군이 자유행성동맹으로 망명한 이후에는 은하제국 현지의 최고 책임자로 활동하였으며, 미켈젠에게 모여든 제국의 1급정보들은 동맹의 지크마이스터 장군의 손으로 넘어갔고, 동맹은 이렇게 입수된 정보를 바탕으로 대제국 방면 전선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이 시기 크리스토프 폰 쾨펜힐러가 직속 부하로 배치되어 잠시 인연을 맺기도 하였으며, 본인과 이름이 같다는 이유로 상당히 아꼈다는 언급이 나온다. 하지만 쾨펜힐러는 제2차 티아마트 회전을 앞두고 전선으로 전출되면서 인연이 끊어졌다.
한편 제국군은 계속되는 완패에 동시에 자신들의 정보가 새고 있는 것이 아닌가를 의심하기 시작했고, 조사 결과 미켈젠이 지휘하는 스파이망이 외부로 드러났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제국군은 크게 분노하였으나, 일단 이와 같은 스파이망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것 자체가 제국군의 커다란 불명예였다.
결국 제국군 수뇌부는 일단 눈앞으로 다가온 일전을 마친 후에 처단하기로 잠정 결정을 하였고, 이를 위해 코젤 대장을 통수본부로 전속시키고[1] 하우저 폰 슈타이어마르크 중장과 협력하게 하는 등 대충 준비를 마친 상황이었으나, 정말 운이 좋았는지 '''동맹군이 미켈젠의 목숨을 연장시켜줬다!'''
제2차 티아마트 회전에서 제국군은 코젤 대장을 비롯한 고급 지휘관 및 장교들이 '군무성이 눈물을 흘릴 40분' 동안 동맹군의 공세로 떼죽음을 당했고, 이로 인해 인재부족 사태가 겹치자 제국군은 새로운 인재 등용과 인선에 모든 역량을 쏟아부었다. 그로 인해 제국군은 미켈젠을 처단할 기회를 놓쳤다. 게다가 미켈젠 역시 자신에게 다가온 위기를 직감하고 조직을 일시적으로 동면시켰기 때문에 결국 제국군은 결정적인 물증 확보를 하지 못하고 흐지부지되었다.
이후 미켈젠은 조직을 물려받을 후계자를 물색하였으나 마땅한 인물이 없었고, 결국 제국력 442년, 우주력 751년 10월 29일, 그는 군무성 참사관실의 책상에 앉은 채 누군가의 블래스터에 목덜미가 꿰뚫려 63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었다.
당시 유력한 용의자로 사건 당일 미켈젠이 유일하게 만난 사람으로 공식기록된 슈타이어마르크가 지목되었지만, 슈타이어마르크가 살해했다는 물증이 없었고 다른 사람이 드나드는 것을 목격했다는 증언이 나오는 등 사건 자체는 미궁에 빠져들었다. 더불어 슈타이어마르크도 죽는 날까지 이 사건에 대해 별도의 언급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이 사건은 영구미제사건으로 남았다. 쾨펜힐러 역시도 이 미제사건을 파헤치기 위해 노력했지만 끝내 해결하진 못했다.
1. 개요
Christopf von Michaelsen (クリストフ・フォン・ミヒャールゼン)
은하영웅전설 외전 5권 <나선미궁>의 등장인물. 구 번역본에서는 크리스토퍼 폰 미하르젠으로 번역되었는데, 이타카판에서 크리스토프 폰 미켈젠으로 번역됐다.
은하제국 백작 가문의 둘째 아들로 제국력 379년, 우주력 688년에 태어났으며, 남작 칭호를 가졌다는 점에서 분가하였거나 또는 남작가의 양자로 들어간 인물로 추정할 수 있다. 어쨌든 남작 칭호를 얻게된 계기는 구체적으로 언급되지 않는다.
전선지휘관으로서의 능력은 완전히 낙제점이었고, 대신 군무성이나 후방의 행정근무를 하는 인물이었다. 통수본부와 군무성 등지에서 활동하며 뚜렷한 공적을 세운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큰 실책을 저지른 적이 없는 무난한 인재라고 외부에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사실 그는 마르틴 오토 폰 지크마이스터 대장의 동지로서 '''은하제국 심장부에까지 뻗어 있는 은하제국 역사상 최대의 스파이망을 완성시킨 인물이었다.''' 지크마이스터 장군의 경우에는 은하제국의 부조리에 대한 실망과 민주공화주의에 대한 막연한 동경에서 시작한 작업이라면, 미켈젠은 비합법적인 비밀조직을 구축하고 이를 운영하는 것에서 오는 스릴을 즐기는 스타일이었다. 그 영향으로 스파이망 구축과 관리에 자신의 모든 열정과 능력을 쏟아부은 조금은 괴짜 같은 인물이었다.
지크마이스터 장군이 자유행성동맹으로 망명한 이후에는 은하제국 현지의 최고 책임자로 활동하였으며, 미켈젠에게 모여든 제국의 1급정보들은 동맹의 지크마이스터 장군의 손으로 넘어갔고, 동맹은 이렇게 입수된 정보를 바탕으로 대제국 방면 전선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이 시기 크리스토프 폰 쾨펜힐러가 직속 부하로 배치되어 잠시 인연을 맺기도 하였으며, 본인과 이름이 같다는 이유로 상당히 아꼈다는 언급이 나온다. 하지만 쾨펜힐러는 제2차 티아마트 회전을 앞두고 전선으로 전출되면서 인연이 끊어졌다.
한편 제국군은 계속되는 완패에 동시에 자신들의 정보가 새고 있는 것이 아닌가를 의심하기 시작했고, 조사 결과 미켈젠이 지휘하는 스파이망이 외부로 드러났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제국군은 크게 분노하였으나, 일단 이와 같은 스파이망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것 자체가 제국군의 커다란 불명예였다.
결국 제국군 수뇌부는 일단 눈앞으로 다가온 일전을 마친 후에 처단하기로 잠정 결정을 하였고, 이를 위해 코젤 대장을 통수본부로 전속시키고[1] 하우저 폰 슈타이어마르크 중장과 협력하게 하는 등 대충 준비를 마친 상황이었으나, 정말 운이 좋았는지 '''동맹군이 미켈젠의 목숨을 연장시켜줬다!'''
제2차 티아마트 회전에서 제국군은 코젤 대장을 비롯한 고급 지휘관 및 장교들이 '군무성이 눈물을 흘릴 40분' 동안 동맹군의 공세로 떼죽음을 당했고, 이로 인해 인재부족 사태가 겹치자 제국군은 새로운 인재 등용과 인선에 모든 역량을 쏟아부었다. 그로 인해 제국군은 미켈젠을 처단할 기회를 놓쳤다. 게다가 미켈젠 역시 자신에게 다가온 위기를 직감하고 조직을 일시적으로 동면시켰기 때문에 결국 제국군은 결정적인 물증 확보를 하지 못하고 흐지부지되었다.
이후 미켈젠은 조직을 물려받을 후계자를 물색하였으나 마땅한 인물이 없었고, 결국 제국력 442년, 우주력 751년 10월 29일, 그는 군무성 참사관실의 책상에 앉은 채 누군가의 블래스터에 목덜미가 꿰뚫려 63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었다.
당시 유력한 용의자로 사건 당일 미켈젠이 유일하게 만난 사람으로 공식기록된 슈타이어마르크가 지목되었지만, 슈타이어마르크가 살해했다는 물증이 없었고 다른 사람이 드나드는 것을 목격했다는 증언이 나오는 등 사건 자체는 미궁에 빠져들었다. 더불어 슈타이어마르크도 죽는 날까지 이 사건에 대해 별도의 언급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이 사건은 영구미제사건으로 남았다. 쾨펜힐러 역시도 이 미제사건을 파헤치기 위해 노력했지만 끝내 해결하진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