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티안 뵈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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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은퇴한 독일의 축구 선수.
2. 선수 경력
2.1. SV 발트호프 만하임
17세의 나이에 SV 발트호프 만하임 소속으로 분데스리가에 데뷔하였고, 당시 그는 4번째로 젊은 데뷔 선수로 기록되었다. 그는 첫 시즌에 18경기 출장하였고, 그 다음시즌에는 팀이 강등당하여 2. 분데스리가 34경기에 출장하였다.
2.2. 바이어 04 레버쿠젠
1991년 분데스리가의 바이어 04 레버쿠젠으로 이적하였다. 이후 1998년까지 약 7년간 레버쿠젠 수비의 중심으로 역할하였고, 스위퍼 옌스 노보트니, 마르쿠스 하페와 함께 팀 수비의 주축이 되었다.
2.3. 파리 생제르맹 FC
1998년, 프랑스의 파리 생제르맹 FC로 이적했지만 적응에 실패해 한시즌만에 팀을 떠나게 된다.
2.4.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1999년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로 이적하였다. 이후 크리스토프 메첼더와 함께 도르트문트의 전성기를 이끌었으며, 2008년까지 240경기에 출전하며 활약했다.
3. 국가대표 경력
유소년 대표팀은 서독 대표로 뛰었으나 1990년 독일이 통일되면서 성인 대표팀은 1992년 독일 대표팀에 데뷔했다.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에 참가했는데 독일 국가대표팀 내 최고의 선수로 평가되었다. 뵈른스는 크로아티아와의 8강전에서 40분에 다보르 슈케르를 상대로 거친 태클을 걸기 전까지 안정적인 활약을 펼쳤다. 로타어 마테우스의 백패스를 가로챈 다보르 슈케르가 독일 수비를 파고들며 문전에 접근하자 이 위험을 늦게 알아챈 뵈른스는 슈케르에 태클을 걸었고, 슈케르는 그라운드에 몇차례 구르며 넘어졌다. 그는 완벽한 골찬스를 방해함에 따라 노르웨이 출신 주심 루네 페데르센은 뵈른스에게 레드 카드를 꺼내들었고, 그의 퇴장에 충격을 받은 독일은 크로아티아에 0-3 참패를 당하였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은 부상으로 최종 명단에서 탈락했다.
그리고 2006년 위르겐 클린스만이 2006 FIFA 월드컵 독일을 앞두고 발표한 22인 명단에서, 34세였던 뵈른스는 백업 스쿼드에 포함되는데 그쳤다. 뵈른스는 그 결정이 부당하다고 느꼈고, 인터뷰에서 폭언을하며 클린스만을 비난했다. 독일 축구 연맹은 클린스만에게 인터뷰에서 폭언을 한 것에 대해, 뵈른스에게 대표팀 영구 추방이라는 중징계를 내렸고, 그는 더이상 독수리 마크를 달 수 없게 되었다. 비슷한 일이 울리 슈타인 (1986년 FIFA 월드컵 도중) 과, 슈테판 에펜베르크 (1994년 FIFA 월드컵 도중) 에게도 있었다.
4. 은퇴 이후
은퇴 후 여럿 유소년팀을 감독하다 2019년부터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U-19 팀을 감독하게 된다.
[1] 독일어에서 자음 앞에 오는 r의 표준 발음은 /r/이지만 현대 독일어에서는 스위스, 바이에른, 오스트리아에서만 r로 발음하며 다른 지역에서는 마찰음인 [ʁ\]로 발음된다. 따라서 '''뵈언스'''가 뵈른스보다 원어에 가까운 표기이지만, 독일어 표기 규정은 r을 모두 '르'로 표기하도록 지시하기에 표준 표기는 뵈언스가 아닌 뵈른스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