옌스 노보트니
1. 개요
90년대 말 혜성처럼 나타난 독일 출신의 거물급 수비수이자 2000년대 초반 바이어 레버쿠젠의 전성기의 주역.
2. 플레이 스타일
기본적인 수비능력이 뛰어난 데다가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태클 능력과 훌륭한 공간 커버 능력, 수비수의 기본 덕목인 피지컬과 수비수 조율 능력까지 갖춘 토털 패키지형 수비수라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수준높은 패싱력을 지녔으며 노보트니의 최대 장점이 바로 볼간수 능력이 매우 뛰어난 선수였다.
3. 클럽 경력
3.1. 카를스루에 SC
1991년 1군에 데뷔해 1996년까지 103경기에 출전하며 좋은모습을 보였다.
3.2. 바이어 04 레버쿠젠
1996년 바이어 04 레버쿠젠으로 이적했다. 레버쿠젠에서 2006년까지 10년간 뛰며 '''231경기'''에 출전했고, 카르스텐 라멜로프와 함께 레버쿠젠의 전성기시절 주전 수비수로 활약했다. 1998년부터 2001년까지 4연속 분데스리가 베스트 11에 선정되기도 했다.
3.3. NK 디나모 자그레브
2006년 NK 디나모 자그레브로 이적했다. 계약기간은 3년. 그러나 계속해서 부상으로 힘들어했고 2006년 8월 19일 당한 부상으로 인해 수술까지 들어갔으나 완전히 회복하지 못했고, 2007년 1월 22일 33살의 나이에 국가대표팀과 클럽팀에서 은퇴했다.
4. 국가대표 경력
'''어떻게 보면 제바스티안 다이슬러 보다도 당시 암흑기의 독일축구의 실질적 희망이라 불린 선수'''
1997년 4월 90일 우크라이나와의 경기에서 프레디 보비치와 교체되며 데뷔했다. 이후 48경기에 출전하며 활약했다.
압박축구가 주를 이루는 현 시기에 볼 컨트롤 및 탈압박과 패싱 능력이 뛰어난 옌스 노보트니의 존재는 당시 딥라잉 플레이메이커의 빌드업에 의존하는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의 치명적인 단점을 보완해 주며 더 나아가 공격루트의 다양성을 제공해 줄 선수였다. [1] 당시 분데스리가 최고의 미드필더라 평가받는, 파비안 에른스트, 프랑크 바우만, 하노 발리치는 국대에서의 호러급 경기력을 보였고, 센터백 역시 2006년 페어 메르테자커와 필립 람이 본격적으로 성장하기 전까진 빌드업은 커녕 상대의 강한 압박에 허둥지둥 거리는 상태였다.
그러나 2002년 4월 십자인대 파열이라는 큰 부상을 당하게 되며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에 불참하게 되지만 유로 2004와 2006 FIFA 월드컵 독일에는 참가할수 있었다. 하지만 계속해서 부상이 그를 힘들게 했고 결국 월드컵이 끝난지 얼마 안되어 디나모 자그레브에서 뛰던도중 당한 부상으로 인해 은퇴하게 된다.
5. 은퇴후
은퇴이후 INSOCCER OHG INSOCCER OHG라는 회사에서 축구 에이전트를 맡고있다.
[1] 크리스티안 뵈른스와, 토마스 링케는 기본적인 수비수 덕목은 뛰어나지만, 패싱력이 좋지 않고, 크리스티안 치게의 경우 대한민국의 홍명보라 보면된다. 패싱력이 뛰어나서 대표팀 전담 키커이지만 탈압박 능력이 떨어져, 치게가 압박을 받을 때, 미하엘 발락이 치게를 지원해서 빌드업을 지원하는 형국이였다. 그나마 카르스텐 라멜로프가 리베로 위치에 있으면서 치게의 후방 빌드업을 지원했으나, 라멜로프의 노쇠화와, 치게의 은퇴에 맞물려, 독일 대표팀 내에서의 빌드업을 이끌어 줄 선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