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맘 슈드 사건

 


The Tamám shud Case

34°59'42"S 138°30'36"E
사건이 발생한 지역.

1. 개요
2. 시신 발견
3. 초동 수사
4. 의문의 종이 쪽지, 타맘 슈드
5. 제시카 톰슨
6. 장기 미제 사건으로 남다
7. 의문의 남성은 누구인가?
8. 암호문의 의미
9. 기타 사항
10.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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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타맘 슈드 사건'''(The Tamam Shud Case) 또는 '''서머튼 해안의 정체불명의 남자'''(Mystery of the Somerton Man) 사건은 1948년 12월 1일, 오스트레일리아 애들레이드의 서머튼 파크 근처의 해변가에서 신원 불명의 남성 변사체가 발견된 사건으로, 남성은 살해당한 것으로 추정되나 범인은 물론 살인 방법과 동기 어느 것도 찾을 수 없어 미제로 종결된 사건이다.
호주에서는 가장 유명한 미제 사건 중 하나로, '타맘 슈드'는 남자의 주머니에서 발견된 의문의 메시지이다. 메시지는 'TAMAM SHUD'이지만 사건 당시 기사에 'TAMAN SHUD'라고 오타가 나서 잘못된 표기가 굳혀졌다. 실제로는 타맘 슈드 사건이 옳은 표현이다.

2. 시신 발견


1948년 12월 1일, 애들레이드경찰은 신고를 받고 애들레이드 서머튼 해안으로 출동한다. 신고자는 존 라이넬스라는 남성으로 그는 전날 저녁 부인과 함께 서머튼 해안을 산책하다가 이스플레네이드(Esplanade) 가와 빅포드 테라스(Bickford Terrace) 가가 만나는 도로 너머 해변 방파제에 사이에 기대어 있는 문제의 남성을 발견했다. 하지만 누운 채로 팔을 휘젓고 있는 모습에 술에 취한 사람으로 생각하고 지나쳤다. 그러나 다음 날 새벽에 다시 해안에 나와본 존 라이넬스는 전날 저녁에 본 남성이 똑같은 자세로 있는 것을 알게 된다. 무언가 이상하다고 느낀 그는 경찰에 신고했고, 경찰이 출동해 남자를 살펴봤을 때 남자는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
당시 시체의 사진. 개인에 따라서 혐오감을 유발할 수 있으니 주의.[1]
발견된 시신은 40대 초중반의 영국계 남성으로 외상이 없어서 마치 잠들어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사망한지 얼마 안돼 부패도 진행되지 않아서 신원 파악은 금방 이루어 질 것으로 보였다. 그래서 처음 경찰은 지병이 있는 남성이 해안가에서 산책을 하다가 급사한 것 정도로 생각했다.
경찰은 애들레이드 대학의 명예교수인 존 버튼 클리랜드 경에게 부검을 의뢰했는데, 그의 부검 소견은 경찰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남성은 비장이 정상인의 3배 가량 커져 있었고, 위장에는 출혈이 있었으며, 몸 곳곳에는 울혈이 있었고 동공은 확장되어 있었다. 이는 피해자가 '''약물 또는 독극물로 독살당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였고, 부검자인 클리랜드 경도 몸에 흔적이 남지 않게 빠르게 분해되는 독극물로 인한 독살로 추정했다.
피해자의 위장에서는 사망하기 서너 시간 전쯤에 먹은 것으로 보이는 고기 파이가 있었지만, 고기 파이에서는 문제점이 없었다. 이후 계속되는 부검에도 약물이나 독극물의 흔적을 찾아내지 못했고, 주사바늘 조차도 발견하지 못했다. 결국 클리랜드 경은 남성이 심정지로 사망했다고 결론 내렸다.
더 이상한 것은 피해자의 사망 추정 시간이다. 법의학자는 피해자가 12월 1일 새벽 2시경 남성이 사망한 것으로 판단했다. 이상한 점은 존 라이넬스가 처음 이 남자를 목격했던 시점인 11월 30일 저녁에도 이 남성은 방파제에 기대 있는 채로 있었다는 것이다.
경찰은 탐문을 통해 존 라이넬스 외에도 목격자들을 찾아낼 수 있었다. 존 라이넬스가 이 남성을 취객으로 생각하고 떠나간 뒤, 7시 30분경과 8시경쯤에 몇몇 남자들이 이 남자를 목격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목격자들은 한결같이 이 남자가 방파제에 기댄 모습이었다고 진술했다. 존 라이넬스의 경우 위에 나와있다시피 남자가 팔을 흔들고 있었다고 증언했으니 새벽 2시 경에 사망했다는 부검 결과와 딱히 어긋나지는 않는다. 문제는 이 남성이 왜 최소 저녁 7시 30분 경 이후부터 계속 방파제에 기댄 채 팔을 흔들기만 하다가 그대로 사망했느냐는 것이다.

3. 초동 수사


경찰은 이 남성의 신원을 파악하는 데 굉장히 애를 먹었다. 남성은 고급 의류를 착용하고 있었는데, 이 의류들에는 태그가 철저하게 제거되어 있었다. 소지품 가운데서는 애들레이드에서 헨리 해변으로 가는 기차표와 애들레이드에서 서머튼 해안 인근의 글래널그로 가는 버스표가 발견됐다. 그리고 싸구려 담배인 아미 클럽(army club)이 나왔는데 이상하게도 담배갑 안에는 아미 클럽이 아닌 비싼 켄시타스(kensitas) 담배가 7개비 들어 있었다. 참고로 아미 클럽은 1961년 단종되었고, 켄시타스는 현재까지도 나오고 있는데, 두 담배 모두 영국에서 주로 판매되는 담배였다.
경찰은 언론을 통해 남성의 신원에 대한 제보를 받기로 했고, 12월 5일에 글래널그 인근의 한 호텔 직원이 그 남성은 10월경부터 호텔에 투숙하고 있던 남자 같다는 제보를 한다. 투숙했던 남자는 63세의 벌목공 로버트 월시로 당시 실종상태인 인물이었다. 그러나 로버트 월시와 방파제의 남성 시신은 일치하는 점이 없는 것으로[2] 밝혀졌다.
1949년 1월 14일, 애들레이드역 보관소에서 경찰은 이 남성의 여행 가방을 찾아낸다. 이 가방은 1948년 11월 30일 오전 11시 보관소에 맡겨진 것으로써 안에서는 빨간 체크 무늬의 가운과 빨간 슬리퍼,팬티,잠옷,면도기 등이 나왔고, 호주에서는 사용되지 않는 영국의 패션 브랜드인 바버(barbour)사의 상표가 새겨진 스레드카드[3]와 T. Keane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넥타이,[4] 그리고 엉뚱하게도 영국 6펜스 은화가 나왔고, 옷이 여러 벌 있는것과 대조적으로 양말은 여분이 없었던 데다가 연필과 사용하지 않은 편지지가 발견되었지만 정작 편지를 주고받은 흔적은 없어 의문을 증폭케 했다. 그리고 가방 안에서 발견된 물건들은 상당히 고급 제품들이 많았고 미국산 제품들이 많이 섞여 있었다.
경찰은 발견된 유류품들을 근거로 수색을 했지만 결국 이 남성이 애들레이드역에서 헨리 해변으로 가는 기차를 타려고 했으나 타지 않거나 타지 못했고, 대신 글레넬그로 가는 버스를 타고 가서 서머튼 해안에서 내렸다. 그리고 그 곳에서 고기 파이를 사 먹은 뒤 방파제에 기댄 자세로 사망했다는 것 말고는 알아내지 못한다.

4. 의문의 종이 쪽지, '''타맘 슈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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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피츠제럴드 영역판 루바이야트의 마지막 페이지.
경찰이 발견한 쪽지를 뜯어낸 책.
그런데 남성의 소지품을 면밀하게 조사하던 중 특이한 물건이 나왔다. 남성의 바지 주머니 속에서 발견된 시계줄에 감긴 종이 쪽지였는데, 쪽지에는"TAMÁM SHUD"라고 적혀 있었다.
이 말은 페르시아어로 "끝, 종결"이라는 의미였다. 조사 결과 페르시아의 유명한 수학자, 천문학자, 철학자인 오마르 하이얌의 시집 루바이야트에서 나온 단어로 드러났다. 그리고 쪽지는 에드워드 피츠제럴드가 1859년 영역한 루바이야트 초판본에서 오려낸 쪽지였다.

75: And when Thyself with shining Foot shall pass Among the Guests Star-scatter'd on the Grass, And in the joyous Errand reach the Spot Where I made one, turn down an empty Glass!

'''TAMÁM SHUD'''

- 오마르 하이얌의 <루바이야트> 中, 이는 해당 책의 마지막 페이지의 내용이다.

이 의문의 타만 슈드 쪽지가 발견된 지 몇 달 뒤, 애들레이드 경찰서에 한 남성이 찾아왔다. 놀랍게도 이 남성은 문제의 1859년판 루바이야트 영역본을 경찰에게 보여주었다. 조사 결과 이 책에서 타맘 슈드 쪽지를 뜯어냈다는 게 밝혀졌다.
루바이야트를 들고 온 남성의 진술에 의하면 자신과 처남이 글레넬그에 있었는데 잠시 차 문을 열어 놓고 나갔다가 돌아와보니 차 안에 이 루바이야트 초판본이 있었다는 것이다. 남성은 자신의 차에 루바이야트 초판본이 들어있던 시점이 서머튼 해안에서 남성의 시신이 발견되기 1주일에서 2주일 전이라고 진술했다. 경찰은 해당 책을 면밀하게 조사했고 책의 뒷장에서 암호문을 찾아낸다. 암호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원본은 여기서 볼 수 있다.
암호문이 적힌 페이지.

WRGOABABD

WTBIMPANETP

MLIABOAIAQC

ITTMTSAMSTGAB

경찰은 이 암호문을 해독하려 애썼고 오스트레일리아 국방부에 암호 해독을 요청하기까지 했으나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
그러나 암호문의 밑에 2줄의 숫자가 적혀 있었는데, 이 숫자들은 전화번호로 추정됐다. 첫 번째 줄의 숫자로 전화를 걸어본 결과 은행의 전화번호로 밝혀졌고 두 번째 줄의 전화번호는 제시카 톰슨(Jessica Thomson)이라는 간호사의 전화번호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하지만 해당 여성은 사건과 관련이 없다고 극구 부인했다.

5. 제시카 톰슨


하지만 이 제시카와 사건의 연관성이 없다고 보기엔 수상한 부분이 많았다. 우선 이 제시카가 사는 곳은 글레넬그로 그녀의 집은 남성의 시신이 발견된 서머튼 해안에서 북쪽으로 불과 400여m 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 게다가 그녀의 알리바이를 조사한 결과 남성이 해안에서 목격된 11월 30일경에 그녀는 집에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게다가 그녀의 이웃은 수상한 남자가 전화로 그녀에 대해 물었다는 진술을 하기도 했다. 경찰이 죽은 남성의 데스 마스크를 보여주자 그녀는 매우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로서 경찰은 제시카가 그 남자를 알고 있을 것이라 짐작하고 추궁한 끝에 결국 그녀에게서 진술을 받아냈다.
제시카에 의하면 그 데드마스크는 자신이 아는 알프레드 복살(Alfred Boxall)이라는 군인과 닮았고 자신이 루바이야트를 복살에게 선물했다는 진술을 했다. 경찰은 시신의 신원을 마침내 찾았다고 생각했으나 '''알프레드 복살은 멀쩡하게 살아있었다.''' 그녀가 복살에게 루바이야트를 선물한 건 맞았지만 복살은 그 루바이야트를 분실하지도 않았고 1859년 초판본이 아닌 1924년 영역판이었으며 페이지도 찢어진 곳 없이 멀쩡했다.
결국 경찰 수사는 벽에 부딪혔다. 제시카는 끝내 입을 다물었고 증거가 없는 이상 그녀를 더 추궁할 방법도 없어서 결국 경찰은 사건을 해결하지 못했다.

6. 장기 미제 사건으로 남다


결국 방파제의 남성은 1949년 6월 14일, 구세군 목사와 애들레이드 경찰들이 참여한 조촐한 장례식을 치른 뒤 애들레이드 웨스트 테라스 묘지에 "HERE LIES THE UNKNOWN MAN WHO WAS FOUND AT SOMERTON BEACH 1ST DEC 1948.(1948년 12월 1일 서머튼 해안에서 발견된 신원 미상의 남자 여기서 잠들다.)"라고 적힌 묘비만을 남기고 매장됐다.
남성이 묻힌 이후, 애들레이드역 건너편의 스트라스모어 호텔에서 이상한 사람이 21호실에 투숙했다는 진술이 나왔다. 이 사람이 체크아웃한 후 호텔 직원이 방을 청소했을 때 검은색 의료기구 케이스에 주사기가 담겨져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이 위 사건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한편, 사건 조사가 한창이던 1949년 6월 9일 서머튼 해변에서 20km 떨어진 지점에서 며칠 전 아버지와 함께 실종됐던 클리브 마그노손이란 남자아이가 아버지와 함께 발견되는 사건이 벌어진다. 남자아이는 사망한 상태였고, 아버지는 살아있었으나 매우 쇠약해진 상태에 정신이상 증세까지 보여 정신병동에 수용됐다. 이후 클리브 마그노손의 사인이 서머튼 해변의 남성과 같이 독으로 추정되지만 독극물은 발견되지 않은 심정지 사망으로 밝혀진다. 심지어 발견 당시의 상태도 방파제의 남성처럼 누운 자세라 두 사건의 연관성이 의심받았다. 아이의 어머니인 로만 마그노손 또한 이 사건이 서머튼 해변의 사건과 연관성이 있으며, 아들과 남편이 실종된 직후 누군가에게 협박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동시에 서머튼 해변의 남성이 남편의 직장 동료 카를 톰슨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아이의 어머니는 정신감정 결과 정신이상이 의심된다는 결과가 나왔고 증언은 기각됐다.
이외에도 1945년 6월 싱가포르 출신 유대인인 요셉 사울 하임 마샬[5]이 시드니 교외에서 살해된 채 발견된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 역시 사인이 독살이었고 그 판본과 동일한 루바이야트 시집을 소지하고 있던 걸로 확인됐다. 훗날 이 사건은 서머튼 사건과의 연관성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역시 확실한 연관성은 밝혀지지 않은 채 미제로 남았다.

7. 의문의 남성은 누구인가?


경찰은 의문의 남성에 대해 거짓말을 한 제시카를 의심했지만 끝내 증거가 없어 그녀를 풀어줄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사건의 미스테리를 추적한 이들에 의해서 제시카의 의문스러운 점들이 하나둘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제시카는 사건 당시 2살 된 아들과 단둘이 살고 있었는데 경찰 조사에선 자신이 기혼녀라고 진술했다. 그런데 정작 그녀가 결혼을 한 건 이듬해인 1950년으로 밝혀졌다. 게다가 그녀는 아들의 성을 재혼한 남편 성으로 바꾼 것도 드러났다.
그녀는 호주 언론들에게 많은 취재요청을 받았으나 끝끝내 취재를 거부하고 죽을 때까지 침묵을 지켰다. 그녀의 본명이 드러난 건 사건이 일어난 지 한참 지난 2002년에 이르러서였다. 이 때문에 그녀가 의문의 남성과 불륜관계에 있다가 살해한 게 아니냐는 추측이 나왔다. 그녀의 아들이 가진 유전적 특성이 살해된 남성의 유전적 특성과 유사한 부분이 있어서 더욱 의문을 증폭시켰다. 살해된 남성은 선천성 무치증을 앓고 있었고 귀의 구멍이 백인들 중에서도 1~2%만 나타나는 형태인 귀의 윗쪽 구멍이 아래쪽보다 더 큰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조사 결과 그녀의 아들도 이 특징들을 전부 갖고 있었다. 한편 제시카 톰슨의 아들인 로빈 톰슨은 2009년 사망하였는데, 이후 데릭 애버트 교수가 로빈 톰슨이 이 남성의 아들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법무부에 시신 발굴 허가를 내줄 것을 요청하였으나 거절당했다고 한다. 현재는 남성의 데스마스크에 남아있는 남성의 DNA를 채취해 조사중인 상태라고.
그런데 제시카 톰슨의 딸인 케이트 톰슨이 충격적인 주장을 펼쳤다. 케이트 톰슨의 주장에 의하면 어머니가 러시아어가 유창한 공산주의자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케이트는 살해된 의문의 남성이 공산주의 운동가이거나 소련스파이일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케이트는 어머니가 그 남자에 대해 경찰보다 더 높은 사람이라고 말하는 걸 들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사건에 엉뚱하게 연루되었던 알프레드 복살도 1977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죽은 남성은 소련 또는 외국의 스파이일 것이라는 추측을 했다. 남자의 시신이 발견된 서머튼 해안에는 미군기지가 있었고 죽은 남성의 신원을 알 수 있는 아무런 단서도 없다는 점, 루바이야트 초판본에서 발견된 의문의 암호문 등도 그가 소련의 스파이였지만 모종의 이유로 제거된 게 아니냐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제시되기도 했다. 하지만 스파이의 시체를 왜 굳이 사람들의 눈에 잘 띄는 해변에 두었는지는 여전한 의문으로 남아있다.
이런 점들을 종합해서 사건에 대해 대략적으로 추정해 보면,

'''1.''' 남자는 공산주의자이거나 소련의 스파이로 애들레이드를 오가면서 스파이 활동을 하고 있었다.

'''2.''' 제시카 톰슨은 남자의 조력자로 역시 스파이 활동에 가담했다.

'''3.''' 무슨 이유에서인지 이 남자는 루바이야트 초판본을 통해 암호문과 "타맘 슈드"라는 메시지를 받았다. 이는 이 남자에 대한 경고로 추정된다.

'''4.''' 경고대로 남성은 제거됐다.

'''5.''' 제시카 톰슨은 남성의 살해에 가담했거나 혹은 남성의 죽음에 대한 전모를 알고 있었지만 죽을 때까지 침묵했다.

물론, 이 모든 건 추정에 불과하며 뚜렷한 증거도 없다.
결국, 이 남성의 정체에 대한 미스테리는 지금까지도 풀리지 않고 있다. 설령 풀려고 해도 이 사건의 증거들은 알 수 없는 이유로 파기되어 버렸다. 의문의 루바이야트 초판본은 1950년에 사라져버렸고 남자의 갈색 여행가방과 소지품들도 더 오래 보관할 가치가 없다는 이유로 1986년에 파기된 것이다. 따라서 남성의 정체를 알 방법은 지금에 와선 사라져 버린 것이다.
다만, 2011년에 서머턴 해변의 남성의 신원에 대해 신빙성 있는 주장이 나왔는데, 1차대전 당시 수병으로 참전했고 미국 해군에서 복무했던 영국인 호레이스 찰스 레이놀드(Horace Charles Reynolds)라는 인물이 방파제의 남성과 굉장히 닮았다는 주장이 나왔다. 실제로 사진을 비교해 본 결과 두 사람의 외모도 상당히 닮았고 특이한 귀의 모양마저도 닮아있었다. 방파제의 남성은 영국계로 추정되었는데 레이놀드 역시 영국인이었다. 그리고 1918년 2월 25일에 발급한 그의 수병 신분증엔 당시 만 18세라는 표기가 되어있다. 그렇다면 이 사건이 일어난 1948년 12월의 레이놀드는 만 48세가 되는데[6] 이 사건에서 죽은 남자의 연령대도 40대로 추정되므로 나이도 일치한다. 그러나 레이놀드는 1953년에 사망했다는 사망신고서가 발견되면서 방파제의 남성과 연관이 없는 것으로 밝혀진다.

8. 암호문의 의미


2004년에 퇴직한 형사 게리 펠터스(Gerry Feltus)가 암호문의 일부를 풀었다는 주장도 나왔다. 그가 풀었다는 구절은 바로 마지막 구절인 "ITTMTSAMSTGAB"라는 구절이다. 그는 이 구절에 적힌 글자들은 모두 각 단어의 첫 글자를 딴 이니셜로 만들어진 암호문이라고 주장했다. 그가 내놓은 "'''ITTMTSAMS'''TGAB"의 의미는 "'''I'''t's '''T'''ime '''T'''o '''M'''ove '''T'''o '''S'''outh '''A'''ustralia '''M'''osley '''S'''treet(남부 호주 모슬리 스트리트로 이동할 때다)"였다. 모슬리 스트리트는 이 사건과 깊은 관련이 있는 제시카 톰슨이 살았던 곳이다.

9. 기타 사항


비슷한 사례로 이스다렌의 여인 사건과 피터 버그만 사건이 있다.

10. 관련 문서



[1] 일반적으로 혐오스러울 정도의 사진은 아니다. 머리가 헝클어지고 눈을 가늘게 떠서 약간 검은 눈처럼 보이는 듬직해 보이는 남성 얼굴로 자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2] 전술했다시피 방파제의 남성은 40대 정도로 추정됐고 신체 노동의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3] 실이 감겨진 종이[4] 가방 안의 모든 유류품들 역시 남자가 입고 있던 옷처럼 모든 상표가 제거되어 있었지만, 유일하게 이 넥타이의 글자만큼은 제거되지 않았다고 한다. 경찰은 이 상표를 제거한 사람이 이 글자는 죽은 남자와는 관련이 없었기에 남겨두었거나, 의류를 훼손시키지 않고는 제거할 수 없어서 남겨둔 것으로 보았다.[5] 싱가포르의 정치인이자 싱가포르 노동당의 창시자 데이비드 사울 마샬의 동생이다. 물론 당시엔 이 정당은 창립되지 않았고 형인 데이비드는 일본군의 포로였던 상태였지만.[6] 레이놀드는 1900년 2월 8일 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