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고현 남부 지진

 



'''平成7年兵庫県南部地震
헤이세이 7년 효고현 남부 지진
'''
[image]
'''발생'''
(GMT+9)

1995년 1월 17일 오전 5시 46분 52초
'''진앙'''
일본 효고현 아와지시마 북부
(현 아와지시)
'''진원 깊이'''
16km
'''규모'''
'''7.3'''[JMA]
'''6.9'''[USGS]
'''최대 진도'''
일본 기준 '''7'''
효고현 고베시, 아시야시, 니시노미야시, 다카라즈카시,
츠나군 호쿠단정(초) 이치노미야정(초), 츠나정(초)
(현재 정단위의 지역은 전부 통합되어 아와지시에 합병.)
'''쓰나미경보/주의보'''
미발령
'''사상자'''
'''사망자''' 6,437명
'''부상자''' 43,792명
'''재산 피해'''
약 1400억 달러
[image]

[image]

[image]
1. 개요
2. 피해
2.1. 전통주택과 신축주택
3. 지진 발생 후
4. 현재
5. 기타
6. 창작물 관련
7.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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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image]
당시 NHK뉴스7에 방영되었던 진도 정보

지진 당일 NHK 뉴스 보도[1]

아사히 방송에 방영되었던 1월 17일 고베 및 주변지역의 지진피해 상황.[2]
1995년 1월 17일 일본 긴키 지방 일대에서 일어난 대지진.
일본 기상청에서 공식적으로 부르는 명칭은 <헤이세이 7년 효고현 남부 지진(平成7年兵庫県南部地震)>이나 언론에서는 "한신-아와지 대진재(阪神・淡路大震災)"라는 표현을 더 많이 쓴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베 대지진'''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2. 피해



어느 개인이 지진 이후 캠코더로 직접 현장을 촬영한 동영상
고베뿐만 아니라 오사카[3]교토까지도 피해가 번졌기 때문에 '''한신 아와지 대지진'''이라고도 하며, 일본 지진 사상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두 번째로 강력했던 규모 7.3, 진도 7[4]의 대지진이자 사망자 6,300여 명, 총 피해액 1,970억 달러[5]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 만큼 큰 피해를 입힌 지진 중 하나이다. 이 지진으로 인해 잘 나가던 항구 고베는[6] 일본 지역 중에서도 최고의 부채를 안고 가는 도시로 몰락하고 말았다.
더욱 놀라운 것은, 지진 이후 늑장 대응 문제가 불거졌다고는 하더라도, 일본은 애초에 지진이 빈번한 나라라서 다른 개발도상국들과는 달리 나름대로 지진에 대한 철저한 대비를 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인명피해를 입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이렇게 된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위아래로 흔들리는 직하형 지진[7] 특성상 진앙지가 도심에서 비교적 가까웠다는 점이다. 지진이 일어나기 전날 밤 몇 차례의 미진이 관측되기는 했지만 예측하지는 못했는데, 진앙지가 고베 남서쪽에 있는 아와지 섬의 활성 단층이었고, 아와지 섬의 단층과 고베의 단층이 이어져 있다는 사실이 그 당시에는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 때문에 아와지 섬에서 일어난 지진이 단층을 타고 고베로 전달되어 대지진으로 이어진 것이다. 거기다 고베는 400년 동안 지진이 없었던 곳이었다.[8] 내진기준이 강화되기 전에 지어진 건축물들이 피해를 많이 입었다.
또한 한신고속도로 고가가 옆으로 쓰러진 이유는 내진기준이 강화되기 전의 구조물이었기 때문이다. 한신고속도로의 고베 구간은 1969년 8월 1일에 완공되었는데, 이 때의 내진설계 기준은 고베 대지진과 같은 큰 규모의 지진을 견디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 때문에 고가도로를 지탱하는 기둥의 철근이 지면에서 1.5m높이까지만 올라와 있었고, 지진 때 이 철근이 끝나는 부분이 부러지듯이 꺾여서 무너진 것이다.
당시 간사이 지방은 우리 동포만 35만 명에 달할 정도로 한국인 수가 많은 지역이었다. 특히 고베에는 8만 7천 명의 동포가 살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한국인 피해자도 많아 유학생, 재일동포 등이 100여 명 이상 사망하고 1,000여명이 부상당해 한국 입장에서도 큰 사건 중 하나였고 따라서 뉴스와 신문에서 상세히 보도하였다.
당시 방송 보도를 보려면 KBSMBC 방송분을 참고할 것. MBC의 경우 해당 보도에는 안 나오지만, 당시 주말 MBC 뉴스데스크 앵커였던 정동영이 고베 현지로 급파되어 소식을 전했고, 당시 도쿄 특파원이 훗날 MBC 사장이 되는 김재철이다. KBS 측에선 이일화 도쿄특파원[9]이 현지 소식을 전했다.

2.1. 전통주택과 신축주택


[image]
사진 출처: 박문재, 「목조건축은 지진에 가장 안전한 건축물」
사건 당시 사망자의 80%인 5,000여 명이 전통 목조주택에 깔려 사망했다. 여기에 지진 발생 후 정전 복구 과정에서 발생한 화재로 인명피해가 더욱 늘어났는데, 어느 정도였나 하면 타죽은 시체가 많아서 한 보따리에 60여 명의 유골이 수습될 정도.
그런데 전통방식으로 지은 노후 목조주택과 달리 새로 지은 미국식 목조주택이나 복층 철근 콘크리트 건물 등은 무사한 등 피해양상이 대조적이었다. 안국진이 펴낸 <일본 목조주택>의 139쪽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 1990년대 <목수 부족, 고베 지진 이후 목조주택 불신>

1995년에 발생한 한신 고베 대지진 직후, 재래목조주택의 붕괴로 인명 피해가 많았다는 것을 미디어를 통해 「지진에 약했던 목조주택, 강한, 프리패브, 투바이포 주택」으로 보도되었다. 또한 일부 프리패브나 2x4주택메이커회사는 미디어, 광고전단, 책의 출판을 통해 주택메이커의 PR과 아울러 목수의 직감에 의지하여 건립되고 있는 재래목조주택의 시공을 비난했다. 이로 인해 재래목조주택의 불신이 확대되었으며, 재래목조주택 대부분을 건립하고 있는 공무점의 수주에도 큰 타격을 입혔다.

이같은 문제점은 일본어 위키피디아에서도 지적한다. 이를 크게 나누면 첫째 측부의 보강자재가 별도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10], 둘째 그 연결부위를 보강해주는 연결철물이 부족하다는 점, 셋째 하중에 어느정도 버틸 수 있는지 구조적으로 치밀하게 계산되지 못한 점, 넷째 그런데도 지붕에 흙과 기와를 올려 하중이 높다는 점, 다섯째, 지붕의 흙이나 벽체의 흙벽미장이 목재뼈대에 스며들어 목재의 부식을 유도한다는 점 등이다. 흙벽구조가 부서지면서 파편이 튀어 다치는 것은 덤이다.
지진당시에는 철근 콘크리트 건축의 경우 철근과 콘크리트가 모두 하나로 연결된 일체형 구조였기 때문에 건물이 분해되거나 붕괴되어 사람이 압사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고, 이는 부재간 연결철물의 사용이 많았던 미국식 목조주택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못이나 철물을 거의 사용하지않고 장부에 홈을 파서 짜맞춤 방식으로 구성된 전통가옥의 경우 큰 지진에 못이나 철물없이 연결된 부재가 분리되어 통째로 무너지거나 압사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같은 전통방식이더라도 일본 건축기준법이 개정된 1981~1982년 이후 지어진 주택은 피해가 적고, 그 전에 지어진 주택은 피해가 많았다. 개정된 건축기준법의 내진기준이 까다로웠기 때문이다. 문제는 법률불소급의 원칙에 따라 하나의 법이 개정 혹은 시행될 때에는 시행 이후부터 효력을 가지므로, 법 시행 전에 지어진 건축물들, 특히 수 백년이 넘은 에도 시대건물들까지 법으로 규제할 수가 없었다.
어쨌든 이 사건을 계기로 내진설계나 건축기준이 더욱 강화되었고, 철저하게 구조적으로 안전성을 확인하면서 설계가 이루어졌으며, 목재간 연결부위 철물 사용빈도가 극도로 높아지고#1#2, 지붕에 기와시공을 위한 흙미장이 폐기되고, 방수지를 이용한 건식 시공이 대세를 이루었다. 게다가 전통주택 붕괴의 주요원인으로 기와와 지붕위의 흙미장의 무게가 많이 나간다는 점이 유력하게 지적되면서 고베지역만은 다른지역과 달리 지붕에 기와를 얹는 일이 극도로 줄어들었다.

3. 지진 발생 후


세계 구호 단체들도 많은 지원을 아끼지 않았으며, 한국 정부와 민간 단체는 공식적으로 막대한 지원을 하였으며 김영삼 대통령이 당시 일본 총리 무라야마 도미이치에게 위로전을 보냈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는 해당 재난을 추모하는 뜻에서 지진이 발생한 다음날인 1월 18일 수요일에 '수요집회'를 중단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일본이 타격을 입자 한국을 비롯한 몇몇 나라는 일본이 이 재해로 뒤쳐진 상황에서 반대급부로 이득을 보기도 했으며, 이를 비꼬는 뜻에서 조문을 하며 뒤로는 웃고 있다든지 하는 만평도 있었다. 사실 1980년대 일본 거품경제가 꺼지면서 비틀대던 일본 경제에 최후의 일격을 날린 것이 이 고베 대지진이라는 견해도 많다.[11]
나카무라 에이치 일본 참의원은 사건 이후 일어난 화재가 재일 한국인의 방화일 수도 있다고 망언해 물의를 빚기도 했으며, 이로 인해 민단과 한국특파원 회견에까지 나가 사죄를 표해야 했다. (KBS, MBC) 일본에서는 이런 일이 잦은데 구마모토 지진 때도 관동대학살 때처럼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탔다"는 소문이 다시 돌기도 했다.[12]
고베 대지진 직후 닛케이 지수는 급락했는데 여기에 연동된 닛케이225 지수 선물 매수포지션에 옵션 양매도를 취한 닉 리슨도 이 대지진으로 인해 망하고 230년 역사를 지닌 베어링 은행을 파산시킨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이 대지진이 엔화값을 급등시켰는데 국내외 투자자들이 보험료 지급하기 위한 엔화 매입과 재건작업을 위해서 미국 달러에 대해 20% 급등, 즉 80엔~70엔대로 진입이후 일본 정부가 개입하여 서서히 장기적으로 엔화 약세로 진입하였다.
이 지진으로 고베항의 기반시설이 무너지면서 환적하물들이 대거 이탈하여 부산항이 그 역할을 이어받았다. [13]
이 지진 이후로 소니가 비상충전기능이 있는 라디오인 ICF-B200[14](2016년 기준 ICF-B09의 전신격)을 1997년에 발매했다는 후문이 있다.

4.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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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고베 대지진 당시 피해 상태를 그대로 남겨놓은 메모리얼 파크.
고베 대지진이 일어난 이후 재산을 잃은 주민들은 그 이후 몇 년 동안 수많은 정신적 고통을 받았으며, 지금까지도 피해 보상금을 완전히 받지 못한 주민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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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찬가지로 고베에 인간과 방재미래센터[15][16]라는 건물도 있는데 당시 피해 상황을 보려면 위의 장소보다는 이곳이 좀 볼 만하다. 근처에 나다역, 이와야역, 한신 카스나노미치역이 있지만 거리는 조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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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지진의 규모를 실제로 체험할 수 있는 체험관과 지진 이후 폐허가 된 고베 시내를 재현한 것이 있으며, 지진 당시 상황과 복구 과정 등을 20여 분의 다큐멘터리로 상영하고 있다. 다큐의 경우 자막은 자국어(일본어)지만 한국어 음성을 지원한다.[17]
여담으로 지진에서 살아남기를 집필한 작가와 만화를 그린 문정후가 이 작품을 만들기 위해 이곳에 들른 적이 있다. 실제로 해당 책에도 이 지진 당시 촬영한 사진도 있다.

5. 기타


  • 이 일을 겪고 재건을 하기 위해 고베의 상가에서 철인 28호 실물크기 로봇을 세워 화제가 되기도 했다.[18]
  • 당시 고베를 연고지로 삼았던 일본프로야구오릭스 블루웨이브(現 오릭스 버팔로즈)는, 이해의 대지진으로 인해 상처입은 고베 시민들을 위로한다는 명목으로 팀워크를 튼튼하게 다짐과 동시에 힘내라 고베(がんばろうKOBE)라는 슬로건을 내세우며 1995년 시즌을 맞이했고, 그 결과 이 해 퍼시픽리그 우승을 달성함[19][20]에 이어 이듬해엔 리그 연패에 일본시리즈 우승까지 이뤄낸다.
  • 영국의 200년 전통의 베어링 은행이 파산하고 단돈 1달러에 팔려 나가게 된 결정타를 날린 사건이 바로 이 대지진. 그 사건의 주범인 닉 리슨옵션 항목 참조바람.
  •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이 참사에 충격을 받고 소설집 '신의 아이들은 모두 춤춘다'를 집필했다. 개인주의적 경향이 강하던 초기 작풍이 사회적 문제에 중점을 둔 현재의 작풍으로 변한 데도 이 사건이 크게 작용했다고.
  • 참고로 1923년의 관동대지진과 1995년의 고베 대지진 둘 다 겪으신 할머니가 계신다.
  • 규모가 차이가 있기는 해도 비슷한 직하형 지진이 지진에 대한 방비가 전혀 없는 곳에서 일어났을 때 어떤 헬게이트가 열리는지 여기에서 확인할 수 있다. 당해 본 사람들이 안다고, 아이티 지진 당시, 일본인들이 상당히 안타깝게 봤다고 한다.
  • M7.2의 지진은 지진이 자주 일어난다는 일본에서도 전례가 거의 없는 격진이었기 때문에, 이 지진을 능가하는 지진은 찾아오지 않을 거라 예상하는 전문가들도 많았다. 그러나 16년 뒤인 2011년에 이 지진을 능가하는 진도 7, 규모 9.0의 도호쿠 대지진이 일본을 강타하게 된다. 지진 피해의 성격은 고베 때와는 다른데, 고베 대지진은 지진이 직접 도시를 강타해서 피해가 생겼다면, 도호쿠 대지진은 지진으로 인한 2차 천재지변인 쓰나미로 피해가 생겼다는 차이점이 있다. 심지어 이 쓰나미로 인해 원자력 발전소에 문제가 생겨 방사능이 뿜어져 나오는 바람에 아예 비교 자체가 불가능한 수준이 되었다.
  • 2016년에는 비슷한 규모의 구마모토 대지진이 규슈 지역을 강타했다. 그러나 이 지진과 도호쿠 대지진을 당한 이후 대비를 더욱 철저하게 했는지 피해는 고베 대지진보다 적었다.
  • 한큐 전철 고베산노미야역도 이 지진으로 인해 이 역에 딸려있는 상업시설인 고베한큐빌딩이 심각한 피해를 입어 1층 빼고 철거당했다.
  • 코나미의 명작 메탈기어 솔리드는 원래 3DO 플랫폼에서 메탈기어 3라는 이름으로 출시될 예정이었다.[21]하지만 이를 준비하다가 이 지진으로 인해 코나미 본사가 큰 피해를 보게 되었고, 결국 발매일을 늦췄다고 한다.
  • 칸사이 지방에 위치한 다른 게임회사들도 큰 피해를 입었다. 닌텐도, SNK, 캡콤 등의 회사들이 대표적으로, 고베에서 다소 떨어져 있는 교토에 위치한 닌텐도는 울트라 64의 발매를 한참 미뤄야만 했고[22] 그 과정에서 별의 커비와 메트로이드, 파이어 엠블렘 시리즈의 N64 버전은 개발이 중단되었고, N64 버전 마더 3는 오랜 기간 베이퍼웨어로 남아있었다가 훗날 게임보이 어드밴스로 간신히 발매하기에 이르렀으며, 슈퍼 마리오 64에서는 루이지가 삭제된 채 발매되기도 했다. SNK용호의 권 외전KOF96, 사무라이 스피리츠 아마쿠사 강림의 DB가 유실되어 졸속으로 세 게임을 다시 만들어야만 했고, 그러다 보니 이 시기의 SNK 게임들은 유독 더미 데이터와 버그가 많기로 악평이 높다. 또한 하이퍼 네오지오 64 기판의 개발 진행이 더디어진 것도 이 지진의 영향이 컸다고 한다. 캡콤의 경우 스트리트 파이터 3의 그래픽을 원래 EX와 같이 3D로 제작할 예정이었으나 SNK의 사례와 비슷하게 지진으로 인한 3D 데이터 유실로 인해 2D 게임으로 다시 만들게 되었다고 한다.
  • 고베에 근거를 두고 있는 일본 최대의 야쿠자 조직 야마구치구미가 조직원들을 풀어서 구호를 도왔다.
  • 지진이 일어나기 직전에 조지 소로스가 엔저에 배팅했다가, 멕시코 도산 위기와 고베대지진 때문에 미국이 저금리 정책으로 선회하고, 재해복구를 위해 일본으로 다시 돈이 쏠리면서 손해를 봤었다.

6. 창작물 관련


기무라 타쿠야 주연의 드라마 화려한 일족은 고베를 거점으로 한 기업가의 이야기로 당연히 고베 지역을 무대로 하고 있는데 한신 아와지 대지진으로 인한 피해로 인해 상당수 당시 건축물이 손상당한 까닭에 중국에서 로케이션 촬영했다고 한다.
아즈망가 대왕오사카는 이 지진의 피해자라는 추측이 있다.
투하트호시나 토모코의 과거에도 관련이 있다.
알바 뛰는 마왕님!의 스즈키 리카는 이 지진을 겪었다. 중소기업 공장이 모여있는, 피해가 큰 지역에 살았기 때문에 그날을 잊을 수 없다고 한다. 도쿄에서 만난 사람들이 전부 고향이 고베인 것만 알면 그것밖에 화제가 없는 건가 싶을 정도로 고베 대지진에 관한 이야기밖에 하지 않았기에 그게 귀찮아서 사투리를 표준어로 교정했다고. 학교가 다시 문을 열었을 때는 같은 반 아이 둘이 없어졌다고 한다. 그래서 태연한 얼굴로 "지진 어땠어?"라고 묻는 놈들에겐 짜증이 난다고 한다. 그런 반면 유사 에미는 본인이 고베 사람인 걸 알고도 지진에 관해 묻지 않았기에 정말 좋다고. 이 내용은 2011년 2월 10일 발매된 1권에서 나온 것인데, 공교롭게도 한 달 뒤 도호쿠 대지진이 일어나버렸다...[23]
기시 유스케의 데뷔작인 13번째 인격 ISOLA의 시간대가 바로 이 사건이 일어난 직후다. 13인격의 여고생인 치히로도 그 사건의 피해자.
그러나 죄인은 용과 춤춘다의 작가인 아사이 라보도 당시 끔찍한 피해를 겪었다고 하며, 작가 본인의 어둡디 어두운 작품관이 이때 비롯된 듯 하다.
반딧불이의 묘에 등장했던 니테코 연못 또한 이 지진으로 훼손되어 현재 모습은 지진 이전과 많이 달라졌다.

게임과 관련해서, KOF 96은 미완성 부분이 많으며 데이터상에만 있는 필살기들이 상당히 많다. 이를 두고 고베대지진 때문이라는 추측도 있었지만 루머로 밝혀졌다.
이 일로 많은 사람들이 우울해지고 웃음을 잃게 되어 웃음을 되찾자는 의미에서 푸콘 가족을 제작하였다.[24]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 환야에서도 초반부에 이 사건이 나온다.
히라사와 스스무의 음악 'サイレン *Siren*'은 이 사건을 위로하는 차원에서 만들어졌다고 한다. 들어보기
내가 살인범이다 일본판 영화에서 형사의 여동생과 남자친구가 고배 대지진의 생존자이다. 여동생은 간호사였는데, 지진이 발생하자 무서워서 식탁 아래[25]에서 나오지 못했고, 선배 간호사들처럼 위험을 무릅쓰고 사상자들의 구조에 나서지 못한 자신을 책망한다.
EZ2DJ의 수록곡인 Quake in Kyoto도 고베 대지진을 테마로 한 것으로 보이는데 상술했다시피 이 지진이 교토까지도 영향을 끼쳐서 이런 제목을 지었다는 추측이 있다.
우자키 양은 놀고 싶어!의 작가인 타케는 고베 대지진의 생존자라고 한다. 당시 잔해더미 밑에 깔려있다가 구호단체에 도움받은 것에 감사를 느껴 일본 적십자사와 콜라보를 하기도.
스즈미야 하루히 시리즈의 작가 타니가와 나가루효고현 니시노미야시 출신으로 일본쪽 문학비평에서는 이 당시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 폐쇄공간과 하루히의 심리묘사가 아닌가 하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도호쿠 대지진에 비해서 고베 대지진은 상대적으로 효고현 내부의 재해로 인식된 경향이 강했는데, 특히 오사카는 지진 당일 오후 바로 시가지 기능이 복구된 것을 두고 분노한 효고현민이 많았다고. 작중 스즈미야 하루히는 군중 속의 고독감과 허무함을 느끼고 그걸 해소하기 위해 이상현상을 찾는 묘사가 많은데, 하루히가 효고현민을 대표한 것이 아닌가 하는 분석이다.

7. 관련 문서



[JMA] 일본기상청[USGS] 미국 지질조사국[1] 영상의 1분 0초~1분 19초 지점, 7분 45초~8분 40초 지점에 NHK 오사카 방송국 뉴스 스튜디오에 여진이 강타하는 장면도 나와있다.[2] 영상 원출처가 아사히방송인데, 2020년 1월 17일 고베 대지진 25주년을 맞아 TV 아사히 공식 뉴스채널에 아사히 방송이 영상을 제공했다.[3] 오사카에도 사상자가 발생했다.[4] 1949년에 진도 7이 새로 설정된 이후, 사상 처음으로 기록된 격진이다.[5] 1995년 기준, 2020년 환율 적용시 '''3,298억 달러'''로 동일본 대지진 다음으로 가장 피해액이 높은 자연재해다. #[6] 이 시기까지 고베는 홍콩과 함께 동아시아의 양대 허브항으로 군림하고 있었다. 그러나 시설 포화와 이용료 상승의 와중에 터진 대지진으로 고베항은 엄청난 타격을 입고 허브항의 지위를 부산에 넘겨주고 만다.[7] 판과 판끼리의 충돌 때문이 아닌, 활성단층을 따라 일어나는 지진. 일본의 경우 판이 위치한 곳은 도심과 먼 바다이다(단층은 내륙). 그리고 진원지가 지표면으로부터 20km 미만의 얕은 곳에 위치한다.[8] 아무리 지진이 잦은 일본일지라도 지역별로 지진 빈도가 크게 다르다. 예를 들면 도쿄에 사는 사람은 일주일에 한 두번 꼴로 경미한 지진을 느끼며 살지만 오사카에 사는 사람은 일년에 한 번 지진을 겪을까 말까이다. 당장 수도직하지진 문서를 보면 100년 전후로 규모 7과 8짜리가 번갈아가며 간토를 뒤흔들지만 오사카의 경우 2018년의 규모 5.6의 지진이 400여년만에 발생한 최대 규모 지진이라고 한다. 이는 도쿄와 오사카의 판 구조가 다르기 때문이다. '''당장 두 도시는 위치한 판이 다르다!''' 정리하자면 일본은 전국이 지진 다발지대이자 지진 위험지대이지만 지역마다도 그 위험성이 다르다는 것이다.[9] 훗날 KBS창원방송총국장과 보도본부장을 지냄.[10] 같은 목조주택의 팀버프레임에 브레이스가 존재하고 경량목 구조에 합판이 그역할을 대신한다.[11] 단 일본 경제는 1995년-96년 안정적으로 성장하며 불황에서 회복할 조짐이 보였다. 그러나 1997년 4월 소비세 인상과 아시아 외환위기의 여파로 잃어버린 10년이 확정되고 말았다.[12] 악플에 가깝다고 보는 것이 가깝다. 범인도 사회 부적응층에, 우물을 식수원으로 사용하는 세대는 거의 전무할 정도이기 때문이다.[13] 중국 항구들의 물동량 취급이 급성장하면서 순위는 4~5위로 내려왔다.[14] FM/TV 76.0 ~ 90.0MHz/1 ~ 3CH(90 ~ 108MHz), MW 530 ~ 1602kHz 다이얼 방식 튜닝[15] 人と防災未来センター[16] 정식명칭은 "한신 • 아와지 대지진 기념 인간과 방재미래센터(阪神・淡路大震災記念 人と防災未来センター)"이다.[17] 요청하면 음성가이드 기기를 따로 갖다준다.[18] 참고로 고베는 철인 28호의 작가 요코야마 미츠테루의 고향이다.[19] 전신이었던 니시노미야 연고의 한큐 브레이브스가 마지막으로 우승을 달성한 1984년 이래 11년 만의 일이었다.[20] 아쉽게도 일본시리즈에선 야쿠르트 스왈로즈에게 패배했다.[21] 코지마 히데오폴리스너츠 이식에 이어서 메탈기어 시리즈도 3DO로 이식하려고 했었고, 프로모션 영상까지 만들어 둔 상태였다.[22] 이 과정에서 닌텐도는 세가 새턴플레이스테이션에게 가정용 게임기 시장을 무려 2년이나 선점당해 의도치 않은 공백기를 가져야만 했다.[23] 도호쿠 대지진과 관련하여, 해당 소설의 작가가 후기에서 해당 소재를 다루지 않겠다고 한 바 있다. 지진이라는 것이 주요하게 언급되는 내용 중 하나였으나, 도호쿠 대지진이 워낙에 큰 사건이었던데다 너무 최근의 사건이었던지라...[24] 이후 16년 뒤 일어난 지진으로 인해 똑같은 상황이 벌어지면서 웃음을 되찾자는 의미에서 그 다음 해에 스마일 프리큐어!가 만들어지면서 되풀이되었다.[25] 실제 지진 대피법 중의 하나로 책상 아래로 들어가서 낙하물을 방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