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누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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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초(楚)나라의 명재상. 투백비(鬪伯比)의 아들. 성득신의 형. 자는 자문(子文).[1] 초성왕(楚成王) 대에 영윤(令尹)[2] 을 지냈는데, 초 성왕 대의 초나라의 전성기는 바로 투누오도의 재주가 큰 보탬이 되었다. 쉽게 말하면, 초 성왕의 관중(管仲)이라 할 수 있다.
2. 생애
2.1. 비범한 출생
모년[3] 5월 5일 초나라 주위의 소국인 운(鄖)나라 여자와 투백비가 사통하여, 그를 낳았다. 투백비는 투누오도를 버렸는데, 투누오도는 호랑이의 젖을 먹으며 자랐다고 한다. 이에 투백비는 투누오도를 기이하게 여기고 그를 길렀다고 한다. 그래서 이름이 투누오도가 되었다. 穀은 초나라에서는 㝅(젖 누)와 통하니 누로 읽으며, 於는 사람 이름으로 쓸 때는 어가 아닌 오로 읽고, 菟는 호랑이라는 뜻이니 도라고 읽는다. 그래서 투곡어도 혹은 투곡어토가 아니라 투누오도라고 읽는 것이다.
2.2. 그 뒤의 생애
초성왕 초기에 자윤이 반란을 일으켜 투반을 죽였다.
초 성왕 8년(기원전 664년) 초성왕이 자윤을 물리친 공을 기려 영윤으로 봉했다. 그리하여 초나라의 국력이 커져 국가가 안정되고 중원의 패권을 노리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초 성왕 17년(기원전 655년) 현(弦)나라, 초 성왕 24년(기원전 648년) 황(黃)나라, 초 성왕 25년(기원전 647년) 영나라를 멸하고 채나라, 수나라, 서나라, 강나라를 압박해 남방의 패자가 되었다. 그리고 그가 늙어 성득신을 영윤으로 추천하여 은퇴했다고 한다.
그리고 투월초의 사악함을 일찍이 알아보고 투씨 가문의 멸망의 원인이 될거라고 했는데, 그 이유는 늑대와 같은 마음을 지녔기 때문이라고 한다.
[1] 그리하여 투자문이라고도 불리며, 열국지에서 초성왕(楚成王)이 이름 대신 자로 부르라고 할 때부터 자문이라고만 나온다.[2] 초나라의 상국에 해당하는 벼슬이다.[3] 투누오도가 언제 태어났는지 알 수 없어서 이렇게 표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