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월초

 



'''투월초
鬪越椒
'''

'''최종직위'''
영윤(令尹)
''''''
(羋)
''''''
(鬬)
''''''
(椒)
''''''
자월(子越)
'''아버지'''
투량(鬪良)
'''숙부'''
투누오도(鬪穀於菟)
'''생몰 기간'''
음력
기원전 ?년 ~기원전 605년
1. 소개
2. 생애
2.1. 반항아의 탄생
2.2. 초 목왕 대
2.3. 최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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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본명은 투초(鬪椒)이나 흔히 투월초로 알려져 있다. 자는 자월(子越).[1] 춘추시대 초(楚)나라의 영윤(令尹).[2] 초나라의 명재상 투누오도(鬪穀於菟)의 조카.

2. 생애



2.1. 반항아의 탄생


그가 언제 태어났는지는 알 길이 없으나 그가 태어난 시기에 곰과 호랑이 같은 외모에 표범과 승냥이의 목소리라 투누오도가 투월초를 죽이지 않으면 투씨 가문을 멸망시킨다고 했으나[3][4] 투월초의 아버지 투량(鬪良)은 듣지 않았다.

2.2. 초 목왕 대


그는 초목왕(楚穆王)이 초성왕(楚成王)을 죽이고 왕이 되는데 간여했다고 전해진다.
초 목왕 3년(기원전 611년), 용나라를 칠 때 참여해 용나라를 멸망시켰다.[5]

2.3. 최후


초장왕 9년(기원전 605년), 초장왕(楚莊王)이 육혼 전투를 벌일 때 투씨와 위(蔿)씨[6]가 다투었다. 위가가 영윤 투발을 살해하자 투월초는 그를 또 죽였다. 그리고 영윤이 된 투월초는 초문왕(楚文王), 초 성왕, 초 목왕의 자손을 인질로 삼아 반란을 일으켰는데, 초 장왕은 출정하고 회군 중이었음에도 당황하지 않고, 초나라의 왕가에 전해지는 청동화살 중 2개를 쏘고 1발만 남았다고 하며 병사들을 안심 시켰다. 그리고 고호 땅에서 전투를 벌였는데, 당시 신인 장수에 불과했던 양유기(養由基)의 화살에 맞아 죽었다. 그 일로 투씨 집안은 모두 죽임을 당했다. 투극황 만이 달아나지 않고 오히려 자수하여[7], 살아남았다. 그리고 이름을 투생(鬪生)이라고 바꾼다.[8][9] 하지만 투씨 가문은 나중에 초소왕이 오나라에 패해 도망갈 때, 원수를 갚자고 그를 죽이자던 가문 사람들을 무시하고 투신이 소왕을 도와 복권된다.
[1] 자와 이름을 합쳐 부르는 당시 관습 상 투월초로 불린 것이다. 왜 子자가 안 붙었냐면 이것은 일종의 돌림 자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2] 영윤은 초나라의 상국이다.[3] 원문에서는 약오씨(若敖氏) 가문을 멸한다고 되어 있으나 그 대표가 투씨(鬪氏) 가문이라 사실상 투씨 가문을 말하는 것이다.[4] 아마 이것은 훗날에 윤색되었을 확률이 높고, 아마 투누오도는 투월초의 사람됨을 알고서 저런 말을 한 것을, 태어날 때부터 반역자의 기질을 알아본 것으로 윤색된 것 같다.[5] 용나라는 무왕(주)이 상나라를 멸망시키는데 기여한 국가로 그 기원이 오래된 나라다.[6] 다른 표기로는 위(䕂)씨라고도 한다.[7] 투누오도의 손자 중 하나. 외국에 사신으로 간 사이에 반란이 일어나서 돌아와 보니 반역자의 가문이 되었다는 설도 있다.[8] 투씨 가문의 생존자라는 의미다.[9] 투월초의 아들 투분황이 진나라로 달아나는 데 성공했다는 설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