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트릭 루아
1. 소개
캐나다의 前 아이스하키 선수이다. 198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NHL을 지배한 위대한 골리며, 레 카나디앵 드 몽레알의 마지막 우승[2] 과 콜로라도의 두 번의 우승을 모두 만들어낸 레전드 선수이다.
2. 퀘백의 소년 몬트리올의 레전드가 되다(1984년~1994년)
퀘벡 출신답게 레 노르디크스 드 퀘벡 팬으로 성장한 루아는 자신이 어린 시절 싫어하던 팀인 레 카나디앵 드 몽레알에 지명되었다. 루키 시즌(1984-1985) 3경기만에 주전 골리의 부상으로 인해서 골대를 지키게 되었고 그 경기에서 승리. 이후 활약을 이어가면서 팀의 포스트시즌 진출에 조력했다.
신인 시절부터 온갖 상을 휩쓸고 주전을 차지하며 일찍 두각을 드러낸 루아였으나 스탠리컵 우승은 쉽지 않았다. 1988-89 시즌 스탠리컵 결승에서 캘거리 플레임스에 패배했다. 첫 스탠리컵 우승은 1992-93시즌. 그리고 이 우승이 현재까지도 캐나다 구단들의 마지막 스탠리컵 우승이기도 하다.
3. 충격적인 이적 사건(1995년)
구단의 주전 골리로서 어느덧 10 시즌을 뛰게된 루아는 당시 몬트리올의 감독은 초짜였던 마리오 트렘블레이(Mario Tremblay)와의 불화로 인해 더이상 팀에 남기 어려운 상태에 놓였다. 당시 트렘블레이 감독은 지속적으로 루아의 영어 구사 능력을 지적하는 등 서로 관계가 상당히 험악했다.
이게 결국 폭발하고만 것이, 1995년 12월 2일 몬트리올의 사상 최악의 홈경기로 일컬어지는 보스턴 브루인스 전이었다. 게임은 11-1로 케네디언스가 참패했는데, 이 날 트렘블레이 감독은 컨디션이 좋지 않아 초반에 실점을 하던 루아에게 굴욕을 주고자 그를 다른 골리로 교체하지 않았다. 결국 9골이나 먹고 관중들 앞에서 공개처형을 당하고서야 벤치로 들어갈 수 있었던 루아는 선수단 뒤 벤치에서 경기를 관람하던 구단주에게 '''내가 몬트리올에서 뛰는 건 오늘이 마지막이야!!'''라고 선언. 분노를 감추지 못한채 선수단 벤치가 아니라 뒤의 벤치에 앉는다.
그 후 구단과 완전히 틀어져버린 루아는 콜로라도 애벌랜치로 전격 트레이드됐는데, 이 트레이드는 NHL 역사상 한 쪽이 일방적인 손해를 본 트레이드로 지금도 유명하다. 아직 전성기가 끝나지 않은 루아를 잃어버린 몬트리올은 1993년 이후 우승이 끊어져버렸고, 백업 골리로 받아온 조셀린 티보도 망해버리며 트렘블레이 감독은 시즌 종료 이후 바로 해고되었다.[3]
4. 애벌랜치의 황금기(1995년~2003년)
노르딕스의 팬이었던 소년은 결국 연고이전을 한 팀인 콜로라도 애벌랜치로 이적했다. 그리고 애벌랜치는 연고이전하자마자 스탠리컵 우승을 하는 대형사고를 친다! 상대는 스탠리컵에 처음 올라온 플로리다 팬서스.[4] 애벌랜치도 노르딕스 역사를 포함해 스탠리컵은 처음 진출이었는데, 승리는 애벌랜치의 것이었다. 이 우승은 덴버 연고 4대 스포츠 구단 중에 첫 번째 우승기록이었다.[5]
콜로라도 애벌랜치는 새로 합류한 루아와 조 새킥 등의 기존 전력들이 활약하면서 NHL 서부의 강자로 자리잡았다. 이전에 하키 인기가 없어 덴버를 연고지로 쓰던 팀이 허무하게 떠난 것과 다르게 덴버 주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면서 인기팀에 등극한다.[6] 2000-01시즌에 뉴저지 데블스를 꺾고 개인적으로 세번째 스탠리컵 우승에 성공했다.
콜로라도 애벌랜치 vs 디트로이트 레드윙스의 골리들까지도 주먹질을 하는 격렬한 라이벌리, 뉴저지 데블스의 악마 골리 마틴 브로되르의 리그 최고의 골리를 결정하기 위한 경쟁 등 팀의 최전성기에 많은 이야깃거리를 제공한 선수였다.
2003년 4월 22일에 있었던 스탠리컵 플레이오프 1라운드 7차전에서 미네소타 와일드와 대결했는데, 미네소타가 연장전 끝에 애벌랜치를 탈락시키며 이 경기가 루아의 은퇴경기가 되었다.[7]
5. 국가대표 시절
1998 나가노 동계올림픽에서 캐나다의 주전 골리로 나섰지만 체코의 도미니크 하섹에게 패하며 은메달에 그쳤다. 로이는 2002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출전은 거절했다.
6. 지도자 시절
하키 선수에서 은퇴한 이후 캐나다의 작은 리그 QMJHL의 수석코치가 된 루아는 2006년에 지도자로서도 우승을 차지했다. 하지만 루아의 수석코치 생활은 평탄하지 않았는데 2번이나 선수 폭력 사태에 휘말린 것. 결국 수석코치자리에서 내려올 수 밖에 없었다.
이후 2012년에 캐나다 하키 토크쇼의 경기분석가로 취임했고 여기서 자신을 몬트리올에서 내몰았던 트렘블레이 전 감독과다시 한 번 같은 직장에서 일하게 되었다.
2013년 루아는 애벌랜치의 감독으로 부임했다. 또 다른 레전드 조 새킥 함께 프런트로 애벌랜치에 다시 돌아왔다. 새킥과 루아의 운영 아래에서 13-14 시즌 애벌랜치는 10년만에 지구 우승을 차지하면서 괜찮은 성적을 올렸지만 이후 14-15 시즌에 부진했고, 2015-16시즌이 역대급 DTD 시즌이 되어버리면서 결국 루아는 새킥과 단장과의 알력다툼 끝에 2016년 성적의 책임을 지고 감독 자리에서 사퇴했다. 새킥은 팀을 떠나지 않았고 지금도 프런트에서 일하고 있다.
7. 기타
- 캐내디언스와는 좋지 않은 형태로 헤어졌지만, 팀을 떠나기 전까지 루아는 캐내디언스의 프랜차이즈 스타로 사랑받고 있었다. 결국 구단과 화해가 이루어졌는지 루아의 33번은 2008년 캐내디언스에서 영구결번되었다. 이 전에 애벌랜치에서는 2003년 은퇴 직후 영구결번 되었다.
- 캐나다 야구 역사상 최고의 타자로 손꼽히는 래리 워커와 매우 절친했다.[8] 둘의 등번호가 33번으로 같고[9] , 둘이 뛰었던 팀의 연고지도 공교롭게 같았다.[10] 워낙 절친이다보니 래리 워커가 친구 루아가 뛰는 애벌랜치의 스탠리컵 결승 때 끝내기안타를 치고 라커룸에서 아이스하키 경기를 봤다는 얘기가 있었을 정도다.
8. 수상 기록
- 캘린더 컵: Sherbrooke Canadiens(1985년)
- 스탠리 컵: Montreal Canadiens(1986년, 1993년) / Colorado Avalanche(1996년, 2001년)
- 콘 스마이트 트로피: 1986년, 1993년, 2001년
- 윌리엄 제닝스 트로피: 1987년~1989년, 1992년, 2002년
- 베지나 트로피: 1989년, 1990년, 1992년
- NHL 올-스타 게임: 1988년, 1990년~1994년, 1997년, 1998년, 2001년~2003년
- NHL 첫번째 올-스타 게임: 1989년, 1990년, 1992년, 2002년
- NHL 두번째 올-스타 게임: 1988년, 1991년
- NHL 올-신인 게임: 1986년
- 트리코 골텐딩 상: 1989년, 1990년
- The Colorado Avalanche retired Roy's number 33 jersey(2002년 10월 28일)
- The Montreal Canadiens retired Roy's number 33 jersey(2008년 11월 22일)
9. 둘러보기
[1] 퀘벡 출신 캐나다인이라 프랑스어 표기법을 따른다.[2] 몬트리올의 마지막 우승이기도 하지만 NHL 소속 캐나다팀들의 최후의 스탠리컵 우승이기도 하다.[3] 이와 비교할수 있는 건은 이후 23년 뒤에 터지게 된다. 차이점이라면, 몬트리올은 전통의 강팀인 반면에 롯데는 역사는 오래 된 팀이어도 여전히 약팀이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며, 루아는 감독과의 불화가 원인이었지만, 이 사건은 프런트가 선수에게 사기를 쳤으며 이에 되도 않은 언플로 인해 해당 팀의 팬들이 그 선수를 비난한 끝에 그 팀의 프런트와 완전히 사이가 틀어진 결과가 되었다. 이후 두 팀의 행보는, 한 팀은 본인이 뛴 첫 KS 무대에서는 자신이 부진하는 바람에 준우승을 했지만, 그 다음 해는 우승을 한 반면, 사기친 팀은 주전 포수의 이적까지 겹치면서 7위로 떨어진데 이어, 그 다음해에는 어린 포수들이 경기마다 니갱망을 시전하면서 분위기가 박살이 나며 15년만에 꼴찌로 떨어지게 되었고 팀의 단장과 감독의 목이 날아가는 사태가 벌어졌다.[4] 이 스탠리컵 진출이 현재까지도 팬서스 프랜차이즈의 유일한 스탠리컵 진출이다.[5] 애벌랜치의 우승이 1996년이었고 이후 덴버 브롱코스가 슈퍼볼 XXXII(1997)와 XXXIII(1998)에서 우승하여 2연패를 한다.[6] 1980년대 황금기를 뒤로하고 1990년대 침체기(특히 97-98 시즌에 11승 71패로 구단 역사상 최악의 시즌을 보내는 등)를 격렬하게 겪고 있던 덴버 너기츠를 제외하면, 애벌랜치는 퀘벡에서 이루지 못한 우승을 일궈냈고, 덴버 브롱코스도 준우승 역사를 청산하고 슈퍼볼 우승을 2번이나 했으며, 콜로라도 로키스도 래리 워커가 MVP를 수상하고, 1995년 NLDS에 진출하는 등 당시 덴버 구단들은 꽤 잘했다.[7] 참고로 이 시리즈의 6차전에서는 리차드 박(現 대한민국 아이스하키 국가대표팀 코치)이 골든골을 넣으며 팀을 탈락 위기에서 구해내기도 했다.[8] 래리 워커도 캐나다사람답게 아이스하키 프로선수 지망생이기도 했다. 다만, 둘의 출신지는 다른데, 루아는 퀘벡 출신, 워커는 브리티시 컬럼비아 출신이다.[9] 너기츠의 레전드 데이비드 톰슨도 33번으로 영구결번 선수였지만 전성기가 1970년으로 한참 앞이었다.[10] 래리 워커는 1989년 메이저리그로 콜업된 뒤 1994년까지 몬트리올 엑스포스에서 뛴 뒤 1995년 콜로라도 로키스로 이적, 2004년 시즌 중반까지 뛰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서 선수생활을 마무리한다. 1995년 딱 1년 동안만 떨어져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