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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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강민호는 前 롯데 자이언츠, 現 삼성 라이온즈의 포수다.'''나의 뒤를 이을 포수라면, 모두가 알고 있듯 강민호'''
2014년 4월 5일, 박경완이 자신의 은퇴식에서
양의지와 더불어 2010년대 KBO 리그를 대표하는 포수로 평가받고 있다. 2010년대 골든글러브 4회 수상, 통산 5회 수상으로 김동수의 7회에 이어서 이만수와 공동 2위에 랭크되어 있다. 국가대표 최다 차출된 명포수이며 수많은 수상 기록과 누적 성적, 그리고 통산 WAR 50.28로 21세기 한정 KBO 포수 승리기여도 1위를 기록한 현역 최고의 포수.
롯데 자이언츠의 대표적 프랜차이즈 스타로 유명했지만, 삼성 라이온즈에 거액의 돈(90억)을 받고 이적했다. 그리고 삼성 라이온즈에서 전성기 시절보다는 부진하며 심심하면 욕을 먹는 먹튀 취급받지만, 동시에 삼성에 반드시 필요한 포수 자원의 핵심으로 활약하고 있다.
2. 선수 경력
3. 플레이 스타일
박경완 이후 최고의 공격형 포수로 명성을 날렸다. 2007년부터 2012년까지 매년 .800 이상의 OPS를 기록했고, 신인시절과 부상시즌 등 몇 시즌을 제외하면 wRC+로 규정 타석을 채운 타자들중 항상 순위권에 위치했다. 주전 첫해였던 05 시즌과 역대급 투고타저 시즌이었던 06 시즌, 부상으로 중도 이탈한 09 시즌을 제외하면 꾸준히 두자릿수 홈런을 쳐주고 있고[6] , 항상 4할 5푼을 넘길 정도로 높은 장타력이 강점이다. 득점상황에서의 클러치 능력도 준수 한 편. 데뷔 이래로 끝내기를 무려 8개나 쳐냈다. 또한 '''만루의 사나이''' 2020 시즌 현재 통산 만루홈런 13개로 KBO '''역대 2위 기록'''이며 나이를 생각한다면 최다 만루포도 잘하면 노려볼수 있을 정도... 이긴하나 1위인 이범호의 기록이 17개 인지라 마냥 쉽진 않을듯 하다. 주루능력은 아쉬운 편으로 시즌 중에 도루가 5개가 넘어간 적도 없으며 이대호가 있던 시절부터 느리기로 서로 투탑을 달리던 사이었다. 삼진 개수가 많지만 공갈포는 아니라서 출루율 3할 5푼 이상에 BB/K 0.6이상은 찍어줬다. 또한 2015시즌 타격폼을 수정하며 역대 포수 최초 3할 35홈런에 역대 포수 최대 OPS를 기록하여 리그 최강의 공격형 포수임을 확실히 보여줬다. 보통 강타자의 기준을 OPS .8~.85로 잡는데, 강민호는 대부분의 시즌을 .800 후반대의 OPS, 커리어하이었던 '''15년도에는 1을 넘는''' OPS를 기록하며 공격형 포수로 명성을 날렸다.
풍기라는 별명은 강민호의 커다란 풀스윙에 의해서 생긴 별명이다.[7] 강민호 스윙을 보면 당겨치기 위주의 시원한 풀스윙을 선호하는 스타일의 타자라는걸 알 수 있다.[8] 그렇기 때문에 맞으면 많은 장타를 양산 해내고[9] 그러다 보니 바깥쪽 낮은쪽으로 떨어지는 포크볼 체인지업에 삼진을 당하는 모습을 많이 보인다. 강민호가 볼넷이 많은 것은 선구안에 기인한다기 보다 그의 장타를 의식한 투수들이 승부를 어려워 하기 때문이다. 볼넷이 아주 많은 것도 아니고 역대 BB/K 비율이 1:2 정도로 평균적인 거포타자다. 바깥쪽 낮은 코스에 대한 약점이 극복 되지 않는 이상 삼진 비율은 크게 변하지 않을 것이다.
강민호는 07 시즌부터 자신이 생각하는 가장 인상적인 타격폼인 김태균의 타격폼을 카피하여 타격포텐을 터뜨렸으나[10] 2012 시즌 뇌진탕 부상과 계속 써오던 타격기술의 문제점이 겹쳐서 13, 14 시즌을 아주 거하게 말아먹었다.[11] 2015 시즌 장종훈 타격코치의 조언으로 아예 자신의 장점인 당겨치기를 극대화하고 스윙을 이전보다 더 간결하게 하며 히팅 포인트와 무게중심을 앞에두는 새로운 타격폼[12] 을 장착, 정교함과 장타력을 훨씬 발전시키며 부활에 성공했다.
수비의 경우 초년병 때 여러모로 미흡한 모습을 보여 자주 욕을 먹었으나, 초창기에도 그렇게 나쁜 수비는 아니었다. 최기문의 부상으로 처음 기회를 얻은 강민호가 주전 자릴를 꿰찰 수 있었던 것도 수비력이 어느 정도 뒷받침되었기 때문이다.[13] 하지만 급격히 느는 타격실력에 비해 수비의 성장은 더뎠고, 시야가 좁고 입체적인 판단을 하지 못하는 모습을 종종 보여 줬기에 팬들에게 주기적으로 까이게 되었다. 그러나 경력이 쌓이면서 차츰 수비도 발전되는 모습을 보였다. 강민호의 수비 중 특히 뛰어난 점은 높은 도루저지로, 어깨가 매우 강한데다가 전성기 시절 미트에서 공을 빼내는 속도가 매우 빠른 것으로 알려졌다. 강민호의 도루저지율은 꾸준히 좋아져 2011 시즌부터 리그 정상급의 저지율을 보여줬다. 09년 팔꿈치 부상의 여파로 09~10 시즌에 도루저지율이 크게 떨어져 비판을 받았지만, 부상 여파에서 벗어난 11 시즌부터는 리그 상위급의 도루저지율을 기록했다. 타격에서 크게 부진했던 2014 시즌조차 타 팀 포수들의 도루저지율과 비교해보면 차이가 완연하다. 이와 함께 포구/블로킹도 점점 발전해 나갔다.
그러나 노쇠화 때문인지 수비력에서 기량이 쇠퇴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때 리그 탑급을 자랑하던 도루저지율도 최근 급격히 떨어져 이제는 주전 포수들 중 중하위권 살짝 아래 수준까지 도루저지율이 떨어졌다. 포구/블로킹 능력도 국가대표 전담 포수 명성에 비해 좋은 편은 아니다. 전성기 시절에도 주전 포수들 중 중간 정도 수준이었지만, 롯데 투수들이 포크볼을 많이 구사한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2017 준플레이오프 때 강민호가 여러 차례 포구에 실패하는 모습을 보였고 특히 평범한 직구조차 어이없이 포구에 실패하면서 이것이 패배로 이어지고 말았다. 롯데 코칭스태프도 이에 대해 공개적으로 크게 아쉬움을 토로했고, 결국 이것이 FA 때 롯데 프런트가 강민호를 적극적으로 붙잡지 않았던 결정적인 이유 중 하나가 된 것으로 보인다. 프레이밍은 예전부터 강민호의 최대 약점 중 하나로 꼽혔다. 프레이밍을 안하는 포수로 유명했다. 그덕분에 KBO 심판들이 가장 좋아하는 포수로 꼽히기도 했다. 심판들이 강민호를 좋아하는 이유 "정직한 미트질". 심판들은 "(강민호는) 심판을 속이는 미트질이 아니라 잘 보이게 공을 잡아준다. 심판의 스트라이크존이 흔들리지 않게끔 정확하게 잡아주기 때문에 믿음이 간다.", "(미트질을 하면) 심판들도 가끔 헷갈리게 된다. 강민호 같이 정확하게 잘 잡아주는 포수에게는 심판들도 믿음이 간다."면서 강민호를 칭찬했다. 타팀팬들에게 '''정직한 포수'''로 칭송받은 것은 덤이다. 프레이밍으로 여러 소리를 들어서인지 차츰 프레이밍을 시도하고 있으나 여전히 평가는 좋지 못하다. 최근 강민호가 포구 미스가 많아진 이유에 대해, 프레이밍을 안한다는 비판을 의식해서 어설프게 프레이밍을 시도하다가 오히려 공을 빠뜨리는 현상이 잦아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롯데 말년에 여러 수비 지표가 동반 하락하며 리그 하위권으로 쳐졌다.
총액 90억원으로 삼성으로 이적하며 기대를 한몸에 받았으나 공수 양면에서 기대에 못미치는 모습을 보였다. 2018 시즌 일각에서 노쇠화 우려가 제기되었지만, 대부분의 삼성팬들은 팀을 옮긴 적응기라는 의견이 대세였다. 하지만 2019년 공격력은 걷잡을 수 없이 하락했다. 대신 수비형 포수를 공언했던 만큼 2019 시즌 들어 수비 지표가 많이 반등하는 모습을 보였다. 2019년 몇몇 수비 지표가 상위권에 랭크되어 있고, 강민호의 최대 약점 중 하나인 프레이밍 지표도 준수해졌다. 하지만 실책 1위를 기록하는 등 명암이 존재한다. 일단 Pass/9 지표는 좋게 나오고 있지만 수치와는 별도로 실제 경기에 강민호의 포구, 블로킹에 대해서 불안하다고 말하는 삼성팬들이 많다.
커리어 전체적으로 봤을때 내구성이 상당히 좋다. 강병철 감독에게 중용 받은 이래 부상으로 빠진 2009 시즌을 제외하면 매시즌 풀타임으로 소화해냈다. 포수가 가장 체력 소모가 심한 포지션인 만큼 이는 큰 강점이다. 문제는 2019년 기준으론 확실히 내구성이 떨어졌다. 허나 이는 강민호마저 어쩔수 없었다. 커리어 대부분을 몸담은 팀인 롯데의 빈약한 뎁스 및 롯데의 대권도전 상황 때문에 너무나 혹사를 당했다는 것이 그 원인이다. 선수육성을 못하기로 유명한 롯데인지라 든든한 백업포수가 별로 없었고 강민호가 한창 전성기로 활약하던 시절의 롯데는 주로 가을야구를 위한 마지노선인 4~5위를 치열하게 노려왔었기에[14] 그간 강민호를 상당히 혹사시켜왔다. 그래서인지 2017년 후반기부터 스탯이 떨어지더니 2019년 현재 내구성이 꽤나 저하했다. 뉴스기사들을 보면 왼쪽무릎이 좋지 않다고 한다. 강민호는 2015년부터 체중이동을 앞으로 가져가는 타격폼을 사용하며 포텐을 터뜨려왔는데 이는 우타자 기준 왼쪽무릎을 잘 활용해야하는 타격폼이다. 허나 현재 왼쪽 무릎이 좋지 못한 상황이라 본인 커리어하이 시절의 타격폼은 무리가 많이간다. 여러모로 안타까운 상황이지만 오랜 경험을 가진 베테랑이니 잘 타개해나갈수도 있다. 앞으로 감독들은 이를 고려하여 체력관리를 해줄 필요가 있다.
4. 연도별 주요 성적
- 붉은 글씨는 리그 1위 기록. 진한 표시는 리그 5위 내 기록.
5. 여담
- 2011 시즌 이전까지 타격에 비해 부족했던 수비스킬과 맞더라도 몸쪽으로 자신있게 찔러넣을 것을 강조했던 로이스터 감독의 성향, 양상문이 망가뜨려놓은 불펜진이 시너지 효과를 일으켜 야구팬들 사이에 공격형 포수와 수비형 포수 논쟁을 불러왔었다. 10시즌까진 굉장히 치열한 논쟁이었으나 수비가 일취월장한 11시즌부턴 추억거리가 되었다. 타격이 극히 부진했던 13~14시즌에는 되려 수비형 포수라고 욕을 먹었다.
- 데뷔 초창기부터 삼성 라이온즈 팬들이 강민호를 굉장히 탐내는 통에 롯데 시절부터 '삼민호'라는 별명이 있었다. 삼성 연고인 포철공고 출신인데다, 양친 모두 경북 출신에 본인도 본적이 경북이며, 2004년 신인지명에서 삼성이 강민호를 뽑을 기회[15] 까지 있었다. 게다가 삼성은 진갑용이 노쇠화에 접어든 시점에도 이지영 이외에는 아무도 진갑용을 밀어내지 못했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대형 포수 기근이라 양의지가 있었던 두산 베어스를 제외한 거의 모든 팀들이 강민호를 탐내긴 했지만, 삼성 팬들은 유달리 양의지는 쳐다도 안 보고 강민호만 오매불망 바랐기에 '삼민호'라는 별명이 유명해지게 되었다.[16] 그러나 선수 본인은 롯데와 부산에 강한 애정을 드러냈기에 롯데팬들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팬들이 강민호는 롯데에서 은퇴할 것이라 여겼다. 그러니 실제로 삼성으로 이적했을 때의 삼성 팬들의 심정은 긴 설명이 필요없을 것이다. 단편적인 예시로 이적 당시 삼성 공식 홈페이지에 삼민호, 환영합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강민호의 사진을 대문짝만한 크기로 올려놨었다.
- 정말 의외인 사실이 유일한 제주도 출신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이 때문에 제주도 체육회 영예경기상을 수상했다. #
- 팬 관리, 특히 싸이질을 통한 여성팬 관리에도 많은 신경을 쏟고 있는 듯하다. 수능이 끝난 후 싸이 다이어리에 올린 "여고생 여러분 수능 잘 치셨어요?"는 가히 압권. 참고로 강민호 싸이홈피에 어떤 팬이 비난글을 올리자 그는 그 팬에게 욕을 하실꺼면 쪽지로 보내주세요 제 홈피가 더러워지는거 원하지 않습니다!!!(써있는 그대로기에 문법이 다소 틀린부분이 있다.)라고 답장쪽지를 보내서 야갤에서 까인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후 타팀의 여러선수들이 미니홈피에서 각종 욕설이나, 팬을 비난하면서 파문을 일으키는 일이 무척 자주 생기자 강민호의 긍정적인 반응은 다시 한번 재조명받기 시작했고 훌륭한 미니홈피 운영의 귀감으로 떠올랐다.
- 워낙 호인인데다 팬들에게 초창기부터 이래저래 시달리고 울고 웃기다 보니 그쪽으론 이골이 난 듯하다. 2010년 시즌 초반 수많은 비난을 혼자 감당하여 자신감이 매우 결여되었을 듯한 상황에서도 비난에는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는 인터뷰를 했다.
- 특유의 낙천적인 성격으로 카메라만 보면 특이한 표정을 잘짓는다.
이럴때....그나마 이건 어렸을때(2007년)
2011년 7월 29일 두산과의 3연전 첫날 엠스플 카메라에 윙크하는 모습. 이 날 강민호는 더스틴 니퍼트로 부터 결승 투런홈런을 치면서 엠스플에서 수훈선수 인터뷰까지 했다.
이건 본인 트위터에..
이건 공식홈페이지에...
대포카메라로 셀카. 참고로 저 렌즈(70-200mm로 추정)로는 저 거리에서 초점이 잡히지 않는다. 한 마디로 사진이 나오지 않는다.
사직 귀요미라기 보단 돈키호테 도플라밍고같다.
의외로 잘 생겼다.
- 본인 스스로 굉장히 잘생겼다고 생각한다. 이미 여러차례 야구 관련 프로그램에서 미남을 자처했다.[17] 사실 데뷔 당시엔 본인 소개에 적은 꽃미남이란 별명이 나름 어울릴 정도로 훈훈한 얼굴이긴 했었다. 하지만 2006년 전 경기 출장을 달성하고 난 이후 위의 거지왕 짤을 생산할 정도로 급 노화가 진행되며 소위 장모님이 좋아하는 스타일이 되었다.
- 10 시즌을 마지막으로 최기문이 은퇴하면서 팀 내 최고령 포수가 되었다.[18] 2012시즌 4살 위 용덕한이 트레이드 되어 오면서 최고령 타이틀을 내어주었다가 용덕한이 KT위즈로 이적한 2015시즌 다시 팀내 최고령 포수가 되었다.
- 꼴갤은 이제 꼴갤이 아니라 풍기갤이라고 불릴 정도로 강민호를 열심히 물고빨고 한다. (물론 이건 갈마에서 강민호를 지나치게 까댄 반작용이기도 하다.) 그러나 FA 계약 체결 이후에도 시즌 내내 극심한 부진에 빠지자 '강극혐'이라고 가장 많이 불리고 있다. 물론 2015년 이후로는 그런 거 없고 '강혜자'라고 부른다.
- 권혁과 이동국 등과는 같은 포항제철고를 나왔고, 같은 제주도 출신 스포츠스타인 정성룡과 동갑이다. 강민호는 제주도에서 태어나 학창시절을 포항에서 보냈고, 정성룡은 경기도 광주시에서 태어나 학창시절을 제주도에서 보냈다. 그래서 제주도 출신 스포츠스타를 거론할 때 이 둘은 반드시 언급된다.
- 그리고 2012년 골든글러브 시상식에서 포수부문 수상자로 나왔는데, 각각 케이블방송을 대표하는 최희, 배지현, 김민아 아나운서와 같이 나왔다. 야빠들은 배가 아프거나, 아니면 말 더듬는 강민호를 보면서 히히덕거리거나..
- 전 두산 베어스, 현 롯데 자이언츠의 민병헌과 약간 닮았다는 소리가 있다. 실제로 약간 처진 눈매가 비슷하긴 하다. 다만 민병헌이 좀더 각이 진 얼굴이라면, 이쪽은 좀 더 동글동글하고 펑퍼짐한 얼굴에 눈꼬리가 더 처졌다. 2018 시즌 이후 민병헌이 롯데로 이적하자 둘이 닮았다는 게 더 부각되었다.
- 경기 전 국민의례가 끝나면 가슴에 얹었던 오른손으로 주먹을 쥔 뒤 입맞춤을 하고 검지 손가락을 펴서 하늘을 찌르는 세리머니를 한다. 제주도에서부터 같이 자랐던 친구가 있었는데 이 친구가 돌연 세상을 떠나자 그를 추모하는 의미에서 하는 자신만의 의식이라고 한다.
- 배우 이상윤과도 매우 닮았다. 나이는 이상윤이 81년생으로 강민호보다 4살 위.
- 은퇴 하기 전 목표가 삼성라이온즈 에서 한국시리즈 우승을 하는것이라고 한다.
5.1. 응원가
롯데시절 응원가는 보니엠의 Rivers of Babylon을 개사한 곡을 사용했다.[20]
삼성으로 이적하면서 당연히 새로운 응원가를 쓰게 될 전망이다.[21]
...였는데 이적후 시즌 절반이 지났는데도 응원가가 나오지 않고 있다. 3월말 삼성측에서 바그너의 ‘쌍두독수리 깃발 아래에서’를 편곡한 응원가를 제작했는데 이것이 퇴짜맞은 후 더이상 후속곡 소식이 없다.[22]
'''드디어 응원가가 나왔다!'''
7월 6일 금요일 잠실 두산전부터 사용중인데, 반응이 굉장히 좋다.
멜로디도 꽤 좋다. 삼성 NEW 응원가 중에서도 상위권이라는 반응이 다수.
백문이 불여일견. 들어보자.
떼창이 꽤 들을 만하다. 만원 관중에서 무반주 떼창으로 들어보면 꽤 좋을듯.
5.2. 별명
- 별명은 헛스윙 하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라 강풍기, 혹은 풍기라고 불리고, 카림 가르시아(갈풍기)와 함께 '쌍풍기'로 불리기도 한다(…). 이제 롯데 자이언츠 갤러리에서는 아예 본명 대신 그냥 "풍기"라고 불린다.
- 번저강(번트? 저 강민호인데요?)
- 강구못(다른 팀은 강민호 구경도 못할 것.) 롯데 프런트가 강민호의 FA 계약을 앞두고 한 말. 얼마나 자신을 갖고 있었는지 보여주었다. 그리고 며칠 후 강민호와 4년 75억 계약을 맺으면서 다른 팀은 정말 구경도 못했다. 이를 두고 2013 한국 프로야구는 번저강으로 시작해서 강구못으로 끝났다는 드립도 나왔다.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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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짤방 때문에 거지왕 강민호라는 별명이 생겼다. 당시 방송에 이 장면이 나오자 야갤에 이 짤방을 캡쳐한 유저가 '안녕하세요 강민호입니다. 천원만 주세요.'라는 내용의 글을 올린 것이 원인. 참고로 해당 경기는 더블헤더로 진행되었고, 강민호는 두 경기 연속으로 출장했다. 강민호의 높은 출장 빈도와 이 짤방으로 인해 야갤에서는 '강병철 감독은 투수혹사에 이어 이제는 포수혹사냐'며 강감독을 깠다.
- 그 외에 2010년 4월 9일에서 10일로 넘어가는 시점 00시 00분 00초에 경기를 끝내 선풍기 + 신데렐라 풍데렐라란 별명도 얻었다.
- 2014시즌 역대급 부진과 찬스에서의 삽질로 위에 나열된 별명보다는 강극혐으로 많이 불렸었다. 그나마 이건 순화된 거고 롯갤 같은데에서는 거의 강xx으로 불렸다. 그러나 현재는 15시즌의 활약으로 강혜자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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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 인터뷰에서 76홈런을 친 후 26홈런을 더 치면 100홈런이 된다고 말한바 있어서 암산왕 강민호란 별명을 얻은 바 있다.
5.3. 친목질의 대가
붙임성이 좋기로 유명하다. 심지어 영어 실력과 상관 없이 외국인 용병 선수들과도 잘 지낸다. 로이스터 감독도 마찬가지. 파인 플레이 후, 혹은 승리 후에 로이스터 감독과 마주보고 포효하는 장면을 자주 볼 수 있었다. 2008년 KBO 골든글러브 시상식에선 이 장면으로 골든포토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롯데 팀 내에선 친목질의 중심. 어지간한 선수들은 죄다 강민호의 어장 속에 들어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프로 초창기 시절 손민한과 배터리를 이루고 승리한 날엔 치킨 자유이용권을 발급받았다고 하며[25] , 2006년시절엔 김수화, 강민호, 이원석, 이왕기의 롯데 Big 4(좋은 의미가 절대로 아니다)의 중심에서 친목질, 그 외에 자주 배터리를 이뤄야 했던 투수진 등등등…. 오죽했는지 이 놈 게이 아니냐는 농담까지 나왔다.
그렇다고 같은 팀에서만 친목질이냐? 절대 아니다. 가히 KBO 내의 '''친목질의 아이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인맥을 자랑한다. 같은 포수 포지션의 대선배인 박경완, 진갑용등에게는 애교와 조공을 통해 이쁨받고[26] , 그 외에도 신경현, 김상훈, 조인성등과도 친밀한 사이. 또한 포지션이 포수인지라 어지간한 타자들과는 거의 다 가까이할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지만, 상대 타자가 타석에 들어설 시 정말 쉼 없이 입을 놀리면서 친하면 농담질, 안 친하면 '안녕하십니까 롯데 자이언츠 포수 강민호입니다'라고 자기 소개부터 하고 친목질을 시도하는 등. 타자 앞에서 떠드는 점은 포수 출신 홍성흔이 지적을 한 적이 있으며, 양신은 XTM 겟잇기어에 출연해서 반쯤 농담조로 "롯데전에서 타석에 들어서면 강민호가 하도 시끄러워서 준비자세에서 배트로 프로텍터를 툭 치곤 했다"라고 말한 바가 있다. 동 시대에 같은 포수로 활동하고 있는 양의지는 롯데와의 경기를 하게 되면 특히 더 신경이 쓰인다면서 "(타석에 들어서면) 민호 형은 입이 쉬질 않는다. 자꾸 말을 건다. 가끔 너무 웃겨서 힘이 빠진다."라고 하기도 했다. 양의지 또한 강민호가 타석에 들어왔을 때 악착같이 안타 안 맞으려고 한다고.. 알려진 바로 타 팀에서는 특히 김현수와 친분이 있고 그 외에도 김태균 등등…. 박석민은 자신이 삼성 감독이 되면 수석 코치 강민호, 주루 코치 김상수를 선임할 것이라고 공언하기도 했다.
더욱 경악스러운 것은, 이제 선수끼리의 친목질을 벗어나서 타팀의 코칭스탭, 더 나아가 심판진들과도 친목질을 한다는 것. 2010년 6월 12일 한화와의 홈경기에서 임채섭의 스트라이크 존이 바깥쪽으로 넓어지는 것에 대해서 "심판님, '''민호는''' 심판님 말 잘듣잖아요…. 그런데 좀 전에는 볼 해줘도 됐을거 같은데…."
이 친목질은 고교 시절부터 알아줬던 모양이다.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 대표로 선발된 '''축구'''선수 신광훈은 포철공고 1학년 시절 3학년이었던 강민호가 먹을 걸 많이 챙겨줬다며 아시안 게임에서의 선전을 기원했다. 아무리 같은 학교 후배라지만 다른 종목 선수까지 챙겨준 걸 보면 진짜 호인은 호인이다.
거기다가 프로'''농구''' 부산 kt 소닉붐 전창진 감독도 강민호 팬임을 자처하며 PO2차전 전에 같은 숙소에 머물고 있던 강민호를 "방에 불러서" 홍삼액을 줬다고. 심지어 강민호도 우리는 "베프"라고 했을 정도.
여하간 그의 친목질 범위는 끝을 모른다. 오죽하면 "강민호를 포수로서 싫어하는 건 몰라도, 그를 인간으로서 싫어하는 건 그 사람의 인성에 문제가 있는 거다."라는 말까지 있을 정도.
12시즌 후 녹화된 무릎팍도사 조진웅편에서는 직종의 벽도 넘었다. 당시 조진웅의 고민이 "롯데 야구가 신경쓰여 연기에 집중을 못하겠어요."였는데 프로그램 말미에 김시진 감독과 강민호의 영상편지가 공개되었다. 이때 시종일관 조진웅을 '진웅이행님'이라며 살갑게 얘기하고 이에 조진웅은 "민호 아이가ㅋㅋㅋ"라며 놀라움을 표시했는데,
이날 방송에서 조진웅씨는 사직에서 시구 한번 해보는 것이 소원이라 말했고 바로 다음시즌, 그것도 무려 개막전 시구자 자리를 꿰찼고 강호동이랑 약속한 시구 포즈도 취했다.강호동 : 아, 두분이 원래 알던 사이셨어요?
조진웅 : '''아뇨 한번도 본적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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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지선 아나운서의 안타까운 사건이 있었을 때에도, 애도를 표한 몇 되지 않는 프로야구 선수였다.[27] 괜히 여자 아나운서들 사이에서 인기있는 게 아니다.
2010년 1월 초, 방송에서 김석류 아나운서가 '자신과 친한 '''강민호가 내 이상형'''이다.'이라고 밝혔기 때문에 실제로 무슨 썸싱이 있나 관심이 집중되었다. 강민호도 어지간히 친목질을 시전하면서 인터뷰에서 '''최근 누나가 변했다. 예전엔 홈런 치면 전화도 했는데 요즘은 전화 걸어도 안 받는다.'''며 징징댔는데…. 결국 8월 2일 '''별명이 많으신 그 분'''과의 결혼 발표가 보도되면서 여신의 어장관리에 당한 ''''강민魚''''가 되었다. 이후 진짜 열애설이 터졌는데 2012년 8월부터 sbs 기상캐스터 신소연과 만나고 있다고 직접 밝혔다. # 그리고 2015년 12월 5일 신소연 캐스터와 결혼하여 이제 어엿한 유부남이 되었다.
2017년에 삼성에 이적하고 나서 입단식을 치른 다음날에 온 팀 아델만과는 아델만이 입단하자마자 같이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이것은 삼성 라이온즈 홈페이지에 또 대문짝만하게 올라왔다. 원래는 단장과 투샷을 찍어야 정상이지만 때마침 강민호가 '''유니폼이 아닌 양복을 입은 채로 사진을 찍어서''' 삼성팬들이 이걸 보고 뒤집어졌다고 한다. 나중에 아델만과 홍준학 단장이 찍은 사진이 공개되었다.
하지만 친목질이 지나쳐 독이 되는 경우도 나왔는데 2019년 9월 3일 친정팀 롯데와의 경기에서 2루에 나가있는데 유격수 신본기와 친목질 잡담을 하다 견제구에 아웃되는 사상 최초 '''친목사'''를 당했다 #
5.4. 대두
양준혁, 이진영 등과 더불어서 대두 야구선수로 유명하다. 본인 말로는 신교대 때 전투모 크기 60짜리를 썼었다고 주장하는 중인데... 그의 머리크기를 직접 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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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3 때는 크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오른쪽이 강민호, 왼쪽은 NC 다이노스의 박석민.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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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오재원의 인스타에서 키배를 뜬 적이 있다. 이때 오재원의 공격이...
5.5. 기부
4년간 75억을 받고 난 후 프로선수로서 기부활동도 적극적으로 하고 있다. FA 계약 스타로서의 모범적인 사례를 보여줬다. 하지만 FA 계약 후 저조한 성적 때문에 롯데 팬들은 "야구만 잘하면 될텐데"라는 애증섞인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 이러한 기부활동을 인정받아 2015년 KBO 골든글러브 사랑의 골든글러브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 2014년에는 부산광역시 폭우 피해 지역민들에게 3,000만원을 기부했다
- 2014년 양산에 야구장 건설비용으로 2억원을 기부했다. 자세한 내용은 강민호 야구장 항목 참조.
- 야구장 건설 후 부산 지역 저소득층 가정을 위해 디딤씨앗통장에 1,000만원을 기부했다.기사
- 2015년 전지훈련 중 구단 프런트 직원들을 위해 150만원 어치 운동화를 사서 나눠주기도 했다.#
- 2015년 어린이날을 맞아 사직 야구장에서 경기가 있던 날에 자비를 털어 아이들이 신을 수있는 신발 470켤레를 나누어 주었다
- 2015년에 삼광초등학교 30명의 초등학생[28] 에게 자비로 신발을 사서 기부했다.
- 2016년에는 감만종합사회복지관에 홈런 1개당 100kg의 쌀을 기부하기로 했다.#, # 2017년에도 해당 기부를 진행했다.
- 또한 2016년 부터는 독거노인들에게 무료로 식사를 제공하는 "사랑의 밥차"를 운영하고 있다.
- 삼성에 이적하자마자 2017년 포항 지진의 피해자들을 위해 포항시에 1억원을 쾌척했다.#
6. 관련 문서
[1] 일본어 한자에는 珉자가 없기 때문에 일본에서는 그냥 편하게 카타카나로 쓰는 편. 사실 최근 들어 한국인 인명도 비한자권처럼 카타카나로 쓰는 경향이 생기기는 했다.[2] 프로필상 키는 185cm이다. 야구화 착용 측정 키가 183.7이므로 185의 프로필을 택했고 다른 선수들보다 덩치도 좋아 더 커보인다. 하지만 182cm 나지완과 나란히 섰을때의 키가 나지완이 조금더 컸다. 180~181cm로 추정된다.[3]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부문 '''금메달''' 획득.[L] : 롯데의 강민호~ (강민호!) 롯데의 강민호~ (민호민호!) 오오오오~ 오오오오~ X3[S1] : 라이온즈 안방마님 강민호~ 최강사자 강~민호 라이온즈 안방마님 강민호~ 날려버려 강~민호 X2[S2] : 강!민!호! 민호민호! - 삼성 강민호! 오오오 강민호 빠라빰빰빰 빰빰빰 강민호!X4[4] 팀 동료 김지찬이 소속되어 있다.[5] 파란 유니폼이라 삼성 시절로 보일 수 있지만 2015년 프리미어 12 국가대표 때 사진이다.[6] 06, 09 시즌에는 홈런9개로 두자리수 홈런에 딱 1개씩 모자랐다. 20홈런을 넘긴 시즌은 23개를 친 10시즌과 35홈런을 친 15 시즌, 20개를 친 16 시즌, 22개를 친 17, 18시즌까지 무려 5번이며 19홈런을 쳐낸 시즌이 3번(08, 11, 12)이다. 매 시즌전 타격목표로 20홈런을 잡는데 딱 하나씩 부족한 시즌이 3번이나 되는건 재밌으면서도 아쉬운 부분.[7] 잘하면 갓풍기, 못하면 X풍기로 불리게 된다.[8] 2010 시즌의 경우 23홈런중 밀어쳐서 만든 홈런이 아예없이 싹 다 당겨쳐서 만들었다. 중월 홈런도 몇개 있었으나 그마저도 당겨친 동작이었다. 슬럼프였던 2013, 14 시즌도 당겨치기를 제대로 구사하지 못한것이 원인 중 하나이며 완벽히 부활한 2015시즌은 본인의 장기인 당겨치기를 극대화한 것이 영향이 꽤 있었다.[9] 그래서 그런지 제대로 맞을시 타구의 파워가 장난아니다. 라인드라이브성 장타도 많이 양산해 내는편이다.[10] 본인이 포수자리에서 봤을 때 가장 인상적인 타격폼이 김태균과 장성호의 타격폼이었는데 자신은 다리를 높게드는 편이 아니라(물론 15시즌 부터는 다리를 높게드는 폼으로 수정했다.) 김태균 타격폼을 카피했고 카피한 후 첫 타석에서 바로 쓰리런을 날렸다고 한다. 그리고 그 이후부터 15 시즌 타격폼 수정 전까지 보면 김태균과 상당히 유사한 타격폼을 계속 유지했었다.[11] 웃긴건 그럼에도 홈런 두자릿수는 유지했다는건 함정. 물론 FA였던데가 본인이 지금까지 쌓아왔던 커리어에 비해 매우 초라했던건 사실이다.[12] 이전 타격폼이 김태균과 유사한 폼이었다면 이번 타격폼은 강정호와 매우 유사하다. 강정호 또한 강민호처럼 당겨치기를 선호하는 타자이다.[13] 장성우가 수비보다 타격으로 롯데에 지명받은 것과 상반되는 부분.[14] 그나마 롯데가 가을야구 안정권으로 각각 2위, 3위의 준수한 성적을 거둔 2011 시즌과 2017 시즌마저도 여름에 미친듯이 페이스를 올리다보니 그런 성적을 낸것이지 가을야구 마지노선에 들기위해 치열히 경쟁했던 시즌이다. 저 두 시즌 당시의 강민호 혹사는 말할 것도 없다.[15] 1차 지명 박석민, 1라운드 윤성환 등 거물급 선수를 다 뽑고 나서도 강민호가 남아 있었다. 그러나 삼성은 당시 국가대표 출신 포수였던 이정식을 선택했다. 강민호가 선택되기 전까지 뽑혔던 포수는 이정식뿐이었다.[16] 물론 일부 냉정한 팬들은 조금이나마 더 어린 '삼의지'를 외치기도 했지만, 당시만 해도 삼의지는 물론 삼민호도 가능성이 낮은 드립성이었기 때문에 널리 쓰이진 못했다.[17] 한 로그램에서는 다른 야구선수보다 내가 이건 낫다, 라고 할 만한 게 뭐냐고 묻자 잘생긴 얼굴 말고는 자랑할 게 없다고 말한 적도 있다.[18] 부상당하면 채상병이 오기 전까지 이지영을 주전 포수로 써야 했던 2009년 삼성 라이온즈와 똑같은 꼴이 난다.[19] 최희, 배지현, 김민아에게 물었다! 세 표라고 해도 무방한 매우매우 높은 퀄리티![20] "롯데의 강민호~ 롯데의 강민호~ 오오오오~ 오오오오~"인데 이것이 몬데그린로 인하여 '모텔에 간 민호 505호~ 505호~'로도 들린다.[21] 거의 대부분의 경우 이적 후 새로운 응원가를 쓴다.[22] 이 응원가는 SK 와이번스의 박정권의 응원가로 사용되었다.[23] 그러나 2017 시즌 종료 후 강민호가 삼성으로 이적하면서 이 별명은 삼성의 것이 되었다.[24] 우연히도 강민호 선수는 소띠이다.[25] 강민호에게 수싸움을 처음 가르쳐 준 것이 다름아닌 손민한이었다. 호텔에서 불을 끄고 함께 누우면 손민한이 "강민호, 내일 첫 타자 누구냐" "누구입니다" "처음에 뭐 던질래" 이런 식으로 묻곤 했다고.[26] 박경완이 좋아하는 양주를 진상했다거나, 진갑용을 통해 일제 벨가드 프로텍터 공수 해준다던가.[27] 참고로 송지선 아나운서와 강민호는 동향출신(제주도)이다. 그래서 더 각별했을 듯.[28] 이게 전교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