팡펑후이

 

'''중국 인민해방군의 역대 총참모장'''
12대 천빙더

13대 '''팡펑후이'''

직책 소멸
'''중국 인민해방군의 역대 연합참모부 참모장'''
직책 신설

1대 '''팡펑후이'''

2대 '''리쭤청'''
'''팡펑후이'''
[image]
'''1951년 ~'''
'''복무'''
인민해방군 육군
'''기간'''
1968년~
'''임관'''
-
'''최종계급'''
상장
'''최종보직'''
연합참모부 참모장
房峰辉. 중국 인민해방군의 연합참모장(총참모장)으로 한국으로 치면 합참의장에 해당한다. 2015년 12월까지는 육군사령원(육군참모총장)을 겸직하는 형태였으나 중국군의 지휘구조 개편으로 육군 지휘부가 신설됨에 따라 육군사령원이 별도의 직책으로 독립하면서 새롭게 생긴 연합참모부 참모장으로 취임하였다.
1. 생애
2. 여담


1. 생애


1951년 4월 태어났다. 산시성[1] 양빈(陽彬)현 출신으로 1968년에 인민해방군에 입대했다. 당시 인민해방군은 문화대혁명의 영향으로 계급이 폐지되고 보직만 있던 시절이었다. 입대 초기의 경력은 알 수 없으나 장교로서는 신장군구에 들어가 소대장 보직으로 군생활을 시작했다. 신장군구[2] 부참모장과 21집단군 군참모장과 부사령(부사령관), 군장(군단장) 등을 거쳤다. 1998년에 소장으로 진급했다. 21집단군 군장은 1999년부터 2001년까지 역임했다. 2001년 12월에 광저우군구 참모장에 올랐고 2002년 2월에 중국 공산당 광저우군사위원이 되었다. 2005년에 중장으로 진급했다. 2007년 7월엔 베이징군구 사령원(사령관)이 되었는데 역대 7대 군구 사령원 중에 최연소였다. 2009년 인민해방군 건국기념일에 인민해방군 퍼레이드 총지휘를 맡았다. 2010년 7월 19일 상장으로 진급했다. 2012년 10월 24일에 인민해방군 총참모장이 되었는데 베이징군구 사령원이 총참모장으로 승진한 것은 최초이다.
1951년생으로 한국군 최선임인 최윤희(1953년생)나 미군 최선임인 마틴 뎀프시(1952년), 자위대 최선임인 이와사키 시게루(1953년)보다 약간 연상이다. 중국군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60대 후반의 장교들이 현직에서 근무하는 일이 많았으나 2010년대 들어서는 서방세계의 군대처럼 제복군인 최선임을 60대 초반으로 낮추고 있다. 80대 현직이 있는 북한군과 비교하면 이래저래 군 현대화에 박차를 가하는 중. 다만 이는 어디까지나 지휘관, 참모 등의 보직에 해당하는 얘기며 정치장교나 중국 공산당 위원회 소속의 장교엔 아직도 70대들이 있다.
후진타오의 심복으로 베이징군구 사령원에서 최초로 총참모장이 된 것도 후진타오가 밀어준 덕분으로 보고 있다. 시진핑과 동향이기도 하고. 면직된 후에 비슷한 시기에 같이 활동했던 장성들이 기율당국의 조사를 받고 자살하는 등의 사태가 일어나고 있어 그 역시 앞으로 지위가 안정적일지는 미지수다.
결국, 2018년 1월 9일, 궈보슝과 연관된 뇌물수수 혐의로 낙마하고 군 검찰에 이송되어 조사 중이라고 한다...

결국, 2019년 3월 무기징역에 전재산 몰수형이 선고되었다.
2017년 8월 리쭤청에게 연합참모부 참모장을 이임했다.

2. 여담


[image]
2013년에 정승조 합참의장과 만났다.

[1] 시진핑도 산시성 출신이다.[2] 서북부의 신장위구르 지역의 군구로 중국군 내에서는 상당한 격오지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