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구
1. 개요
軍區. Military district. 특정 지역에 따라 군의 권한을 독립적으로 배치하는 것을 말한다. 일반적으로는 군령권보다는 군정권을 뜻할 때가 많다. 군구는 사실 육군의 작전과 관련이 깊고 해군은 비슷한 해구(海區, Naval District)를 나누기도 하는데 미 해군이 그렇다. 전구(戰區, theater)와는 다르다.
2. 대한민국
50~80년대에 5개의 군관구사령부가 존재했다.
군구 = 관구 = 군관구 모두 Military district로 같은뜻이지만,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후방을 담당하는 제2야전군사령부의 관할지역을 5개로 나누는것뿐이라서, 규모나 권한이 아래 나라들과 비교하면 적었다.
3. 중국
옛날엔 군벌들이 땅을 갈라 싸웠고 대륙 시절의 중화민국도 군구를 뒀다.
인민해방군 초기에는 군구별로 따로 노는 경향이 강했고 이점은 특히 인민해방군 초기에 두드러졌는데, 각 군구의 전신이었던 인민해방군 야전군들은 펑더화이, 린뱌오, 류보청, 천이 등등의 신화적인 지휘관들이 지휘하고 있었다. 야전군 사령관들은 계급이 도입되었을 때 모두 원수에 오를 정도였다. 이들은 자신의 부대를 1930년 초반부터 무려 20여년간 계속 지휘해 왔고, 수백명에 불과하던 자신의 부대를 국공내전 말기에는 각각 100만명이 넘게 성장시켰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을 중심으로 한 야전군의 장교단은 당이 파견한 정치장교마저도 모두 개인적인 인맥으로 뭉쳐있었다. 류보청의 정치장교였던 덩샤오핑이 계속 류보청을 옹호한 것이 유명한 예. 마오쩌둥은 항상 이들을 경계했고, 결국 문화대혁명 당시 이들을 모두 숙청하거나 실각시켰다. 특히 펑더화이는 국공내전 및 한국전쟁에서 두각을 나타냈고, 워낙 군 인맥이 두터웠기 때문에, 펑의 실각 후 군내에서 그 인맥들이 대부분 쫓겨나서 감방에 가거나 삽질을 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공군을 지배하던 국방장관 린뱌오가 쿠데타를 벌이려다 실패한 후, 그의 왕국이었던 공군 장성들의 대부분이 연루유무에 관계없이 감방에 갔다.
실제로 천안문 사건 당시, 베이징을 지키는 베이징 군구의 병력이 출동하여 천안문의 대학생 시위대를 진압했어야 정상이지만, 베이징 군구 사령관이 출동을 거부하여 진압이 불가능해지자 다른 군구(지난군구)의 협력을 받아 진압했다는 이야기도 있다.[1] 하지만 실제로는 베이징군구가 출동하지 않은 것은 군구 사령관의 출동거부도 있지만 사실 사령관이야 교체하면 그만이라서 결정적 이유는 아니고 이때만 해도 중국의 군구는 보통 해당 지역출신들로 병력 보충이 이루어졌는데 베이징군구 소속군인들은 말 그대로 베이징 출신이 대부분이라 자신의 가족들이 살고 있는 베이징의 시위진압에 소극적이라 여겨졌기때문에 선양 군구(위에는 지난군구라고 하지만 실제 출동한 병력은 선양군구였다) 소속병력을 동원해 시위를 진압했다.
군구사령관이 아무리 강력해도 원래 공산국가들의 국가가 다 그렇듯이 정치장교의 파워가 막강해서 저렇게 대군벌처럼 행세할 수 있었을 때는 중화인민공화국 초반에 린뱌오나 펑더화이 레벨의 전설의 레전드적인 건국공신일때나 가능했다. 현재는 중국군의 중앙집권화와 통제 수준이 높아지고 장교들도 서방국가처럼 순환 근무가 일반적인데다가 군구사령관들도 계속 순환근무를 하기 때문에 군구사령관의 파워는 예전과 같지 않다.
군구제는 중국군 뿐만 아니라 국토가 넓은 러시아도 쓰는 것으로 이는 국경선이 넓은 중국 접경지역의 주적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소련은 그래도 동유럽이라는 완충지대가 있었지만, 중국은 건국 초기부터 주변 나라와 사이가 나빴거나 후에 나빠졌기 때문에(...), 이들을 모두 대비하여야 했다.
3.1. 7대 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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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공내전 말기에 500만명의 대군을 보유하게 된 인민해방군은 각 성에 군구를 설치하고 병력을 나누어 배치했다. 군구제가 설치될 1950년대는 중국의 교통수단이 마땅치 않았기 때문에 병력수송을 제대로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때는 각 성(省)에 군구가 설치되었다. 국공내전 이후에도 중국 대륙내에서는 국민당지지 유격대나 잔당들이 출몰했고, 이들에게 대응하기 위해서는 각성에 상주병력이 있어야 했다. 하지만 1958년까지는 대륙내에서 중공정권에 반대하는 세력은 모두 소탕되었고, 이어 병력을 400만으로 감축함에 따라 각 성에 설치되었던 군구는 계속 통합된다.
1985년 다시 군병력 100만을 감축하면서 18개 집단군을 크게 중국 영토를 7등분하여 각각의 지역에 군구에 2~3개의 집단군을 두는 식으로 군을 세분화시켜 놓았다. 예전 중국의 군구는 일곱 개로 선양, 베이징 시, 란저우, 지난, 난징, 광저우, 청두였다.
난징군구는 대만이 주적, 청두 군구는 인도가 주적, 광저우 군구는 베트남이 주적, 선양, 란저우, 베이징 군구는 러시아가 주적, 특히 선양군구는 유사시 한반도 북부에서 한국군도 상대해야 하기 때문에[2] 각 군구마다 전략적, 전술적 교리가 다르고 이에 따라 무기 체계도 다를 수밖에 없다.
대체로 공군과 해군이 강력한 대만과 일본을 상대하는 난징군구는 J-10, J-11과 같은 최신형 전투기와 방공 구축함이 우선배치되고 있다. 요즘 난징군구는 타군구에 비해 전투력이 점점 올라가는 듯하다. 중국 전체 항공전력의 절반이 넘는 4세대급이 배치되어 있고 공군 최신 항공기들은 전부 이쪽으로 몰리는 듯하다. 청두 군구는 히말라야 산맥에서 인도군과 국지전을 치르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3] 산악부대 (제52, 53 산악여단)와 헬기강습부대가 배치.
선양군구는 유사시 한국군을 상대로 한 북한 지역에서의 공격 임무 수행이나 북한 정권교체 혹은 러시아군을 상대로 한 만주에서의 방어전에 투입되어야[4] 하며 최종적으로는 베이징군구, 지난군구와 합쳐 한반도와 러시아 극동 지역을 장악하는 게 목적이기 때문에 기갑부대의 비율이 높다. 실제로, 만약 북한에서 모종의 사태가 나면 중국에서 선양, 베이징, 지난 군구와 이에 배속된 중국 해군 함대가 출동할 것이라고들 한다. 실질적으로 이들이 전장에 투입할 수 있는 60~80만 병력이 위협이 된다는 것이다.[5]
그러나 아무리 군구제를 하더라도 핵무기를 관장하는 로켓군은 당연히 중앙군사위원회의 직속 통제하에 있다. 핵무기는 매우 정치적인 것이기 때문에, 야전사령관이 군사적 상황만을 고려해 전술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헬게이트를 열수도 있기 때문에, 군구가 마음대로 사용할 수 없다. 특히 미국이나 러시아를 상대로 각 군구가 핵을 마음대로 쓸 경우 어떤 사태가 벌어질지는 너무나 뻔하니 중국군은 다른 건 몰라도 핵은 철저히 통제한다.
2015년 다시 군병력을 감축하면서 5대 전구로 줄어들었다.
4. 독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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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제국 시절엔 이랬지만 현재 독일 연방군은 뮌헨, 킬, 마인츠, 에어푸르트 네 곳의 군구를 두고 있다.
5. 인도네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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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군은 광범위한 여러 섬에 인구가 분산된 섬나라라서 군구를 둔다.
6. 폴란드
폴란드군은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다섯 곳, 1921년부터는 열 곳의 군구를 뒀다. 1999년부터는 두 곳으로 통합했고 2011년에 군구를 폐지했다.
7. 러시아
땅이 워낙 넓은 탓에 군구를 둘 수 밖에 없다. 러시아는 넓은 영토 때문에 군종에 방공군과 전략로켓군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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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제국 시절의 군구.
소련군은 상황에 따라 16-17곳의 군구를 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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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이후 러시아는 네 곳의 군구를 유지하고 있다. 군구의 위치와 대략적인 임무는 다음과 같다.
서부군관구:파란색
남부군관구:갈색.
중부군관구:연두색
동부군관구:황토색
8. 영국
영국군은 군구라고 딱히 나누지는 않지만 영국군 국방참모본부의 명령체계를 볼 때 런던과 세 곳의 사단으로 나뉜다. 2사단은 스코틀랜드와 북아일랜드와 북잉글랜드, 4사단은 동(남)잉글랜드, 5사단은 웨일스와 서잉글랜드를 맡는다. 그외에도 해외 주둔 영국군도 따로 관리한다.
9. 베트남
베트남군은 여덟 곳의 군구를 둔다.
10. 미국
미국은 한때 군구를 뒀으나 현재는 통합군사령부를 활용하고 있다. 그런데 이 통합군사령부는 미국을 몇갈래로 나누는게 아니라 '''전세계를 몇갈래로 나누는 형태'''(...)
[1] 당시 베이징 위수구역 담당 제38집단군 사령관인 쉬친셴(徐勤先) 중장은 진압명령을 받자 "'인민해방군은 인민에게 총부리를 돌릴수 없다"'며 출동을 거부했다. 그는 바로 지위해제된후 명령불복종죄로 군사재판에 회부되었고, 서방에서는 사형에 처해졌다는 보도가 있었으나, 후에 밝혀진 바에 의하면 5년형을 받고 이후 스자장시에 거주지 제한조치에 취해졌다고 한다. 사건 20여년후 홍콩언론인 <빈과일보>가 수소문 끝에 그를 찾아가 인터뷰했는데, 그는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 다시 그때로 되돌아가도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했다.[2] 미 지상군 증원병력도 고려하긴 하겠지만 이 시점에 이르면 선양군구 혼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므로 논외.[3] 히말라야에서 자주 일어나는 국경분쟁 정도는 청두 군구 혼자서 충분히 감당할수 있지만, 전면전 상황이면 어차피 청두 군구 혼자서 해결할 문제가 아니다. 다만 중국-인도 양국은 가끔씩 국경분쟁으로 자존심 싸움을 하기는 하지만, 전면전 상황으로 번지는 것은 굉장히 꺼린다.2020년에도 화기를 쓰지 않은 격투로 수십명이 사망했지만 (인도군이 여러 중국군의 흉기들을 공개하기는 했지만, 현지 상황을 보면 해발 6000미터 넘는 산악지역에서 몸싸움을 하다가 추락사했을 가능성이 높다), 전면전으로가지는 않았다.[4] 러시아의 지상전력이 중국군 전체 전력보다 앞서며, 특히 주 상대인 극동군관구는 러시아군에서도 서부군관구보다 2선급 부대 취급이지만 중국군의 선양군구보다 전체 전력에서 앞서는 부대이다. 방어까지 불가능한 건 아니어서 중국이 선제공격에 나서기는 좀 어렵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또한 러시아의 가혹한 환경과 긴 작전 종심을 생각하면 러시아 침공에 투입될 병력은 러시아에 비해 장기간에 걸쳐 압도적 우위를 확보해야 하므로(나치 독일은 이 점을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에 패했다) 더욱 그렇다.[5] 최대로 잡을 경우 이 3개 군구에 다른 군구 병력도 일부 차출하여 최대 8~10개 합성집단군이 투입될 것으로 예상된다. 2020년대 이후 기준으로 한국 지상군 현역 병력의 두 배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