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드로 파블로 쿠친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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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dro Pablo Kuczynski Godard, 1938.10.3 ~

1. 개요


페루의 경제학자, 정치인으로 95대 페루 대통령직을 역임했지만 뇌물수수혐의로 알베르토 후지모리 이후로 오랜만에(...) 불명예스럽게 대통령직에서 퇴진하는 기록을 남겼다. 2014년에 창당된 변화를 위한 페루인(PPK) 소속이다.

2. 생애


리마에서 태어났다. 성씨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폴란드인의 후손이다.[1] 다만 모친은 프랑스계이고.[2] 가계는 여기서 볼 수 있다.
영국미국에서 유학했으며, 1967년 귀국한 이후에는 중앙은행에서 일했으나 이듬해 군부 내 좌파세력이 벨라운데 대통령이 개혁을 제대로 추진하지 못하고 미국 석유회사에게 끌려간다는 이유로 쿠데타를 일으키면서 미국으로 망명해야만 했다.

3. 정치 활동


1980년 페르난도 벨라운데 대통령이 복귀하자, 쿠친스키는 에너지자원부 장관으로 등용되었으나 2년 만에 사임했다. 이유는 미국으로 돌아가서 다시 개인 사업에 몰두하고 싶어서였다고. 그러나 2016년 대선 당시 이는 사실이 아니며, 사실은 '''공산주의자에 의한 암살 미수 때문'''이었다고 밝혔다. 사실 이 당시 페루는 외채문제와 초인플레이션 문제가 겹쳐서 경제상황이 나빠서 민심이 흉흉했고, 마오주의 공산반군 빛나는 길이 이러한 혼란상을 틈타 지방에서 세력을 확장했기때문에 여러모로 치안이 좋지않았던때였다.
이렇게 정치계에서 발을 떼는 듯 싶었으나, 2000년 정계 복귀를 선언했으며, 알레한드로 톨레도 당시 야권 후보를 돕는 일을 하였고, 이러한 인연으로 재무장관직과 총리직에 오르게 되었다. 그러나 대통령직에 오른 톨레도의 인기는 임기내내 바닥을 기었고 그래서 후에 결별했다.

4. 대선 출마


2011년 대선에 출마했으나, 3위를 기록하여 낙선했다. 참고로 좌파 성향으로 쿠친스키와는 도무지 맞을 수 없었던 알란 가르시아 당시 대통령의 지지를 받았다.
이 사이 변혁페루당을 창당했고, 2016년 이 당의 후보로 다시 출마한다. 1차에서 인민권력당게이코 후지모리에 밀려 2위를 기록했으나, 막판에 알베르토 후지모리 시절에 있었던 각종 인권 침해 전적이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그 딸인 게이코의 지지율에 악영향을 주었고, 이어 좌파 성향으로 출마한 베로니카 멘도사가 공개적으로 쿠친스키 지지를 선언하면서[3], 가까스로 과반득표를 해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참고로 당선 당시 '''78세'''로, '''페루 최고령 대통령'''으로 기록되었다.

5. 대통령


대통령 취임 직후, 쿠친스키는 페루 원주민들의 권리를 향상시키는데 주력했으며, 구 정권이 쌓아 놓은 적폐를 청산하는 것을 목표로 내세웠고, 초기 몇개월 동안은 지지율이 70-80%를 넘나들며 잘나갈듯했다.
그러나 인민권력당이 원내 과반 의석을 차지한 1당이었기 때문에 국정 운영에 사사건건 발목이 잡혔고, 그가 추진하던 개헌도 난항을 겪고 2015년 원자재값 폭락으로 촉발된 경기침체도 지속되며 지지율이 급락했다. 게다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브라질 오데브레시사로부터 뇌물을 받았다는 의혹까지 사면서 탄핵 직전까지 가기에 이르렀는데...
'''아슬아슬하게 탄핵을 모면했다.''' 허나 원인이 인민권력당 소속 의원 일부가 기권표를 내던졌기 때문이었다고. 참고로 저 주도자가 겐지 후지모리로 게이코의 동생이다. 이후로 겐지는 인민권력당에서 출당되었다.
그런데 이후에는 후지모리를 사면하는 바람에 또다시 욕을 먹고 있는데, 일단 결론부터 말하자면 명백한 '''공약 파기'''이다. 당장 대선 당시만 해도 "후지모리를 사면할 일은 '''절대로 없을 것'''"이라고 한 것이 누구인데, 지금 와서는 여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기어이 사면을 강행했다. 물론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탄핵을 주도한 인민권력당의 반대를 잠재우려는 수단이라고 주장하기도 하나, 진짜 이유는 아마 본인만이 알 듯 싶다.

5.1. 사임


하지만 이후로도 여당이 사실상 등을 돌리는 등 거기에다가 추가로 뇌물을 받았다는 증언이 터져나오면서 다시 탄핵위기에 몰렸고 야당은 물론이고 여당 의원 상당수조차도 후지모리 사면에 대한 반발로 탄핵에 동참할것이라는 예측까지 나오는 판이 되었다. 급기야 1차 탄핵시도 당시에 쿠친스키 대통령측이 켄지 후지모리 의원을 매수한 동영상이 공개되자 쿠친스키 대통령은 결국 버티지 못하고 탄핵표결을 하루 앞두고 스스로 사임했다. 페루 현지와 중남미 각국에서는 금권, 관권선거를 통해 어찌어찌 3선에 성공했지만 야당의원을 매수한 동영상이 공개되면서 여론이 악화되자 결국 사퇴서를 제출하고 일본으로 도주한 알베르토 후지모리의 데쟈뷰를 보는듯하다라는 말이 나온다. 그 알베르토 후지모리의 딸이 탄핵을 주도하고 이를 버티지 못해 사퇴한 건 아이러니. 퇴임하자마자 페루 검찰로부터 18개월 출국금지명령 조치를 받는 등 영 좋지 않은 상황에 놓여있다. 알베트로 후지모리에서부터 PPK까지 페루의 모든 생존한 전직 대통령들이 감옥행에 가거나 감옥에 갈 위기에 처해있다는 점에서는 동병산련격이기는 하지만

6. 여담


꽤나 동안이다. 당장 2021년부로 나이가 '''83세'''가 되는데도, 얼굴을 보면 그렇게 늙어보이지 않는다.

[1] 부친이 폴란드의 포즈난 출신인데 독일령이던 시절 나치가 집권하자 탄압을 피해 페루로 망명을 온 것이 시작이었다. [2] 모친 쪽 친척 중에 전설적인 영화 감독인 장 뤽 고다르가 있다![3] 이 당시 페루의 좌파 계열 정당들은 상황이 안 좋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지모리는 안 된다"는 심리에서 차악선택을 한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