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디슨 스퀘어 가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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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뉴욕 맨해튼에 자리잡은 자칭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경기장[3] . 실제로도 꽤 유명한 곳이다.
1968년에 개장했으며, 이전의 매디슨 스퀘어 가든들과 구분해서 부를 때에는 매디슨 스퀘어 가든 IV로 불리기도 한다. NBA 뉴욕 닉스, NHL 뉴욕 레인저스의 홈 경기장이기도 하다.[4] 그리고, 2017년까지 WNBA의 뉴욕 리버티가 홈구장으로 사용했으나, 2018년부터 5,000석 규모의 웨스트체스터 카운티 센터로 홈구장을 이전했다. 웨스트체스터 카운티 센터는 닉스의 G리그 구단인 웨체스터 닉스의 홈구장이기도 하다.
복싱계에서는 현재 라스베이거스에 위치한 MGM 그랜드 가든 아레나와 함께 미국의 양대 복싱 성지로 손꼽히며, 또한 WWE가 지역구 단체이던 시절 근거지로 레슬매니아 1이 여기에서 열리기도 했으며 그 이전에도 WWE에서 가장 큰 이벤트는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열리는 이벤트였다. 그래서 WWE의 성지라는 소리를 듣고 있으며, 레슬매니아 10, 레슬매니아 20 등등 열자릿수의 시작하는 숫자의 레슬매니아는 여기서 열렸지만 30회는 메르세데스-벤츠 슈퍼돔에서 열리게 되어 전통이 깨졌다.
때문에 현재는 WWE의 PPV는 전혀 열리지 않는다. 그 이유는 엔트런스(등장로)가 너무 짧아서 대형 이벤트에서는 전용 등장로를 설치[5] 하거나, 그 짧은 등장로를 이용할 수[6] 밖에 없는 구조상 문제점과, 그나마 최근에 지어진 경기장들과 비교하면 '''규모가 너무 작은 점''' 때문에, 흥행에 큰 기대를 줄 수 없기 때문이다.[7] 그래도 WWE가 뉴욕 지역을 기본으로 성장했다보니 그 상징성은 무시하지 않고 있으며, 대신에 뉴욕의 다른 경기장인 바클리스 센터를 뉴욕 무대의 중심점으로 잡은 듯 하다.[8] 그래도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아예 개최하지 않는 건 아니고 가끔씩 TV쇼나 라이브 이벤트(하우스 쇼)를 개최한다.
종합격투기계와는 인연이 없었는데, 1997년부터 뉴욕에서의 종합격투기 개최를 금지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UFC의 지속적인 로비 끝에 결국 개최를 허가받으면서 이곳에서 UFC 205가 열리게 되었다. 역사적인 날이었던 만큼 해당 대회는 코너 맥그리거 등 초호화 스타들을 등장시켰다. 이후 벨라토르 역시 180 이벤트로 이곳에서 경기를 열게 되었고, 역시 초호화 대진으로 구성되었으며 표도르 예밀리아넨코가 등장했다.
뉴욕의 관문인 뉴욕 펜실베이니아역 위를 덮고 지어졌기 때문에 매디슨 스퀘어 가든 지하에 뉴욕 펜역이 있다. 고풍스럽기로 유명했던 뉴욕 펜역을 부수고 신역사와 함께 지어지긴 했는데 결국 매디슨 스퀘어 가든 옆의 우체국 건물에서 우체국을 내쫒고 우체국 건물을 새 펜역으로 리모델링하기로 했단다(...)
1968년 개장 때부터 뉴욕 닉스와 뉴욕 레인저스의 홈구장으로 사용된 굉장히 유서깊은 구장이다.[9] NBA에서는 농구의 성지로 대우받고 있으며, 수많은 슈퍼스타들이 이 곳에서 리그의 기록들을 새로 세웠다. [10]
구단 운영이 엉망진창인 뉴욕 닉스의 유일한 장점이라고 불리는 곳이기도 하다.(...)[11]
NBA에서 가장 운영을 못하는 빅마켓 구단 닉스와 무려 54년 동안을 우승의 갈증에 시달리고 그 이후 또 24년을 우승의 갈증에 시달리고 있는 레인저스의 홈구장이라서 그런지 챔피언결정전이 자주 열리지 못한 구장이다. 이 구단들은 창단 때부터 MSG(지금은 허문 첫번째 MSG)에서 홈경기를 치르고 있는만큼 뉴욕팬들의 몸에는 사리가 쌓여간다. 그런 닉스와 레인저스가 팬들을 동시에 기쁘게한 해가 1994년 딱 한 해. 닉스는 1973년 우승 이후 무려 21년만의 파이널 진출이었고 레인저스는 1979년 준우승 이후 15년만의 스탠리컵 파이널 진출이었다. 닉스는 로켓츠에게 패했지만 레인저스는 데블스에게 승리했다.[12]
특유의 실내지붕이 매우 고풍스럽고 아름다워 경기장 실내 사진이 꽤 예쁘게 찍히는 구장이기도 하다. 닉스 경기 때는 불빛을 다른 구장들보다 조금 더 흐리게 틀어놓는 지 닉스 경기의 스크린샷은 다른 팀들의 사진과는 다른 올드한 과거 NBA 초창기 시대의 멋진 느낌이 나고 레인저스는 골대에서 천장을 바라보는 각도로 사진을 자주 찍는데 역시 지붕의 디자인의 절묘한 조화로 매우 아름다운 사진이 나온다.
1970년대 뉴욕 닉스의 전성기를 그리는 다큐멘터리나 서적이 나오곤 하는데 그 중 가장 유명한 제목 중 하나가 '''When the Garden was Eden''' (가든이 낙원이었을 때)다. 닉스팬들의 40년이 넘어가는 오랜 기다림을 짐작케하는 제목.[13]
2. 대중매체에서의 등장
- 2016년에 발매된 게임 더 디비전에서 등장한다. 게임 본 시나리오의 첫 인스턴스 미션의 무대. 이 시점의 매디슨 스퀘어 가든은 넓이를 이용하여 임시 구호소 겸 야전 병원으로 쓰이고 있다. 매디슨 스퀘어 가든을 홈구장으로 쓰고 있는 뉴욕 닉스와 뉴욕 레인저스는 '뉴욕 채리엇츠'와 '뉴욕 숏보우즈'라는 이름으로 패러디되었다. 홈구장은 숏보우즈 경기를 앞두고 있었던 듯 전광판에서는 숏보우즈가 나온다.
- 영화 록키 시리즈 중 하나인 록키 3에서 록키 에게 무자비한 KO 패를 안겨준 클러버 랭 과의 세컨드 매치 장소로 나온다. 80년대 매디슨 스퀘어 가든의 외부 모습과 내부 모습을 볼수 있다.
3. 투자 분석
프로 농구/하키 스포츠 경기에서 유명 아티스트 콘서트까지 한자리에 – 매디슨 스퀘어 가든
[1] 콘서트시 최대 20,000명 수용 가능.[2] 현재 화폐가치로는 8억 3,300만 달러.[3] World's Most Famous Arena.[4] 여담이지만 구장마다 고유의 이름들이 있었던 과거와 달리 현재는 대부분의 경기장들이 스폰서 이름이 붙어서 스폰서가 바뀌면 경기장 이름도 바뀌어서 각 구장만의 아이덴티티가 옅어진 감이 있다. 과거엔 보스턴 셀틱스의 전통이 숨쉬는 Boston Garden, 레이커스의 역사를 함께한 The Forum(1988년부터 2003년까지 Great Western Forum)으로 불림), 포틀랜드의 Rose Garden 등 멋들어진 이름들이 있었으나, 셀틱스와 레이커스의 새 경기장은 각각 돈을 주고 명명권을 산 TD Bank와 스테이플스 사의 이름을 달고 있으며, 로즈 가든은 모다 헬스 사가 명명권을 획득한 이후 모다 센터로 이름이 바뀌었다. 프로스포츠가 엄청난 돈이 되는 현재 막대한 돈벌이인 명명권 판매를 포기할 팀은 없으니 현재 프로팀의 경기장들은 대부분 이렇게 스폰서의 이름을 달고 있다. 이런 와중에 매디슨 스퀘어 가든은 유구한 역사 동안 그 이름과 아이덴티티를 유지하고 있는 거의 유일한 구장이다. 물론 다른 구장들과 달리 공연장으로 더 가치가 높은 가든 자체의 브랜드 가치가 엄청나기 때문에 앞으로도 이름이 바뀔 일은 없을 것이다.[5] 레슬매니아 20, WWE 서바이버 시리즈(2011) 이외.[6] 레슬매니아 1, WWF 섬머슬램(1988), WWF 섬머슬램(1991), 레슬매니아 10, WWF 서바이버 시리즈(1996), WWF 섬머슬램(1998), WWF 로얄럼블(2000), WWE 서바이버 시리즈(2002), 로얄럼블 2008[7] 실제로 레슬매니아 19에서는 5만명 규모의 관중이 입장했지만, 레슬매니아 20에서는 역사상 가장 성대한 레슬매니아라는 부제에 걸맞지 않게, 관중 규모가 단 18.000명에 불과하다.[8] RAW 25주년 이벤트 등 굵직한 흥행을 바클리스 센터로 옮겼다.[9]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의 오라클 아레나(1966) 다음으로 오래된 구장.[10] 문제는 그 기록을 세운 선수들이 대부분 원정팀 선수들이다. 그 말은 즉 닉스가 이 기록들이 세워질 때 마다 굴욕을 먹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메디슨 스퀘어 가든 내부의 기념관에는 이런 굴욕적인 기록들도 모두 보관되어 있다. 대인배.[11] 뉴욕 닉스는 전세계 구단 가치에서는 농구 분야 1위에 전체 7위일 정도로 거대한 구단이지만 운영평가는 NBA 30개 팀 중에 중위권이다.[12] 사실 팀으로서 닉스의 리즈시절은 두말할 나위 없이 두 차례 우승을 차지하고 MVP(윌리스 리드)를 배출했던 70년대였다. 리드 뿐 아니라 깔끔하고 세련된 플레이와 패션센스로 유명한 월트 "클라이드" 프레이저, 화려한 플레이로 유명한 얼 "더 펄" 먼로, 건실하고 영리한 롤플레이어였던 "달러 빌" 빌 브래들리 등 인기 있고 매력적인 선수들이 넘쳤다. 그러나 70년대의 NBA의 인기와 주목도는 80년대에 부흥을 겪고, 조던의 등장으로 인기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90년대와 비교도 되지 않았다. 이를 고려하면 사실상 닉스가 가장 주목받고, 사랑받았던 해가 바로 1994년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훗날 99년 결승에 올라갈 당시는 직장폐쇄 직후라 인기가 엄청나게 떨어진 상태였다. 게다가 당시 전성기 기량에서 꺾이긴 했지만 아직 슈퍼스타였던 패트릭 유잉은 오랜 라이벌인 시카고 불스를 당당히 꺾고 (비록 마이클 조던이 없었지만) 결승에 올라 또 다른 라이벌이자 대학시절에 결승전에서 자신이 패배시킨 적이 있는 하킴 올라주원과 맞붙었다. 심지어 당시 올라주원은 아직 전성기 기량이어서 당대 최강 레벨의 동서부 센터들이 결승에서 붙는다는 상징성도 있었다. (유잉이 한살 많고 무릎 문제로 전성기에서 더 일찍 내려왔다) 여러모로 매디슨 스퀘어가든이 가장 빛나던 시기.[13] 단순히 우승 전력일 뿐 아니라 70년대 닉스는 리그에서 가장 팀워크가 좋은 팀 중 하나로 팀 분위기가 매우 좋았다. 게다가 주장 윌리스 리드는 무난한 성격의 좋은 리더였고, 월트 프레이저는 "클라이드"란 별명에 걸맞게 항상 멋들어진 콧수염과 헤어스타일, 옷차림을 하고 다니는 멋쟁이였으며, 길거리 출신 얼 먼로는 서커스같은 플레이를 하는 개인기의 달인이었다. 한 마디로 당시 닉스는 팀원들 하나하나가 개성이 넘치는 멋진 팀이었다. 닉스가 이 정도로 각자 개성있고 매력적인 캐릭터들로 팀을 꾸린 적은 이 때를 제외하면 90년대 유잉시절 뿐인데, 이때는 인지도 면에서 불스에게 철저히 밀렸다. 여러모로 닉스의 리즈 시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