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트리올 스크류잡
1. 개요
[image]
Montreal Screwjob (영어)
Montreal Incident Le Montréal Screwjob (프랑스어)
WWE에서 각본상 승자없는 DQ로 예정된 경기에서 '''단체와 심판과 상대선수가 짜고 패하게 하여 논란이 된 사건.'''
숀 마이클스가 브렛 하트에게 샤프슈터를 걸고, 브렛은 반격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심판이 갑자기 경기를 종료시키고 숀 마이클스의 승리를 선언하며 황급히 숀 마이클스에게 챔피언 벨트를 던져준 뒤 줄행랑 친다(...). 격분한 브렛이 링 밖에 서서 뭔가 해명을 하려던 WWE 회장 빈스 맥맨에게 침덩어리를 걸쭉하게 내뱉는 장면이 유명하다.
그냥 쿨하게 져서 타이틀 내주고 떠나면 되지 않았냐는 의견도 있으나, 마지막 경기가 자신의 열성팬으로 가득찬 홈타운인 캐나다에서 열리기에 캐나다 팬들을 실망시키고 싶어하지 않았던 데다가, 상대는 브렛이 이를 갈던 숀 마이클스였으니 더더욱 응해줄 리 없었다. 또한 WCW로 이적하는 마당에 WWE에서 패하여 타이틀 잃고 가는 것보단, 'WWE 챔피언' 자격으로서 이적하는 게 향후 WCW로 이적해서도 자신의 몸값과 상품가치를 더 끌어올릴 수 있으니 브렛이야 패하지 않으려했던 것은 당연했다.
브렛은 누군가의 자격상실로 경기를 끝내고, 내일 RAW에서 내가 타이틀을 반납하도록 해 달라며, 내일 RAW에서 진실을 밝히는 것이 나을 것 같다고 요청했다. 하지만 WWE는 단체가 망할 수도 있는 절체절명의 상황이었고, WCW는 WWE를 확실하게 끝낼 수 있는 회심의 카드로 브렛을 빼왔는데, 이런 얽히고 설킨 선수와 단체간의 이권충돌로 인해 벌어진 참사였다.
물론 사적인 감정으로 벌어진 일은 아니었다. WWE 입장에선 '''WWF 서바이버 시리즈(1997)에서 타이틀 교체를 반드시 완수해야 했다.''' 사실 Raw는 그냥 TV쇼로서 스토리가 전개되는 연습게임 수준이라 승패가 크게 중요하지도 않고 시간 지나면 묻히고, '''진검승부는 PPV'''에서 열린다. 그러다보니 RAW에서 타이틀 반납하고 작별 인터뷰하고 떠나는 것은 물론, 설사 RAW에서 타이틀을 빼앗는다해도 큰 의미가 없다. '''WWE 타이틀의 권위를 지키려면 역사적인 4대 PPV에서 숀 마이클스로 타이틀 교체를 해야했으나''', 당시 브렛은 각본 조정 권한을 가지고 있었기에 강제할 수 없어 결국 희대의 스캔들이 벌어진다.
사건의 전말과 정황을 브렛 하트 시점에서 서술한 데이브 멜처의 칼럼.
데이브 멜처의 칼럼으로 사건의 진상이 알려졌으며, 당일 경기는 구독자 투표로 선정하는 레슬링 옵저버 뉴스레터 선정 1997년 올해의 경기 11위에 이름을 올렸다.
2. 발단
2.1. 브렛 하트의 이적
1997년, 10여년 이상 WWF에서 충성스러운 선수 혹은 챔피언으로서 그 힘을 다 해 준 브렛 하트도 계약 만료가 다가왔다.[1] WWF와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고 싶은 WCW에서는 WWF의 프렌차이즈 슈퍼스타 브렛 하트를 영입하려 하였고 WWF는 브렛 하트를 지키기 위해 필사적이었다.[2] 우선 WWF의 소유주인 빈스 맥맨은 브렛 하트에게 '''20년 계약'''을 제시하였는데 세부적인 내용은 처음 3년은 프로레슬러로 활동하면서 150만 달러의 연봉을 받고, 나머지 17년은 각본진, WWF 임원, 홍보대사 등 프런트 직책으로 활동하며 150만 달러보단 적지만 괜찮은 금액을 보장해주겠다는 내용이었다.
사실 이 제안 자체가 브렛 하트에게는 모욕일수도 있는 헐값이었다. 거기에 저 돈을 전부 주는것도 아니었고 빈스가 재정난을 언급하며 급한대로 주급 3만달러에 추후 WWF의 재정상태가 나아지면 주겠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빈스는 불과 1년만에 스톤콜드 스티브 오스틴에게 연봉 800만 달러 이상을 지불하고 다음해 1000만달러의 연봉을 안겨준다.
WCW에서도 브렛 하트를 영입하기 위해 3년 계약에 총액 840만 달러를 제시하였고, 거기에 더해 1년 중 활동 기간을 최대 125일로 제한하는 매우 파격적인 계약을 제시했다.
하지만 브렛 하트는 돈보다는 WWF에 잔류하길 원했고 WCW와의 협상은 결렬됐다. 하지만 11월 1일[3] WCW의 부사장인 에릭 비숍은 다시 브렛 하트에게 '''거절하는 사람이 바보인''' 어마어마한 계약을 제시했다. 이에 브렛 하트는 빈스 맥맨에게 에릭 비숍의 계약 제시 내용을 알려주며 WWF에서 앞으로 자신이 맡게 될 역할과 구체적인 시나리오를 물어봤다. 이에 빈스 맥맨은 "1997년 11월, 12월, 다음 해 1월 PPV에서 숀 마이클스에게 세번 연속으로 패배하고 다음주 RAW에서 숀 마이클스를 상대로 승리를 거둬 일시적으로 월드 챔피언에 오른 뒤 1998년 3월 레슬매니아에서 오스틴에게 패배하여 챔피언을 내려놓는" 브렛 하트 입장에선 상당히 모욕적인 시나리오 내용을 제시했다. 브렛은 이런 빈스의 태도를 '''WCW로 이적해도 좋다는 선언'''으로 받아들였고 결국 WCW로의 이적을 결심한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이 시기부터 빈스 맥맨이 스크류잡을 계획하고 있었으며 이 사건을 이용해서 자신을 악덕 기업가라는 이미지로 만들고, 자신과 스티브 오스틴이 대결하는 각본을 통해 스티브 오스틴을 불의에 대항하는 절대적인 인기 스타로 띄어주고 WCW와의 대결에서도 반전을 꾀하는 시나리오를 시행하려고 했다는 음모론 아닌 음모론이 있다. 실제로 몬트리올 스크류잡 다음날 RAW는 오랜만에 WCW의 Nitro 보다 시청률이 높았고 WCW와의 대결에서 최종적으로 승리하는 발판이 되었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심지어는 브렛마저도 함께 짜고 친 연극이라는 음모론도 나돌 정도다.
2.2. 갈등의 증폭
몬트리올 스크류잡이 벌어진 1차적인 이유는 브렛이 챔피언을 내려놓는 것을 거부했다는 것이다. 빈스는 브렛 하트가 WCW로 이적할 계획이라는 말을 듣고 WWF 챔피언 상태에서 브렛이 이적하는 것은 단체의 이미지 악화에 일조할 것이라 생각하여[4] 브렛의 마지막 PPV이자 '''브렛의 모국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열리는''' 서바이버 시리즈에서 숀 마이클스에게 패할 것을 요청했지만 브렛은 조국인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절대 숀에게 챔피언을 내줄 수 없다고 주장했다.[5]
당시 브렛은 오스틴과의 대립을 통해 턴힐하면서 오스틴같은 반사회적인 악당을 정의의 사도라며 응원하는 미국 관중들을 디스하고 새로 결성한 하트 파운데이션 멤버들[6] 과 함께 캐나다 국기를 들고 다니는 마치 캐나다 대표와 같은 캐릭터를 수행했다. 그래서 특이하게 악역임에도 유럽과 캐나다에서는 환호를 받았고 미국에서는 어마어마한 야유를 받는 보기 드문 상황이었다. 한편 숀은 차이나, 헌터 허스트 헴즐리, '래비싱' 릭 루드와 D-X를 만들며 캐나다 국기로 코를 후비고, 자신의 사타구니에 비비는 퍼포먼스로 캐나다인에게 강한 어그로를 끌고 있는 상태였다. 즉, 1997년도의 서바이버 시리즈는 브렛 vs 숀이라는 구도를 넘어 하트 파운데이션 vs D-X, 나아가 캐나다 vs 미국이라는 국가대항전을 펼치는 듯한 분위기에 놓여 있었다.
게다가 이 당시 써니 사건 등의 여러가지 요인으로 브렛과 숀의 감정이 최악으로 치달아 있는 상태였기에 브렛은 차라리 스티브 오스틴에게 패배한다면 모를까 숀에게는 질 수 없다고 버텼다.[7] 거기에 더해 브렛 하트는 당시 자신이 갖고있던 '''각본 조정 권한(Creative Control)'''[8] 까지 꺼내들었다. 서바이버 시리즈에선 타이틀 방어를 하되, 다음날 RAW에서 타이틀 반납식을 가지며 벨트를 넘겨주는 스토리를 하자는 제안을 한 것. 브렛의 각본 거부권이라는 정당한 권한으로 대응을 하자 빈스는 브렛의 제안을 들어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빈스 맥마흔을 비롯한 WWE 각본진들은 우려에도 불구하고 '''일단은 브렛의 의견대로''' 진행하는 쪽으로 합의를 보며 이벤트가 개최될 날을 앞두게 되었다.[9]
2.3. 2류단체로 전락하게 될 상황에 놓인 WWE
'디펜딩 챔피언' 브렛하트가 마지막 방어전에서 DQ로 타이틀을 지켜낸 후, 타이틀을 반납하고 WCW로 떠난다면 WWE는 확실히 2류단체로 공식 인증되는 셈이니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3년 전 1994년 레슬매니아 10에서 전설의 사다리매치인 숀 마이클스 VS 레이저 라몬의 스토리라인이 '리얼 인터콘티넨탈 챔피언을 가리자!'였기에 더더욱 난감한 상황이었다.
당시 인터콘티넨탈 챔피언 숀 마이클스의 공백으로 토너먼트가 열려 레이저 라몬이 결승에서 릭마텔에게 피니쉬인 아웃사이더 엣지를 작렬시킨 후 챔피언이 된다. 하지만 후에 숀마이클스가 복귀하여 문제가 된다. '''숀 마이클스가 내가 진짜 챔피언이고 넌 가짜 챔피언이라고 도발하며 갈등이 생긴 것이다.''' 실제 당시 숀 마이클스 역시 인터콘티넨탈 챔피언 벨트를 매고 다녔으며, 레이저 라몬을 '짝퉁 챔피언'이라고 조롱했었다.
레슬매니아 10에서 WWE 공식 사다리매치가 처음으로 열리게 된 배경이 그러했다. 숀 마이클스의 벨트와 레이저 라몬의 벨트 두개를 천장에 매달아놓고 먼저 따내는 자가 '진정한 인터콘티넨탈 챔피언'이라는 것이었다. 이 경기는 준메인 이벤트로 열렸으나, 당시 메인이벤트였던 브렛 하트 vs 요코주나는 묻힌 반면, 준메인이었던 이 경기는 정말로 PPV다운 엄청난 명경기였기에 전문가들에게도 높은 점수를 받고 전설에 등극했다.
게다가 잠깐 써먹었던 각본도 아니고, 전 PPV였던 WWF 로얄럼블(1994)에도 나올 정도로 상당히 오래 지속되었던 각본이었다. 로얄럼블의 인터콘티넨탈 타이틀전에서 레이저 라몬이 IRS를 상대했는데, 심판이 기절해있을 때 피니쉬인 아웃사이더 엣지를 먹이려던 찰나, 숀마이클스가 자신이 들고다니던 페이크 벨트를 들고 난입하여 벨트로 라몬을 후려치고, IRS가 승리한다. IRS는 링에 떨어져있던 숀마이클스의 벨트가 진짜 벨트인 줄 알고 그걸 들고 2단 코너에 올라가서 세레모니 하고 있던 찰나, 다른 심판이 진짜 벨트를 들고 올라와서 저건 가짜라고 하고, 그때 라몬이 세레모니 하고 있던 IRS의 뒤에 접근해서 바로 아웃사이더 엣지로 연결시켜 승리한다. 42분 15초에 자신의 벨트와 숀의 벨트 두개를 들고 세레모니 하는데, 화가난 듯 숀에게 니 벨트 내가 가지고 있으니 찾아가보라는 듯이 도발하듯 포효하고(예고편) 대망의 레슬매니아 10에서 사실상의 메인이벤트가 열리게 된다.
기억에 남는 명장면은, 혈투 끝에 승리한 레이저라몬이 테마곡이 장내에 울려퍼지는 가운데 비장한 리듬이 흘러나오는 후렴구에 세레모니로 '''사다리에 올라가 챔피언 벨트 두개를 양손으로 번쩍 들어올리는 장면이다.''' 1시간 19분 10초에 챔피언 벨트 두개를 양손으로 번쩍 들어올려 보일때 관중들의 함성이 엄청 커진다. 즉, 레이저라몬은 원래 챔피언이었던 숀마이클스를 이기고서야 비로소 관중들 앞에서 '진정한 인터콘티넨탈 챔피언'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문제는 하필 또 '''레이저 라몬을 짝퉁 챔피언이라며 조롱했던 숀 마이클스가 다음 WWE 챔피언으로 낙점된 상태였기에 WCW의 극딜이 예상되는 대목이다.''' '챔피언' 브렛하트를 제압하는데 실패한 숀 마이클스가 '라이벌' 브렛이 타이틀 반납하고 떠난 이후 토너먼트로 챔피언 벨트를 차지해봐야 '호랑이 없는 곳에 여우가 왕 노릇하듯' 위상이 그리 서지 않는다. 따라서 '''WCW가 브렛을 이용해 마음껏 WWE를 엿먹일 수 있는 칼자루를 쥔 상황이 될 뻔했다.''' 당시 WCW는 WWE 시절 밀리언 달러맨의 졸개였던 버질의 WCW 이름을 '빈센트'로 지었는데, 빈스의 본명이었다.(...)
몬트리올 스크류잡의 심판으로 유명한 '''얼 헤브너'''가 바로 이 로얄럼블 1994와 레슬매니아 10의 '리얼 인터콘티넨탈 챔피언' 각본에서도 활약했다. 로얄럼블 1994에서 라몬이 패했을 때, '''진짜 챔피언 벨트를 들고 뛰어올라온 심판이 바로 얼 헤브너'''였다. 그리고 대망의 레슬매니아 10에서도 승리한 라몬이 세레모니로 사다리에 올라가서 챔피언 벨트 두개를 번쩍 들어올릴 때, 밑에서 '''사다리 1단만 밟고 올라가 라몬의 승리를 선언한 심판도 얼 헤브너'''였다. 즉, 얼 헤브너도 PPV에서 타이틀 교체를 하지 못한 채로 브렛이 홀랑 WCW로 떠나버렸을 시에 어떤 극딜을 당할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상태였다는 것이다. 게임에서도 이 명경기가 재현되었는데, '''썸네일에서 사다리 아래에서 승리를 선언하는 심판이 몬트리올 스크류잡에 개입한 얼 헤브너'''이다.
게다가 '''WWE 챔피언 숀 마이클스를 이긴 브렛이 WCW에 가서 WCW의 프랜차이즈 선수인 골드버그나 스팅에게 털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브렛이 WCW에 가서도 WCW를 평정하고 디펜딩 챔피언이 된다면야 또 몰라도, WWE를 평정하고 WCW로 떠난 브렛이 거기서 WCW선수들에게 털린다면 이건 그야말로 WWE를 두번 죽이는 짓이다. 애초 WCW가 브렛을 대단히 아껴서 데려간게 아니고, 사실상 WWE를 무너뜨리려고 자금력을 바탕으로 다 끌어오던 시기였으니, WWE 챔피언 브렛을 이용해 WWE의 목줄 잡을 상황이 될 뻔했는데, WWE가 호락호락하게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결국 어찌보면 'WWE를 무너뜨리는 최후의 일격'과도 같았던 브렛 하트 이적을 WWE는 몬트리올 스크류잡이라는 희대의 스캔들로 승화시켜 레슬링팬들의 이목을 집중시킨 후 빈스는 대놓고 악덕사장 기믹으로 밀고나가 '''역카운터를 걸어버려 승리'''했는데, 이 과정이 너무 드라마틱해 애초 몬트리올 사건도 다 짠거 아니냐는 음모론까지 나왔다.
3. 사건 발생
당시 WWF 각본진들과 브렛 하트가 합의를 본 경기의 전개 과정은, 경기 막판에 심판이 쓰러져있는 상황에서 숀 마이클스가 브렛 하트의 피니시 무브인 샤프슈터를 브렛 하트에게 시전하나 브렛 하트가 곧이어 반격하며 역으로 숀 마이클스에게 샤프슈터를 시전하는 것이였다. 샤프슈터에 잡힌 숀 마이클스는 탭을 치며 항복을 하려하나 심판은 계속 쓰려져 있는 상태에서 브렛 하트가 심판을 일으켜 세우러 간 사이, 숀 마이클스가 기습적으로 피니셔인 스윗 친 뮤직을 브렛 하트에게 작렬하며 폴 카운트에 들어가고, 그 사이 브렛 하트의 형제들로 구성된 하트 파운데이션과 숀 마이클스의 D-X가 난입하여 경기가 알 수 없는 방향으로 전개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미리 상의를 하지 않았던''' 장면이 전 세계로 생중계되었는데, 쓰러져있어야 할 얼 헤브너 심판이 별안간 벌떡 일어나 탭아웃 하지도 않은 브렛 하트가 탭아웃을 했다는 판정을 내리고는 미친 듯이 도망간 것이다.[10] 경기가 끝나자마자 사태를 파악하고 분노한 브렛 하트는 링 근처에서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던 빈스 맥맨의 얼굴에 침을 뱉는다. 사건의 전말을 알고 있던 숀 마이클스는 화를 내는 척하며 타이틀을 들고 세레모니도 생략한 채 그대로 퇴장하며 이벤트가 종료된다. 이후 숀은 락커룸에서 브렛에게 눈물을 보이며 자신은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변명을 했다고 한다.당시 백스테이지 영상
숀 마이클스가 샤프슈터를 시전하는 것은 브렛이 구상한 장면이었는데, 팻 패터슨이 이를 승인함으로서 빈스가 스크류잡을 할 타이밍을 잡았다며 숀이 빈스를 비난한 적이 있다.[11]
이 사건을 놓고 숀과 친분이 있던 클릭 멤버들을 제외한 나머지 선수들은 모두 이를 '''계획된 배신'''으로 간주했다.
당시의 숀 마이클스는 '''개망나니란 말이 딱 어울리는 악동이었다.''' 게다가 빈스에게 잘보여서 자기와 친한 선수들만이 WWE의 메인을 독점하게 하려는 경향까지 보였다. 이들의 횡포에 뱀뱀 비글로를 비롯한 몇몇 레슬러들은 아예 학을 떼고 다시는 WWE에 오지 않겠다고 할 정도. 하지만 숀도 이 사건을 앞두고는 찝찝했던 모양이다. 브렛과 함께한 인터뷰에서 빈스가 계획을 얘기하면서 "책임은 다 내가 질테니 걱정마라."라고 숀을 안심시키려고 했지만, 숀은 "아무리 그래도 사람들은 결국 나만 욕할게 아니냐?"며 불안해했다고 한다. 사건 직후 숀이 분노한 브렛에게 평소와는 다르게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결백을 주장한 것은 원래부터 불안해했던 것이 현실로 다가오니 멘붕한 영향도 있을 것이다. 화해 이후의 인터뷰에서 브렛은 "스크류잡 이후 숀도 마음이 불편했던 것 같으며 자신이 그를 용서하자 그는 큰 짐을 내려놓은듯 편해보였고 지금은 자신도 그 사건에 대해서 마음이 편해졌다"고 얘기한다. 결국 이 사건은 관련된 모든 인물에게 큰 상처를 준 사건이었던 것이다.
이런 배경 때문인지 2009년 말부터 트리플 H가 브렛 하트의 WWE 복귀를 반대한다는 루머가 떠돌았고, 2010년 초반에도 트리플 H가 브렛 하트를 망가뜨리려 한다는 말이 있었지만 결국 브렛 하트가 2010년 내내 좋은 활약을 보여준 걸 보면 신빙성은 없다.
셰인과 스테파니의 회고에 따르면, "오랜 역사를 가진 WWF가 돈만 믿고 까부는 WCW에게 절대 질 리 없다"며 계속 자신감을 보여왔던 빈스가 그 혼자만으로도 프랜차이즈를 만들 수 있는 인물이라고 극찬했던 브렛 하트까지 WCW로 이적한다고 하자 정말 초조해했다고 한다.
3.1. 누가 배후에 있었나
짐 코넷과 빈스 루소 모두가 증언하는 바는 몬트리올 스크류잡이 벌어지기 얼마 전, 빈스 맥맨의 자택에 맥맨, 코넷, 루소가 모두 모여 숀 마이클스에게 타이틀을 넘기는 시나리오를 구상하는 회의를 가졌다는 것이다. 맥맨이 브렛에게 연거푸 전화를 걸어 각종 시나리오를 제안했지만 모두 거부됐고, 모두가 지친 상황에서 누군가가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여기서부터 증언이 갈린다.[12]
- 짐 코넷: 자포자기한 상황에서 '프로레슬링 역사상 이런 일도 있었다'면서 1931년 몬트리올에서 벌어진 에드 "스트랭글러" 루이스와 앙리 디글랑 간의 경기에서 DQ를 꾸며낸 더블 크로스가 벌어진 적이 있다고 말하고, 만약 숀이 샤프슈터를 거는 장면을 연출한다면 옛 일이 다시 재현될 수도 있다고 얘기했다. 맥맨은 그냥 전혀 현실성이 없다는 식으로 손사래를 쳤고, 코넷 또한 그에 동의하여 계속 소득없는 회의가 이어졌다. 루소는 그저 눈을 멀뚱멀뚱 뜨고 있기만 했을 뿐이다.
- 빈스 루소: 짐 코넷의 '역사 강의' 같은 것은 들은 바가 없다. 자포자기 상황에서 숀이 샤프슈터를 걸고 그대로 레프리가 공을 울리면 되지 않겠냐고 본인이 직접 제안했다.[13]
한편 클릭의 멤버였던 트리플 H는 훗날 회사의 입장에서 몬트리올 스크류잡은 비즈니스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공개적으로 얘기한 바 있는데, 이로 인해 "몬트리올 스크류잡의 구체적인 아이디어를 낸 것이 트리플 H다"란 얘기도 있다. WWE 로얄럼블(2016) 직후 Ring Rust Radio와의 인터뷰 등을 보면 브렛 하트 본인은 여전히 트리플 H의 머리속에서 나온 걸로 믿고 있는 듯하다.#
4. 사건 이후
이 사건으로 레슬링계와 언론은 발칵 뒤집힌 것은 물론, 브렛 하트를 비롯한 캐나다의 WWF팬들은 WWF를 배신자로 간주하며 한 때 WWF가 캐나다로 원정이라도 오면 캐나다 출신을 제외한 모든 선수들에게 닥치고 야유를 보냈고[14] , WWE로 변한 후에도 사건에 개입된 숀 마이클스와 심판 얼 헤브너에게 엄청난 야유를 보냈다. 이때 구호가 "You screwed Bret!"(넌 브렛을 엿먹였어!)[15]
브렛과 그의 동료들, WWF의 선수들은 사건 직후 연합하여 락커룸에서 빈스의 수하들이 패싸움을 했다. 빈스는 턱이 부러지고 발목을 삐는 부상을 당했다. 특히 언더테이커는 가장 먼저 빈스 맥맨에게 찾아가서 브렛 하트 앞에서 사과할 것을 요구했지만 빈스가 그 말을 듣지 않자 직접 빈스를 끌고 브렛에게 갔고 브렛의 손이 부러졌을 정도로 빈스는 브렛에게 제대로 맞았다.[16] 릭 루드는 이 사건 이후 WWF에 염증을 느끼고 WCW로 이적했고 믹 폴리도 다음 날 RAW에 무단으로 불참했다. 켄 샴락도 WWF를 탈단하려고 했지만 브렛 하트의 만류로 그만두었다. 다른 선수들 또한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했지만 빈스는 "갈 놈은 가라. 난 안붙잡는다"하는 강경한 태도로 맞섰다. 2020년 ESPN과의 인터뷰에서는 언더테이커 또한 출석할지 말지 고민하고 있었으나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건지 확실히 알아야겠다고 느껴서 회사로 향했다고 한다. 더불어 자신이 도와줄수 있었다면 브렛에게서 자신이 타이틀을 가져온뒤[17] 숀에게 곧바로 타이틀을 넘기는 식으로 스크류잡을 막았을 것이라고 얘기했다.#
바로 다음 날 오타와에서 열린 RAW에서는 숀 마이클스가 WWF 챔피언 벨트를 들고 등장하여 자신이 브렛의 고향에서 브렛의 기술로 그를 이겼다고 뻐기는 세그멘트가 연출되었다. 한편 빈스 맥마흔은 짐 로스와 단독 인터뷰를 진행하였는데, 그 자리에서 이 날 이후로 이어진 그의 악덕 사장 이미지를 너무나도 잘 나타내는 전설적인 말을 던졌다.
사실상 이 사건을 브렛이 자초한 것이라고 정리하는 그의 이 뻔뻔한 폭탄 발언은 그렇게 이 사건을 상징하는 대사가 되었으며, 훗날 그의 딸 스테파니 맥마흔이 브록 레스너에게 재활용하는 등 레슬링계에서 오래도록 회자되었다."Vince McMahon didn't screw Bret Hart. I truly believe that '''Bret Hart... screwed Bret Hart.'''"
빈스 맥마흔이 브렛 하트를 엿먹인 게 아닙니다. 저는 진심으로 '''브렛 하트가... 브렛 하트를 엿먹인 것'''이라 믿습니다."
- 빈스 맥마흔, 짐 로스와의 인터뷰 中
피해자인 브렛 하트는 WCW로 이적했지만 악몽과 같은 날들이 계속되었다. 선수로 이적했지만 에릭 비숍에게 "당신을 어떻게 활용해야할지 모르겠다."는 이야기와 "지금의 브렛은 1990년대 중반의 브렛이 아니다"라는 이야기를 들어야했다. 여기에는 에릭 비숍의 사고관도 한몫 했다. 미국에서 출간된 'The Rise and Death of WCW'라는 책에 따르면 에릭 비숍은 헐크 호건 같이 예능성이 풍부한 선수들을 선호하는 성향이 강하고 '검증된 스타들로만 엔트리를 채워도 흥행은 얼마든지 된다'는 옛세대적 개념을 가진 인물이었다. 거기다가 브렛 하트는 훗날 회고하기를 WCW의 선수들은 열정이 없었다면서 비판했다. 기껏 WCW로 갔지만 브렛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곳이었던 것. 브렛 본인은 그 다음 해인 1999년 스타케이드에서 골드버그와의 경기에서 수퍼킥을 잘못 맞으면서 뇌진탕을 입었다. 게다가 교통사고를 당해 은퇴를 하게 된다. 한동안 정상적인 생활을 하는 것이 불가능했었다.[18][19]
그리고 당시 같이 활동하던 하트가 일원들의 마무리도 좋지 못했다. 계약 문제 때문에 여전히 WWF에서 활동하던 자신의 동생 오웬 하트는 트리플 H와 대립을 하는 등 나름 푸쉬를 받았으나, 1999년 오버 디 엣지 PPV에서 불의의 사고로 사망했고, 브리티시 불독과 짐 나이드 하트는 브렛을 따라 WWF를 떠나 WCW에서 활동하였으나 좋은 취급은 받지 못했으며, 불독은 1999년 WWF에 복귀를 하였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해고되고, 그 후 스테로이드 과다 복용으로 인해 사망했다. 짐 나이드하트는 아직 은퇴하지 않은 상태로 중소규모 단체를 중심으로 활동하다 2018년 8월에 고인이 되었다. 하트가는 아니지만 역시 하트 파운데이션으로 활동하던 브라이언 필맨도 몬트리올 스크류잡이 일어나기 몇 달 전에 사망하였다. 오웬 하트의 장례식장에서 부터 브렛과 빈스의 대화가 다시 시작되었다.[20]
반면 당시 WCW와의 시청률 경쟁에서 열세를 면치 못하던 WWF는 이를 계기로 빈스 맥마흔이 완벽한 악덕 장사꾼의 기믹을 구축하고 프로레슬링 정통주의에 가까웠던 브렛이 사라지면서 WCW의 nWo각본에 맞먹는 성인 위주의 자극적인 각본으로 정책을 변경, 숀 마이클스의 디 제네레이션 X를 시작으로 사장에게 개기며 막나가는 노동자 캐릭터인 스톤 콜드 스티브 오스틴 등을 탄생시키며 본격적으로 '''애티튜드 시대의 서막을 열었다.'''
4.1. 숀 마이클스의 야유와 욕 퍼붓는 전 세계 팬들
2003년 RAW에서 크리스 제리코의 하이라이트 릴을 열었는데, 브렛 하트의 명장면 중 최악의 경기 "몬트리올 스크류잡"을 보고 아쉬움과 분노했다. 특별 게스트는 "손 마이클스"를 불러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팬들이 점점 숀을 야유와 챈트하기 시작한다.
2004년 앨버타, 캐나다에서 열린 WWE 백 래쉬(2004) 메인 이벤트 트리플 H vs 숀 마이클스 vs 크리스 벤와 트리플 쓰렛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십 경기를 가졌다. 캐나다 국적인 크리스 벤와를 환호해주는 팬들도 많았고, 트리플 H를 약간 야유했으나, 숀 마이클스를 더 심한 야유와 욕설을 퍼부었다. 벤와가 숀을 탭 아웃을 시켜 경기에서 이겼다.
다음 날, 4월 19일 RAW에서 똑같은 장소에서 연설하게 되었고, 숀이 등장해 그와 경기를 재경기를 갖자고 했는데, 에릭 비숍이 나타나 이번 일은 없고 대신 2주 후에 피닉스 애리조나에서 경기를 가지라고 발표한다.
2005년 8월 8일, 2주 후에 열리는 WWE 섬머슬램(2005) 전 헐크 호건과 숀 마이클스는 의견자로 맡겼고, 인터뷰인 제리 롤러도 나와 두 사람에 대해 질문을 말한다. 단, 헐크 호건이 중간에 "브렛 하트 사건"에 대해 말을 하자 팬들이 점점 큰 당황과 경악을 주며 숀을 "You screwed Bret"하기 시작한다. 1주 후에 퀘벡 캐나다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두고 보자고 경고를 줬다.
2005년 8월 15일[21] , RAW에서 오피닝 후 숀의 음악이 나타나자 팬들이 점점 큰 야유와 욕설, 비난하기 시작한다. 중간에 브렛 하트에 대한 얘기를 꺼낸 숀은 어디선가 뜬금없이 그의 타이탄트론이 울리면서 그가 돌아왔다고 관중들은 환호해 기대했는데 그러나 이것이 깜짝 쇼임을 알게 되자 숀 마이클스만 폭소를 보여줬다.
이번에도 헐크 호건을 조롱하다가 뜬금없이 그의 타이탄트론이 울리면서 또 다시 관중들이 환호하다가 깜짝 쇼임에도 불구하고 계속 숀만 욕을 먹게 된다.
계속해서 팬들의 야유가 점점 심해져가며 숀은 마무리 연설 하고나서 바로 퇴장한다.
메인 이벤트 중, 헐크 호건은 커트 앵글과 경기를 가져 이기려고 했는데, 갑자기 숀 마이클스가 나타나 그를 공격해서 DQ승으로 판정되었다. 마무리에 브렛 하트의 샤프슈터를 쓰게 되어 몬트리올 스크류잡을 조롱하기 시작한다.
2006년, WWE 회장 빈스 맥맨이 숀 마이클스와 대립하기 시작되었다. 세러데이 나잇 메인 이벤트에서 그와 경기 대신 자기 아들 셰인 맥맨 vs 숀 마이클스와 메인 이벤트에서 스트리트 파이트 경기를 가지게 되었다. 스윗 친 뮤직을 날린 숀은 승리를 거둘 수 있었는데, 빈스가 심판의 다리를 붙잡아 밖으로 내보내고 대신 그가 심판을 맡겼다. 빈스가 그의 아들을 브렛의 샤프슈터를 걸라고 얘기를 했으나, 셰인이 진짜로 샤프슈터를 날려 숀을 조롱하기 시작한다. 빈스가 재빨리 종 치는 직원한테 경기 끝내라고 얘기하고, 릴리안 가르시아에게 셰인 맥맨이 이겼다는 연설하라고 항의한여 셰인 맥맨의 승리를 거두었다는 말도 안되는 발표가 나왔다.
2007년 WWE.com을 통해 빈스 맥마흔과 브렛 하트가 화해했다는 소식을 보도했으며, 12년이 지난 2010년 1월 4일...프로레슬링을 은퇴했던 브렛 하트가 직접 WWE RAW에 출연해 숀 마이클스와 공개 석상에서 화해하면서 몬트리올 스크류잡은 공식적으로는 끝난 일이 되었고, 백스테이지에서도 화해했다고 한다.'''Oh, what the hell is that? The McMahon's screwed Bret Hart in 97' and now we've gotta be livin' in here. The McMahon's had just screwed Shawn Michaels!'''
'''아 저게 대체 뭡니까? 97년에서 맥맨들이 브렛을 엿먹이고, 이번에는 못된 맥맨들이 숀 마이클스를 엿먹었습니다!'''
'''- RAW 해설자 짐 로스(Jim Ross)'''
한편 브렛 하트와 빈스 맥맨의 복잡했던 상황을 스토리라인으로 전개시켜 WWE 레슬매니아 XXVI에선 두 사람이 노 홀드 바드 경기를 가지기도 했다. 빈스 맥맨 쪽이 체어샷만 '''37번'''을 맞는 기염을 토하며 처참히 잡을 해줬다.[22]
이렇게 해결이 되어간 사건이긴 한데, 주목을 못 받는 사람이 있으니 바로 당시 심판 얼 헤브너.[23] 사건 이후, 캐나다 경기에 출장할 때마다 대대적으로 욕을 먹게 되었다. WWE에서 해고된 뒤로[24] TNA에 몇번 모습을 드러냈는데 캐나다에선 여지없이 야유를 먹었고, 스크류잡 각본을 한번 더 수행하기도 했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하는 입장에서 빈스에게 거역하기 힘들었을 거라는 이유로 브렛 하트는 얼 헤브너도 용서했다고 한다. 어쨌든 이로 인해 형제인 데이브 헤브너와 아들 브라이언 헤브너도 방출되어 현재는 TNA에서 심판으로 뛰고 있다.
브렛 하트는 만약 자신이 그 때 이겼더라도 다음날 RAW에서 '''"반드시 반납했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25] 같이 오랫동안 일해온 브렛이 어떤 인물인지를 빈스가 모를 리 없었으나, 빈스는 브렛이 타이틀을 반납하고 가는 상황 자체를 두려워했다. WWF 챔피언은 WWF의 얼굴과 같은 존재인데, 자진해서 타이틀을 반납하고 WCW로 가는 것은 성공적으로 방어전을 마친 WWF 챔피언이 WCW로 이적하는 것이고, 이를 WCW가 가만 두고보기만 하지 않을 게 뻔했기 때문. WCW라면 온갖 홍보를 해대며 WWF를 욕보였을 게 뻔하다.
반납한 WWF 챔피언 벨트도 토너먼트를 열던지 해서 다시 챔피언을 뽑아야 하는데, 이러면 어떤 스토리를 만든다 해도 챔피언 브렛이 버리고 간 타이틀을 쩌리들이 차지하는 느낌이기에 WWF 타이틀의 가치가 하락하는 일은 피할 수 없었다. 브렛 하트를 속인 것은 잘못됐지만, 자신의 전부인 WWF가 망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빈스의 선택도 고육지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빈스 맥마흔이 공식적으로 사과하고, 훗날 브렛 하트를 명예의 전당에 헌액했으며, 레슬매니아 26에서 설욕전 자리를 마련하는 등 최선을 다해서 사과했다.
화해 이후 브렛 하트는 몬트리올 스크류잡이 이미 끝난 일이라고 얘기하며 트위터 등에서도 이를 강조하고 있다.[26]
4.2. 음모론
브렛 하트도 함께 짜고 친 거대한 각본이라는 주장도 소수지만 있다.
- 빈스 맥마흔과 브렛 하트 둘 다 프로페셔널한 사람들이고, 유아적인 마인드로 "이기고 반납하고 가겠다!" "그럴 순 없으니 사기를 쳐서라도 뺏겠다!"라며 저렇게 싸울 필요 자체가 없다. 심지어 사기치는 현장을 굳이 또 TV를 통해 중계할 필요는 없다.
- 빈스 맥마흔과 브렛 하트 모두 실질적으로 이득을 챙겼다. 빈스 맥맨은 이 사건으로 악역 커미셔너의 이미지를 굳혔고, 브렛은 비운의 영웅[27] 이미지를 만들었다.
- 전후사정이 주변인의 인터뷰는 물론 각종 영상을 통해 너무나도 세세하게 공개되어 있다. 마치 빈스 맥맨이 "내가 이렇게 사기를 쳤다!"라고 목놓아 외치고 있는 것처럼.
- 이후 빈스는 온갖 망발을 쏟아내며 자기변호 및 브렛을 공격했지만, 이에 브렛은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았다.
- 브렛 하트가 회심의 죽빵으로 빈스 맥맨의 턱을 아작냈(다고 알려져 있)지만 빈스는 이에 아무런 법적 대응을 하지 않았다. 즉, 이 사건을 통해 서로가 이득을 챙겼지만 당사자 중에 손해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이다.
이 사건이 진짜 사건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자신이 엔터테인먼트라고 주장하며 모든 것이 각본임을 강조하는 WWF(WWE)가 '''정말로 있었던 사건이라고''' 스스로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란 것이다. 그러나 바꿔 말하면, 그것 외엔 이 사건이 진실임을 뒷받침할 증거 또한 없다.전후사정을 아는 팬의 입장에서 볼 때, 이는 모든 당사자들의 협력하에서 이루어진거라고 밖에 안 보입니다. 제가 할 말은 그게 전부에요.[28]
--
스캇 홀, Viceland Documentary - Dark Side Of The Ring (Montrreal Screwjob)
손해를 본 사람이 없다는 게 주요 근거인데, 빈스 맥마흔은 어떠한 일이 생기면 그걸 각본으로 써먹는데 탁월한 재주가 있는 사람이다.[29] 언더테이커의 매니저 폴 베어러가 실제로 사망하자 (유족들의 동의를 받고) 그것도 각본으로 이용해서 써먹었다. 당시 실제로 WWF가 비판을 받았었는데, 빈스 맥마흔은 오히려 그걸 각본으로 이용하여 아예 대놓고 악덕기업사장으로 밀고 나갔고, 이런 나쁜 사장을 스티브 오스틴이 혼내준다는 스토리로 대박을 거뒀다. 브렛이야 피해자니 팬들의 동정을 받는건 당연하고, 빈스 맥맨은 팬들에게 욕먹는 위기를 기회로 활용했고, 원래 이런 능력이 탁월한 사람이니 별로 이상한게 아니다[30]
오히려 손해를 본 사람이 없다는게 음모론을 부정하는 근거가 될 수 있다. 왜냐하면 브렛은 WCW와 계약한 상태였고, 당시 WCW와 WWE는 엄청난 라이벌이었기 때문이다. 저 음모론 대로면 WCW 선수인 브렛 하트가 라이벌 단체인 WWF를 키워줬다는 말이 된다. 아무리 기존에 정이 든 회사라도 새로운 회사로 옮긴 입장이고, 라이벌 회사로 옮긴 상태인데 굳이 전 회사를 돋보이게 해줄 필요는 없는 것이다. 결국 이후 WWF는 다시 부활했으며 반면 브렛이 몸담고 있던 WCW는 반사작용으로 망했는데, 이미 WCW와 계약한 브렛이 굳이 WWF를 키워줘서 WCW를 망하게 할 이유는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빈스와 브렛이 프로페셔널이니 유아적인 마인드로 싸울 필요가 없다고 했는데, 베테랑인 거물 케빈 내시는 더 락이 '빅 대디 BITCH'라고 마이클 어필을 했다는 이유로 불쾌해하며 이런 말을 하려면 나와 싸울 각오를 해야 한다는 둥 유아적인 마인드(...)를 보여준 사례를 보면 성인이라고 해서 다 대인배 마인드를 지닌 것은 결코 아니다. 그리고 당시 갈등은 유아적인 마인드라고 볼 수도 없다. 브렛 하트는 WCW로 가기로 결정난 상태에서 WWF에서 깔끔하게 마무리 하며 자신의 상품가치를 높여놓고 가고자 할 것이고, 당시 다급한 2위단체 WWF 입장에서는 단체의 간판스타인 브렛이 타이틀을 들고 가버리거나,[31] 혹은 타이틀 반납하고 가거나 어느 경우든 단체 위상의 추락은 피할 수 없고, 단체의 멸망과도 직결될 수도 있는 문제라서 어떻게든 그걸 막고자 수를 쓴다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전후사정이 너무나도 세세하게 공개되어 있다고 했는데, 프로레슬링 역사상 너무 큰 사건이기 때문인데다가 하필 이 시기에 브렛 하트를 주인공으로 한 다큐멘터리 영화가 촬영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Hitman Hart: wrestling with shadows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는 브렛 하트가 WWF를 떠나기 직전에 촬영을 시작했는데, 하필 그 타이밍이 몬트리올 스크류잡 직전이다보니 어쩔수 없이 그 사정이 속속들이 기록된 것이다. 사실 별의별 소소한 것도 화제가 되고 미드카더였던 하쿠가 백스테이지에서 주먹을 잘 쓰는거 하나로 척 노리스급(...) 일화로 화제가 되기도 하는 등 소소한 것도 낱낱이 보도되는 게 이 바닥 특성이다. 하물며 저런 엄청난 충격적인 사건이라면 당연히 비화들이 쏟아져 나오는게 정상이다. 위에는 마치 빈스가 내가 이렇게 사기를 쳤다고 목놓아 외치는 것처럼 보인다고 했는데, 빈스는 원래 어떠한 일이 발생하면 그걸 각본으로 이용하는데 탁월한 재주가 있는 사람이고 이 사건으로 악덕 사장 이미지로 전환하여 각본으로 승화시켰으니, 당연히 빈스 입장에서 더더욱 저 사건을 퍼트려야 하는게 정상이다. 저 사건으로 아예 대놓고 욕 먹고자 악덕 기업주 사장으로 변신했는데, 저 사건이야말로 빈스의 악덕 사장 이미지를 굳히게 하는 최고의 아이템인데 이미 악덕 사장 기믹으로 변신한 마당에 저 사건을 은폐하고 숨기는 게 훨씬 이상하다. 저 사건을 은폐하고자 할 때는 자기가 욕먹기 싫을때인데, 이미 기믹상 악덕사장으로 팬들에게 욕먹어야 하는 빈스 맥마흔 입장에선 저 아이템을 오히려 적극 공개하여 흥행으로 이용하였으니 정말 탁월한 CEO라고 할 수 있다. 오히려 음모론은 빈스가 괜히 프로레슬링계를 천하통일한 WWE의 CEO가 아니구나라는걸 보여준다. 왜냐하면 팬들에게 욕먹을 위기 상황에서 오히려 그걸 각본으로 승화시켜 결국 최고의 흥행을 이끌어 WWE를 살려내면서 마치 몬트리올 스크류잡이 조작처럼 보일 정도로 자연스럽게 각본으로 녹여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선수들은 자서전에다가 SNS까지 등장하면서 정말 사소한 것마저 다 폭로하고 은밀한(...) 사생활까지 오픈되었다. 헌데 저 사건에 많은 관계자들이 연루되어 있는데, 무려 20년이 다 돼 가는 지금도 알려진 사건의 내막과 반하는 주장을 하는 선수나 관계자는 없었다. 심지어 당시 WWF를 뭉개려고 온갖 비열한 수를 쓰던 WCW에서조차 그런 말은 나오지 않았다. 당시 WCW는 WWF가 녹화방송인 점을 악용하여 경기를 스포하는 짓도 서슴지않았던 상황이다. 그리고 10년이 넘는 기간까지도 브렛이 WWE를 척지고 비판하기도 했었는데, 단지 각본만으로 이렇게 하기도 쉽지 않다. 브렛의 지인이나 팬들은 이 사건 때문에 WWE를 비판하고 싫어했었는데, 브렛이 이들 모두를 20년 가까운 지금까지 완벽하게 속여왔다는 말이 된다.
그리고 음모론은 결과론적에 치중한 면이 있는데, 당시 브렛 하트는 빈스 맥마흔의 얼굴에 침을 뱉으며 WCW로 훌쩍 떠나갔을 뿐이고, 수많은 브렛 팬들과 캐나다팬들이 WWF에 등을 돌릴 수 있는 최악의 위기상황이었다. 빈스 맥마흔이 위기를 기회로 승화시켜서 전화위복으로 삼았기에 망정이지, 자칫하면 WWF가 망할 수도 있는 위기 상황이었다.
4.3. 몬트리올 스크류잡을 각본으로 승화시켜 성공한 빈스의 사업수완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쫓아내었다'''는 말처럼, 브렛하트는 떠나갔으나 '''브렛 하트와 엮인 스토리로 인해 WCW를 무너뜨리고 승리한다.''' 정작 거액에 브렛하트를 데려간 WCW는 그닥 재미를 보지 못한 반면, 브렛을 잃은 WWE가 브렛하트 복수 스토리로 대박쳤으니 매우 아이러니한 셈.
결국 최악의 위기상황을 맞이해서도 유연하게 대처하던 WWE는 버티고 살아남은 반면, WCW는 자금력은 최고였으나 막상 돈으로 다 데리고 온 흥행스타들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nWo 스토리 줄창 우려먹다가 점차 식상해지며 침체되자 아무 것도 해보지도 못한 채 그대로 무너졌다. '''위기관리능력이 차원이 달랐다.''' WWE오너는 단체 존망위기에서 자신이 직접 나서서 스토리에 적극 개입하며 망가지는 역할까지 감수해가며 죽어가던 단체를 살렸으나, WCW에는 그 정도의 열정이 없었다. 결국 돈만으로 다 되는 게 아니란 것을 WWE의 승리를 통해 입증했다.
몬트리얼 사건 1년 전인 1996년을 돌아보자. 당시 영상인데, 제리 롤러가 악역 아나운서, 빈스는 선역 아나운서로 나오며 선량한 이미지였다. 그리고 저기 등장하는 치과의사 기믹의 괴인이 바로 레전드인 케인이다.(...) 어찌보면 1류선수들 다 빠져나간게 2류급 선수들에게는 기회였는데, 덕분에 1류로 올라올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언더테이커는 등장 초기부터 강한 기믹이었으나 어디까지 헐크 호건이나 얼티밋 워리어의 대항마로서 희생양으로 키워졌기에, 이들이 WCW로 가면서 언더테이커의 입지도 더욱 확고해졌다. 레슬링은 기믹빨이 중요함을 알 수 있는데, 1996년의 케인만 하더라도 2류도 아닌 거의 3류급이었다. 당시 스네이크는 이미 전성기가 훌쩍 지난 상태여서 조금 뜬다 싶은 악역선수들에게 잡질을 해주던 상황이었음에도, '''스네이크에게 깔끔하게 DDT를 맞고 핀폴패한다.''' 그리고 흑역사급인게 디젤 짝퉁 기믹이었는데, 케빈 내시가 WCW로 떠나자 뜬금없이 케인이 디젤이랑 똑같은 복장과 피니쉬를 들고 나왔는데 굉장히 반응이 안좋아서 사라지고, 이후 가면 씌우고 케인이란 카리스마 쩌는 기믹으로 1류를 넘어 레전드급 반열에 올라선다. 성공한 지금 돌이켜봐도, 1996년 2류 선수들 데리고 버텨야 하는 상황이 몹시 안좋았음을 알 수 있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몬트리올 스크류잡이 없었다면 WWE도 지금과는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졌을 수도 있다. 일단 보다시피 1996년까지만 해도 빈스는 줄곧 선역 이미지였는데, '''몬트리올 스크류잡이 빈스를 턴힐 시키는 방아쇠가 되었고 이후 10년 이상 악덕사장 기믹으로 크게 성공한다.''' 만약 몬트리얼 사건이 없었다면 빈스는 선역이었을테고, 그럼 빈스에게 빅엿을 선사하는 스톤콜드도 흐트러지고, 마치 나비효과처럼 전체적으로 다 뒤바뀌어질 수 밖에 없다. 결국 몬트리얼 사건을 계기로 "브렛하트를 엿먹인 나쁜 빈스"란 스토리 구도가 생기게 되고, 그 큰 구도를 통해 캐릭터들이 파생되며 지금의 WWE가 존재하게 되었다.
1996년으로 돌아가서 저 당시 RAW를 시청하는 사람들에게 앞으로 1년 뒤에 저 착한 빈스가 대형사고쳐서 초거물 악당으로 변할 것이라고 한다면 믿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저 허접한 자버급 치과의사가 앞으로 엄청난 레전드 스타가 되어 WWE를 이끌 것이라고 하면 코웃음 칠지도 모른다. 그만큼 드라마틱한 변화였고, 몬트리올 스크류잡은 빈스를 턴힐시킨 결정적 사건이었고 이걸로 크게 히트쳤기에 애초 이 사건도 각본 아니었냐는 음모론까지 돌 정도다.
성공한 사람들의 자서전을 보면 특징이 있다. 성공한 사람들이라고 어려움이 없이 평탄하게 순조로웠던 것만은 아니다. 그들도 "왜 나에게 이런 일이!"라며 절망할 법한 시련을 겪기도 하나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는 능력이 탁월'''하다는 점이다. 뭐든지 일장일단이라고 최악의 상황에서도 작지만 장점을 찾아낼 수 있는데, 그 '''장점을 포착하여 동아줄처럼 기사회생'''하는 것이다. 현재 잘 나가는 한 여성 행복강사는 IMF때 직격탄을 맞고 큰 집에서 작은 집으로 옮기고, 안좋은 일들이 연달아 터져 매일같이 절망감에 죽고 싶었다고 하는데, 오히려 그런 것을 계기로 책을 써서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며 현재의 자신을 있게 한거니 돌이켜보면 일련의 과정이 마치 하나의 스토리이자 각본처럼 자연스레 연결이 된다. 과거 서양의 어느 학자는 오랫동안 연구해온 이론을 그만 당시 하인이 불쏘시개(...)로 써서 미친 듯 절규하며 죽을 뻔 하다가, 다시 벽돌을 쌓는 심정으로 초심으로 돌아가서 다시 시작하여 더 좋은 결과를 이뤄냈다고 한다. 빈스도 이들과 똑같다.
당시 WWE에는 연달아 악재가 터지던 도중에, 급기야 '''단체에 간판 챔피언마저 라이벌 단체로 이적하는, 사실상 망하는 단체의 수순'''을 보여, 그때만 해도 마치 WCW가 천하통일할 것처럼 보였다. 이미 마초맨, 헐크 호건, 얼티밋 워리어, 스캇 홀, 케빈 내시 등, WWE의 흥행을 이끌던 레전드급 간판스타들이 죄다 이적하였고, 그들이 WWE에서 잘 나갈때 2인자급이었던 브렛 하트나 숀 마이클스가 WWE를 이끌고 있는 것만으로 초라했는데 그 브렛하트마저 떠난 것이다. 거기다 이런 몬트리올 스크류잡까지 터져 빈스에 대한 여론이 크게 악화되어 설상가상이던 찰나, '''기가 막히게도, 악화된 여론을 등에 업고 악덕사장'''이라는 재미있는 각본 소재로 삼아서 역전의 발판을 만들어 결국 승리했다.
막강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WWE의 흥행스타들을 거진 다 빼앗아간 WCW가 승리하는게 자연스러웠으나, 이젠 더이상 WCW에 대항할 무기가 없어보이던 WWE는 '''당시 그냥저냥 감초급 악역으로 전전하던 스톤콜드 스티브 오스틴을 악덕사장 혼내주는 나쁜남자 기믹으로 만들어 초특급 스타로 키워내기도 했다.''' 또 더락도 1996년 데뷔당시만 해도 급푸쉬를 주었음에도 너무 인기가 없어 악역으로 전환시킬 정도로 아웃 오브 안중급의 계륵같은 존재였으나, 스톤콜드와의 갈등구조로 더락 역시 레전드급 스타로 떠오르게 된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란 말처럼, 간판스타들을 다 빼앗기자 절망하고 GG친게 아니라, '''새로운 간판스타를 만들어내''' 성공했다.
특히 빈스에게 스터너를 먹이고 빈스는 실신하여 눈을 부릅뜬 채 경련을 일으키는 혼신의 연기(...) 등, 스톤콜드가 레전드급으로 올라설 수 있었던 데에는 빈스의 몸을 내던진 열정도 한몫했다. 원래 사건이 터지기 전만 해도, 이전의 빈스는 착하고 겸손한 이미지였다. 전형적인 화이트칼라처럼 인텔리한 이미지였다. 근데 이 사건으로 진짜 스터너 엄청 맞고 튕겨나가는 등, '''사장이 이 정도로 망가지는 역할을 자처할 정도의 열정은 흔치 않다.''' 당시 빈스가 WWE에 얼마나 몸을 바쳤는지 알 수 있다.
이렇게 해서 키워낸 스톤콜드를 위해 WWE는 엄청난 배팅을 하게 되는데, '''당시 복싱에서 귀 물어뜯으며 난동을 일으킨 마이크 타이슨을 스톤콜드와 대립시키는 각본으로 국내 뉴스에까지 보도될 정도로 화제를 일으켰다.''' 90년대만 해도 한국의 언론에서 WWE 소식을 접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다.
2000년대 들어 케이블 티비에서 WWE 프로레슬링 방영 등으로 인지도가 높아진 지금도 지상파 뉴스에서 WWE소식을 접하기는 쉽지 않다. '''당시 타이슨으로 인해 한국의 지상파 뉴스는 물론, 조중동 등 메이저 신문에 WWE가 보도되었다.''' 당시 타이슨은 원래 한국에서 인지도가 높았고 귀 물어뜯는 경기도 생방송으로 중계되기도 했었는데, 그 타이슨이 난데없이 WWE에 가서 스톤콜드와 시비가 붙어 싸움판이 벌어져 한국에서도 '''타이슨 덕에''' 지상파 뉴스에 보도될 정도로 핫이슈였는데, 하물며 미국에서는 말할 것도 없었고 이때를 계기로 역전에 성공하게 된다.
당시 타이슨 배팅은 '하이리스크-하이리턴'이었다. 왜냐하면 타이슨은 직접 경기 하는게 아니고, 단순 얼굴만 비춰주는 수준의 이벤트 역할이었음에도 돈이 엄청나게 들었기 때문이다. 당시 자금난에 시달려 WWE선수들도 희생한다는 각오로 덜받고 더뛰는 판국에 얼굴 한번 비춰주는 타이슨에게 어마어마한 몸값을 지불하니 WWE선수들 사이에서도 상당히 불만이 많았다. 하지만 뭔가 핫한 이슈 한방이 절실했던 빈스는 타이슨에 배팅했고, '''스톤콜드는 한국언론에도 보도될 정도로 대스타로 떡상한다.''' 결국 스톤콜드란 새로운 간판스타로 WWE가 성공하는데, 이 모든 일련의 과정이 몬트리올 스크류잡과 자연스럽게 연결되다보니, '이거 다 처음부터 각본아냐'라는 반응까지 나오게 된다.
WCW는 애초 자금력으로 WWE의 간판스타들을 빼간 것이고, WWE는 그 간판스타들을 스타로 키워낸 노하우가 있던 단체였으니 그 노하우가 위기 상황에서 십분발휘된 것이다. 마치 필살기를 잃자 새로운 필살기를 만들어낸 격. 프라이드에서 '스탬핑 대장군'으로 불리던 쇼군이 스탬핑킥,싸커킥이 금지된 UFC로 이적하여 주무기가 봉인되자 절망하는게 아니라, UFC의 룰에 맞춰 적응하여 엘보우 등 새로운 무기를 장착하고 UFC에서도 챔피언에 오른 상황과 흡사했다.
'''WWE는 비록 자금력에서 떨어졌으나, 프로레슬링에 대한 노하우와 경영능력이 탁월하여 거진 다 잃은 상태에서도 다시 스타를 만들어내 성공했다.''' 그런데 이런 일련의 과정이 자연스럽다보니, 오히려 처음부터 다 짠거 아니냐는 음모론의 근거가 되어버렸다.(...) 그만큼 빈스의 사업수완과 WWE를 이끄는 오너로서의 능력이 탁월하다는 점이다.
4.4. WWF는 정말 자금난 위기였나?
몬트리올 스크류잡이 일어나기 전인 1997년과 이후 애티튜드 시대이후를 보면 달라진 위상과 WWF의 자금흐름을 보면 저때 정말로 WWF가 자금난으로 위기에 처해있는지에 대해 의문점이 드는 상황이 많았다.
먼저 시청률로는 확실히 nWo를 결성한 WCW가 WWF를 추월한 것은 사실이었다. 4 레이팅 전후의 WCW과 3점대 초중반 레이팅을 비교하여 시청률로 WWF가 확실히 밀렸었다.
다만 자금력에 대해서는 의문이 생기는 것이 브렛 하트에 재계약에 대한 처우 문제였다. 위 문서에도 나왔지만, 브렛 하트가 제안받은 연봉은 150만 달러였고, 거기에 은퇴 이후 매니저나 커미셔너 등의 역할로 100만달러 전후의 연봉을 보장하는 계약이었으나 이것 부터가 문제인 계약이었다.
WCW에서 150만달러의 연봉을 받는 선수는 nWo의 스캇 홀과 케빈 내시였는데, 둘 다 브렛과 같은 연봉에 절반 정도만 뛰어도 된다는 계약이었고, 브렛 하트는 wcw에 280만 달러 가량의 연봉을 제안받고도 빈스에게 먼저 자신이 WWF에서 숀 마이클스에게 일방적인 잡을 해주고 그의 대관식을 치뤄줄 들러리 역할 각본을 제안해서 사실상 연봉으로도 각본으로도 브렛 하트를 떠밀게 했다.
정말 빈스 맥맨이 위에 나온대로 브렛 하트를 뺏기는 것에 대한 위기를 느꼈다면, 차라리 각본이라도 제대로 줘서 제대로 된 탑가이 대우를 해 주면 될 일이었다. 이 경우 숀 마이클스의 문제도 있었겠지만, 허리 부상과 마약 문제로 인해 숀은 이후로 풀타임을 제대로 뛰기 힘든 상태였다.
그 상태에서 기름을 붓는 사건이 또 있었으니 '''빈스 맥맨은 재정난을 위기로 그나마 지급하던 브렛 하트의 연봉을 체불했다.''' 회사에 대한 재정적 문제라는 이유였다. 분노한 브렛이 wcw와의 계약 협상을 하는 움직임을 벌이자 빈스는 당해 10월 말에 곧바로 밀린 임금을 제대로 챙겨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몬트리올 스크류잡이 벌어진 뒤 1998년이 되었을때, 갑자기 WWF는 스톤콜드 스티브 오스틴에게 800만 달러라는 초대형 계약을 맺게 된다. 이 금액은 WCW와 비교해도 엄청난 금액으로 99년에 헐크 호건에게 460만 달러, 빌 골드버그가 560만 달러를 받고 있었다.[33]
브렛한테는 단체의 탑가이면서 고액연봉자에게 재정난을 이유로 그나마 주던 임금을 체불하다 슬그머니 돌려주고, 그러면서 브렛이 떠나니 1년만에 스티브 오스틴에게는 브렛의 5배가 넘는 연봉을 안겨준다? 누가봐도 이상한 행동이었고, 빈스가 작정하고 레슬러들을 속이지 않고서는 있을수 없는 자금 흐름이었다.[34] 거기에 마이크 타이슨을 게스트로 불러 경기를 뛰게하는듯 그야말로 돈지랄을 아낌없이 해댔다.
이때의 전개를 빈스 맥맨은 WWF가 자금난이라 어쩔수 없었다, 단체의 탑가이였던 브렛 하트를 이용해 WWF 위상이 2류로 떨어질수 있었다. 등의 이야기를 하지만 본인 부터가 그런 탑가이들을 푸대접해서 벌어진 일인데, 브렛이 떠나자마자 언제 그랬냐는듯 애티튜드 시대를 펼쳤다.
어쩌면 빈스 맥맨이 헐크 호건때의 골든 제너레이션 시대 이후 브렛 하트와 숀 마이클스의 뉴 제너레이션 시절을 묻고 작정하고서 세대교체를 하려고 벌인 짓[35] 일수도 있다는 말. 실제로 뉴 제너레이션 시대는 앞선 골든 제너레이션과 이후의 애티튜드 시대와 비교해서 상당히 푸대접을 하고 있다는 걸 알수 있다.
4.5. 번외편 : 시카고 스크류잡
2011년 시카고에서 열린 PPV WWE 머니 인 더 뱅크(2011) 메인 이벤트인 존 시나 VS CM 펑크의 경기에서 안 그래도 파이프밤 세그먼트로 WWE를 한바탕 뒤집어놨던 CM 펑크가 WWE와 재계약을 하지 않고 WWE 챔피언십 벨트를 들고 그대로 퇴사하는 것을 막기 위해, 펑크가 존 시나의 STF에 걸렸을 때 빈스가 링벨을 울려 경기를 그 자리에서 끝내려는 스크류잡을 시도하지만, 비겁한 승리를 챙기기 싫었던 시나가 빈스의 지시를 불복하고, 그 틈을 노려 펑크가 시나에게 승리해 그대로 챔피언벨트를 들고 유유히 경기장을 빠져나가면서 첫번째 시카고 스크류잡은 실패로 끝난다.
이후 페이백 2016에서 브렛 하트의 조카인 나탈리아와 릭 플레어의 딸 샬럿의 WWE 위민스 챔피언십 경기가 진행되었다. 링 사이드에서 릭 플레어와 브렛 하트가 지켜봤으며, 좋은 공방전이 진행되던 와중에 샬럿이 샤프슈터를 걸고 나탈리아가 버티고 있었는데, 찰스 로빈슨 심판이 기습적으로 나탈리아의 기권패를 선언하곤 도망치면서 몬트리올 스크류잡이 다시 재현된다. 다음 날 RAW에서 찰스 로빈슨 심판이 샬럿의 아버지 릭 플레어에게 돈을 받는 모습을 보여주며 심판을 매수했다는 각본을 진행했다. 이 경기는 종료 후 하트 부녀에게 샬럿과 릭 플레어가 사이좋게 샤프슈터를 당하며 마무리되었다.
일부러 몬트리올 스크류잡 패러디 각본을 진행한 것인데, 과거에 릭 플레어와 브렛 하트가 사이가 안 좋았던 걸[36] 이용해 위민스 챔피언십 스토리를 진행한 것으로 추정된다. 브렛 하트는 몬트리올 스크류잡 패러디 각본의 내용을 전해듣곤 진행해도 괜찮다는 입장을 전했다는데, 팬들 사이에선 반대로 평가가 안 좋았다.
[1] 사실 하트 일가는 그동안 WWF에서 발군의 활약을 보이고 있었다. 매형이자 자신의 태그팀 파트너로 같이 활약했던 짐 '디 앤빌' 나이드하트와 또 한 명의 매부인 '브리티쉬 불독' 데이비 보이 스미스등이 하트가의 일원으로서 WWF의 중심 축으로 활약 중이었다. 여기에 브렛의 동생인 오웬 하트도 형의 뒤를 이어 인지도를 올리고 있었다.[2] 첫 번째로 브렛 하트가 WWF 메인 이벤터로서의 위치가 공고했었던데다 두번째로는 많은 중견스타들, 헐크 호건이나 랜디 새비지같은 네임드들이 WCW로 이적해 버린 상황이었고, 젊은 신인들이 자리를 메꾸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했다. 이미 이 때부터 세대교체의 조짐과 새로운 방식의 경기운영이 필요한 시점인 것은 사실이었으나 이 때는 아직 신인 유망주들을 발굴하고 있던 단계였다. 스티브 오스틴 역시 확고한 메인 이벤터로 자리잡기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했으므로 브렛 하트를 잡아두는건 불가피했다.[3] 브렛 하트가 WCW로 이적한다면 1997년 11월 1일 자정까지 빈스 맥맨에게 결정을 통보하여야 했다.[4] 몬트리올 스크류잡이 벌어지기 전에 여성 레슬러 메두사가 WWE에서 WCW로 이적했는데 이때 메두사는 에릭 비숍의 강요로 인해 방송에서 WWE의 벨트를 쓰레기통에 버리는, 당시로썬 매우 파격적인 퍼포먼스를 보였다. 이를 경험한 빈스 맥맨은 브렛 마저 그러지 않을까 두려워했던 것이다.[5] 당연한게 캐나다인들에게 브렛 하트는 그야말로 국민적 영웅으로 대접받고 있었으며 최고의 프로모션에서 활동하고있는 유일한 캐나다 출신 슈퍼스타였으니 타이틀 반납은 캐나다인들의 반발을 부를 수 밖에 없었다.[6] 브렛의 동생 오웬 하트, 스티브 오스틴의 태그팀 동료였던 브라이언 필먼, 나탈리아의 아버지이자 브렛의 태그팀 파트너 짐 '앤빌' 나이드하트, 브렛의 매제인 브리티쉬 불독이다.[7] 브렛 하트와 숀 마이클스의 대담 인터뷰에서[8] WWE 각본진이 제시한 각본을 거부하거나 역으로 선수가 각본을 수정할 수 있는 권한. 존 시나, 랜디 오턴 등 메인이벤터급 스타들이 이 권리를 부여받는다. 당시 브렛 하트도 이 권한을 보유하고 있었다.[9] 참고로 브렛의 자서전에는 단체의 간판 스타로서 연간 300회 이상의 경기를 해왔지만 이 때를 제외하면 각본상 패배를 단 한 번도 거부한 적이 없으며 그것이 본인의 자부심 중 하나라고 쓰여있다. 이러한 브렛에게 오히려 뒤통수로 되갚아 줬으니 이후 벌어질 스크류잡에 대한 분노도 컸던 것이다.[10] WWE의 고위층인 짐 로스마저도 이 사건에 대해 알지 못했다. 짐 로스 등 다른 스태프들은 경기가 DQ(반칙패)로 끝난다고 알고 있었다. 하트 파운데이션과 D-X등 외부의 개입 때문에 숀이 DQ를 당하거나 브렛이 서브미션 홀드를 풀지 않아 DQ로 끝나는 둘 중 하나의 결말로 경기가 끝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11] 1990년대의 인터뷰로 숀 마이클스가 아직 인성이 성숙하지 못할 때의 인터뷰라 브렛 하트를 욕하는 부분이 많다.[12] Viceland Documentary - Dark Side Of The Ring (Montrreal Screwjob)[13] 루소의 자서전 'Forgiven'에 따르면 오웬 하트가 WWF 잔류 문제로 브렛에게 절연 선언을 듣자 오웬은 루소에게 브렛을 설득시켜달라고 부탁했고, 브렛 역시 루소의 전화를 받아 그의 설득을 들어주긴 했다고 한다.[14] 그런 와중에도 캐나다인들에게 환영을 받는 유일한 선수가 한명있는데 헐크 호건이다.[15] 2003년~2010년에도 그런 챈트와 야유가 퍼졌다.[16] 보자마자 때린 것은 아니었고 탈의실에서 샤워를 마치고 나온 브렛이 그를 보자마자 '14년동안 당신 밑에서 일한 댓가가 이런거냐?'라는 요지의 서운함을 쏟아내었지만 빈스 맥맨이 대충 사과하는 식으로 변명하며 얼버무리려 하자, 화가 머리 끝까지 나서 '몸을 닦고 옷을 갈아입을때까지 나가지 않으면 당신을 두들겨 패겠다'고 경고했고 결국... 여튼 빈스 맥맨은 브렛에게 두들겨 맞은 이후 경비를 보내 짐 로스 등의 스태프들이 피해를 당하지 않도록 보호를 명령했다.[17] 브렛이라면 이해하고 그렇게 해주었을 것이라고 덧붙혔다.[18] 브렛 하트의 은퇴원인을 골드버그의 슈퍼킥으로인한 뇌진탕 때문으로 알고 있는 사람도 많지만 사실상 그의 커리어를 끝낸 것은 교통사고였다. 일부 골드버그 안티들이 이를 빌미로 공격하지만 브렛 하트는 빌(골드버그)같은 착한 놈이 뇌진탕을 입힌 것이 아이러니할 뿐이라는 입장.[19] 당시 교통사고를 당한 뒤 가장 먼저 전화 연락을 해준 것은 '''빈스 맥마흔'''이었다.(브렛 하트와 숀 마이클스의 대담 인터뷰에서) 이때부터 브렛은 빈스와 숀에 대한 증오를 거둘까 생각하기 시작했다고 한다.[20] 하지만 다른 가족들은 WWF의 화환을 보고 분노하며 끌어내라고 요구했다.[21] 한국 시점엔 광복절[22] 다음 날 RAW에서 관중들이 레슬매니아에서 관광당한 걸 단체로 외치자 쿨하게 "맞아요. 난 어제 신나게 관광당했소."라고 빈스 본인이 답변하며 자신의 캐릭터 기믹 인증과 브렛의 팬들을 위한 립서비스를 해줬다.[23] 브렛 하트의 자서전에 따르면 뭔가 낌새를 느낀 브렛이 얼에게 자신을 배신하지 말라고 얘기했으며 얼은 울면서 절대 그러지 않겠다고 얘기한다. 하지만 결국 스크류잡에 연루된것에 대해 브렛은 사건 직전에 빈스의 압박을 받아 어쩔 수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크게 증오하지 않았다.[24] 몬트리올 스크류잡으로부터 10년 정도 지난 후에 얼 헤브너가 WWE 상품을 사적으로 횡령한 사실이 드러나 해고당했다. 원래는 손실액 전부를 얼 헤브너가 부담해야했지만 해고당하는 선에서 끝났다.[25] 미국에서 하는 행사라면 상관없겠지만, 자기 조국인 캐나다를 배신감을 받기 싫어서 조국을 위해 꼭 이긴 후 다음 날 미국에 도착하면 그 날에 반드시 반납하겠다고 약속을 했다.[26] 이 트윗은 브렛의 삼촌인 스미스 하트가 "브렛은 몬트리올에서 잡을 해줘야 했다"고 주장했다는 얘기를 아냐는 팬의 질문에 대한 답변이다. 이떄 브렛은 자기 가족과 친척 중에는 자신을 깎아내리려는 사람들이 있다고 얘기했다.[27] 당시 숀 마이클스와 브렛 하트는 둘 다 악역이었다. DX와 하트 파운데이션도 악역이었으므로 경기가 멀쩡히 치뤄졌다면 경기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한 선수 8명 전원이 악역이라는 나름 역사적인 그림이 나올 뻔했다.[28] 물론 다큐멘터리에서 이 발언 직후에 브루스 프리처드, 짐 코넷, 빈스 루소 등이 일제히 스캇 홀을 깐다.[29] 걸프 전쟁 때 서전 슬로터를 이라크군 장성으로 변절한 미국인이라는 기믹으로 써먹는것만 봐도 그 탁월함을 알 수 있다.[30] 게다가 그 대척점으로 스티브 오스틴을 꺼내든 것은 진정한 신의 한 수였다. 조그마한 텍사스의 시골마을에서 태어나 성장해서 자신의 노력으로 지금의 자리에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을 억만장자에게 겁도 없이(?) 손지껌에다 물리행사도 마다않는 우락부락한 캐릭터로 만들어 시청자들이나 관중들에게 현실감및 카타르시스를 제공한 것은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것이었다. 당연하지만 시청자와 관중들은 거의 소시민이니만큼 과장된 캐릭터성을 감안해도 소시민 출신이라는 공통점이 있는 오스틴의 캐릭터와 활약상에 매료될 수 밖에 없다.[31] 이미 메두사가 WWF 위민스 챔피언십 타이틀을 들고 WCW에 가서 쓰레기통에 버리는 퍼포먼스로 빈스 맥마흔의 심기를 건드렸던 적이 있다.[32] 1분경 '''스터너''' 맞고 눈을 부릅뜬 채 경련일으키는 빈스의 모습이 당시 상당히 인상적이어서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기억하고 있는 영상이다. 원래 프로레슬링에서는 '접수'가 정말 중요하다. 실제 더 락은 스터너를 찰지게 접수하는 걸로 유명한 반면, 스캇 홀은 스터너 접수가 허접해서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는데(오버해서 펑 튀어나간다), 접수 잘못하면 똑같은 기술이라도 빈약하고 없어보일 수 있다. 하지만 당시 빈스는 정말 스터너를 찰지게 접수해서 피니쉬인 스터너를 위험한 필살기급으로 각인시켰고 명장면으로 만들어서 스톤콜드 떡상에 단단히 기여를 했다. 물론 '동방예의지국' 한국에서는 젊은 선수가 나이든 사장을 패버리고, 실신한 사장의 얼굴에 쌍뻑큐를 날리는 것은 '장유유서'에 어긋나 한국의 정서상 거북할 수도 있으나, 당시 관중들의 반응은 폭발적인데 '''브렛 하트에 대한 복수'''라고 봤기 때문이다.[33] 이때 브렛은 동시기 260만 달러에 협상을 해서 2000년에 675만 달러를 받았다.[34] 물론 애티튜드 시대의 전개를 보면 98년부터 프로레슬링 시장이 비약적으로 성장했으나, 그렇다 하더라도 시청률은 아직 WCW에게 밀릴때였다.[35] 이후 브렛을 몰아낸 뒤로 WWF가 WCW에서 데려온 선수는 빅 쇼 정도였고, 나머지는 기존의 선수들이었다.[36] 개인 자서전을 통해 서로를 공격하기도 했으나, 자주 연락하는 사이는 아니더라도 같이 사진 찍을 만큼은 관계 회복이 된 것으로 알려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