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치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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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이 사진에선 페치카 위에 침구가 있는데, 우리나라의 아랫목처럼 자기도 하기 때문이다.
1. 개요
2. 한국 군대에서의 페치카
3. 유사품


1. 개요



  • 러시아어: Русская печь,[1] Печка
  • 영어: Pechka, Russian oven (or stove)
  • 일본어: ペーチカ, ペチカ
본디 러시아벽난로를 가리키는 용어로, 아궁이 안에 밀가루 반죽 등을 넣어 오븐처럼 굽거나 냄비 등을 아궁이 앞이나 위에 놓아 데우기도 한다.
또한 러시아와 그 주변국에서는 넓은 영토 곳곳에 별장(다차) 들을 지어놓고 이걸로 난방을 하기에 현재에도 많이 존재한다.
한국군 막사도 과거엔 이걸로 난방을 했으며, '''빼(뻬)치카'''로 불렀다.
최재형(독립운동가)의 별명이기도 하다.

2. 한국 군대에서의 페치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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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땐 그랬지...사라진 내무실 2제 - 국방일보, 2014년 9월 4일, 사진 출처
라디에이터온돌 난방이 대중화된 지금은 상상하기 힘들겠지만 옛날 군대에서는 내무반 한켠에 벽돌과 진흙(혹은 시멘트)으로 만든 페치카란 난로가 존재했고, 동절기 때 이 안에 석탄가루(분탄)와 진흙을 섞어 만든 혼합물[2]을 넣어 난방을 했으며, 연기는 벽과 천장을 뚫어 만든 연통 밖으로 나왔다.
게다가 보급받은 석탄의 질이 좋지 않아 불이 수시로 꺼졌기에 막사별로 이를 전담해 관리하는 빼당('''빼'''치카 '''당'''번병)[3]을 한 명 이상 두었으며, 그 대상은 빼조[4] 경력이 있는 상병 혹은 연륜 있는 병장 중에서 자원시키거나 강제로 차출해 관리시켰다. 게다가 빼당은 (불침번과 달리) 밤새 잠을 못 자고 빼치카 불이 꺼지지 않도록 항상 옆에 붙어서 지켜봐야 하는 고충이 있었고, 아차 하는 순간 불이 꺼져 페치카가 차갑게 식어버리면 빼당은 그야말로 경을 치는 날이었다고 한다.[5][6] 하지만 이에 대한 보상으로 빼당은 다음 날 근무 취침과 웬만한 작업이나 훈련 열외도 허용되었다.
게다가 혹한의 땅에서 들여온 문물답게 화력은 강했으나 (온돌에 비해) 열 효율이 나쁘고 균열을 통해 연탄가스가 새어나올 수 있다는[7] 단점이 있었다.[8] 하지만 반대급부로 '''식는 데 8~12시간이나 걸리는 온기'''라는 장점도 있었고, 또한 한창 달궈진 페치카 위에 물이 담긴 주전자를 올려놓으면 순식간에 끓어올랐기에 이를 응용, 심심하면 반합이나 식기 안에 라면을 넣고 올리거나 혹은 물에 적신 종이[9]를 밑에 깔고 그 위에 라면 봉지(뽀글이)를 올려 끓여먹기도 했다.[10] 참고 기고문[11]
또한 페치카가 언제 군에 설치되었는지는 의견이 분분하나, 1958년 12월 5일자 경향신문에서는 동부전선 3군단이 최초라고 한다.

패치카 최초 보급을 선전하는 대한뉴스. 참고로 영상 속 부대는 3군단 시절의 이기자 부대.
이후 나머지 부대들에도 확산되었으며, 언제까지 사용되었는지도 의견이 분분하다. 일단 위 기고문에서는 1999년까지라고 하지만 국방홍보원 국방저널의 2012년 10월호(20, 21페이지 참조)에 보면 2001년까지라고 한다. 하여간 옛날에 군 생활을 경험한 사람들에게는 애증의 물건이었고, 이 당시를 재현한 코미디 동작그만 에피소드 일부에도 페치카가 한켠에 형식적으로 재현되어 있다.

3. 유사품


서방권에서는 독일의 '카헬오펜'(Kachelofen)과 스웨덴의 '카켈루근'(kakelugn)이란 난방 장치가 러시아의 페치카와 구조가 제일 유사하다.


[1] 루스카야 페치(러시아식 난로)[2] 이 당시엔 석탄 보급이 불규칙하고 적게 나왔기 때문에 이렇게 섞어야 가늘고 오래 땔 수 있었다. 다만 중앙에서 정해놓은 메뉴얼이 없었기에 부대마다 페치카의 형태와 혼합물의 혼합비율, 크기도 제각각이었다.[3] 혹은 뻬치카나 기타 난방장치의 연료로 쓸 땔감용 나무 등을 전담한다고 해서 화목병(火木兵)으로 칭하기도 한 모양. #, #, # 참조.[4] '''빼'''당을 보'''조'''하는 역할로, 쉽게 말하자면 페치카 운용을 도우면서 운용법을 도제식으로 전수받는 부사수였지만 빠릿해야 했기에 주로 똘똘한 일병이 맡았다고 한다.[5] 그나마 불씨가 남아있다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화목에 불을 지펴 넣어야 했는데, 이게 생각보다 오래 걸렸기 때문이다.[6] 참고로 노무현 전 대통령도 대선 직후 당선자 신분으로 자신이 복무했던 부대를 방문해 둘러보고는 과거 빼당 시절 툭하면 꺼져서 고생했는데 수십년 지난 지금도 병사들의 생활환경은 그대로라며 말한 적이 있다.[7] 그래서 십자매, 카나리아 새장을 옆에 두었다.[8] 그래서 페치카에서 발생된 열이 내무반 전체에 고루 퍼지지 않고 가까운 곳은 후덥지근하고, 먼 곳일수록 냉기에 떨어야 했다. 사실 전통 러시아 페치카도 열 효율이 30% 이하로 좋지 않다. 그래서 불 한 번 때 는데 작은 나무 하나를 통째로 넣어야 한단 소리도 있다.[9] 설거지가 귀찮을 때 쓰는 방식으로, 종이가 열을 흡수해서 라면봉지가 타지 않는다.[10] 다만 이런 경우는 석탄가루 보급이 잘 나오고 라면을 구할 수 있었던 여건이 좋은 부대에서나 할 수 있었을 뿐이다.[11] 참고로 상단 사진의 한 구석에 벽돌 벽지를 붙인 사각형의 무언가가 페치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