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보병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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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대한민국 육군 제12보병사단. 일명 을지부대. 사단본부 비석에는 상승을지부대로 표시되어 있다. 표어는 <을지부대는 오직 전진할 뿐이다>를 사용한다. 경례구호는 '충성'. 1970년대와 80년대 초에는 당백(일당백), 1997년 여름까지는 '단결'이었다. 타 사단과 달리 병사를 병사가 아닌 '용사'라고 부른다.
사단본부는 <'''인제''' 가면 언제 오나, '''원통'''해서 못 살겠네>에서 그 '''원통'''에 자리잡고 있다. 정확한 지명은 강원도 인제군 북면 원통리이며 북면사무소 소재지다. 물론 위 주소는 사단본부 소재지이며, 예하부대는 인제군 및 양구군, 고성군에 나뉘어 주둔하면서 <조국의 창끝, 산악의 방패>로서 그 사명을 충실히 완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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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상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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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중이던 1952년 11월 8일 국방부 일반명령 제 207호에 의거 제15보병사단과 함께 강원도 양양군 전진리[2] 에서 창설되었다. 을지부대라는 명칭은 창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수나라 113만 대군을 물리친 을지문덕 장군의 기상을 계승하라는 의미로 명명했고 이는 육군 최초로 역사적 위인을 일반명칭으로 사용한 것이다. 창설 후 11월 8일부터 12월 5일까지 양양에 주둔하였고 사단은 경기도 포천으로 이동 후 편성하였다. 같은 날 창설[3] 된 15사단과 연대 번호가 이어진다.[4]
미 9군단에 배속되었으나, 별다른 특이사항 없이 미 10군단으로 배속전환된 뒤 강원도 인제군으로 주둔지를 옮겨 고지방어임무를 수행하였다. 전쟁의 막바지에 다다른 1953년 6월, 이전까지 미 제45사단[5] 의 책임 방어지역이었던 812고지, 854고지[6] 를 인수받은 뒤 북한군의 공격을 받고 7월 17일까지 전투를 치러 854고지를 지켜내는 데는 성공했으나 812고지와 쌍용고지는 끝내 되찾지 못한 채 북한군&중공군과 교전을 반복하다 휴전을 맞이하였다. 그렇지만 이러한 노력 덕분에 '''확보한 38선 이북 지역이 현재 대한민국 강원도 면적의 1/4에 달한다.''' 휴전 이후 포천, 화천 등 총 13회에 걸쳐 작전지역을 변경하여 임무를 수행하였으며, 1966년 9월 30일 강원도 인제군 북면 원통리로 이동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12사단은 이름에 걸맞게 창설 이후 단 한 번도 패한 적이 없다. 6.25전쟁 중 총 5번의 전투에서 전승을 거뒀으며, 휴전 이후 1967년 8월부터 1998년 6월까지 총 25회의 대침투작전도 완벽하게 수행했다. 총 85명의 무장공비를 사살하고 다수의 장비를 노획하는 성과를 올렸고 귀순자 유도작전 역시 수차례 임무완수했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지금까지 대통령 부대표창 10회 등 다수의 표창을 받았다.
5.16 쿠데타 당시 12사단장 박춘신(준장)은 정순화(대령, 부사단장), 이희성(중령, 작전참모) 등과 함께 가담하여 병력을 이끌고 춘천에 진주했다.
육군본부 공인, 육군에서 가장 높은 곳[7] 에 병력이 주둔하여 국토를 수호하는 사단으로, 사단 책임지역 85% 이상이 산악지형이다. 1,000m 이상 고지 49개소, 작전지형 평균 고도 및 경사도는 각각 750m, 49˚이다.
예전에 비해 GOP경계 섹터 및 작전지역이 축소됐다. 과거에는 故 노무현 前 대통령이 복무했던 건봉산(현재 22사단 55연대 담당) 일대까지 12사단이 담당했다.
2020년 국방개혁으로 인해 12월 1일부로 예하 연대들이 여단으로 변경되었다.
3. 신병교육대
3.1. 위치
3.2. 상세
4. 예하부대
4.1. 사단직할대
- 본부근무대
- 공병대대 : 부대 시설, 근무환경은 열악하다. 직할대 중 수색대대, 전차대대, 화생방지원대대와 함께 원통 내에 주둔하지 않는다. 그래도 원통까지 차량으로 10분 내외로 가까워 출타 시 불편함은 없다.
- 정비대대
- 보급수송대대 : 사단본부 주둔지에 위치한 정보통신대대, 본부근무대를 제외하고 사단본부와 가장 가깝다.
- 화생방지원대대 : 지원대급에서 지원대대급으로 격상되었다.
- 수색대대 : 백룡[8] 수색대대라 불리우며, DMZ작전과 사단 기동타격대 역할을 수행한다. 2000년대 중후반부터 2010년대 초반까지는 DMZ 수색&매복은 물론 1개의 GP 경계작전도 담당했다. 천리행군 코스가 매년 조금씩 다르지만, 설악산 대청봉을 거치는 경우가 있으며 대부분 이 기간 중 첫눈이 맞게 된다. 산악사단 최정예 수색대대라는 수식어에 걸맞게 산악극복훈련을 실시한다. 전문 산악장비를 이용한 암벽과 급경사로 극복 훈련을 정기적으로 수행한다. 군수사령부에서 보급받은 산악장비는 물론 사단에서 자체 구비한 전문 산악 장비까지 동원해 훈련한다. 1977년 7월 7일 최초 용대리에서 창설, 월학리 → 화랑(민통선 내) → 후덕리 → 월학리 순으로 주둔지를 이동하였다가 현재는 서화리에 대대본부가 주둔하고 있다.[9]
- 의무대 : 말이 의무대대지 그냥 병원이다. 과거 205이동외과병원이 있었기 때문. 전 군에 두 개 있는 의무대대였지만, 2020년 12월 부로 의무대로 축소되었다. 대급이지만 근무 인원은 중대급에도 못 미쳐서 근무 환경은 좋지 않다.
- 정보통신대대 : 본부대와 함께 사단 사령부에 같이 있다. 사단 수송부의 운전병들이 이곳에서 차출된다. 통신대대 수송부와 사단 수송부는 별개로 운영된다. (현재는 바뀐 상태)
- 군사경찰대대 : 모든 부대 가운데 원통 중심지와 가장 가깝다.
- 전차대대: 전차가 기동하기 힘든 산악지대여선지[10] 여전히 M48 패튼을 쓸 정도로 열약하다. 다만 국방개혁 2.0 과정에서 해체된 3군단 직할 제2전차대대 전차들을 통합해 대대로 승격되었다. 직할대 중 수색대대 다음으로 사단본부에서 거리가 가장 멀다.
- 방공중대: 군단 방공대대에 속해있다
- 보충중대: 정보통신대대와 같이 본부대와 함께 사단 사령부 영내에 같이 있다. 본부대에 자대배치를 받게되면 일반적으로 여기서 3일간 보충병으로서 대기하다가 본부근무대로 편입되는데 기대 반 긴장 반으로 가득 찬 3일을 정신없이 보내게 된다. 그리고 얼마 안가서 보충중대 소속 병사들을 희대의 꿀보직이라며 부러워하게된다. 보충중대는 본부대건물 내부에 있다. 과거에는 원통에서 용대리 가는 방향에 독립적으로 있었다.
4.2. 제17보병여단[11] 쌍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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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편제
- 여단본부 및 직할중대[12] , 17포병대[13] , 군수지원대대[14]
- 1대대(신병교육대대), 2대대(백마촌대대), 3대대(수도탈환대대)
● 과거 편제
- 연대본부 및 직할중대[15]
- 1대대(인천상륙), 2대대(화령장전투), 3대대(수도탈환)
● 17여단 역사
1) 창설 및 한국전쟁
- 국방경비대 시절부터 존재했던 연대로, 과거 2사단 내에서 가장 역사가 길었다. 그 뿌리는 육직부대이다. 수도경비사령부 17연대로 배속되어 있다가 육군본부 직할로 옹진반도를 수비하는 독립연대(당시 육군본부 직할부대)로 변경되었으며, 개전 이후 복합해진 전선 상황에 따라 지연전을 벌리며 후퇴했다. 이때 화령장 전투에서 높은 전공을 세운다. 그 이후 낙동강 전선으로 배치되었다. 당시 육군 유일의 예비 독립연대[16] 였으며, 그 때문에 인천상륙작전에 대한민국 육군 유일의 작전 참가부대[17] 로서 이름을 남긴다. 17연대는 그 후에 수도까지 탈환한다. 이러한 역사와 전공을 가졌기에 인천상륙작전, 화령장전투, 수도탈환은 각각 편제된 예하대대의 이명으로 사용하였다. 전후에는 주로 대간첩작전에 투입되어 전과를 올렸고 제3군단의 예비사단-예비대로 인제에 주둔하여 작전을 담당한다.
2) 제2보병사단 시절
- 타 부대와는 다르게 17연대는 연대본부 및 직할대, 예하대대가 모두 하나의 울타리 안에 주둔했다. 그래서 그 면적이 어지간한 지방의 대학교 캠퍼스와 비슷했다. 사단본부와 사격장을 비롯한 주요 시설이 양구에 있다보니 그 어떤 훈련을 참가해도 행군 거리의 격이 달랐다. 각 대대가 미래과학화 전투실험 보병부대를 돌아가면서 맡았는데, 육군 보병부대의 발전을 위해 개발되는 신편제, 신식 교리나 무기체계를 실험하는 부대이다. XX년도에는 2대대가 담당하고 있었는데, XK11의 시험운용부대로 매일 마일즈 장비를 착용하고 KCTC 수준의 실전적 훈련을 시행하는 실험에 참가했다. 이렇다보니 2015년 전반기 마일즈 육군 최우수 중대로 11중대가 뽑혔다. 2, 3, 5, 27사단의 각 대표 중대가 참여한 육군 최강중대 선발대회에서 4강(VS 3사단), 결승(VS 27사단)을 거치며 우승을 차지했다. 해당 인원은 전원 17일에 해당하는 포상휴가를 받았으며, 해당 대대는 출타율을 조정해가며 휴식 여건 보장이 확실히 되었다.
31, 32연대와 달리 인제에 독립적으로 떨어져 있다보니 부조리가 꽤 심했다. 게다가 연대 예하 모든 부대가 하나의 주둔지에 묶여 있으니 연대장의 힘이 매우 막강했다. 무엇보다 연대 전통이 실로 엄청나니 명맥을 잇는다는 논리로 부조리가 근절되기 힘들었다. 오죽하면 양구에 주둔한 군사경찰대(헌병대)가 즉시 출동하기 위해 17연대 내에 헌병 파견대라 하여 분견대가 위치했다.
후반기 교육을 마쳤어도 바로 자대로 전입하지 않고 다시 쌍호교육대로 들어가 1주일 정도 교육을 받았다. 쌍호교육대는 연대 내 군기교육을 담당하기도 한다. 1990년대 중반에는 연대 전통과 정신 불어넣기, 태권도 교육을 주로 받았는데, 이게 유격기초훈련과 유사해 매우 힘들었던 과정이었다. 2000년대 말에는 프로그램이 완화되었는데, 이전처럼 군사훈련이나 정신교육을 받지는 않고 간단히 연내 내 시설을 돌아보거나 연대장과의 면담 등을 실시하면서 전입 온 신병들의 적응을 돕는 수준으로 완화되었다. 연대 내 전입 온 모든 신병들이 모이는 교육이라, 현재 운용 중인 부대 내에서 이 인원들을 수용할 만한 곳이 없어서 먼지 쌓인 구 1대대 막사와 구 쌍호교회 건물을 열어 사용했다. 2010년에 모종의 사유로 폐지된 적이 있었으나, 그 후 2012년에 다시 부활하여 유지했었다.
3) 12사단 예속
- 2019년 10월, 국방개혁 및 부대구조개편에 따라 17연대는 12사단으로 예속되었고 37연대는 해체 수순을 밟았다.
● 17여단 수색중대
- 쌍호연대답게 흉장에도 호랑이 두 마리가 있다. 과거 수색중대는 인제 읍내에 별도로 주둔지가 있었다.
● 참고사항
- 연대본부와 3대대는 기존 17연대 주둔지를 사용하고 1대대와 2대대는 12사단 37연대 시절 주둔지를 사용한다.
4.2.1. 舊 제37보병연대(독수리 → 향로봉)
● 37연대 당시 편제
- 연대본부 및 직할중대
- 1대대(신병교육대대), 2대대(향로봉대대=조쟁이대대[18] ), 3대대(백마촌대대)[19]
● 37연대 역사
- 창설 이래 37연대 원년 부대는 부대 이동 계획에 따라 1975년 8월 타 사단으로 이동한다. 그리고 11사단 9연대가 12사단으로 예속 및 이동하고 명칭을 37연대로 바꾼다.[20] 2000년대 중반까지는 37, 51, 52연대가 GOP 경계를 순환하며 담당하였고 이후로 37연대는 사단 예비 연대로 굳어진다.[21] 2003년 당시 향로봉 연대로 불리던 51연대와 GOP 등 주둔지와 임무지역을 맞바꾸었다. 그래서 01군번의 경우 GOP, 향로봉을 둘다 경험한 극히 일부 인원이 있다.
2008년 당시 37연대는 <신교대대, 서화대대, 백마촌대대>로 구성되었고 51연대는 <대곡리대대, GOP대대, 향로봉대대>로 편성되었다. 이때 51연대본부와 동떨어진 향로봉대대를 37연대로, 37연대본부와 동떨어진 서화대대를 51연대로 각각 변경 및 이동하였다. 이후 2010년대 들어서면서 51연대를 독수리연대, 37연대를 향로봉연대로 서로 일반명칭을 바꾼다.[22] 2019년 부대 개편에 따라 향로봉대대는 다시금 51연대로 예속된다.
2019년 국방개혁의 일환을 공수사단으로 변환 중인 2사단이 해체되면서 예하 17연대가 12사단으로 예속되면서 37연대는 17연대에게 작계지 및 장병을 인계하는 형식으로 해체 수순을 밟았다.
● 37연대 수색중대
- 최초 독수리연대라는 명칭답게 흉장에 보이는 동물은 독수리. 51연대와 명칭이 바뀌어 향로봉연대로 지냈던 기간에도 독수리를 계속해서 유지했다. 사단 유격장을 담당했다. GP에 아예 투입이 없었던 시기, 수색대대와 천리행군을 함께 했다. 2010년대에 들어서면서 수색대대가 담당했던 1개의 GP를 37연대 수색중대가 담당했다.
● 향로봉
- 부대 개편으로 37연대에서 51연대로 관할이 이전 되었다.
● 참고사항
- 박정인 장군: 북한군의 도발에 백린연막탄으로 북한군 GP를 통째로 날려버린 前 3사단장 박정인 장군이 37연대 1대대장을 역임했다. 6.25전쟁 당시 25세의 대대장으로 812고지를 지켜냈다. 그렇기 때문에 신병교육대대는 '박정인 대대'로 불린다.
- 윤병길 소령: 812고지 방어전투에 참가해 1개 대대 규모의 북한군과 치열한 공방을 벌이다 병력의 열세로 적에게 포위되자 부하들을 안전한 지역으로 대피시킨 뒤 자신은 최후까지 진지를 지키다 전사한 윤병길 대위가 37연대 3대대 본부중대장을 역임했다. 1953년 숭고한 동료애와 투철한 군인정신을 기리기 위해 1계급 특진(대위 → 소령)과 함께 충무무공훈장을 추서했다.
- 김칠섭 중령: 제2의 강재구 소령. 통신장비 해체 중 고압선에 감전된 통신병 2명을 구하고 산화했다. 사후 중령 및 보국훈장 삼일장이 추서됐다. 故人의 살신성인 정신을 기려 향로봉 민통선 검문소 입구부터 일정구간을 '칠섭로' 부른다.
4.3. 제51보병여단 향로봉
- 현재 편제
- 과거 편제
- 연대본부 및 직할중대
- 1대대(대곡리대대), 2대대(단결대대/GOP), 3대대(서화대대)
- 1대대(대곡리대대), 2대대(단결대대/GOP), 3대대(서화대대)
- 51연대 역사
- 최초 향로봉연대로 출발했으나, 2008년 37연대에 향로봉 작전지역을 넘겨주고 2010년대 들어 37연대의 일반명칭이었던 상승독수리연대로 명칭을 바꿨다. 2019년 부대개편으로 다시금 37연대로부터 향로봉 작전지역을 인수하면서 원래의 명칭이던 향로봉을 되찾는다. 즉, 향로봉 → 상승독수리 → 향로봉 순으로 일반명칭이 바뀌었다. 연대본부 주둔지를 52연대본부에 인계하고 37연대본부 주둔지를 인수하여 이동했다.
- 51연대 수색중대
- 흉장에서 보이는 동물은 흑표[27] 이다. 51연대가 담당하는 GP의 작전지형이 52연대의 그것보다 험하다. 게다가 51연대부터는 군사분계선이 급격히 위로 올라가기 때문에 타 사단의 GP경계와는 다르게 정면의 적GP는 물론 측면에 또 다른 적GP까지 경계하게 된다.
- 향로봉
- 해발고도 1,296m. '12사단=향로봉'일 정도로 상징성이 강하다. 6.25전쟁 당시 폭격과 포격으로 고도가 3m나 깎여나갈 정도였으니 향로봉이 작전상 엄청나게 중요한 고지인지 알 수 있다. 부대 개편 이전 37연대 2대대는 요충지인 향로봉을 작계지로 하기에 향로봉대대로도 불렸다. 또한 향로봉대대 예하 중대를 교대로 향로봉 중초로 올려보내 그곳을 지키게 한다. 그리고 이 향로봉 위의 독립중대(통칭 향로봉 중대)는 대한민국 육군 최고(最高) 주둔부대로 불릴 정도로 유명해[28] 언론사에서 빈번하게 취재를 올 정도다. 일기예보에서 '향로봉의 기온은 몇 도'라고 예보할 때 그 향로봉이 바로 이곳이다. 그보다 중요한 점은 백두대간에 위치해 있다는 점이다. 백두대간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1996년 강릉무장공비 침투 당시 북한 공비들의 복귀 계획이 향로봉을 지나 백두대간을 이용하려 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무장공비들은 한국군 군복에 12사단 마크를 부착했을 정도다.
진부령에서 칠절봉, 둥글봉을 거쳐 향로봉에 도달하게 되는데, 그 거리는 편도 18km이며 비무장 상태로 도보 이동 시 약 5시간 정도 소요된다. 전술도로가 매우 가파르기 때문에 향로봉으로 차량운행하게 되면 대부분 고참급 병사가 담당한다. 특히 겨울이 되기 전에 공병대대에서 운전병과 불도저를 그 위에 파견해 두었다가 폭설이 내리면 운전병이 출동해 전술도로 시작점까지 밀고 내려간 뒤 낮에 불도저와 함께 혹은 홀로 향로봉까지 걸어 올라간다. 그래도 눈이 잦아 차량 보급이 불가능할 때도 있는데, 이 경우 헬기를 투입해 보급 겸 그곳의 휴가/전역 장병들을 내려보내는 진기한 상황이 펼쳐진다. 1970년대 향로봉에서 휴가신고를 하고 출발하였던 병사가 폭설에 파묻혀 죽은 일도 있을 정도로 눈이 정말 많이 내린다. 2006년 겨울에는 3일간 내린 누적 적설량이 2m를 넘긴 경우도 있었다.[29] 많은 적설량 때문에 향로봉으로 향하는 전봇대에는 10cm 단위로 눈금이 표시되어 있다. 폭우가 쏟아지면 전술도로가 유실되는 경우도 발생했고 낙석으로 인해 도로 자체가 통제되기도 한다. 한 여름 야간 경계작전 때도 야전상의를 입을 정도의 기온이며 2010년 6월 1일에는 최저기온 영하 5도, 최고기온 27도를 기록했다. 한 겨울 영하 34도, 체감온도 영하 57도를 기록한 경우도 있으며 보통 첫눈은 10월, 마지막 눈은 5월에도 경험한다. 장마 또는 태풍 시 보통 2~3일 누적강우량은 적게는 300~400mm, 많게는 800mm 이상이다. 아침마다 운해는 물론 동해에서 뜨는 일출을 볼 수 있고 화진포, 거진항, 송지호까지 조망된다. 백두대간 설악산 대청봉은 물론 대청봉으로부터 이어져 오는 신선봉, 마산 등 백두대간 줄기 역시 보인다. 더불어 향로봉은 금강산의 마지막 봉우리이고, 청명한 날에는 향로봉에서 북한의 금강산이 보인다.[30]
진부령에서 칠절봉, 둥글봉을 거쳐 향로봉에 도달하게 되는데, 그 거리는 편도 18km이며 비무장 상태로 도보 이동 시 약 5시간 정도 소요된다. 전술도로가 매우 가파르기 때문에 향로봉으로 차량운행하게 되면 대부분 고참급 병사가 담당한다. 특히 겨울이 되기 전에 공병대대에서 운전병과 불도저를 그 위에 파견해 두었다가 폭설이 내리면 운전병이 출동해 전술도로 시작점까지 밀고 내려간 뒤 낮에 불도저와 함께 혹은 홀로 향로봉까지 걸어 올라간다. 그래도 눈이 잦아 차량 보급이 불가능할 때도 있는데, 이 경우 헬기를 투입해 보급 겸 그곳의 휴가/전역 장병들을 내려보내는 진기한 상황이 펼쳐진다. 1970년대 향로봉에서 휴가신고를 하고 출발하였던 병사가 폭설에 파묻혀 죽은 일도 있을 정도로 눈이 정말 많이 내린다. 2006년 겨울에는 3일간 내린 누적 적설량이 2m를 넘긴 경우도 있었다.[29] 많은 적설량 때문에 향로봉으로 향하는 전봇대에는 10cm 단위로 눈금이 표시되어 있다. 폭우가 쏟아지면 전술도로가 유실되는 경우도 발생했고 낙석으로 인해 도로 자체가 통제되기도 한다. 한 여름 야간 경계작전 때도 야전상의를 입을 정도의 기온이며 2010년 6월 1일에는 최저기온 영하 5도, 최고기온 27도를 기록했다. 한 겨울 영하 34도, 체감온도 영하 57도를 기록한 경우도 있으며 보통 첫눈은 10월, 마지막 눈은 5월에도 경험한다. 장마 또는 태풍 시 보통 2~3일 누적강우량은 적게는 300~400mm, 많게는 800mm 이상이다. 아침마다 운해는 물론 동해에서 뜨는 일출을 볼 수 있고 화진포, 거진항, 송지호까지 조망된다. 백두대간 설악산 대청봉은 물론 대청봉으로부터 이어져 오는 신선봉, 마산 등 백두대간 줄기 역시 보인다. 더불어 향로봉은 금강산의 마지막 봉우리이고, 청명한 날에는 향로봉에서 북한의 금강산이 보인다.[30]
- 4천계단
- 그야말로 신이 버린 땅으로 표현할 수 있다. 12사단을 상징하는 향로봉, 을지전망대와 더불어 삼대 축이다. 최동단 22사단에 인접한 △△소초일대는 보급을 모노레일로 할 정도로[31][32] 열약하다. 51연대 GOP 평균 경사는 50도 이상이다. 무엇보다 △△소초가 속한 사천리중대의 소초와 소초 사이 특정구간은 4800여 개 계단으로 이뤄졌고 이 구간은 평균 경사가 70도 이상이고 일부구간은 수직에 가깝다. 병사들은 이를 4천계단[33]#으로 칭한다. 이곳에 소초에 투입되면 병사는 물론 간부 역시 평균 6~8kg 체중이 빠진다. 도로를 닦지 않아 차로 접근할 수 없는 소초가 몇 군데 있기는 한데, △△소초처럼 완전히 산속에 고립된 경우는 유일하다. 4천계단은 워낙 유명하기에 이따금 언론이나 각 GOP 소초에 전입온 신병들이 교육을 위해 오기도 한다.[34] GOP 경계작전 지형은 52연대 GOP보다 험하다. 날씨가 좋으면 금강산을 볼 수 있다.
- 참고사항
- 김영식 장군: 제40대 제1야전군사령관으로 51연대장을 역임했다.
- 51연대 2대대가 GOP 경계작전 담당할 때 다큐 3일 혹한의 GOP - 그 3일간의 기록/2008년 편이 방영되었다.
- 51연대 2대대가 GOP 경계작전 담당할 때 다큐 3일 혹한의 GOP - 그 3일간의 기록/2008년 편이 방영되었다.
4.4. 제52보병여단 쌍용
- 현재 편제
- 과거 편제
- 52연대 역사
- 최초 쌍용연대로 출발했으며, 37&51연대와 다르게 쌍용연대라는 일반명칭이 단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 간혹 52연대는 GOP만 담당했다고 하는 이들이 있지만 이는 명백히 틀리며 52연대 역시 예비 연대를 담당했던 적도 많다[40] . GOP 좌측 축선을 담당한다. 이쪽은 양구군 해안면 일대의 을지전망대를 담당하며,[41] 인접 연대들과 마찬가지로 높고 험하다. 2010년 전까지만 해도 3개 보병연대 중 주둔지 면적이 가장 넓었다. 현재는 주둔지를 51연대가 사용했던 곳으로 옮겼다.
- 52연대 수색중대
- 흉장에서 보이는 동물은 용 두 마리, 연대의 명칭인 쌍용을 그대로 사용한다.
- 쌍용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게 된 것은 95년 이후이고 이전에는 흑룡수색정찰대라는 이름을 사용하였다. 96년 사단 수색대대와 GP 임무를 교대하면서 DMZ 수색 및 매복 작전을 담당하였으나 2000년대로 넘어가면서 다시금 GP를 담당한다.
- 육군이 3각편제로 개편되면서 5,6소대 인원들이 이 때 사단 수색대대로 넘어갔다. 그리고 해체된 정찰대 인원들이 수색중대로 넘어오면서 쌍용수색정찰중대로 불리었다. 이 시기 포반이 새로 창설됐다.
- 쌍용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게 된 것은 95년 이후이고 이전에는 흑룡수색정찰대라는 이름을 사용하였다. 96년 사단 수색대대와 GP 임무를 교대하면서 DMZ 수색 및 매복 작전을 담당하였으나 2000년대로 넘어가면서 다시금 GP를 담당한다.
- 육군이 3각편제로 개편되면서 5,6소대 인원들이 이 때 사단 수색대대로 넘어갔다. 그리고 해체된 정찰대 인원들이 수색중대로 넘어오면서 쌍용수색정찰중대로 불리었다. 이 시기 포반이 새로 창설됐다.
- 참고사항
- 노무현 前 대통령: 복무한 연대로,[42] 그가 있었던 건봉산 OP의 벙커는 2002년 말 16대 대선에서 승리한 걸 기념해 노무현 벙커로 불리웠으며, 현재는 고성의 22사단 55연대가 담당하고 있다. 연대본부 건물에 관련 기념물들이 전시 돼 있다.
- 여방오 일등중사: 52연대 9중대 3소대 2분대장으로 812고지 바로 옆 무명고지로 투입되어 공군에게 폭격 목표를 알리기 위해 대공포판을 등에 메고 적 기관총 진지에 뛰어들었다. 국군 공군기는 적 기관총 진지에 화력을 퍼부어 파괴됐고 국군은 고지를 탈환했다. 이 과정에서 여 일등중사는 아군 승리에 결정적인 공을 세운 뒤 장렬히 전사했다. 이후 무명고지는 쌍용고지로 불리게 되었다.[43] 그 희생과 공로를 인정받아 1955년 3월 1일 을지무공훈장을 추서 받았다.
- 을지전망대를 담당한다.
- 여방오 일등중사: 52연대 9중대 3소대 2분대장으로 812고지 바로 옆 무명고지로 투입되어 공군에게 폭격 목표를 알리기 위해 대공포판을 등에 메고 적 기관총 진지에 뛰어들었다. 국군 공군기는 적 기관총 진지에 화력을 퍼부어 파괴됐고 국군은 고지를 탈환했다. 이 과정에서 여 일등중사는 아군 승리에 결정적인 공을 세운 뒤 장렬히 전사했다. 이후 무명고지는 쌍용고지로 불리게 되었다.[43] 그 희생과 공로를 인정받아 1955년 3월 1일 을지무공훈장을 추서 받았다.
- 을지전망대를 담당한다.
4.5. 포병여단 왕벌
- 현재 편제
- 여단본부
- 제63포병대대: K-55A1 운용, 2사단 해체 후 12사단으로 예속
- 제66포병대대: K-55A1 운용
- 제89포병대대: K-9 운용
- 제379포병대대 : K-9 운용, 3군단 포병여단에서 12사단으로 예속
- 제63포병대대: K-55A1 운용, 2사단 해체 후 12사단으로 예속
- 제66포병대대: K-55A1 운용
- 제89포병대대: K-9 운용
- 제379포병대대 : K-9 운용, 3군단 포병여단에서 12사단으로 예속
인근 부대의 포반장 파견 교육때 이 부대의 구막사에서 5일간 교육을 진행했는데, 밥이 존나게 밍밍해서 맛이 없다.
- 과거 편제
- 제65포병대대[44] (흑표대대): 해체 후 51보병여단 51포병대로 재창설
- 제66포병대대(황소대대/송용성 대대)
- 제79포병대대(사자대대): 해체 후 52보병여단 52포병대로 재창설
- 제89포병대대(백곰대대)
- 제66포병대대(황소대대/송용성 대대)
- 제79포병대대(사자대대): 해체 후 52보병여단 52포병대로 재창설
- 제89포병대대(백곰대대)
- 참고사항
- 12사단이 위치한 인제군은 대한민국 기준으로 기초자치단체 중 홍천군(1위) 다음으로 면적이 넓으며 종심이 긴 형태이다.[45] 그렇기 때문에 포병 전력이 매우 중요하다. 부대 개편 전에도 해체된 제2사단의 포병연대본부가 원통에 주둔했고 예하 포병대대 4개 중 3개가 12사단 작전지역에 위치했다. 3군단 포병여단 예하 포병대대 2개(양구 지역)를 제외한 나머지 포병대대 역시 12사단 작전지역에 위치하면서 화력지원했다. 무엇보다 향로봉에서 북으로 연결되는 백두대간 때문에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험한 산악지형에서 공격, 방어 전술적 측면에서도 포병 화력이 절대적으로 요구된다. 이에 반해 양구군은 인제군 면적에 1/2에도 못 미치지만 군사분계선을 담당하는 부분이 인제군(제12보병사단)보다 길다. 게다가 종심이 짧기 때문에 (부대 개편 이전에는) 제21보병사단의 후방에 포병 전력보다는 제2보병사단의 2개 보병연대가 배치된 것이다.
- 포병은 기본적으로 3개 포병대대는 3개 보병연대를 직접화력지원, 1개 포병대대는 사단 일반화력지원을 담당한다.
- 포병은 기본적으로 3개 포병대대는 3개 보병연대를 직접화력지원, 1개 포병대대는 사단 일반화력지원을 담당한다.
5. 출신인물
5.1. 사단장
5.2. 장교/부사관
5.3. 병
- 노무현 - 제16대 대한민국 대통령. 역대 최초의 현역병 출신 대통령. 52연대 모 대대 정보병으로 복무했다. 현재 노무현 대통령이 복무했던 장소는 22사단 관할로 해당 장소에는 '노무현 벙커'라고 표시되어있다.
- 김경진 - 코미디언
- 김민기 - 가수. 카투사로 근무하다 수사기관의 통보로 군 입대를 알게 된 군의 전출 명령으로 원통의 12사단 51연대 모 대대 중화기 중대로 전출, 복무했다. 당시 근무 중 30년의 군생활을 마치고 전역을 앞둔 병기선임하사의 요청으로 만든 노래가 바로 유명한 늙은 군인의 노래.[46]
- 김주왕 - 슈퍼스타 K 1기에서 TOP 10에 든 출연자.
- 김필수 - 배우
- 도지한 - 배우
- 서경덕 - 성신여대 교수
- 서지석 - 배우
- 손수호 - 변호사. 1999년 1월부터 2001년 3월까지 신병교육대에서 복무했다.
- 승호 - 엠블랙의 멤버. 사단 군악대에서 복무했다.
- 오상윤 - 배우
- 오정환 - 야구선수[47]
- 윤두준 - 하이라이트의 리더. 사단 군사경찰대에서 또래 상담병으로 복무했다.
- 조현수 - 하스스톤 프로게이머이자 스트리머. 과거 17연대가 37연대일 때 수색대대에서 복무했다고 한다.
- 푸워 - 집안소개를 할 때 걸려있는 군복에 마크가 보인다.
- 허각 - 가수
5.3.1. 신병교육대대 출신
6. 기타
6.1. 근무환경
6.1.1. 기후
[image]
제설작전이 아무리 싫다 해도 10월 중순부터 이듬해 3월 초까지는 이틀에 한 번 꼴로 제설을 해야 한다. 정말 시도 때도 없이 내리는 그 양이 또 어마어마하다. 같은 군필자라도 비교적 후방(최전방에서 말하는 후방은 접경지역을 제외한 모든 곳이다. FEBA를 포함한 이 이남의 모든 지역을 싸잡아 후방이라 여긴다는 얘기.)에 있던 사람은 상상도 못할 정도. GOP에서는 보급로에 굴착기와 불도저를 배치하여 겨울 내내 운용한다.
2009년에서 2010년으로 넘어가는 겨울, 최악의 폭설이 있었는데, FEBA에서만 하루 그것도 오전에만 내린 적설량이 74cm였다. 3일 동안 내린 누적적설량은 2m를 넘겼다.[49] 사실 해당 부대원들에게는 제설작업은 동절기 일과라고도 볼 수 있고, 그렇기 때문에 병사들은 그 노동의 힘듦과 별개로 생각보다 서로 웃으며 작업하는 경우가 많다. 저 경우도 그런 케이스. 해당 부대의 경우 눈이 오면 제설도구를 챙겨서 전술도로라는 곳을 올라가는데 이게 7.2km 길이에 경사가 도저히 사람 다니라고 만든곳이 아니다 보통 올라가는 데 2시간 걸리는데 다올라가서 제설하면서 내려간다.
물론 사진에 나온 당사자가 포병이든 아니든 제설 작업은 필수다. 아니, 방열은 둘째치고 폭설상태를 방치하면 막사 문을 여닫지 못할 뿐만 아니라 눈 무게로 막사 지붕이 무너져 '''부대원 몰살'''이나 한겨울 텐트 취침(...) 상황에 처할 수 있다.[50] 게다가 '''가장 중요한''' 보급이 끊긴다. 그래서 눈을 반드시 치워내야 하는데 병참로 밑 저지대까지 막 쓸어내지 않으면 그게 녹아서 길가로 흘러내린 뒤 밤중에 얼어붙기에 유의.[51]
게다가 신속 보급을 위해 눈이 좀 쌓인다 싶으면 제 아무리 새벽이라 하더라도 '''부대원 전원 기상''' 후 (상황병과 초병들을 제외한) 전원이 '''밤새''' 제설작업에 투입된다.[52] 눈이 내리고 있을 때 눈을 쓸다 보면 그새 눈이 또 쌓여 담당지 끝까지 쓸어낸 뒤 혹은 도중에 뒤돌아 쓸어내는 경우도 다반사다. 심지어 식목일에도 적설량 30cm를 기록하기도 했고, 심지어 2014년에는 5월 5일에도 눈이 왔다. 산골에 있는 민가들은 대부분 노인들이 살아 엄청난 폭설에 자주 고립되기 때문에 대민지원을 자주 나간다.
눈만 많이 오는 것이 아니다. 비구름이 이동하면서 백두대간과 부딪히며 엄청나게 많은 비가 내린다. 철책선이 유실될 정도로 비가 내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뿐만 아니라 대구만 덥다고 상상하지 말 것. 산으로 빼곡히 막혀 있어 고지를 제외한 FEBA는 매우 덥다. 아무튼 폭설, 폭우, 폭염을 끼고 사는 곳이 바로 을지부대.
6.1.2. 지형
산악사단이란 명성에 걸맞게 작전지역 중 해발고도 1,000m 고지가 넘는 곳이 49개다. 21사단과 함께 제3군단을 이루고 있는데, 이들 중 21사단에서도 유명한 펀치볼 분지의 동쪽은 12사단이 맡고 있다. 그렇다고 근무환경이 21사단보다 나은 건 딱히 없다. 21사단은 GOP경계 섹터가 전군에서 가장 길어서 힘들다면 12사단의 동측 섹터는 지형의 고저차가 극심하고 해발고도는 백두대간의 정점을 찍고 22사단 55연대 섹터로 넘어가기 때문에 최악이다. 12사단과 22사단의 전투지경선에서 GOP경계병력이 종종 마주칠 경우가 있는데, 22사단이 12사단 장병을 측은하게 여길 정도다. 어쨌든 펀치볼 동쪽이 작전지역이다보니 100킬로미터 행군도 펀치볼을 찍고 돌아오는 경우가 있다.
을지전망대가 있어서 제4땅굴과 함께 나름대로 유명한 안보 관광지이기도 하다. 사실 양구 펀치볼의 수려한 경관을 보면 이곳이 전선이 아니었다면 관광지로 유명했을 만한 곳이기도 하다. 단, 제4땅굴은 21사단 작전 구역이다.
또한 강원도 부대들이 그러하듯 12사단도 담당 지역들이 험하다. 주된 작전 지역인 서화리, 용대리, 원통과 같은 인제 북쪽 민통선 아래 지역들은 그나마 도로도 좀 뚫리고 민가도 좀 있지만, 여러 하천과 복잡한 산계가 뒤섞여 지형이 정말 변화무쌍하다. 하천과 각종 기암괴석들이 늘어선 것을 보면 삼국지 시리즈 등에서 배경으로 나오는 오,월 지역과 비슷한 분위기도 있다. 물론 장가계 수준의 기암괴석은 아니다. 게다가 민통선 안쪽은 도로나 지형도 이보다 더 험준해서 특수 훈련을 받은 공비 외엔 넘어올 수 없으리라 여겨질 정도다. 사실 진짜로 못넘어 올 확률이 높은 게 실제 한국전쟁 개전 당시 급습으로 이리저리 밀려나던 서부 전선과 달리 동부전선은 그 험준함 때문에 그럭저럭 막아내고 있었고, 서부에 이어 중부까지 밀려나자 별 수 없이 퇴각한 것이다.
종심 거리로 따지면 철책에서 민통선까지 불과 10km 남짓한 거리에 불과하지만 거기까지 올라가는 데에 소요되는 시간이 정말 어마어마하게 길며[53] , 차 멀미가 생길 정도로 지형이 험하다.[54]
6.1.3. 교통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춘천에서 소양강을 따라 배를 타고 신남선착장에서 내려서 인제로 들어가는 것이 빠를 정도로 도로 사정이 안 좋았다. 이 시절 원통에서 동서울 또는 상봉까지 5시간 소요됐다. 2006년~2010년 사이 46번 국도 중 인제군 지역이 왕복 2차선에서 4차선으로 확장[55] 되면서 비로서 뱃길보다 육로 사정이 좋게 변한 것이다. 그러나 동서울에서 원통행 완행버스를 타게 되면 양평, 양덕원, 홍천, 신남, 인제, 원통은 물론 각 거점 사이의 작은 정류장까지 모두 정차하여 5시간이 걸렸다. 2009년 서울-양양고속도로가 개통[56] 되면서 '인제 가면 언제오나 원통해서 못 살겠네'라는 오지의 타이틀을 조금씩 내려놓는다. 현재는 동서울-원통 무정차는 1시간 30분 소요된다.
이 부대가 주둔한 인제군에는 인제시외버스터미널(인제읍), 원통터미널[57] , 서화터미널, 백담사입구시외버스터미널[58] 이 있지만 지역의 특성상 교통편이 몹시 열악하다. 그래서 휴가 장병들이 출타나 복귀가 좀 불편한데 직행이 가능한 소수의 지역을 제외하면 동서울터미널, 홍천터미널, 원주시외버스터미널 등으로 이동하여 환승해야 한다. 특히 호남권, 서부경남권, 충남권은 답이 없다.[59] 아니면 동서울터미널을 거쳐 서울역(혹은 용산역)에서 TMO를 끊은 후 KTX를 타고 가는 경우도 간혹 있다.[60] 공기수송으로 악명높은 양양국제공항으로 이동하여 양양 - 김해 여객기를 이용하는 부울경 쪽 거주 장병도 간혹 있었다. 똑같은 강원도라도 강릉 쪽 노선은 없으며, 강릉 가려면 한계령을 넘어 양양으로 가서 환승해야 한다.
현재는 대구까지 빨리 가도 환승 대기 시간까지 포함하여 4시간 45분~5시간, 부산까지 5~6시간 정도 걸린다. 자신의 부대 기준으로 3급지보다 높아야 휴가에 추가 1일이 더 붙는데, 대구~안동까지는 해당사항 없음. 대구에 산다면 잘 구슬려 보거나 포기하면 편하다. 중앙고속도로 덕분에 대구 가는 거리가 2시간이 줄었다. 중앙고속도로가 없던 2001년 이전에는 저기에 2시간을 더 추가했어야 했다. 그런데 중앙고속도로가 차량통행량이 적다 보니 말이 4~6시간이지, 부산고속버스터미널에서 홍천까지 3시간대 초반에 주파를 해댄다. 안동, 대구는 실상 '''부산 거주 장병이 부산 내에서 대중교통으로 집까지 소요되는 시간''' 정도에 해당 도시 터미널에 도착이 가능하다. 즉, 경상도 지역 장병들은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안 걸린다. 오히려 동서울로 가서 KTX를 타는 게 훨씬 시간이 더 많이 걸릴 정도. 진짜로 독박을 쓰는 건 애매하게 논산, 대전 정도에 사는 장병들이다.
6.2. 사단가
7. 여담
이른바 '메이커 부대[61] '에는 들어가지는 않지만 험준한 지형으로는 손가락에 꼽힐 정도다. 신교대에서 조교들이 그러기를 '준 메이커 부대'라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나온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름을 조금씩 알리고 있었으나 이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조사과정에서 불거진 군내 사조직 '알자회'에 전직 사단장들이 가담했고 특전사령관, 12사단장 등의 보직 등을 대물림했다는 의혹까지 나오면서 충격을 주고 있다. # 다행히도 성일 사단장은 직속상관이었던 당시 김병주 3군단장[62][63] 이 동기들과 함께 발을 묶었다.[64] 성일 사단장 이임 후에는 당시 김운용 2군단장[65] 의 직속부하였던 박용준 2포병여단장이 사단장으로 부임했으며,[66] 2019년 11월 장성급 장교 인사에서 학군 29기의 정덕성 소장[67] 이 사단장으로 부임하였다.
의외로 2차 창작물에서도 유명한 사단으로 김경진[68] 의 작품 《남북》과 《데프콘》 1부에서 동시에 나오는 사단이다. 《데프콘》 1부에서는 청천강을 방어하고, 《남북》에서는 향로봉부대가 당하는 부분에서 등장한다. 윤종석의 《파이어 데이》에서도 등장한다.
1990년대 중반에는 12사단 전체에 유명한 서화면 천도리의 왕다방이 있었다.
2008년 6월 병과학교를 마치고 전입한 소위가 사단장에게 휴가 관련 건의를 한 사건이 있었다. 당시 육군규정에는 임관 후 6개월이 지난 시점에서 첫 휴가를 실시한다고 되어 있었다. 그러나 사단예규에는 전입 후 3개월이 지나면 첫 휴가를 시행한다고 하여 육군규정과 사단예규를 비교하면 약 25~26일의 기간이 차이가 났던 것이다. 전입한지 한 달도 되지 않았던 소위는 육군규정과 사단예규의 휴가 규정에서 다른 점을 발견하고 사단장에게 E-mail을 발송했다.[69] 다음 날 아침 상황회의에서 사단장은 인사참모에게 확인을 지시했고 몇 년이 지나도록 인지조차 못했던 인사처는 부랴부랴 사단예규를 육군규정에 맞추어 수정했다. 이에 해당 소위는 사단장 표창과 포상휴가를 받았다.
2010년 봄, 북한군이 사계청소를 목적으로 DMZ 내 불을 냈는데, 바람을 타고 12사단 GOP는 물론 GOP 이남까지 옮겨 붙었다. 당시 인제에는 정식 소방서가 아닌 의용소방대만 있어서 화재 진압이 불가했고 인근 도시인 홍천, 속초소방서에서 GOP까지 올라가서 화재를 진압한 적이 있다. 물론 헬기도 동원하여 화재를 진압했지만, GOP 일부 구간이 유실됐다. 이를 계기로 인제에 2012년 9월 소방서가 생겼다.
2017년 15회 지상군 페스티벌에서 진행한 육군참모총장배 오버워치 솔저 76 토너먼트에서 26사단을 2:0으로 꺾고 육군에서 제일 오버워치를 잘하는 부대 타이틀을 가져갔고. 매년 1~2차례 진행되는 3군단배 CSTAB[70] 경연대회에서도 여러 차례 우승하며 게임을 잘하는 사단으로 소문나고 있다.
2018년 8월 19일자 뉴스에 의하면 10월 말까지 평일외출 시범운영 부대로 선발되었다. 다만 원통은 양구 수준으로 바가지가 심한 동네는 아니다. 속칭 '점프'라고 하는 위수지 이탈을 할 만한, 단시간에 갈 수 있는 원통보다 큰 동네인 인제나 나름 도시라고 할 만한 속초로 교통편이 연결되기 때문. 사실 위수지역도 군 측에서 제멋대로 해석해서 점프를 처벌하는거지, 속초만 해도 원통터미널 기준으로 버스타고 한시간도 안걸린다. 그냥 도로타고 미시령터널만 지나면 되니까. 물론 바가지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양구정도로 개막장이 아니라는 것뿐이지 이 동네도 2017년 4월 기준 PC방 요금으로 보면 '일반 요금', '군인 요금', '주말 요금'이 따로 있는 동네다(...).[71]
[1] 2020년 12월부로 연대에서 여단급으로 바뀌었고 군수지원대대가 창설됨[2] 102기갑여단 부대창설지 안보테마공원에는 (창설일자 순으로) 8사단, 12사단, 15사단, 21사단, 20사단, 22사단, 25사단, 27사단, 7군단, 23사단, 8군단, 102여단 창설기념비가 있고 매년 8군단 주관으로 창설 행사를 한다. [image][3] 굳이 시간까지 따지면 오전에 창설식을 한 12사단이 먼저 창설되었다.[4] 2019년 국방개혁의 일환으로 부대개편이 되면서 37연대는 2사단 17연대에 작전지역과 장병을 인계하는 형식으로 해체수순을 밟게 되면서 더 이상 완벽하게 연대 번호가 이어지지 않는다.[5] 미 제45사단 전에는 국군 8사단이 주둔했다.[6] DMZ 내 위치. 1967년 1052고지에 854고지 전투전적비를 건립했다. 812/854고지, 2개를 일컬어 쌍용고지라고 언급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틀리며 812고지 동쪽 능선에 쌍용고지가 별도로 존재한다. 쌍용고지의 유래는 52연대 목록 중 '참고사항 - 여방오 일등중사'에 서술하였다.[7] 향로봉 해발 1,296m[8] 용은 하늘과 바다와 땅을 지배하는 變化無日(변화무일)하고 上下無時(상하무시)하며 미래를 예시해주는 신비로운 동물로 숭상되어 왔고 백룡은 그 모든 용들의 왕이다. 즉, 사단 내에서 가장 뛰어난 부대라는 자부심이다.[9] 참고로 육군본부에서 이 부대를 대상으로 현재 보급중인 방한내피 및 발열내피를 테스트했다.[10] 실제로 청천강 전투에서 전차들을 좁은 산악도로로 밀어넣었다가 전멸당하는 등, 산악지대에서 전차는 이래저래 제약이 많다. 그나마 무난히 할 수 있는 게 보병과 함께 다니며 전차포로 지원하는 것.[11] 2020년 12월부로 연대에서 여단급으로 바뀌었고 군수지원대대가 창설됨[12] 본부중대, 수색중대, 의무중대, 통신중대 / 군 구조 개편으로 전투지원중대와 수송대는 해체(수송부 소속 병력은 예하 대대 소속으로 변경, 차량무사고 5,000일 달성 후 수송부 해체)[13] 과거 포병대대의 105mm 곡사포를 차량탑재형으로 운용하여 기존 보병연대 전투지원중대의 화력을 뛰어넘는다. 포병대로 군 구조개편이 되면서 보병연대 직할이던 전투지원중대는 편제에서 사라진다.[14] 정비중대와 보급수송중대로 편제되었다. 대대장은 병기, 병참, 수송 병과 출신의 군수 병과(영관장교부터는 병기, 병참, 수송 병과를 군수 병과로 통합함) 중령이다. 정비중대장은 병기 병과, 보급수송중대장은 병참 또는 수송병과 출신이다. 정비중대는 사단 직할대대인 정비대대의 각 중대가 각 보병여단의 창설 주축이 되었다. 이는 보급수송중대도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사단 직할대대인 정비대대와 보급수송대대가 해체되거나 축소되지는 않았고 본연의 임무는 계속해서 수행한다. 기존의 수송대 차량은 군수지원대대와 예하 보병대대에서 운용한다. 참고로 여단 군수과장(보병 병과)은 여단장의 군수참모로서 작전에 필요한 군수 업무를 담당하는 것이고 군수지원대대장은 말 그대로 군수지원 역할을 하는 대대의 장이다.[15] 본부중대, 수송대, 수색중대, 의무중대, 전투지원중대, 통신중대[16] 여기서 예비대란 기동성을 확보, 주요 전황에서 투입하여 유용하게 사용한다는 교리에서의 예비대이다. 그렇기에 경험이 많은 정예병들로 구성되어 있었고 정예부대란 인식이 강했다.[17] 2사단 전체가 아닌 오직 17연대만 참여했다.[18] 행정구역 '흘리'는 과거 조쟁이로 불렸고,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흘리소대가 별도로 주둔하여 마산, 신선봉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주요목의 경계를 담당하였다.[19] 각종 훈련 및 시범 전담 부대로 사단에서 훈련양이 가장 많았다.[20] 그렇다고 11사단 9연대가 해체된 것은 아니며 타 부대 병력이 이동하여 9연대를 계속하여 보존한다.[21] 간혹 52연대는 100% GOP경계작전을 담당했다고 하나 이는 명백히 틀리며 70년대, 80년대, 90년대 각각 사단 예비연대를 담당했다.[22] 군대의 명칭은 고유명칭(제12보병사단), 통상명칭(0000부대), 일반명칭(을지부대)로 표현하여, 고유명칭과 통상명칭을 함께 사용하는 것을 금지한다. 더불어 일반명칭 대신 애칭, 별칭이라고 표현하는데 이 역시 잘못된 것이다.[23] 과거 포병대대의 105mm 곡사포를 차량탑재형으로 운용하여 기존 보병연대 전투지원중대의 화력을 뛰어넘는다. 포병대로 군 구조개편이 되면서 보병연대 직할이던 전투지원중대는 편제에서 사라진다.[24] 정비중대와 보급수송중대로 편제되었다. 대대장은 병기, 병참, 수송 병과 출신의 군수 병과(영관장교부터는 병기, 병참, 수송 병과를 군수 병과로 통합함) 중령이다. 정비중대장은 병기 병과, 보급수송중대장은 병참 또는 수송병과 출신이다. 정비중대는 사단 직할대대인 정비대대의 각 중대가 각 보병여단의 창설 주축이 되었다. 이는 보급수송중대도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사단 직할대대인 정비대대와 보급수송대대가 해체되거나 축소되지는 않았고 본연의 임무는 계속해서 수행한다. 기존의 수송대 차량은 군수지원대대와 예하 보병대대에서 운용한다. 참고로 여단 군수과장(보병 병과)은 여단장의 군수참모로서 작전에 필요한 군수 업무를 담당하는 것이고 군수지원대대장은 말 그대로 군수지원 역할을 하는 대대의 장이다.[25] 향로봉 입구 민통선 검문소 담당[26] 민통선 내 위치, 민통선 검문소 담당[27] 최초 흑표를 매직으로 그렸고 이어 미대생 출신의 병사가 다듬고 보완하여 흑표가 상징으로 굳어져 내려온다.[28] 이 다음으로 21사단 가칠봉 소초가 1241m 고도에 있다. 다만 공군 화악산(1468.3m) 관제부대가 존재하기에 전군 최고(最高)는 아니다.[29] 향로봉 자체가 백두대간에 위치하여 구름이 부딪히면서 여름에는 폭우, 겨울에는 폭설이 내린다.[30] 추가로 진부령 고개에 위치한 향로봉 입구(민통선 검문소)를 지나면 산림청 통제소가 있다. 그 이유는 향로봉, 건봉산 일대가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있기 때문이다. 유럽 알프스 고산 지역에서 자생하는 에델바이스(우리나라名:솜다래)를 볼 수 있을 정도로 산림청에서 백두대간 보호에 힘쓰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민간인이 향로봉에 오르기 위해서 예전에는 군부대 허가만 받으면 됐으나 현재는 산림청(양양국유림관리소)의 허가를 함께 받아야만 한다.[31] 만약 모노레일이 고장나면? 통문부터 도수운반이다. 물론 근처에 헬기장이 있지만 여느 말단 부대들이 그러하듯 동절기 유류 보급처럼 대량 또는 긴급 공수가 아닌 한 쓰이지 않는다.[32] 심지어 저 아미누리 기자가 취재 온 2014년 말에도 침상을 쓸 정도로 시설 역시 뒤쳐져 있었다.[33] 이와 비슷한 사례로는 15사단의 천국의 계단, 7사단의 네발계단 등이 있다. 그 외엔 V나 W(또는 맥도날드) 밸리(또는 계곡) 등으로 개성없이 호칭.[34] KBS 다큐멘터리 3일(37회, 2008.2.7, 혹한의 GOP 전선 - 그 3일간의 기록)에서도 신병 교육차 올라온 대대장과 신병들에게 물을 주는 훈훈함을 보여줬다. 무엇보다 연말, 연초에 사단장을 비롯한 사단참모, 연대장과 연대참모들은 단체로 4천계단을 올라 소초에서 일출을 보면서 부대의 안녕과 완전경계작전을 염원한다.[35] 과거 포병대대의 105mm 곡사포를 차량탑재형으로 운용하여 기존 보병연대 전투지원중대의 화력을 뛰어넘는다. 포병대로 군 구조개편이 되면서 보병연대 직할이던 전투지원중대는 편제에서 사라진다.[36] 정비중대와 보급수송중대로 편제되었다. 대대장은 병기, 병참, 수송 병과 출신의 군수 병과(영관장교부터는 병기, 병참, 수송 병과를 군수 병과로 통합함) 중령이다. 정비중대장은 병기 병과, 보급수송중대장은 병참 또는 수송병과 출신이다. 정비중대는 사단 직할대대인 정비대대의 각 중대가 각 보병여단의 창설 주축이 되었다. 이는 보급수송중대도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사단 직할대대인 정비대대와 보급수송대대가 해체되거나 축소되지는 않았고 본연의 임무는 계속해서 수행한다. 기존의 수송대 차량은 군수지원대대와 예하 보병대대에서 운용한다. 참고로 여단 군수과장(보병 병과)은 여단장의 군수참모로서 작전에 필요한 군수 업무를 담당하는 것이고 군수지원대대장은 말 그대로 군수지원 역할을 하는 대대의 장이다.[37] 부대 터만 닦여 있는 상태에서 부대 이동 계획에 의거 11사단 9연대가 1975년 8월, 12사단으로 예속 및 이동하여 창설됐다. 9연대 3대대 이곳에 배치되어 37연대 3대대로 편제된다. 연병장에서 야전텐트 생활을 하며 그야말로 無에서 有를 창조한 대대로서 주둔지 각종 생활관 및 건물, 심지어 주둔지 내 실거리 사격장까지 만들었다. 그 사격장을 여전히 사용한다.[38] 민통선 검문소 담당, 이곳 검문소를 지나면 고구려시대 토성인 서화성벽이 있음[39] 현재 제703특공연대 및 군사경찰대대 도심지역작전 및 대테러훈련장으로 사용[40] 명백히 70년대, 80년대, 90년대 각각 사단 예비연대 담당했음[41] 이른 아침 펀치볼 일대에 안개가 자욱히 낀 풍경은 예술이다[42] #에 따르면 을지부대 52연대 2대대 정보과 상황병으로 근무했었다고 한다.[43] 간혹 812고지와 같은 능선상에 쌍용고지가 있다고 둘을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으나 명백히 다른 고지다.[44] 부대 개편 전까지 향로봉의 입구, 즉 민통선 검문소 담당[45] 원래는 전국에서 면적이 가장 넓었으나 군사분계선 때문에 인제군의 면적이 남북으로 나뉘었다. 뿐만 아니라 홍천군 내면은 원래 인제군 행정구역이었다.[46] 대가로 막걸리 2말을 받았다고 한다.[47] 12사단 신교대 이수 후 그대로 조교로 복무 중.[48] 이 당시 12사단 37연대에서 병역을 수행하던 장병 및 전역 간부들은 김무열과 이특의 평가가 서로 어떻게 엇갈렸는지 잘 알 것이다. 병사식당에서 밥 먹다가 봤는데 표정이 참..[49] 2010년 봄은 원통에서 5월에 눈이 내렸고 벚꽃은 5월 중순이 지나서 폈다. 게다가 6월 초 원통의 최저기온이 0도였다.[50] 실제 12사단 관할에 예전 주인인 5사단을 위한 충혼비가 있는데, 그 내용은 폭설로 인해 막사째 깔려 죽은 장병들을 기린다는 것. 물론 당시는 나무나 깡통 막사(퀸셋 헛) 시절이었고, 콘크리트나 강철이 지탱하는 지금 막사의 적설 하중량은 상상을 초월하기에 수미터씩 쌓이지 않는 한 건물이 무너질 일은 없다 봐도 된다.[51] 물론 이렇게 되면 또 나가서 삽과 곡괭이로 죄다 까내려야 하기에 주의를 줄 수 있다.[52] 실제로 1997년 1월 초 폭설로 인해 밤새 제설작업을 해야 했다. 당시 3일간 내린 눈의 양은 '''2m'''. 그것도 첫날에 집중적으로 내렸다(...)[53] 인간의 흔적이 없어지는 지점에서 1시간 30분 정도 차량으로 들어가야한다.[54] 병력하차지점이 존재하는 것은 물론 2½톤 차량 진입 자체가 불가한 곳도 있다.[55] 2010년 한계교차로까지만 4차로였고, 한계교차로에서 미시령터널까지는 용대터널은 물론 계속해서 4차선으로 확장공사 했다.[56] 당시에는 동홍천IC까지만 개통되었다.[57] 2017년 8월 29일 기준 시간표이다. 다소 변경되었을 가능성이 있으므로 본 이미지를 너무 신뢰해서는 안 된다.[image][58] 그나마 한계령, 양양, 속초, 고성, 거진 등 방향의 버스가 이곳에 정차한다.[59] 특히 호남권은 홍천에서도 가는 차가 '''전주'''행과 '''순천'''행 둘밖에 없으며, 광주행 노선은 원주와 춘천에 있다. 이들마저도 운행 횟수가 굉장히 적어서 사실상 100% 동서울터미널 환승 확정. 게다가 동서울터미널에서도 호남 지역의 운행 횟수가 적어서 대부분의 지역들은 건대입구역 환승으로 센트럴시티까지 이동해야 한다. 영남권은 거의 홍천터미널에서 환승하는데 홍천에서 대전, 대구(북부정류장), 부산 동부(노포동), 울산, 경주, 포항행 노선이 있다. 그중 대구 가는 차만 홍천 착발이고 나머지는 춘천 착발이다. 노포동터미널로 가는 차의 경우 원주 착발 노선도 따로 있으며, 이에 따라 춘천 - 노포동 노선은 홍천과 횡성만 찍고 간다. 마창지역이나 안동·영주 쪽은 원주시외버스터미널에서 환승해야 한다.(홍천에서 가는 차가 아예 없다.)[60] 다른 방법으로는 2016년 12월에 개통한 SRT를 타기 위해서 수서역으로 가는 방법도 있다. 원통 출발 한정이지만 TMO를 이용해서 휴가를 나갈 호남,영남권 위키러들에게 팁을 알려주자면, 원통에서 8시 40분? 버스로 성남으로 간 다음, 길을 건너 야탑역에서 왕십리 방면 분당선을 타면 15분 내로 수서역에 도착한다. SRT도 후급증이 나오기 때문에 서울(용산)역으로 가는 것보다 이쪽이 훨씬 시간 절약된다.[61] 속칭 메이커 부대는 한국전쟁 이전에 창설된 수도사단, 1사단, 2사단, 3사단, 5사단, 6사단, 7사단, 8사단을 말하는 것이다.[62] 육사 40기, 한미연합군사령부 부사령관직을 끝으로 육군 대장으로 예편하였다.[63] 후임 군단장이었던 김승겸 중장(육사 42기) 역시 알자회 퇴출 때 선배들과 한목소리를 낸 적이 있는데, 이로인해 소장 시절 한직인 국군의 날 행사단장으로 좌천되어 전역직전까지 갈 뻔 했다가 정권이 바뀌면서 2017년 9월 중장 진급에 성공하였다.[64] 여담으로 김병주 3군단장이 취임할 때와 비슷한 시기에 사단장에 취임하였다.[65] 육사 40기, 지상작전사령관직을 끝으로 육군 대장으로 예편하였다.[66] 2포병여단장 취임식때는 같은 포병출신인 고현수 중장이 군단장이었다.[67] 사단장 취임 이전에 대대장, 연대장, 사단 참모장을 12사단에서 지냈다.[68] 우연의 일치로 12사단 출신인 코미디언 김경진과 동명이인이다.[69] 당시 사단장은 초임간부와 소통을 위해 민간 E-mail을 즐겨 사용했다.[70] 1인칭 시점의 시뮬레이션게임으로, PC에 실제 작전지역의 지형을 입력해 제병협동훈련이 가능하도록 구성돼 있다.[71] 한 예로 평일에는 1200원하던 PC방 요금이 주말에만 1500원으로 오른다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