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릭스 가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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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프랑스의 철학자, 정신분석학자.
2. 생애
펠릭스 가타리는 파리 북서부의 노동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고등학교 시절, 학생기숙사 조직에 가입하고 공산당 회합에 참석하는 등 일찍이 정치 활동에 관심을 가진다. 곧이어 소르본 대학에 입학해 약학과 철학을 공부하지만, 아카데미 특유의 학풍에 질려 자퇴하고 1950년대 초, 프랑스 최초의 사설 클리닉인 보르도 병원의 창설을 돕고 정신의학과에 들어가 평생을 일하게 된다. 비슷한 시기, 자크 라캉이 주도한 정신분석 세미나에 참여하고 그에게 사사한다. 한편으로 프랑스 공산당에 가입하고, 트로츠키주의 소식지인 '공산주의의 길'(La Voie Communiste)의 편집을 맡았으며, 라틴아메리카 혁명 지원 단체인 'OSARLA'과 베트남 전쟁반대운동을 위한 '좌익반대파'를 창립하고, 자퇴 후 교류하던 이스파노 집단과 함께 5월 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던 3·22 운동을 주도하는 등 각종 정치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1968년, 5월 혁명이 발발하고 가타리 역시 시위에 참여하는데, 이 무렵 라캉철학이 가진 무의식과 욕망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시각을 비판하고 적대적인 입장으로 돌아선다. 이듬해인 1969년, 파리 제8대학교에서 친구의 소개로 질 들뢰즈를 만나게 된다. 가타리의 사상에 매료된 들뢰즈는 이를 책으로 집필하자고 권유했고, 가타리가 개념을 제시하고 초안을 쓰면 들뢰즈가 이를 배치하고 수정하는 방식으로 작업을 전개했고 20세기 철학의 대표작인 '안티 오이디푸스'-'천 개의 고원' 연작은 그 결과물이었다. 한편 이 시기, 가타리는 물려받은 유산으로 낡은 수도원을 구해 이를 각종 모임과 연구의 장으로 활용한다. 또한 대안정신의학, 페미니즘 운동, 동성애운동, 감옥정보운동 등 각종 사회 활동에 앞장섰으며, 이탈리아의 아우토노미아 운동 활동가들을 지원하고 안토니오 네그리와 함께 공동선언문을 작성하기도 했다.
1980년대, 프랑스 최초의 사회당 출신인 미테랑 정권이 들어서자, 이에 기대하고 협력한다. 그러나 정권의 잇다른 부패와 정책에 대한 회의로 실망하게 된다. 1980년대 말에는 생태주의 운동에 참여했으며 브라질과 일본과 같은 해외의 문화와 사회 운동에도 관심을 가지고 연구한다. 이 시기 생태주의적 문제의식을 심화해 주저인 '세 가지 생태학'과 '카오스모제'를 집필 및 출간하고 프랑스 녹색당에 가입해 이를 실천하고자 한다.
1992년 8월 29일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게 된다.
3. 사상
가타리의 관심은 단순히 정신분석과 마르크스주의의 결합하는 것을 넘어서 새로운 형식의 정치를 모색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사상의 흐름은 '횡단성 → 분자혁명 → 분열 분석 → 생태철학(카오스모제)'으로 표현된다.
3.1. 횡단성
1960년대 가타리는 의사-간호사-환자라는 종래의 3자 관계를 대체하고자 하는 과정에서 횡단성이라는 개념을 착안한다. 횡단성은 상기의 우화로 예시되는 개념으로 수직적 위계와 수평적 칸막이를 깨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추운 겨울 어느 날 고슴도치들은 추위를 이기기 위해 서로 몸을 밀착시켰다. 그러자 서로 찔려 아파서 다시 떨어졌다. 밀착하고 떨어지기를 반복하면서 고슴도치들은 아프지도 않고 춥지도 않은 가장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서로를 감쌌다'''
고슴도치의 우화
3.2. 분자혁명
분자혁명은 미세한 일상의 단위, 이를테면 가정이나 지역공동체로부터의 변화가 초래하는 사회적 효과를 가리킨다. 가타리는 68혁명 당시 정신질환자들과 성노동자와 같은 소수자들이 시위하는 모습에서 분자혁명이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생각했다. 그는 저서 '분자혁명'을 통해 분자혁명이야말로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왜냐하면 어떤 혁명가도, 어떤 혁명운동도 없을지라도, 모든 수준에서 혁명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펠릭스 가타리
3.3. 생태철학
가타리는 '세 개의 생태학'를 통해 기존의 욕망 이론을 생태 철학으로 발전시킨다. 그는 기존의 생태 운동이 자연을 중심으로 한 환경 문제에만 국한된 것에 의문과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이러한 접근법이 오늘날 사회가 직면한 자본주의의 확산과 그 이면에 놓인 소수자들의 억압과 같은 범지구적인 위기들에 대처할 수 없다고 보았다. 그는 종래의 환경생태학(자연)에 더해 사회를 구성하는 기구와 기관의 배치를 다루는 사회생태학(사회), 주체들의 욕망과 무의식에 대해 다루는 정신생태학(주체성)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생태학을 제시한다.
'카오스모제'에서는 이러한 생태철학과 분열분석 방법론을 결합해 '카오스모제'(chaosmose)라는 새로운 개념을 도출해낸다. 카오스모제는 카오스(chaos, 혼돈), 코스모스(cosmos, 질서), 그리고 오모제(omose, 상호침투)의 합성어로 혼돈과 질서가 상호침투하는 생성의 과정을 의미한다.
4. 주요 저서
4.1. 단독 저서
- 정신분석과 횡단성 (Psychanalyse et transversalité ) (1972)
- 분자혁명 (La révolution moléculaire) (1977)
- 기계적 무의식: 분열분석 (L'Inconscient Machinique: Essais de Schizo-Analyse) (1979)
- 세 가지 생태학 (Les trois écologies) (1989)
- 카오스 모제 (Chaosmose) (1992)
4.2. 공저
- 안티-오이디푸스 (Capitalisme et Schizophrénie 1. L'Anti-Œdipe) (1972)[1]
- 카프카: 소수문학을 위하여 (Kafka: Pour une Littérature Mineure ) (1975)[2]
- 천 개의 고원 (Capitalisme et Schizophrénie 2. Mille Plateaux) (1980)[3]
- 자유의 새로운 공간 (Les Nouveaux espaces de liberté) (1985)[4]
- 철학이란 무엇인가? (Qu'est-ce que la philosophie?) (199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