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락지형
1. 뜻
달군 쇠로 지지는 형벌을 통속적으로 이르는 말. 혹은 가혹한 통치자가 무고한 백성들을 학대하고 고문한다는 말. 가렴주구, 가정맹어호 등과 일맥상통하다.
2. 고사
사마천의 사기(역사책)에 의하면, 중국 은나라 마지막 왕인 주왕(紂王, 제신이라고도 불림)은 백성들에게 가혹한 세금과 공물을 부과하고 자신은 감언이설에 능한 간신들을 등용하고 미녀 달기에 빠져 온갖 사치와 향락을 누리며 살았으며, 이러한 자신에게 불만을 드러내는 사람들을 잔혹한 방법으로 학살하고 그것을 백성들에게 보여 공포감을 조성하기 위해 새로운 형벌을 만들었다. 그것은 이궁(離宮) 뜰에 구덩이를 파내고 불타는 숯을 반쯤 채워 넣은 다음, 구덩이 지름보다 조금 더 긴 구리 기둥을 위에 걸쳐 놓아 다리처럼 만들어 놓고는 거기에 기름을 발라 사형수들로 하여금 그 위를 건너게 하는 형벌이였다. 기둥에는 기름을 발랐으니 미끄러워서 제대로 걸을 수 있을 리 만무했고, 결국 미끄러져 아래에 있는 숯불 속으로 떨어져 그대로 타 죽는 것이다. 이 형벌의 이름이 포락지형(炮烙之刑)이다. 주왕과 달기는 그 형벌을 받는 사형수들이 고통스럽게 불에 타 죽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박장대소하며 즐거워했다고 한다.
그리고 얼마 뒤 주나라의 제후인 서백(西伯) 희창(姬昌)이 반란에 가담한 혐의로 잡혔고, 주왕은 인질로 잡혀 있던[1] 서백의 장남인 백읍고를 죽이고 그 시체로 죽을 만들어 서백에게 먹게 하였다. 서백은 눈물을 삼키며 그것을 먹었고, 주왕은 평소에 성인이라 칭송받던 그가 자기 자식의 살을 먹는다며 조롱하였다. 그리고 후에 서백의 신하(臣下)가 진귀한 물건과 좋은 말을 바쳐 겨우 포락지형만은 면하게 하였고, 서백은 곧 보석#s-2되었다. 그 뒤 서백이 자기 소유의 땅 낙서(洛西)를 바치면서 포락지형을 폐지할 것을 아뢰어 포락지형은 없어졌다고 한다. 이후 주왕은 그의 폭정에 질려버린 제후들과 백성들의 지지를 얻은 서백의 아들 무왕(주)의 반란으로 목숨을 잃는다.
단, 주왕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위 내용은 픽션일 가능성이 있다. 그로부터 약 3천 년이 지난 최근에 은주왕이 인신공양을 폐지한 것을 칭송하는 내용의 갑골문이 발견된 것을 계기로 주왕에 대한 재연구가 이루어진 것. 그리고 주왕의 폭정은 당시 은나라 왕위의 연이은 부자 상속 등으로 나라가 안정되며 권력이 수도로 집중되자 이에 불만과 위화감을 느낀 제후들이 꾸며낸 것일 가능성이 제기되며 이 포락지형의 실체 또한 '진실은 저 너머에'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