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세잔

 


'''Paul Cézanne'''
'''이름'''
폴 세잔
Paul Cézanne
'''국적'''
프랑스 [image]
'''직업'''
화가
'''출생'''
1839년 1월 19일
프랑스 왕국 프로방스알프코트다쥐르 엑상프로방스
'''사망'''
1906년 10월 22일 (향년 67세)
프랑스 제3공화국 프로방스알프코트다쥐르 엑상프로방스
1. 개요
2. 생애
3. 작품 세계
4. 기타등등
5. 미디어
5.3. 나의 위대한 친구, 세잔
6.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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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세기 후반을 중심으로 활동한 프랑스의 화가.

2. 생애


1839년 프랑스 남쪽 끝에 있는 엑상프로방스에서 은행가 루이 오귀스트 세잔과 미혼녀 엘리자베드 오베르 사이에서 태어났다. 고향의 기숙사 국민학교 생조제프를 나온 후 고등학교 부르봉을 다니면서 소설가 에밀 졸라와 사귀게 된다. 후에 졸라가 쓴 소설에 나오는 등장인물인 실패한 화가가 자신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오해해 절교하게 된다. 그래도, 늘그막에 졸라와 화해하고 그가 죽을 때 장례식에 참가하기도 했다. 졸업 후 인근에 사는 화가들을 자주 방문하면서 미술에 관심을 갖게 된다.
하지만 아버지의 극성적인 반대로 포기를 하였다가 대학을 중퇴하고 고향에 돌아온 이후 아버지의 은행에서 일을 했으나, 졸라의 권유와 어머니의 아버지에 대한 설득으로, 다시 미술 쪽으로 나아가기 시작해서 22세 때 파리로 나가 그림 공부를 하게 되었다. 그러나 에콜 드 보자르에 입학시험에 떨어진 후, 혼자서 독학을 했다. 파리에서 기오망·피사로·모네·드가·르누아르 등 인상파 화가들과 사귀었다. 그동안 프로이센·프랑스 전쟁과 도시 생활에 싫증을 느껴 여러 번 시골에 내려가 있기도 하였다.
1882년 대망의 관전(官展)에 입선하고 1895년 개인전을 개최하여 점차 주목을 받게 되었다. 비록 살아 생전에 그림이 비싸게 팔리지 않아도 좋은 평을 받으며 그럭저럭 팔려 화가로서 가난함을 오래 겪지 않았다.

3. 작품 세계


그의 그림은 처음 1870년경에는 어둡고 격정적인 상태를 에로틱하게 표현하여 환상적인 분위기를 주었으나, 카미유 피사로의 외광 묘사에 자극을 받은 후 화면이 급속히 밝고 단순화되어 갔다. 그러나 살롱에 출품한 작품들이 낙선함으로써 인상파에서 떠나, 모네의 견실성을 뼈대로 한 형과 색깔의 과묵한 표현에 집중, 긴밀한 구성을 갖는 그의 독자적인 세계를 형성해 나갔다.
그는 "자연은 표면보다 내부에 있다"고 말하고 정확한 묘사를 하기 위해 사과가 썩을 때까지 그렸다는 일화가 있다. 이처럼 그는 인상파의 사실주의를 추진시켜 단순한 시각적·현상적 사실에서 다시 근본적인 물체의 파악, 즉 자연의 형태가 숨기고 있는 내적 생명을 묘사하는 데 목적을 두었다.
사물에 내재된 구, 원뿔, 원기둥을 추구하는 화가였다. 엄밀히 말하면 사물의 가장 단순한 형태를 추구하는 화가였다. 특히 그는 구의 원형을 사과로 택했음이 분명하다. 사과를 그린 그림이 열 손가락으로 셀 수 없을 만큼 많기 때문. 그것도 그림마다 한두 개가 아니라 잔뜩 그렸다. 세잔의 이런 접근법은 후대에 영향을 많이 끼쳤는데, 근본적인 물체의 질서를 파악하고 표현하려는 시도 때문에 미학이나 철학에서 자주 언급되는 작가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그를 20세기 미술사에 등장한 입체파의 시조로 평가하기도 한다.
대표 작품으로 《붉은 조끼를 입은 소년》, 《카드 놀이를 하는 사람》[1], 《목욕하는 여인》, 《아버지의 초상》, 《여자와 커피포트》, 《프로방스의 산》, 《에스타크의 바위》, 《생트빅투아르 산》 등이 있다.

4. 기타등등


성격이 귀차니즘이 꽤나 대단했다고 한다. 이외수의 책자에 의하면 그림을 그리다가 도중에 그만두고 딩가딩가 놀기도 하고, 그리던 그림 놔두고 다른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고. 그럴때마다 아내가 잔소리를 퍼부으며 이거나 마저 끝내고 놀던지 다른 거 그리라고 으르렁거리고 나서야 마지못해 그리던 그림을 마무리했다고.

5. 미디어



5.1. 개그만화 보기 좋은 날의 폴 세잔


[image]
사진은 르누아르로부터 물감 공격을 당하는 세잔.
애니메이션 4기 1화에 출연.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와는 원수라도 졌는지(...) 사이가 매우 안 좋게 나온다.
처음에 누드화를 그리고 싶다는 르누아르의 말을 엿듣고 소문을 퍼뜨리겠다고 협박하다가 르누아르의 필살기를 맞기도 하는 등 초반부터 티격태격하는 사이. 결국 르누아르와 그림 시합을 하기로 했는데 막장스런 전개 끝에(르누아르 항목 참조) 카미유 피사로로부터 둘 다 이번 시합 때 그린 작품을 내지 말라는 평을 들었다.[2] 주요 공격기로는 뒤돌려차기(...)가 있다.
실제로 르누아르와는 화풍의 차이[3]는 있었지만 그렇다고 사이가 험악했을 근거는 없다. 취향이 다르다고 원수질 이유는 없는것이다. 개그만화 덕에 르누아르와의 사이가 매우 안 좋았다고 인식하는 사람들도 꽤 많아지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여담으로 현실의 르누아르는 세잔의 그림을 4점이나 갖고 있었다. 세잔은 당시 화가들에게 혁신적인 아이콘이었으니...

5.2. 은과 금


세잔의 그림을 놓고 주인공 모리타가 화랑업자와 대결하는 에피소드가 있다.

5.3. 나의 위대한 친구, 세잔


2016년 영화 《나의 위대한 친구, 세잔》에서 프랑스의 문호 에밀 졸라와 폴 고갱의 우정 이야기를 그린 영화가 만들어졌다.

6. 같이 보기


[1] 한때 경매가 최고가 작품이었다. 2011년 카타르 왕족에게 2억 5천만 달러~ 3억 달러 추정 액수로 경매로 팔렸다! 그러다가, 2017년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살바토르 문디가 무려 4억 5천만 달러에 팔려 갱신되었다.[2] 에드가 드가의 체액이 묻기 전의 그림을 보면 르누아르의 그림에서 '''세잔을 구타하는 토끼남'''이 빠진 것 빼고는 '''르누아르와 차이가 없다(...)'''. 세잔의 그림이 드가의 체액 범벅이 되었으므로 무승부로 처리됐지만, 망가지나 마나 결국 둘이 피장파장인 걸 보여주는 연출일지도 모르겠다.[3] 세잔과는 달리 르누아르는 인간을 주제로 한 그림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