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 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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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진실이 전진하고 있고, 그 무엇도 그 발걸음을 멈추게 하지 못하리라.(La vérité est en marche, et rien ne l'arrêtera.)"
《전진하는 진실(La Vérité en marche)》 중에서
에밀 에두아르 샤를 앙투안 졸라(Émile Édouard Charles Antoine Zola, 1840년 4월 2일 ~ 1902년 9월 29일)는 프랑스의 자연주의 소설가, 비평가이다. 문학외적으로는 드레퓌스 사건 당시 알프레드 드레퓌스의 무죄를 주장한 것으로 유명하다."언젠가 프랑스는 나라의 명예를 구해준 것에 대해 내게 감사할 날이 올 것.(Un jour la France me remerciera d’avoir aidé à sauver son honneur.)"[1]
2. 생애
1840년 프랑스 왕국 파리에서 이탈리아인 토목기사인 프란체스코 졸라(Francesco Antonio Giuseppe Maria Zolla)와 프랑스인인 에밀리 오베르(Émilie Aubert) 부부 사이에서 외아들로 출생하였다. 1842년에 아버지를 따라 프랑스 남부의 엑상프로방스시로 이주하였고 콜레주 재학 시절인 1852년에 폴 세잔과 처음 만나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우정을 나누기도 하였다. 1847년에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생계가 어려워지면서 1858년에 파리로 다시 이주하였고 리세 생루이(Lycée Saint-Louis)에서 학업을 마쳤다. 1859년에 바칼로레아에서 낙방하면서 무직으로 지내게 되었고 이는 그가 문학에 몰두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1862년에 아셰트 출판사(Hachette Livre) 영업부에서 근무하면서 1864년에 출간한 첫 단편집 《니농에게 주는 이야기(Contes à Ninon)》를 시작으로, 1871년부터 20권 분량의 《루공마카르 총서(Les Rougon-Macquart)》를 출판하면서 <목로주점(L'Assommoir)>이 성공을 거두었다. 에밀 졸라는 당시 유럽 학계에선 새롭게 부상하던 유전학을 토대로 루공마카르 시리즈를 집필했다. 실제 루공마카르 시리즈의 부제는‘제2제정하의 한 가족의 자연적 ·사회적 역사’라고 붙어 있으며, 가상의 가계도를 설정하고 가계도 내의 인물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초점을 맞춰 일생을 서술하는 듯한 방식을 취한다. 그 서술방식 때문에 19세기 후반의 사회사(社會史) 자료로 귀중하게 취급되기도 한다.
에밀 졸라의 주요 작품에서 드러나는 또 다른 특징은 여성의 강조인데, 특히 두드러지는 특징이 팜 파탈로서의 여성이다. 앞서 소개된 목로주점의 주인공의 문제의 딸인 창녀 나나를 주인공으로 한 <나나>는 아주 고전적 팜 파탈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노동자 혁명에 대해서 다룬 <제르미날>까지 이 범주에서 해석하는 이도 있을 정도로 에밀 졸라의 성향은 분명하다.
사실 <나나>를 비롯한 3부작인 <나나>, <제르미날>, <인간짐승>[2] 이 바로 목로주점의 후속편으로 목로주점의 여주인공의 세 자식들의 운명을 보여주고 있으며 그들의 운명과 함께 필연적으로 몰락하는 프랑스 제2제정을 투영시키고 있다[3] 영화 《박쥐》의 원작으로 감독이 직접 언급한 <테레즈 라캥>도 그렇다.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4] 에서는 소비에 대해 갈망하는 여성의 욕구를 다루었는데, 이 정도 되면 이게 여성화된 남성이냐, 아니면 욕망을 드러내는 여성에 대한 표현이 긍정적이냐 부정적이냐 등등 말이 많을 정도이다.
의외로 장르 문학에도 큰 지분을 차지고 있는 소설가기도 하다. 암울한 인간군상을 소재를 다루다 보니 자연히 범죄를 소재로 자주 다루게 되었으며, <테레즈 라캥>은 범죄 소설과 호러 소설로 구분되는 경향이 있다.
3. 정치적 행보
드레퓌스 사건으로 한창 프랑스가 두 조각으로 쪼개져 싸우느라 정신이 없던 도중, 부당성을 고발하기 위해 《로로르(L'Aurore)》지에 <나는 고발한다(J'Accuse…!)>란 서한을 게시해 드레퓌스 사건에 참전했고 이 때문에 매국노로 낙인 찍혔다. 당시 프랑스 내에서 유대인들에 대한 인식은 매우 부정적이었기에 드레퓌스 사건이 조작임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던 당시에 저명한 사회인사가 드레퓌스 편을 들었다고 민중들은 졸라의 인형을 불태우는 등 졸라는 엄청나게 욕을 먹게된다. 마침내 서한이 문제가 되어 유죄판결이 내려지자 영국으로 망명했으나 이듬해 프랑스로 돌아왔다.
4. 사망
나는 고발한다 이후 드레퓌스 구명을 위해 힘쓰다가 잠 자던 중 별세하였다. 공식적으로 발표된 사인은 난로를 열고 자는 바람에 불완전 연소된 석탄에서 발생한 일산화탄소 중독이지만, 나중에는 누군가의 지령을 받은 굴뚝 청소부가 굴뚝을 막아 연탄가스 중독을 일으켜 사망에 이르렀다는 것이 밝혀졌다. 후에 드레퓌스의 신원이 공식적으로 회복된 이후에는 문학적 성과만큼이나, 프랑스 지식인의 행동하는 지성과 양심의 상징적인 인물로 평가받게 되었다.
그의 장례식 조사는 드레퓌스 사건 당시, 졸라와 입장을 같이 하였던 아나톨 프랑스(Anatole France, 1844년 4월 16일 ~ 1924년 10월 12일)가 하였는데 그는 "우리는 그를 부러워합니다. 방대한 저작과 위대한 참여를 통해 조국을 명예롭게 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를 부러워합니다. 걸출한 삶과 뜨거운 가슴이 그에게 가장 위대한 운명을 선사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양심의 순간이었습니다.(Envions-le : il a honoré sa patrie et le monde par une œuvre immense et par un grand acte. Envions-le, sa destinée et son cœur lui firent le sort le plus grand : il fut un moment de la conscience humaine.)"라는 말을 남겼다. 조사 전문.
5. 기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천사들의 제국에서는 주인공 미카엘 팽송의 수호천사로 출연한다. 드레퓌스 옹호 경력 때문인지 말빨이 쩔어서 미카엘이 천사가 된 것은 순전히 졸라의 공헌이라고 봐도 부족함이 없다.
비슷한 또래인 화가 폴 세잔과 같은 중학교 출신이며 그것이 계기가 되어 친한 친구이기도 했다. 화가를 할까 말까 망설이던 세잔을 여러 번에 걸쳐 끈질기게 설득한 것도 에밀이었다. 세잔이 그림을 그리다가 금새 질려서 안 그리고 딴짓할 때 세잔의 아내와 더불어 잔소리를 해가며 그림을 그리게 한 인물로서 언급되기도 한다고. 다만 1886년에 에밀과 세잔은 절교했는데 원인은 분명치 않다. 일반적으로는 에밀 졸라의 <작품>에서 실패한 화가로 그려진 주인공이 세잔의 모습을 투영했다고 여겨져 세잔이 이에 빈정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그의 별장에는 작가들이 자주 모이곤 했는데 기 드 모파상이 주목을 받게 된 계기도 그것이다. 에밀은 자기 별장에 모이던 젊은 작가 중 전도유망한 젊은 작가의 작품을 모아서 출판했는데 거기에는 모파상도 끼어 있었고 그가 단편집에 낸 <비곗덩어리>가 주목을 얻어서 명성을 얻게 되었다.
"프랑스에서 가장 불효자는?"이라는 물음의 답으로 그의 이름이 거론될 만큼, 이름의 어감이 패륜을 연상하여 한국어 한정으로 나쁜 이름에 속하기도 한다. 실제로 이말년 서유기에서는 프랑스의 불효자는 에밀 졸라이고 미국의 불효자는 지미 카터라고 평하기도 하였다.
6. 같이 보기
[1] 이 말은 에밀 졸라가 사후 팡테옹에 안치되면서 사실이 되었다. 프랑스 팡테옹의 입구에는 "국가가 위대한 인물들에게 사의를 표한다(Aux grands hommes, la patrie reconnaissante)."라는 글귀가 있다.[2] 국내에는 잘 안 알려졌지만 철도 공무원인 사이코패스 살인마를 그린 작품. 장 르누아르와 프리츠 랑이 영화화했다.[3] 나나의 마지막 장면이나 인간짐승의 마지막 장면 모두 보불전쟁에 환호하는 프랑스 군인들을 그리고 있다[4] 원제는 "Au Bonheur des Dames". 국내에서 번연된 제목만 3개이다. 일반적으로 부인들의 천국으로 가장 많이 언급되었고, 그 외에 (원제를 직역한) '숙녀들의 기쁨', '부인 백화점'이란 제목도 있다. 정발명은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