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드 맥그리프
1. 개요
'''Crime Dog'''
1990년대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했던 야구 선수. 충분히 준수한 활약을 펼치고 은퇴했지만, 불행히도 그가 뛴 시대가 스테로이드 시대라서 폭증한 홈런 개수 때문에 임팩트가 완전히 잊혀져 버린 선수. 그리고 한 팀에서 오래 뛰지 못하고 이 팀 저 팀을 떠돌아야 했던 저니맨에 가까운 선수이기도 하다.
통산 성적은 19시즌 동안 타율 .284, 출루율 .377, 장타율 .509, 2490안타, '''493홈런''', 1550타점, BB/K 0.69, wRC+ 134를 기록했다.
2. 선수 생활
2.1. 역마살의 시작
지명은 뉴욕 양키스에서 받았지만, 1982년 양키스는 그를 토론토 블루제이스로 트레이드 시켰다. 어차피 1루수 자리에 돈 매팅리가 건재한 상황에서 9라운드에 지명한 1루수에게 돌아갈 자리는 많지 않았다. 토론토에서 맥그리프는 꾸준히 성장하며, 마침내 1986년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을 수 있었고, 1987년 20홈런을 치면서 본격적인 커리어를 시작했다. 그리고 1988년 34홈런을 치면서 두각을 나타냈고, 1989년에는 36홈런으로 아메리칸리그 홈런왕에 올랐다.
점차 전력이 강해져가던 토론토는 그러나 올스타 2루수 로베르토 알로마를 얻기 위해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와 접촉했고, 마침내 트레이드가 성사돼서 토론토가 로베르토 알로마와 조 카터를 받고, 샌디에이고가 토니 페르난데스와 프레드 맥그리프를 받게 되었다. 토론토는 이 트레이드를 발판으로 1992년과 1993년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하면서 손해 없이 트레이드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샌디에이고도 초반에 트레이드로 잃은 것은 없었다. 샌디에이고에 온 1991년 31홈런을 친 맥그리프는 이듬 해인 1992년 35홈런을 기록하며 다시 내셔널리그 홈런왕에 올랐다. 그렇게 샌디에이고에서도 주포로 활약했는데, 문제는 샌디에이고가 곧 FA로 풀리는 그를 잡을 자신이 없어서 시즌 중간에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로 트레이드 한 것이다. 그리고 이 때 받은 세 명의 선수는 모두 망했다. 딱 하나 도니 엘리엇만 기억에 남는데, 그가 잘 해서가 아니라 도니 엘리엇이 가진 체인지업 그립을 어느 야수 출신의 투수에게 가르쳐 준 것 때문에 그렇다.
2.2. 애틀랜타 시절
1993년은 샌디에이고와 애틀랜타 시절을 모두 합쳐 37홈런을 때려냈다. 이게 맥그리프의 생애 최다 홈런이었다. 1994년에는 단축 시즌 임에도 불구하고 34홈런을 쳐냈고,[1] 1995년 27홈런을 기록하며 팀의 주전 1루수로서 충분히 실력을 보여줬다. 월드시리즈에서도 홈런 2개를 날리며 자기 몫은 충분히 다 했다. 그리고 월드시리즈 우승 반지도 차지했지만, 스포트라이트는 당대 애틀랜타의 최고 스타였던 그렉 매덕스, 톰 글래빈, 존 스몰츠 등 에이스 3인방의 몫이었다.
여하튼 PO에서도 꾸준히 자기 역할은 다 하는 선수였지만, 32세 시즌이었던 1996년을 기점으로 점차 성적이 하락하기 시작했다. 1997년 22홈런을 치는 것을 본 애틀랜타 구단은 상대적으로 노쇠화가 빨리 왔다고 판단하고, 맥그리프를 신생팀 창단을 위한 보호 선수 명단에서 제외했다.
그리고 그를 지명한 것은 그의 고향 근처에 생긴 신생팀 탬파베이 데블레이스였다.
2.3. 말년
탬파베이의 간판으로 지목되어 이적한 그였지만, 19홈런으로 노쇠를 막지는 못했다. 그래도 1999년 32홈런으로 부활하고, 2000년에도 27홈런을 치면서 다시금 살아나는 듯 했고, PO을 노리던 시카고 컵스가 2001 시즌 도중에 그를 트레이드 해 갔다. 2001 시즌 도중에 탬파베이에서 19홈런을 치는 모습을 보고, PO에 도전하기 위해 맥그리프를 선택한 것.
컵스에서도 자기 역할은 충실히 다 했다. 2001년 이적해서 12홈런을 쳤고, 2002년에는 다시 30홈런을 때려냈다. 하지만 현지 언론의 평가는 박했는데, 수비력이 좋지 않았고 돈만 밝힌다는 이유로 까였다(...) 그리고 이 시점에 컵스는 최희섭에게 더 큰 기대를 걸던 시점이라... 결과적으로 최희섭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 컵스는 맥그리프를 잡지 않았다.
이 시점에서 500홈런 고지까지 남은 개수는 불과 22개였지만, 진짜로 노쇠가 온 맥그리프는 끝내 이 고지를 넘지 못했다. 2003년 다저스에서 겨우 13개를 때려내는데 그쳤고, 최후의 기회를 준 고향팀 탬파에서 친 홈런의 개수도 고작 2개, 타율은 0.189에 그치며 결국 은퇴하고 말았다.
3. 은퇴 이후
고향 팀 탬파베이 레이스의 자문역으로 활동하고 있고, 역시 탬파지역의 야구 관련 프로에 종종 나가고 있다. 탬파베이 에서는 그래도 상당한 활약을 한 선수이기 때문. 그보다 더 활약한 선수는 칼 크로포드 정도일 뿐이다.
4. 연도별 성적
5. 명예의 전당 입성 여부
명예의 전당 입성 가능성은 상당히 빠듯한 상황이다. 1루수로서 수비력이 은근히 좋지 않았다는 평가는 둘째치고 가장 큰 문제는 임팩트가 부족하다는 것. 홈런왕을 두 차례 차지하기는 했지만 40홈런을 넘긴 적은 한 번도 없고, 수상은 올스타 5회와 올스타전 MVP 1회, 실버슬러거 3회가 전부다. 결국 누적 스탯으로 승부를 봐야 했는데, 끝내 500홈런에 도달하지 못한 것이 뼈아픈 부분[2] .
여기에 한 팀에서 가장 오래 뛴 기간이 5년에 불과할 정도로 프랜차이즈의 속성이 약한 저니맨이라는 점에서 골수 지지표를 얻는 것은 쉽지 않을 듯 하다. 실제로 그와 가장 유사한 커리어를 가진 것으로 나타난 윌리 맥코비, 윌리 스타젤, 제프 배그웰, 프랭크 토마스, 카를로스 델가도는 모두 한 팀의 프랜차이즈 스타[3] 였다는 이미지가 강한 선수들이다.[4]
어쨌든 이런 점 때문에 명예의 전당 입성이 쉽지 않을 것으로 점치는 사람들도 많은데,[5] 다만, 2000년대 후반 약물 스캔들로 인해 평가가 상대적으로 더 나아졌다는 것이 큰 장점. 비록 500홈런은 넘기지 못했지만, 깨끗한 홈런왕이라는 이미지와 꾸준한 면모를 어필한다면 약물에 대한 반감을 등에 업고 명예의 전당에 도전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일단 첫 해 21.5%의 지지를 받았는데, 두 번째 해에는 17.9%로 오히려 더 떨어졌다. 상대적으로 유력 후보가 전무한 2012년 투표에서 득표율이 대폭 오르는지 여부에 따라 그의 입성 여부가 결정될 듯. 만일 대폭 오른다면, 10수 이상 해서 기어이 들어갈 가능성이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2012년의 득표율은 후보에 오른 이후 가장 높은 23.9%를 마크했지만 2013년에는 20.7%에 머물렀고, 2014년에는 11.7%로 뚝 떨어졌다. 2015년에는 12.9%로 다시 올라가기는 했지만 이제 단 4번[6] 의 기회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라 사실상 매우 힘들어졌다.
2016년에는 20.9%로 다시 20%대를 넘었지만 2018년 23.1%에 머물며 사실상 헌액은 물 건너갔다. 마지막 10회차인 2019년의 득표율은 39.8%. 물론 리 스미스나 해롤드 베인스, 잭 모리스 등처럼 은퇴선수 위원회의 추천을 통해 나중에 헌액될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해롤드 베인스같은 경우 득표율 7%를 넘긴 적이 없지만 은퇴선수위의 추천 형식으로 명전 입성 했으니.
[1] 이 시즌에 데뷔한 박찬호 첫 상대타자이기도 하다. 결과는 볼넷. 결국 후속타로 홈을 밟으며 첫 자책점도 안겨주었다.[2] 노쇠화가 일찍 와서 500홈런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말이 나오기도 하는데, 물론 30대 초반을 넘어가면서 다소 부침을 겪은 적은 있으나 그래도 맥그리프 정도면 늦은 나이까지 기량을 꾸준하게 유지한 케이스에 속한다. 엄연히 따지면 한창 전성기를 구가할 시기인 1994년과 1995년에 메이저리그 파업 사태로 인해 적지 않은 게임을 날려먹은 것이 치명적이었다. 실제로 1994년에 멕그리프는 34홈런을 치며 커리어 하이를 향해 기세 좋게 달리던 중이였으나 파업 때문에 113게임 출전에 그쳤는데, 역시 파업 여파로 18게임이 단축된 1995년 시즌과 합치면 총 67게임을 손해본 것이다. 만약 파업 없이 그 기세를 계속 이어갔다면 맥그리프 입장에서는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40홈런 시즌을 보낼 가능성이 높았고, 500홈런도 어렵지 않게 달성했을거란 부분에 대해선 거의 이견이 없다.[3] 차례로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피츠버그 파이어리츠, 휴스턴 애스트로스, 시카고 화이트삭스, 토론토 블루제이스. 모두 한 팀에서 10년 이상 뛴 경력을 갖고 있다.[4] 참고로 이들 중 4명(맥코비, 스타젤, 토마스, 배그웰)은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다. 델가도는 첫 해에 3.8% 받고 아예 아웃되었다.[5] 그래도 맥그리프가 들어간다면, 맥그리프 자신은 고향팀 모자를 쓸 공산이 크다. 은퇴 이후에도 탬파베이 프런트에서 일하고 있기도 하고. 그러면 명전 헌액에 앞서 탬파베이 모자를 쓸 뻔하기까지 했던 탬파 토박이 웨이드 보그스 (보스턴 레드삭스)처럼 영구결번이 될 가능성도 있다.[6] 원래 최대 15회의 기회가 주어졌지만 2015년부터는 이미 10회를 넘긴 은퇴 선수를 제외한 나머지 선수들은 일괄적으로 10회로 단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