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용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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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하용조(河用祚)
출생일
1946년 10월 14일
출생지
평안남도 강서군
종교
개신교(예장통합)
사망일
2011년 8월 2일[1]
본관
진주 하씨
1. 생애
2. 온누리교회
3. 기타
4. 경력


1. 생애


1946년 평안북도 진남포 태생. 그의 집안은 대대로 기독교 집안으로 3대째 믿는 하대학의 아들로 태어났다. 소위 모태신앙으로 어린 시절부터 부모가 예배와 새벽 기도하는 모습을 보고 자랐다.
1950년 6.25가 나자 아직 5살인 그를 데리고 그의 가족은 경기도 이천을 거쳐 전남 목포까지 피난을 떠났다. 목포에 정착해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서울로 올라와 대광고건국대 축산가공학과('64년)에 다닌다. 대학생선교회(CCC)에 가입해 신앙 생활과 대학생 전도를 하며 지냈다.
1966년 의정부시에서 CCC 여름수련학교 도중 폐결핵을 발견한다. 제대로 치료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군대에 가야 했는데 폐결핵이 더 심해졌고 젊은 나이에도 당뇨, 고혈압 등으로 신장이 망가져 1주일에 투석을 3번하는 몸이 된다. 신앙으로 하루하루를 이겨낸 그는 군역 포함 총 7년을 대학에서 학생 전도를 하며 보낸다.
1972년 3월 장로회신학대학교에 입학해 신학을 전공한 그는 3년만에 졸업해 마포교회의 전도사를 지냈다. 마포교회 장로였던 당시 TBC 김경태 PD와 평생 연을 쌓게 된다.
1976년 대한예수교장로회 목포노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은 그는 김경태 장로의 도움으로 가수 윤복희, 코미디언 구봉서 등과 함께 평창동에 연예인교회를 개척한다. 부흥에 대성공하고 화려한 생활에 지친 연예인들이 그의 교회를 찾게 됐다.
1980년 두란노 서원도 만들고 성전도 완공할 무렵 지병인 간경화가 재발해 목회를 내려놓고 치료와 휴양 겸 영국으로 떠났다. 영국에서 복음주의의 대부 존 스토트 목사를 멘토로 하고 그의 신앙관을 배웠다.
1984년 귀국해 이듬해 서울 용산구 서빙고동에 온누리교회를 설립했다.
1994년 '2010년까지 2000명의 선교사와 10000명의 평신도 사역자를 세운다'는 '2천/1만' 비전을 선포했다.
2003년에는 '사도행전적 교회를 재생산해 온누리에 복음을 전한다'는 'Acts29'비전을 발표했다.
2011년 8월 1일 뇌출혈로 갑자기 쓰러져 연세대학교 세브란스 병원에서 수술 후 8월 2일 아침 8시 30분에 결국 소천했다.

2. 온누리교회


온누리교회는 후임 담임목사를 공동의회와 장로 중 초빙위원회에서 결정하는 모범을 보였다. 외부 내부 목회자 중에서 양재 온누리교회를 담당했던 이재훈 목사를 세워, 위장세습 문제도 없고 원로목사측 입김도 최소화되었다.

3. 기타


  • 현대그룹 정주영 전 명예회장에게 아들 정몽준 의원의 부탁으로 임종 직전 세례를 준 바 있다. 정몽준은 독실한 기독교인이다. 당시 고령에 말을 하기도 어려웠던 정 회장은 '내게 강 같은 평화'라는 찬양을 듣고 좋아했다고 한다.
  • 가수 유승준이 1996년 처음 한국에 왔을 때부터 온누리 교회에 출석했다. 병역 사건으로 유승준이 한국을 떠난 후에도 하 목사는 그가 백댄서들과 기도하고 바쁜 스케줄 속에서도 새벽 기도에 늘 오는 좋은 신앙인이었다고 언급한 바 있다. 2004년 유승준의 결혼식 때 미국에 가서 결혼예배를 집전해 줬다. 2007년에는 일본 전도회에 유승준을 초대하고 귀국의 꿈을 잃지 말라고 기도한 내용이 유튜브에 남아 있다.
  • 김한길의 전처인 이민아 목사와 그녀의 아버지 이어령 장관을 기독교에 귀의하게 했다. 96년 이민아가 갑상선 암이 재발해 힘들 때 온누리 교회를 찾았는데, 하용조 목사 역시 아픈 몸으로 설교를 하는 모습을 보고 신앙을 갖게 됐다고. 아버지도 전도하려 애썼던 그녀는 결국 투병과 2012년 죽음으로 아버지 역시 종교에 귀의하게 했다.

4. 경력


[1] 사인은 뇌출혈이며, 사망 날짜는 2011.08.02. 오전 08:30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