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갤럽

 


'''한국갤럽조사연구소'''
Gallup Korea
[image]
<colbgcolor=#009FF4><colcolor=#fff> 설립일
1974년 6월 17일
업종명
시장조사 및 여론조사업
대표
박재형
기업형태
중소기업
매출액
335억 5,118만원 (2019년, 사람인)
소재지
서울특별시 종로구 사직로 70 (사직동)
한국갤럽조사연구소
외부링크
한국갤럽 공식 홈페이지
한국갤럽 데일리 오피니언 블로그[* CI 개정과 함께 공식 홈페이지로 통합되었다.]
1. 개요
2. 연혁
3. 특징
4. 여담
4.1. 갤럽 본사와의 관계
4.2. 조사방식에 대한 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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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여론조사 전문기관. 갤럽 인터내셔널의 회원사로써, 정확한 명칭은 한국갤럽조사연구소. 국내 '''최초'''의 사설 여론조사 회사이다. 매출이나 종업원 수를 비롯한 회사 규모면에서는 동종업계에서 칸타코리아한국리서치에 상당히 밀리지만,[1] 인지도 면에서는 국내에서 가장 높은 여론조사 기관 중 한 곳으로 꼽힌다.
첫 여론조사가 1979년이라, 여론조사기관으로 따지자면, 그 독재정권 시절에도 여론조사를 한 권위를 자랑한다.[2] 그만큼 역사도 오래되었고, 권위도 꽤 높은 편이다. 헌정 사상 최저 지지율은 방송사를 막론하고, 한국갤럽을 쓰는 곳이 많다. 김영삼의 1997년 7% 지지율이라던가, 박근혜 정부 2016년 말~2017년 탄핵 전까지의 지지율 4%가 어떤 신뢰를 줬는지는 뭐...[3]
매주 선관위에 등록되는 자체조사 결과를 발표한다.[4] 2010년대 들어선 매주 화, 수, 목요일 3일에 걸쳐 1,000명 샘플로 전국 유권자를 상대로 자체 여론조사를 하여 금요일에 정당,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도 같은 주간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5] 또 6개월에 1번씩 광역자치단체장 직무수행 평가도 발표한다. 그 외 사회, 문화, 시장조사 등 정치와 관련없는 분야도 월이나 연말 단위로 발표하고 있다.

2. 연혁


설립일은 1974년 6월 17일이다. 다만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지금 같은 정치 관련 조사는 코렁탕 우려로 못 했었고, 처음 한 여론조사는 금성사(현 LG전자)의 가전제품 소비자 조사가 시초였다. 다시 말해, 이 가전제품 조사를 하기 위해 회사가 설립된 날짜가 곧 창립일인 셈. 처음 명칭은 KSP(Korea Survey Polls Ltd.)였다고 한다.
1978년에는 <갤럽의 여론조사>라는 책을 출간하기도 했는데, 이 책은 조작설 등으로 여론조사 결과에 대해 의문을 품는 사람들을 위해 갤럽 인터내셔널의 설립자인 조지 갤럽[6]이 쓴 책을 번역한 것이다. 참고로 2002년 초판까지 나온 책으로, 마케팅계에서는 레전드급으로 통용되는 서적이다. 구해서 읽어보는 것도 나쁘진 않다. 다만 번역본이 아닌, 원문판은 나온지 벌써 수십년도 더 됐다.
1979년에 갤럽국제조사기구(Gallup International Association)에 가입하면서 정식으로 회원사가 되었다. 상호명도 현재의 '한국갤럽조사연구소'로 바뀌었다. 그리고 12월에는 갤럽 인터내셔널의 End of Yeal Poll(연말 조사)에 참여하게 된다. 첫 옴니버스 조사인 셈.
1980년에 6대 도시에 실사네트워크를 구축하고 매월 옴니버스 조사를 실시했으며, 언론사 의뢰로 국내 최초로 전국 규모의 여론조사를 실시하였으며, 심지어 보도까지 됐다. 첫 의뢰한 언론사는 다름 아닌 한국일보. 1981년에는 대기업 이미지를 조사했다. 이것 또한 국내 최초. 그러면서 사직동의 고려빌딩으로 사옥 이전.
1984년에는 갤럽 인터내셔널 설립자인 조지 갤럽 박사가 84세를 일기로 타계했으며, 문화공보부의 의뢰로 정치의식조사를 최초로 실시했다. CAT System(광고시안테스트) 모델을 개발했으며, 이 또한 최초로 기업에서 실시하는 마케팅 조사는 CAT 시스템을 베이스로 한 것이라고 보면 된다. 1985년에는 표본추출 프로그램을 국내 최초로 개발한다. 엑셀에 들어가있는 데이터 기술을 뽑아낸 것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이 때는 당연히 컴퓨터가 보급되기 직전이니. 1986년에는 소매점 지표 조사 프로그램을 개발한다.
1987년에는 POS System을 개발하는데, 흔히 포스기라고 하는 시스템을 국내에서 최초로 개발한 것이다. 판매시점 정보관리 시스템이라고 하는 것으로 이 시스템의 도입은 현재의 편의점과 대형마트를 양산했고, 이는 기업들이 유사제품을 만들어서 경쟁하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한다. 예전에는 골목상권 등이 으레 그러하듯이, 일일이 다 세서 재고 분석을 했으니 유통업계에서는 가히 혁명에 가까웠던 셈. 무응답계층 분석을 위한 판별분석 모델도 여기서 개발한 것.
지금과 같은 대통령 직무수행 평가, 정당 지지율, 선거 예측 등의 정치 여론조사 역시 민주화가 이뤄진 1987년부터 사실상 시작되었다. 그리고 한국갤럽이 국내 정치 여론조사 관련해서 존재감을 드러낸 이유 역시 1987년 치뤄진 13대 대선 때문이었다. 이 당시 대선은 4자 구도라는 정치적 특수성이 주목도를 높이기도 했거니와, 민주화의 바람을 타고 정권의 입김이나 압력에서 벗어난 사설 선거 여론조사의 장이 열린 측면도 있었으며[7], 특히 민주화 이후 신문이나 방송 등의 미디어 수요의 증가로 '여론조사'라는 흥미로운 기법에 대한 관심이 언론사들 사이에서도 커졌기 때문이다. 이런 사회적 변화를 타고 한국갤럽은 정식으로 사설 정치 여론조사 시장에 뛰어들었고, 13대 대선에서 국내 최초로 투표가 끝난 후 내부적으로 선거 예측 조사 결과를 계산하여 오차범위 이내로 최종 득표율을 적중시키면서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8][9]
1989년에는 TV 시청률 측정을 위한 DB를 구축하게 된다. 이 또한 현재의 방송계와 광고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사건. 물론 이전에도 시청률 조사를 하긴 했지만 대부분은 주먹구구식으로 이뤄졌으며 그다지 체계적이라고도 볼 수 없었는데, 이 시기부터 시청률에 대한 세밀한 조사가 이뤄지기 시작했다. 소위 "황금시간대"라는 말도 이 시기부터 쓰였다. 동시에 1990년부터 오디미터식으로 시청률 조사를 했지만 시청률 조사는 1993년에 포기했고, 이후로 1999년 TNS에서 시청률 조사를 하기 이전까지 MSK(現 닐슨 코리아)이라는 회사에서 한 동안 시청률 조사를 독점하게 되었다.
1993년에는 중국 조사시장에도 국내 최초로 진출했다. 1994년에 강남구 신사동 두원빌딩으로 이전한다. 1995년에는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예측을 했고, 이 또한 적중한다. 1996년에는 다시 사직동으로 사옥을 이전했다.
2000년에는 사직동 사옥을 매입한다. 2004년에는 30주년 기념 설문조사를 했다. 2006년 홈페이지가 리뉴얼됨과 동시에 1992-1997 갤럽리포트 30권의 전자파일이 무료로 공개되었다.
2017년 4월 19일, 창립자인 박무익 회장이 별세하였다.
2019년 9월 16일, 창립 45주년을 맞아 CI를 개정했다. 이에 따라 홈페이지 디자인도 대대적으로 개편했다.

3. 특징


다른 여론조사 기관들과 비교했을 때 가장 두드러지는 한국갤럽의 특징은 100% 전화면접 방식으로 자료를 수집한다는 점이다. 전화면접은 직원들이 일일이 유권자에게 전화통화를 걸어 자료를 수집해야 하니 ARS(자동응답) 방식에 비해 수집 속도가 대단히 느리고, 인력이 더 많이 요구되는 만큼 비용도 상대적으로 많이 필요하다는 단점이 있다. 이 때문에 또다른 네임드 여론조사 기관인 리얼미터가 주말을 제외한 주중 5일간 매일 500명씩 설문을 돌려서, 목요일에는 월화수 총 1,500명 샘플로 주중 집계를 발표하고, 다음 주 월요일에는 이전 주의 5일간 2,500명 샘플로 주간 집계를 발표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10], 화수목 3일간만 자료를 수집하다보니 표본이 1,000명으로 상대적으로 적고, 1,500명과 2,500명 샘플인 리얼미터에 비해 오차범위도 약간 큰 편이다.
하지만 전화면접은 ARS에 비해 응답률이 상대적으로 높게 나오는 편이라,[11] 즉 ARS에 비해 중간에 끊기가 힘드니 무당층이나 정치에 상대적으로 무관심한 시민의 의견도 좀 더 수월하게 수집할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대표적으로 긍정평가의 이유와 부정평가의 이유가 나와 있는 것이 그 예. 이에 대해선 응답률보단 표본 수집이 얼마나 잘되었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의견도 있으나, 어쨌든 한국갤럽이 보여주는 지지율 추세는, 보통 무당층이 열성 지지자들에 비해 각종 이슈에 상대적으로 덜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인지, 종종 리얼미터보다 1주일가량 뒤늦게 나타나기도 한다.
그러나 전화면접이 ARS 방식과 비교했을 때 가지는 단점도 있는데, 역설적으로 아무리 여론조사 직원에게라지만 다른 사람에게 음성으로 직접 의견을 전달하는 방식이다 보니 일부 응답자가 자신의 의견을 숨기는 경향이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즉 자신의 정치 성향을 밝히는 것이 꺼려질 경우, 솔직하게 말하기 보다는 그냥 적당히 인기가 많은 다른 정당을 지지한다고 하거나 아예 지지 정당이 없다고 말해버리는 것이다. 이런 현상 때문에 전화면접 방식은 비밀투표를 원칙으로 하는 투표와 차이가 날 수밖에 없으니, ARS 방식이 선거 결과를 더 가깝게 예측할 수 있다는 의견 역시 만만치 않다. 실례로 7회 지선 당시 광역의원 비례대표 합산 전국 득표율을 보면, 정당별 득표율은 한국갤럽보다는 리얼미터가 보여주는 정당별 지지율에 훨씬 가까웠다. 물론 전화면접 조사를 수행하는 여론조사 기관의 경우에는 정치 고관여층 중심의 여론이 아닌, 전반적인 국민 여론을 파악하는 것에는 전화면접 방식의 조사가 더 맞다는 반박을 하기도 한다.[12] 물론 그렇다고, 어떤 조사든지 간에 실제 선거의 결과와 무조건 일치하는 것은 아니니, 참고 정도로만 보는 것이 낫다.
한편 데이터베이스가 타 여론조사 기관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이 쌓였다 보니 1987년 13대 대선부터 2012년 18대 대선까지의 여론조사 추이를 분석한 자료 같은 상당히 역사성 있는 자료들도 볼 수 있다.링크. 그래서 역대 대통령 국정 수행 지지도의 변화 추세 자료와 같이, 수십년간의 시계열 자료를 한국갤럽에서 공개하곤 한다. 그러나 이에 대한 반박도 만만치 않은데, 일례로 한국갤럽만 해도 시대의 변화에 따라 조사 방식을 자주 바꿔왔기 때문에, 과거의 데이터를 현재의 데이터와 단순히 직접적으로 비교하는 건 비과학적인 접근 방식이라는 것.[13]
국내 여론조사 기관들의 무덤으로 불린 2016년 20대 총선 같은 경우는 한국갤럽도 오차 범위를 벗어나는 오류를 보였다. 애초에 모든 여론조사가 그렇지만 여론조사는 각 조사 결과에 일희일비할 게 아니라 추이 파악 정도로 보는 편이 정신건강에도 이롭다. 그러다 2020년 21대 총선은 지지율대로 거의 비슷하게 나오기도 했다.

4. 여담


  • 1994년부터 2007년까지 최시중 전 방통위원장이 한국갤럽의 회장을 맡기도 했다. 그리고 최시중이 한국갤럽 회장으로 근무하던 시절, 1997년 제15대 대통령 선거 직전에 주한 미국 대사를 만나, 여론조사 공표 금지 기간 동안의 비공개 대선 여론조사 결과를 무단으로 알려줬다는 자료가 미국 국무부 비밀 외교 전문을 통해 폭로된 적도 있었다.#
  • 회장을 역임하기도 한 최시중이상득, 이명박 형제와 오랜 친분을 이어왔던 측근이었고, 90년대 당시 한국갤럽이 월간조선이나 조선일보의 의뢰로 여론조사를 수행한 경우도 많았으며, 이명박과 박근혜 후보가 쎄게 맞붙었던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때는 이명박 캠프의 비공개 자체 여론조사를 도맡아서 수행하기도 했기에#, 이때만 해도 한국갤럽과 국내 보수 세력이 긴밀히 유착되어있다는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되기도 했다.
  • 앞서 언급된 최시중 회장 등의 이유로, 201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일각에서는 한국갤럽을 좀 더 친보수 성향을 지닌 여론조사 기관으로, 리얼미터를 좀 더 친민주당계 성향의 여론조사 기관으로 보는 선입관도 있었다. 하지만 2010년대 중후반 이후부턴 판세가 역전되어 한국갤럽에서 보수정당 관련한 지지율이 계속해서 죽을 쑤자, 보수층에서 한국갤럽을 여론 조작기관이라고 디스하는 웃픈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실제 자유한국당 홍준표 당시 대표는 2018년에도 한국갤럽을 관제 여론조사기관이라는 식으로 대놓고 디스했는데, 이런 홍준표 대표의 주장은 근거가 부족하다는 분석도 나왔다.#
  • 다만 정당 지지율의 경우, 주로 전화면접을 하는 한국갤럽은 주로 전화를 받고 버튼만 누르면 되는 리얼미터에 비해, 열세가 된 제1야당의 샤이 지지층을 잘 잡지 못하는 것일 뿐이라는 의견도 있다. 이 점에 대해선 한국갤럽도 무당층의 정부 지지도가 상대적으로 낮다는 것을 근거로 무당층에 야당 지지세가 좀 더 많을 가능성을 명기하기도 했다. 또 이는 다른 여론조사들에서도 꽤 보이는 현상이라, 즉 한국갤럽만 꼭 그런건 아니다. 반대로 말하면 그만큼 좌우를 막론하고 '샤이 지지층'이라고 이름 붙여진 계층의 경우에는 정치적 응집도가 약하다는 소리로 볼 수도 있다.
  • 전화 여론조사이긴 했지만, 출구조사 비슷하게 선거 직후 예측 결과를 최초로 발표한 여론조사 기관도 한국갤럽이다. 1987년 대선에선 예측조사를 하긴 했지만 발표를 하지 못했고, 1992년 대선에서는 밤 12시 중반에 발표를 했기 때문에 이미 개표가 한창 진행된 상황이라 사실상 예측의 의미가 없었지만, 때문에 1995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MBC를 통해 선거일 직전과 당일 여론 조사를 기반으로 도출한 선거 예측조사 결과를 내보낸 것을 국내 최초의 출구조사(?)가 이뤄진 것으로 보는 경우가 많다. 물론 형식적으로 보자면 이것도 최초의 출구조사는 아니지만 어쨌든 의미는 있다는 것.
  • 지금과 비슷한 의미의 최초 국내 출구조사는 1996년에 이뤄졌는데, 물론 이때도 출구조사는 일부 선거구에서만 이뤄졌고 나머지 대다수 지역구는 전화조사로 때우긴 했지만, 어쨌든 이후부터 출구조사가 발전하여 보편화된다.
  • 2012년을 시작으로 매년 3월에 프로야구에 대한 여론조사를 발표한다. 세부 내용은 인기팀, 우승 예상팀, 프로야구에 대한 대중 관심도 같은 것.
  • 여론조사 결과를 대체로 정수 단위로 반올림하여 발표를 한다.[14] 아무래도 오차범위가 수 %정도이다 보니[15] 소수점 이하의 수치에 대해서는 통계적인 의미가 없다고 보는 듯. 다만 통계표를 통하여 소수점 아래까지의 수치를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는 있다.

4.1. 갤럽 본사와의 관계


결론부터 말하자면 한국갤럽은 미국의 여론조사기관 '갤럽'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회사다. 한국갤럽이 소속된 '갤럽 인터내셔널'은 미국에 본사를 둔 갤럽과 달리 스위스에 본사를 두고 있으며, 조지 갤럽이 1948년 초대회장으로서 설립하긴 했으나 이후 1958년 갤럽으로 전세계의 갤럽 관련 기관들을 통합하는 과정에서 떨어져 나온 별개의 기관이다. 실제 갤럽 홈페이지를 보면 도쿄, 베이징과 달리 서울은 등록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한국갤럽은 애초부터 박무익 회장이 독자적으로 설립한 기관이며, 1974년 GIA에 가입해 한국 내 '갤럽' 명칭 사용권을 획득했을 뿐 '''단 한번도 미국갤럽의 산하기관이라고 주장한 적이 없다'''. 출처. 게다가 전세계 46개국에서 지금도 버젓이 여론조사를 진행 중인 기관을 단순히 미국갤럽 산하가 아니라고 해서 의문을 갖는 것은 합리적이지 못하다는 주장도 있다. 다만 반대측에선 GIA 홈페이지를 봐도 단체 소개문이 동어 반복으로만 이루어져 있는 등 확실히 신뢰할만한 기관인지 불투명하다는 점을 들어 GIA 자체의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또 미국 갤럽은 갤럽인터내셔널에 현재진행형으로 상표권을 둘러싼 국제 소송을 진행 중이며, 사실상 갤럽인터내셔널을 '이름팔이'로 간주하고 있다.
다만 이와 별개로 한국갤럽은 이 상표권 소송에서 승소해서 계속 '갤럽'이라는 이름을 합법적으로 쓸 수 있게 된 상태이고, GIA의 신뢰성 역시 홈페이지 부실 같은 것으로 문제시하는건 세계 각국에서 지금도 꾸준히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는 점 등을 비춰볼 때 지나친 억측이라는 의견도 있다. 그리고 다 떠나 GIA 자체가 진짜 부실한 기관이라 할지라도, 실제로 상술된 바와 같이 한국갤럽은 독자적으로 설립된 기관이고, GIA에서 갤럽이란 이름을 사용할 권리만 얻은 것이므로 GIA의 신뢰도 문제를 한국갤럽에 들이대는 것은 그 자체로 이미 부적절하다. 한국갤럽은 한국갤럽 그 자체로 평가해야 한다는 것.

4.2. 조사방식에 대한 입장


출처: 데일리 오피니언 2016년 2월 4주 자료에 첨부되어 있는 글귀 인용. 참고로 ARS 조사를 하지 않는다는 문구 관련해선 리얼미터 주간 여론조사 자료에 이를 반박하는듯한 문구가 있는데, 요약하자면 ARS 조사도 보정을 하면 충분히 효율적이고 정확한 조사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 한국갤럽 데일리 오피니언 조사 방법 안내

한국갤럽 데일리 오피니언은 조사원이 직접 묻고 응답 받는 인터뷰 방식으로 진행합니다. 전국 유권자 대표성을 최대한 확보하기 위해 무작위발생(RDD: Random Digit Dialing)한 휴대전화 번호를 기본 표본추출틀로 합니다. 단, 휴대전화만으로는 접근하기 어려운 여성, 고연령대 일부는 무작위발생한 집전화 번호 조사로 보완하며, 그 반영 비율은 평균 15% 내외입니다.

● 여론조사의 옥석(玉石)을 가려 보도해 주십시오.

언론 보도에서 과정을 따지지 않고 조사 결과 수치만 나오면 무조건 기사화하거나 조사 시기/방법/질문이 다른 결과를 단순 비교 제시하는 사례가 흔합니다. 여론조사의 오남용은 여론조사에 대한 불신을 키울 뿐 아니라 기사의 가치도 떨어뜨립니다.

이러한 무분별한 보도는 정밀 저널리즘(precision journalism)을 지켜 보도해야 하는 언론이 스스로 삼류임을 자인하는 부끄러운 일입니다.

● 한국갤럽은 ARS(자동응답) 조사를 하지 않습니다.

한국조사협회(KORA: KOrea Research Association) 소속 41개 전체 회원사는 2014년 7월 14일 국가주요정책 수립에 이용되는 여론조사의 신뢰성 제고를 위해 ARS 조사를 수행하지 않는다는 결의안을 채택했습니다.

한국조사협회의 신은희 전 회장은 "그 동안 ARS 조사가 엄격한 방법론에 따른 여론조사와 구분 없이 인용되어 왔다"며 "일반 대중에게 많은 영향력을 줄 수 있는 여론조사에 ARS가 활용되거나 인용되는 것을 자제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아래 회원사 행동규범을 첨부하오니, 향후 조사의 활용이나 인용 보도 시 참고해 주십시오.


[1] 칸타코리아는 기업 규모면에서 대기업으로 분류되고, 한국리서치도 대기업에 준하는 매우 큰 규모를 자랑한다. 다만 이쪽은 정치관련 자체조사를 정기적으로 시행하지 않거나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기 때문에 한국갤럽과 리얼미터만큼 언론에 자주 등장하지 않았다.[2] 물론, 그 독재정권 시절이니까 신뢰도는 저 멀리..[3] 리얼미터는 이 것 보다 높게 조사했다가 욕 먹었다(...)[4] 리얼미터와 함께 선관위 등록 정례조사를 매주 발표하는 유이한 여론조사 회사로 꼽힌다.[5] 이명박 정부 말기 즈음하여 주간조사를 시작했는데, 초창기에는 표본이 1,500명 정도였다.[6] 미국의 여론조사 통계가로 1936년 대통령 선거에서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당선을 예측·발표한 것이 적중함으로써 명성을 얻었다. 오늘날 실시되는 여론조사, 즉 ‘갤럽여론조사’의 선구적 역할을 하여 세계에 보급시켰다. 출처: 두산백과.[7] 이전에도 안기부 차원에서 따로 조사를 하기는 했지만, 그 외 사설 여론조사 기관들은 독재정권 시절이기 때문에 대놓고 지지정당이나 지지후보를 묻긴 어려운 측면이 있었다. 다만 비공개로 분류되기는 했지만 외신을 통해서 이러한 비밀 여론조사가 흘러나오는 경우도 종종 있었기 때문에 관련 종사자라면 알음알음 어느 정도 추정은 할 수도 있었다. 예를 들면 전두환 정권 비지지율이 60%대이고 지지여론은 30%대였다든지 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8] 다만 최초의 시도였던지라 선거 후 즉각 발표하진 못했고, 언론사 공유 및 회사 내부 참조용으로만 쓰였고, 일본언론을 통해 공개되었기는 했지만 국내에서 이러한 예측조사가 공개된것은 아니었다. 예측조사가 방송에서 풀리기 시작한것은 14대 대선 개표방송때부터였지만 이 역시 에측조사를 개표가 중반일때 발표한것인지라 그 의의는 떨어진다 할수있다. 방송사에서 개표전에 발표하기 시작한것은 1995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시초이다.[9] 이후 대선들도 대부분은 적중했는데, 다만 2017년 19대 대선의 경우 주요 후보들이 꽤 많다보니 당선자만 맞췄고, 군소 정당 후보들의 순위는 실제와 엇갈렸다. 참고로 대선의 경우 지역 제한이나 후보자 난립 등 상대적으로 조사에 한계가 있는 다른 선거에 비해 여론조사 적중률이 더 높은 편이긴 하다.[10] 리얼미터의 표본은 과거에는 2,500명이었지만, 2015년 9월 말부터 들쑥날쑥하다가, 10월 2주차부터 1,500명이 되었다.[11] 가끔 두자릿수 가까이 나오기도 한다. 리얼미터는 응답률이 저조하다. 사실 응답률이 저조하면 그만큼 신뢰도가 떨어지는 건 사실이다.[12] 그래서 투표율이 높아지면 점점 전화면접 방식의 조사와 개표 결과의 일치도가 높아지는 경향이 있다.[13] 실제 한국갤럽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유무선 전화 비율이나, RDD 방식의 채택 여부, 표본수 등 여러 차례에 걸쳐 조사 방식을 바꿔왔다. 심지어 여론조사 초창기인 90년대 초중반에는 대통령 국정 수행 지지도 조사를 위해 한국갤럽에서 가구별 방문 조사를 수행한 적도 있었다.[14] 단 1% 이하의 수치가 나온 경우에는 소수점 단위까지 공개한다.[15] 보통 1000명을 조사할 때 95% 신뢰수준에서 오차가 ±3.1% 정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