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프로배구 신인드래프트/남자부/2007년-2008년

 


KOVO 신인선수 드래프트
2006년-2007년 시즌

'''2007년-2008년 시즌'''

2008년-2009년 시즌
1. 개요
2. 드래프트
3. 드래프트 이후
4. 에피소드


1. 개요



2. 드래프트


'''구분'''
'''순위/이름명'''
LIG손해보험
삼성화재
대한항공
현대캐피탈
1R

순위
1순위
2순위
3순위
4순위
이름명
김요한
(인하대, R)
유광우
(인하대, S)
진상헌
(한양대, C)

2R

순위
4순위
3순위
2순위
1순위
이름명
한기호
(경희대, Li)
이용택
(홍익대, R)
한선수
(한양대, S)
박종영
(한양대, Li)
3R

순위
1순위
2순위
3순위
4순위
이름명
안의재
(성균관대, C)

정우성
(명지대, C)

수련선수

순위
-
-
-
-
이름명
이종복
(홍익대, L)
강민웅
(성균관대, S)
이상래
(인하대, Li)
지명권 포기

3. 드래프트 이후


1순위 김요한은 당연히 그 해 드래프트의 최대어였다. 그 당시 대학 최고의 라이벌 인하대 김요한과 경기대 문성민은 숨길 수 없는 자존심 대결로 두 선수의 인기와 더불어 치열한 전투의 일상이었다. 그렇게 우승을 열망하던 LIG의 큰 기대를 받고 입단한 김요한은 막상 데뷔 시즌 초부터 부상으로 제 활약을 하지 못하면서 자연스럽게 윙스파이커 한 자리가 비게 되었고 결국 이경수 혼자만 남은 LIG는 부진을 면치 못했다. 기대에 비해 실망이 컸던 탓인지 신인왕도 한테 내주고 말았다. 이후 08-09시즌부터 본연의 활약을 이어가면서 꾸준히 수비 능력을 상승시키면서 윙스파이커로의 재능을 키워갔고 역시나 그 기량에 걸맞게 국가대표로도 여러 번 승선하였다. 11-12시즌에는 초반에 고전했으나 후반부 외국인 선수와 다름없는 활약을 이어가기도 했으나, 결국 잦은 부상으로 기량이 하락하면서 출전시간이 점점 줄어들었고, 17-18시즌 시작 전 OK저축은행으로 트레이드. 그리고 포지션도 센터로 전환해야 했다. 물론 V-리그의 대형 선수임에는 분명했으나 대학 시절의 명성에 비해서는 성적이 좀 처졌다. 그리고 결국 짧은 전성기 이후 불운한 선수 말년을 보내고 있다. 2018-19 시즌 종료 후 FA 계약을 하지 못하면서 미계약 FA 신분이다.
2순위 유광우삼성화재에 입단하자마자 어깨, 발목 부상으로 2년 가까이 개점휴업해야 했고, 09-10시즌에야 최태웅의 백업으로 시즌을 시작. 그러다가 09-10시즌을 마치고 최태웅이 박철우의 보상선수로 팀을 떠나면서 주전세터로 활약. 고교, 대학 시절 엄청난 토스웍으로 컴퓨터 세터라는 별명을 얻었던 유광우였으나, 이미 몰빵배구의 전성기를 맞고 있던 삼성화재에게 유광우는 뻥오픈 토스를 잘 올려주는 세터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 모습은 16-17시즌까지 계속 이어졌지만, 그래도 삼성이 우승할 수 있었던 것에는 외국인 선수에게 최고의 토스를 해줄 수 있었던 그가 있었기 때문에 이루어졌다는 의견이 대다수이다. 그만큼 유광우는 삼성화재에 없어서는 안될 선수로 이어가는 듯 했으나, 17-18시즌 시작 전에 박상하의 보상선수로 이적하게 되면서 최태웅과 같은 길을 걷게 되었다. 일단 우리카드의 주전 세터로 선수생활을 이어나가다가 19-20시즌을 앞두고 다시 대한항공으로 이적했다. 사실 STC의 도움이 없었다면 커리어가 진작에 끝났을 지도 모를 일.
3순위 진상헌은 데뷔 첫 해 대한항공의 백업 센터로 시작해서 주전으로 시즌을 마쳤으며, 그 이후에도 활약했으나 주전 센터치고는 성적이 평범해서 묻혀있다가 부상이 겹치면서 큰 활약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그래도 대한항공의 센터로 활약하다가 현재는 OK금융그룹 소속.
4순위 은 외국인 선수의 부진, 후인정의 노쇠화로 인한 전력 공백을 효과적으로 메우면서 주전 레프트 자리를 차지하였으며 신인왕까지 수상하였고 그 이후에도 꾸준히 활약하다가 문성민 트레이드 때 하경민과 같이 한국전력으로 이적한다.
그 이후 행적은 알다시피... 당연히 신인왕은 박탈되었다.
5순위 박종영은 08-09 시즌, 그리고 09-10시즌 중반까지 현대캐피탈 주전 리베로였던 오정록이 불의의 심각한 부상으로 갑자기 은퇴하면서 09-10시즌 중반부터 주전 리베로로 출장하였는데, 12-13시즌까지는 리베로로서 훌륭한 성적을 거두었으나 13-14시즌에 심각한 부진이 찾아오면서 결국 현대캐피탈의 속을 뒤집어 놓았다. 그 영향으로 14-15 시즌 전에 여오현이 영입되면서 자연스럽게 출전하지 못했고 군입대, 전역 후 16-17 시즌 후반부터 후위 수비 및 제2리베로로 출장 중.
6순위 한선수는 구슬의 장난으로 계약금이 삭감(?)되면서 대한항공이 영입했는데[1] , 김경훈의 은퇴 이후 늘 말썽이었던 대한항공의 세터 고민을 완전히 해소시켰다. 17-18시즌이 끝나기 직전인 지금까지도 마찬가지. 유광우가 대학 시절의 토스를 잃어버린 채 정체된 반면, 한선수가 성장하면서 국가대표 세터로는 이민규의 등장 이전까지 이쪽이 훨씬 많이 출전하게 된다. 자신의 특기인 속임 동작이 잘 먹히면서 대한항공의 전성기를 이끌고 있다. 그가 상근예비역 복무로 인해 빠져나갔던 13-14시즌부터 14-15시즌까지 많은 세터들이 시행착오를 거쳐야 했고 심지어 현재 백업 세터인 황승빈이 첫 해부터 주전으로 뛰면서 욕을 한 바가지 먹어야 했다. 결국 팀이 부진했던 큰 원인이 될 정도로 한선수의 입지는 절대적이었다. 괜히 대한항공이 한선수에게 5억원의 연봉을 보장해주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현재 상황에서 07-08시즌 드래프트 최종 승자는 한선수라고 보는 게 옳다.'''
7순위 이용택은 프로에서의 족적은 드물었고, 08-09시즌 스파이크 서브 콘테스트(서브왕)에서 우승하면서 이름을 알렸다.
상무 소속이었던 2011년 자살로 생을 마감해 충격을 주었다.
8순위 한기호는 한때 LIG의 주전 리베로로 활동하였으나 부상과 고질적인 리시브 불안[2]으로 발목을 잡으면서 결국 11-12시즌 부용찬이 입단하자마자서 바로 주전 자리를 내주고 13-14시즌이 끝나고 군입대. 16-17시즌에 복귀하여서 원포인트 서버 및 후위 수비로 투입되나 별로 활약을 보이지는 못하고 있다.
삼성화재의 수련선수로 지명되었던 강민웅은 주로 유광우의 백업으로 뛰다가 13-14 시즌 중에 대한항공으로 트레이드 되어서 주전 세터로 활약한다. 그러다가 한선수가 제대하면서 자리를 잃었고 15-16 시즌 중 한국전력으로 다시 트레이드. 그러나, 15-16 시즌 5라운드 현대캐피탈전에서 현대캐피탈 12연승[3] 의 숨은 주역이 되면서 한국전력 팬들 사이에서 평가가 최악으로 치닫고 결국 그 경기 이후 잠깐 코보컵에서 반등해서 기대를 갖게하나 싶더니 정규시즌에는 크게 무너지면서 한국전력의 한계만 노출하고 말았다. 그렇게 선수 생활을 이어가던 이 선수가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이유는... 강민웅 문서의 2번 항목 참고.
어쨋든 전체적으로는 대충 긁어보는(사실 기대라고는 1도 없는) 수련 선수 픽으로 시작하여 주전으로 뛰었으니 선수 개인적으로는 크게 성공했다는 평이다.

4. 에피소드


  • 드래프트의 초점은 과연 김요한, 유광우가 어느 팀으로 가는지가 관심거리였다. 일반적인 상황이었으면 자연스럽게 김요한이 LIG, 유광우가 대한항공으로 가는 시나리오였다. 그러나, 뜻밖의 행운이 터졌는데 1배당 50%의 LIG의 경우 1순위를 따내는데 성공한 반면에 , 2배당 35%인 대한항공이 3배당 15%였던 삼성화재에게 2순위 지명권을 내주게 된 것. 삼성화재는 원래 여의치 않은 경우 한선수를 지명할 예정이었으나, 우선 지명하게 되면서 뜻밖에 유광우를 영입할 수 있게 되었다. 울며 겨자먹기로 대한항공은 일단 06-07시즌 큰 구멍이었던 센터 한 자리를 위해 진상헌을 지명한 뒤, 부랴부랴 한선수를 지명하게 되었다.
  • 현대캐피탈은 한선수를 마음에 두긴 했으나 송병일의 피지컬과 가능성을 믿고 있었으며, 후인정의 노쇠 기미가 뚜렷해지면서 즉시 전력감 레프트 자원이 필요해지자 김요한과 함께 인하대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레프트 을 선택.
  • 대한항공에 지명된 정우성은 계약하지 않고 그대로 은퇴했다.
  • 삼성화재의 3라운드 지명자 는 상무 입대 후 승부조작이 적발되기 전에 자진 신고하면서 다른 승부조작자와는 다르게 배구 관련 직업 종사 금지 및 무기한 출전 정지의 징계를 당한 사람이다.[4]
  • 현대캐피탈의 3라운드 지명자 은 10-11시즌에 은퇴한 후전력분석원으로 활동하다가 11-12시즌 도중 선수 시절의 승부조작이 적발되는 바람에 쫓겨났다. 그리고 KOVO에 의해 잔여 경기동안 추가 코치 영입이 불가하다는 통보를 받고 포스트시즌이 끝날 때까지 전력 분석원 없이 경기를 치러야 했다. 그리고 결과는 시원하게 대한항공에게 포스트시즌에서 역사상 처음으로 패배하고 만다.
[1] 원래는 삼성화재가 1라운드 3순위로 영입하려고 했다. 남자부는 드래프트 순번에 따라서 계약금 차이가 굉장히 크다. 한선수는 6순위(2라운드 2순위)로 지명되었으니 대략 3순위 차이 정도면 3000만원 정도가 왔다갔다 하는 정도.[2] 하도 공을 피해다닌다고 해서 피구왕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도 얻었다(...).[3] 최종적으로는 그 해 18연승, 그 다음 시즌까지 합쳐서 20연승을 거둔다.[4] 다른 사람과는 다르게 기록은 남는다. 자진 신고자가 아닌, 그냥 걸린 승부조작범들은 말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