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우(배구)
1. 소개
수원 한국전력 빅스톰 소속의 배구선수로 포지션은 라이트다. 2004년에 리그 데뷔하여 2021년 현재까지 현역으로 뛰고 있는 한국 남자배구의 리빙 레전드 중 하나.
왼손잡이 라이트 공격수로 김세진의 뒤를 이을 거포 유망주로 기대를 모았다. 별명은 기린, 땡칠이, 사위.
후술하겠지만 배구인 대부분이 대졸 출신인 배구판에서 손에 꼽는 고졸 출신 선수다. 경북사대부고 졸업 후 실업무대에 진출했는데 실업배구 시절까지 포함해서 한국 남자배구 역사상 2호 고졸 선수다. 그래서 동년배인 김요한, 한선수, 유광우, 진상헌, 강민웅보다 3년 먼저 직업 배구선수가 됐고 V-리그 원년인 2005년부터 현재까지 꾸준히 주축 선수로서 뛰는 몇 안되는 레전드 선수가 됐다.[10]
천안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에서 2004년 데뷔해 2010년 삼성화재로 FA 이적을 했는데 그 배경에 전 신세계 쿨캣의 농구 선수 신혜인[11] 과 연인 관계였던 것이 드러나서 유명하다.
2. 플레이 스타일
국내 날개공격수중에서는 탑클래스인 199cm의 장신에 높은 타점을 이용한 공격이 특기인 거포형 스파이커. 위 짤방에도 나와있고 박철우의 경기중 스파이크 장면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스파이크때 항시 몸이 오른쪽으로 크게 기울어지고 팔이 최대한 높은쪽으로 가는 극단적으로 위로 뻗는 타법임을 알 수 있다. 거의 투수 김광현을 보는 듯한 오버핸드 스파이크 타법. 이런 스파이크 스타일때문에 높은볼 처리능력이 좋고 토스가 높고 볼끝이 좋으면 그야말로 내리꽂는 위력이 제대로 나온다. 다른 선수면 타점을 맞추지 못해서 강제로 스파이크가 밀리면서 홈런볼이 될 토스를 억지로 코트 안으로 내려꽂을 수 있다는 것. 이때문에 토스가 높은 편이었던 현캐시절 송병일과 호흡이 꽤 좋았던 편으로 송병일과 호흡을 맞춘 삼성화재전에서 삼성 블로커 위에서 찍어누르는 신들린 강타로 역전승을 일구어낸 적도 있다.
이런 극단적 오버핸드 스파이크 타법 때문에 약점도 있는데 토스가 낮거나 너무 빨리 와서 타점에서 좌우로 흔들리면 되려 처리하기 어렵게 되는 자세 문제와 함께, 극단적 오버 핸드 특성상 좌우로 비틀어서 터치아웃을 노리는 손목 스킬이 떨어지기 때문에 스파이크 코스를 읽히거나 토스가 낮으면 그대로 블로킹에다 벽치기당하는 경우가 많다. 그의 대표적 별명인 '''벽철우'''가 이것 때문에 붙은 것. 또한 스파이크 서브 올리는 토스가 불안정하기 때문에 뻘미스나 똥볼서브가 자주 나오는 편이다.
국가대표 선배인 김세진에 비하면 세세한 테크닉이 부족하고 건강문제로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한점이 조금 아쉽지만, 여전히 대한민국 최고의 토종 공격수중 1명이다. 특히 국내 공격수중 최고수준의 사이드블로킹 높이덕에[12] 중요한 순간 블로킹으로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점은 보너스.
3. 선수 생활
3.1. 현대캐피탈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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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생으로 김요한과 나이상 동기지만, 프로 데뷔가 엄청나게 빨랐던 것은 그가 고졸 자격으로 현대캐피탈에 입단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남자 배구판에서는 20년 전 경북사대부고에서 럭키금성(現 KB손해보험)으로 직행한 김찬호 현 경희대 배구부 감독에 이어 2번째인 고졸 현역 데뷔 선수. 가난한 집안 사정과 이경수 드래프트 파동으로 인해 대학-실업 간 선수 수급에 대한 합의 등이 없던 상황을 이용해 당시 현대캐피탈 감독이자 스카우트의 귀재인 송만덕의 아이디어로 프로행을 선언, 초고교급 대어였던 박철우를 잡기 위해 삼성화재와 현대캐피탈이 모두 계약을 시도했고, 경쟁의 승리자는 현대캐피탈이 되었다. 학교 지원금(공식적으로 명지대에 일반 학생으로 입학한 케이스)을 포함해 총 '''계약금 8억 원'''을 받고 현대캐피탈에 입단했다. 이것이 대학연맹과 실업연맹 간 갈등 악화를 부채질했고, 결국 이경수 드래프트 파동이 정상화되었을 때 대학배구연맹은 '''고졸 선수의 프로 직행을 금지하는 조항'''을 프로 연맹에 요청해 공식적으로 명문화되었다.[13] 아이러니한 것은 이런 중대한 결정을 주도한 당시 현대캐피탈 송만덕 감독은 그 해가 가기도 전에 방신봉의 항명 파동으로 인해 현대캐피탈 감독직에서 사실상 해임되었다는 것.[14]
데뷔 시절 후인정의 백업으로 시작하였으나 생각보다 빨리 팀의 주 공격수로 자리잡았다. 그런데 2007년에 기흉을 3번이나 앓으면서 폼을 잃었다.[15] 국가대표 발탁 기회도 은근 운이 따르지 않아서 2006 도하 아시안 게임 때 당시 대학생이었던 김요한, 문성민이 대한민국 배구계의 미래를 이끌 재목으로 등장하며 금메달 획득으로 일찌감치 군 문제를 해결했으나, 박철우는 그 기회를 놓쳤다.
2008-2009 시즌에 기흉으로 인한 후유증으로 폼을 잠시 잃긴 했지만, 중요한 경기에서는 해결사 역할을 하면서 소속 팀이 정규 리그 우승을 차지하는 데 기여하였다. 당시 현대캐피탈로서는 박철우에게 집중적으로 공격을 맡겨서 현대캐피탈을 '철우캐피탈'로 불리기도 했었다. 이 시즌 정규리그에서 역대 최고의 공격 성공률인 55.32%를 기록하며 공격상과 함께 정규 리그 MVP를 수상하였다.
2009년 9월, 당시 국가대표팀 코치였던 이상렬에게 피멍이 들 정도로 구타를 당했다. 이례적으로 공개 기자회견을 열고 자신의 상처를 공개하였다. 고참들은 쉬쉬했지만, 일부 젊은 선수들이 자신을 도와준 덕분에 기자회견을 열 수 있었다. 이 일을 계기로 체육계의 고질적인 선수 구타 관행이 재조명되며 대한체육회에서도 적극적으로 문제 해결을 위해 나섰다. 그 때 배구 대표팀은 태릉선수촌에서 쫓겨났고, 이상렬 코치는 '무기한 제명'이라는 중징계를 받았다. 다만 이상렬은 지도자로서는 활동할 수 없으나 KOVO 경기감독관으로는 활동할 수 있었는데, 2012년 징계가 슬그머니 풀려서 경기대 배구부 감독으로 복귀했다. 하긴 전임 이경석 감독도 비리 문제로 물러났다가 은근슬쩍 복귀한 전례가 있었으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9-2010 시즌 중이었던 2010년 1월 30일에 LIG와의 천안 홈 경기에서 무려 '''50득점'''을 올리는 괴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이는 현재도 국내선수 최다 득점 기록으로 남아있다.
이렇게 현대캐피탈 시절에는 경기당 20~30점을 올려주며 팀의 주공격수로 활약, 원체 센터진이 좋았던 팀에 2000년대 들어 뭔가 아쉬웠던 날개 공격수 한 자리를 든든히 지켜 주며 팀의 간판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그런데....'''
3.2. 삼성화재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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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오프 시즌 때 FA를 선언하여 삼성화재로 이적했다. ''' 현대캐피탈은 세터 최태웅을 박철우의 보상 선수로 지명했고, 최태웅은 5년 후 선수 생활을 마무리한 뒤 현대캐피탈의 감독으로 취임했다.
2010년 12월 4일 V리그 개막전에서 친정 팀 현대캐피탈을 상대로 주전으로 나왔다. 포지션은 현대에서 뛰었을 때처럼 라이트. 가빈이 레프트[16] 로 옮겼지만 정작 몰빵이 중요한 순간에 신치용 감독은 박철우를 교체시키고 가빈을 중용했다. 안습 중요한 순간에 실수하거나 정줄 놓는건 현대캐피탈에 있을 때와 달라진 게 없어서 비록 개막전 경기에서는 현대캐피탈이 완패를 당했지만, '경기 중 중요한 고비 때마다 박철우가 정줄을 놔버려서 현대캐피탈에게 유리하게 될 것이다'라는 기대를 가진 현대 팬들이 많아졌다.
다만, 신치용 감독은 선수들이 서브 실수할 때 김호철 감독과는 다르게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 감독이라서 그런지 현대캐피탈에 있을 때보다 서브는 마음 편하게 하는 듯.
단순히 4일 개막전 경기만 보면 오로지 가빈에게만 공격이 가면서 리그 후반에 체력부족에 시달렸던 지난 시즌과 달리, 이번 시즌에는 박철우가 있기 때문에 초반 1,2세트에는 박철우와 가빈이 공동으로 공격을 맡고 중요한 순간에는 박철우를 빼고 수비에 능한 레프트를 투입, 가빈을 라이트로 전환시켜 닥치고 가빈 모드로 돌릴지도 모른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데, 박철우는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부설고등학교 재학 시절부터 기흉을 앓아 수술을 받았던 적이 있었고, 특히 2007년에는 3번이나 기흉 수술을 받아 폐활량이 많이 떨어진다. 이를 반영하는지 '''가빈 몰빵 모드'''는 2009-2010 시즌에 이어 2010-2011 시즌에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상무, LIG와의 경기에서 완벽하게 컨디션 난조를 보였다. 상무와의 경기에선 범실도 많고 가빈에 비해 안정감을 실어 주진 못했지만 어쨌든 27점이나 올려 줬다. 하지만 LIG경기에선 6득점에 그쳤고 아예 2세트에는 나오지 못했다. 더욱 안습인 것은 작전타임 때 신치용 감독에게 이름도 제대로 못불리고 '야 임마!!'라고 불리며 유광우와 함께 뒤지게 까였다. 여담으로 그 상황에서 신치용 감독은 세터 유광우에게 "아마추어나 하는 플레이를 하냐?" 라며 깠다.
2라운드에서 다시 LIG를 만났는데 이 때 그가 얻은 점수는 '''1점'''! 3억 연봉을 받는 선수가 한 경기에서 이런 점수를 낸다면 이건 잘못되어도 보통 잘못된 게 아니다. 한 마디로 배구 FA 최초의 먹튀 사례를 만들었다는 것 말고 할 말이 없다. 주전 라이트가 4세트 내내 뛰었음에도 공격시도가 고작 '''5번'''에, 그마저도 블로킹으로만 3번을 차단당했다(...). 다이렉트 킬 1번이 있어서 공격성공률은 20%였지만, 사실상 0이나 다름 없는 셈. 2011년 1월 25일 열린 우리캐피탈전에서도 또 한 번 1경기 1점을 올렸다. 정규 시즌에 1점을 기록한 경기가 두 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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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9월 3일, 신치용 감독의 딸로 알려진 신혜인[17] 과 결혼하게 됐다. 스포츠 판 로미오와 줄리엣이 해피엔딩으로 결말졌다. 그런데 신치용 감독에게 장인을 장인이라 부르지 못하고 감독님이라 부르는 안습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 적어도 박철우가 은퇴하기 전까지 아니면 신치용이 삼성 감독을 그만둘 때까지는... 그런데 그렇게 된 건 신치용 감독이 박철우에게 장인이라 부르지 못하게 해서 그런다고. 사실 이건 신치용 감독이 잘 한 것이다. 사석에서야 장인-사위지만, 선수단에서 있을 때는 공적인 자리인만큼 되도록이면 서로의 지위에 맞게 대하는 것이 당연하다.[18]
그런데 박철우의 발등에 불이 떨어진 문제가 있으니 바로 군 문제. 기흉이 장동건 때는 면제 사유였지만 2000년대 들어서는 아닌지라 병역 의무를 필해야 한다. 군대 문제 때문에 늦은 나이에 입대한 후 사그라든 선수들의 예를 봤을 때[19] 염려가 되는 게 사실이다. 본인이 건강 문제에 신경을 쓰고는 있지만.
게다가 가빈 슈미트와 레오나르도 '레오' 마르티네스로 이어지는 삼성화재 외국인 선수 공격 점유율을 많이 내준 탓인지 공격감이 현대캐피탈에 있을 때보다 많이 떨어졌다. 그래서인지 정규시즌에도 박철우의 비중은 적어졌고, 설령 공격을 해도 벽치기가 잦아서 '''벽철우'''라는 오명을 얻기도 했다. 2013 KOVO컵에서도 그 현상은 여전히 드러났다. 그런데도 팀 공헌도가 박철우보다 객관적으로 높은 여오현보다 많은 돈으로 FA 재계약을 했는데, 연봉이 무려 '''3억 3,000만 원'''이었다.[20]
또한 소속 팀에서의 안습한 위치뿐만 아니라 국가대표팀에서도 서서히 발탁되는 경우가 줄어들고 있다. 2011년 박기원 감독이 국가대표를 맡은 이후 박철우보다 더 젊고 더 유용한 김정환이 발탁되는 경우가 많아졌고[21] 현재는 아예 김정환이 국가대표 주전 라이트윙으로 고정된 상태나 다름없다.
2013-2014 시즌 챔피언 결정전에서 현대캐피탈을 상대로 올린 점수에 비해 인상적인 장면들을 많이 보여줬다. 특히 4차전에서 1세트에 팀 동료 이선규와의 충돌을 가지고 신경질을 내던 아가메즈와 언쟁을 벌인 다음 아가메즈의 스파이크를 단독 블로킹으로 깨끗하게 막아낸 장면과, 3세트 23:22로 앞서는 상황에서 아가메즈의 공격을 두 번 연속 블로킹해 내 결승점을 딴 장면은 백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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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대결에서 아가메즈의 공격을 깨끗하게 막아내는 장면.
이렇게 예전의 모습을 되찾기 어려울 것이라 우려가 많았지만, 2014년 월드리그 대회에서 국가대표팀 주포로 자리잡게 됐다. 박철우 이외의 날개 포지션에는 서재덕, 전광인, 송명근 등 후배들이 리시브를 잘 받아 주며 박철우는 공격에 전념할 수 있게 되면서 20점대 중후반 대의 득점을 올리는 경기가 많아졌다. 전광인에 이어 147점으로 팀 내에서 2번째로 많은 득점을 올렸다.
2014 인천 아시안 게임에 출전했지만, 준결승 일본전에서 패해 '''결국 군대 확정....''' 2014년 10월 23일로 입소일이 찍힌 입대 영장이 아시안 게임 이후 통지됐다고 한다. 삼성화재에는 비상등이 켜졌다. 그런데 행정절차 때문에 입소일이 2014년 11월 27일로 연기된 상태. 이유인즉슨 박철우가 오프 시즌 동안 주소지를 팀 숙소와 전용 체육관이 있는 경기도 용인시 근처로 옮겼기 때문이었다. 주소지 변경 때문에 관할 병무청이 변경되어 박철우의 입소 날짜를 다시 세팅하게 되었으며, 일과를 마치고 팀 훈련장에서 훈련하기 위한 취지로 추측된다. 2014년 11월 20일 대전 홈경기를 끝으로 입대했다. 이후 기초 훈련을 마치고 수원 권선구청에서 사회복무요원으로 군 복무 중이다.
한편 박철우가 입대한 후에도 삼성화재의 2014-2015 시즌은 그럭저럭 굴러갔다. 김명진, 황동일 등이 돌아가면서 공격 부분을 메워주고는 있다.[22] 그러나 챔피언 결정전에서 삼성화재가 OK저축은행에게 속절없이 시리즈 스윕 패배를 당하면서 박철우의 능력이 재평가되었다. 리그 상위권의 사이드 블락 능력에, 많이 죽었다고는 해도 여전히 좋은 박철우의 공격력은 그가 사라지자 그 공백을 충분히 느끼게 만드는 것이었다.
2015-2016 시즌, 세계 최고 소리를 듣던 괴르기 그로저가 라이트 자리에서 뛰면서 폼이 빠르게 올라오지 않자 역시 다시 박철우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지고 있다. 단 주의할 점은, 세계 최고의 아포짓이라는 그로저의 명성에 비해 기대치가 안 나오는 것이지 객관적인 성적이 나쁜 것은 아니다. 몇 경기만에 득점 1위를 할 정도로 점유율도 높고, 공격 성공률 또한 용병 중 3위정도를 할 정도로 괜찮은 활약을 보이고 있다. 서브는 현재 1위를 기록 중.
그가 입대한 후 장인은 시즌을 마치고 팀의 단장으로 인사이동하면서, 소집 해제 후에는 더 이상 장인과 경기에 나서지 않게 됐다.
그리고 2016년 11월 27일 소집 해제되어 소속 팀에 복귀하였으며 12월 2일 대한항공전부터 출전할 예정이다. 적지 않은 나이에 현저히 떨어진 경기 감각을 얼마나 빨리 끌어올리느냐가 중요하게 됐다. 소집해제 이후 출전하는 경기마다 조금씩 기량을 끌어올리더니 17년 3월 7일 현재 팀의 포스트시즌 진출에 있어 중요한 인물로 꼽히고 있다(소집해제 후 같은 팀 날개 공격수 타이스의 높은 공격율의 분담을 첫 목적으로 하였는데 이제야 본격으로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하고있다.).
그러나 결국 팀은 V-리그 출범 후 처음으로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다.
2018-2019 시즌부터 본인 스파이크서브 동작 시 토스를 오른손에서 왼손으로 바꿔 올리고 있다.[23]
2019년 3월 5일 OK저축은행을 상대했는데, 센터로 출전했다. 잔여 경기에서도 센터로 나선다고 한다.
6월 21일 임도헌 감독이 이끄는 남자배구대표팀 도쿄올림픽 대륙간 예선전 최종 엔트리에 같은 팀인 지태환과 함께 발탁되었다. 2014년 이후로 5년 만의 대표팀 발탁으로, 그 동안 대표팀의 주축이었던 서재덕이 병역 문제 때문에 빠지게 된 데에 따른 대체 발탁의 성격이 강하다.
2019-2020 시즌엔 라이트 산탄젤로의 영입으로 레프트나 센터로도 경기를 서게 되었지만, 산탄젤로의 부진으로 라이트로 출장하는 횟수가 더욱 많아졌다.
이번 시즌을 마치고 다시 FA 자격을 얻게 되었다. 박철우도 이제 30 중반에 접어드는 노장 선수이고 삼성에서 오랜 공헌을 한 팀 간판 선수이기에 이때까지만 해도무난히 삼성화재에 남을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었다.
3.3. 한국전력 시절
그러나 예상을 뒤엎고 4월 18일 한국전력 이적이 발표되면서 배구팬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충격의 이적 이틀 전 동아일보의 황규인 기자가 블로그에 박철우가 삼성화재를 떠날 거라고 쓰는 등# 이적한다는 소리가 알음알음 있긴 했지만 진짜 소수였는데, 결국 실현되고 말았다. 박철우를 영입한 한국전력 프런트에 따르면 권영민 수석코치의 도움이 컸다고 하며, 삼성에서도 박철우가 권영민 코치를 그 정도까지 신뢰할 줄은 몰랐다는 구단 관계자의 발언이 있었다.
이후 본인 피셜에 의하면 한국전력의 오퍼가 들어온 후 고민을 많이 했다고 한다. 삼성화재를 떠나기에는 지난 10년간의 삼화 생활에 너무 정들어 떠나기에는 아쉬웠다고 한다. 하지만 장인이 '뭘 하든 네 선택을 존중한다'는 한마디에 마음을 다잡고 한국전력 이적을 결심했다고 한다.[24] 박철우ᆞ신혜인 부부 MBC 인터뷰
4월 20일 세부 내용이 공개되었다. 연봉 5억 5,000만원 옵션 1억 5,000만원 연봉총액 7억, 총 3년 21억 규모로 한국전력 역대 최고 대우 금액이다. 그동안 샐캡 소진이 안 돼서 벌금까지 물 뻔했던 한전이 간만에 돈을 썼다는 여론. 그의 보상선수로는 이호건이 지명되어 삼성화재로 가게 되었다.[25]
사회복무요원으로 복무 중인 서재덕이 2020-21 시즌 종료 후에나 복귀하기 때문에, 2020-21 시즌 그의 활약이 더욱 중요하게 됐다. 컵대회 우승을 이끌며 기분줗은 출발을 했다.
20-21시즌을 앞두고 방출된 신으뜸을 대신하여 주장을 맡게 되었다.
그러나 20-21시즌 1라운드에서 팀이 전패를 당하면서 박철우 영입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박철우가 라이트로 뛰면서 원래 라이트로 뛰던 카일 러셀을 레프트로 영입했는데 리시브가 많이 흔들리는 중. 러셀은 리시브하랴 공격하랴 정신이 없는데 정작 라이트인 박철우가 러셀보다 현저히 떨어지는 공격점유율을 보여주면서 러셀을 라이트로 보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또한 레프트 남은 한 자리에 러셀의 부족한 수비를 보완해 줄 이시몬이 주전으로 계속 출장하면서 국내 젊은 레프트들이 성장할 기회를 갖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는다.
이런 난항 속에 한전 팬들은 6연패가 박철우의 책임인지 세터 김명관의 기량 탓인지를 두고 갑론을박을 벌이고 있고, 와중에 감독 장병철은 애꿎은 러셀 탓만 하는 중. 여러모로 봤을 때 못하는 건 아니지만, 연봉이 7억이나 되는 선수로서 걸맞은 활약은 아니라는 평이 많다. 박철우가 한국전력으로 이적함으로써 삼성화재에 나비효과가 일어났다는 평이 있다. 삼성화재가 이호건을 받아서, 우리카드의 트레이드를 성사한 것이 첫번째. 이를 통해 김광국을 받아서 한국전력에 젊은 피 세 명을 데려온 것이 다음이다.
한편 2021 배구계 학교폭력 폭로 사건 이후 배구계 안팎에서 폭력 근절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는 가운데, 박철우가 2009년에 대한민국 배구 국가대표팀에서 이상렬 의정부 KB손해보험 스타즈 감독으로부터 폭행당했던 사건이 다시 소환되고 있다. 특히 최근 연이은 폭력 사태 폭로를 본 이상렬 감독이 언론 인터뷰에서 "폭력은 인과응보가 따른다"는 말을 하자, 박철우가 그대로 폭발했다. 박철우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정말 피꺼솟이네. 피가 거꾸로 솟는다는 느낌이 이런 것인가"라는 글을 올리며 이상렬에 대한 여전한 분노를 나타냈다. 그리고 2021년 2월 18일 안산 OK금융그룹 읏맨과의 경기가 끝난 이후 수훈선수 인터뷰에서 과거 이상렬의 폭행 전력을 작심하고 폭로했다. 이에 이상렬은 "받아주지 않는다고 해도 사과하고 싶다"는 입장을 밝힌 상태.
이후 사태가 커지자 2월 19일 KB 구단은 6시간의 회의 끝에 '박철우 선수의 마음이 풀릴 때까지 이상렬 감독이 용서를 구해야 한다'라는 지극히 1차원적인 결론을 내렸고(...) 이에 대해서 이상렬은 '어쨌든 어른이 다 잘못한 거죠', '(누군가)다리를 놓아 준다면 저는 충분히 사과할 용의가 있어요'라며 ''' '누군가 다리를 놓아주면 어른인 내가 먼저 사과를 해 주겠다' '''라는 어처구니 발언을 하며 여전히 사과의 진전성을 의심받고 있다. 덤으로 다른 사람의 폭로까지 이어지자, 다음 날 이상렬은 남은 경기에 나서지 않겠다고 밝혔다[26] . 뿐만 아니라 후속 보도에 의해 이 '자진 출장정지'라는 것이 계약 기간 잔여 연봉을 보존 받기 위한 이상렬의 최후의 꼼수라는 것이 밝혀지며 '''끝까지 비겁한 '가해자' '''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그리고 차돌배구 쇼(106화 EP1. 끝나지 않은 '학폭탄')에 따르면, 박철우의 폭로에 기자들이 놀랐다고 한다.
4.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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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년 박인혁, 김태균, 호잉과 함께 대전방문의 해 홍보대사로 임명되었다. 그런데 정작 박철우는 대전광역시 연고팀인 한화 이글스 팬이 아니라 대구광역시를 연고로 하는 삼성 라이온즈 팬이다. 더구나 박철우는 초등학교 시절에 삼성 라이온즈 어린이 회원이기도 했다고.[27]
- 고희진이나 진상헌만큼은 아니지만, 득점 후 세리머니가 굉장히 큰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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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등학교 졸업 후 프로 데뷔를 했기 때문에 명지대학교 소속으로 뛰지는 않았다.[2] 전 농구선수이다.[3] 나 이런사람이야~ 삼성의 철우~ 난 박철우야~ 최!강!삼!성!박!철!우!(x 2)[4] '''최강삼성 박철우 박철우 박철우 최강삼성 박철우 박철우 박철우 워워워워~ 워워워~ 워워워~ 워워워~최강삼성 박철우 박철우 박철우 박!철!우!'''[5] SK 와이번스 소속 이재원 선수와 현 KT 위즈 소속 이홍구 선수의 KIA시절 응원가가 동일하다.[6] 원래 응원단장들이 응원가를 만들 때 여러 종목을 겸업하는 단장들은 주로 야구선수의 응원가들 중 호평을 받은 응원가들을 편곡해서 만드는 편인데 이 응원가의 경우는 예외적으로 박철우 응원가가 원조이고 이후에 이홍구, 이재원 순으로 만들어졌다.[7] 삼성 삼성 삼성 박철우 오오오오오 승리를 위해~*2[8] 전 kt wiz 소속 외야수 이대형의 KIA시절 응원가와 같다.[9] 워어어어어~ 한전의 박철우~ (박!철!우!) x2 승리의 이름으로~ 한국전력 박철우 (박!철!우!)(전체x2)[10] 2005년 리그 출범 당시 뛰었던 선수 대부분은 은퇴했다. 개막전 1호 득점자 김상우는 2007년 은퇴 후 지도자가 됐고 개막전 최다 득점자 장병철은 박철우의 현 소속팀 감독이다. 실업 시절부터 현재까지 꾸준히 뛰는 선수는 박철우 외에 플레잉코치로 뛰는 여오현이 유일하며 프로 원년에 뽑힌 신인 중에서는 2021년 기준으로 40세가 된 하현용과 39세 곽동혁만이 남았다.[11] 이 열애설이 더 유명해질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신혜인의 아버지가 삼성화재의 감독인 신치용'''이기 때문이었다.(어머니는 농구선수 전미애) 그래서 그가 현대캐피탈 소속이던 시절에 많은 이들이 이들의 연인 사이를 배구판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비유하기도 했으며, 배갤에서의 별명이 무려 '''사위'''(...)다. 그리고 박철우가 삼성전에서 유난히 부진한 것을 보며, 장인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그런다고 많이들 깠었다. 박철우가 FA로 이적하면서 사위와 장인이 한 팀으로 뭉쳤다.[12] 상술되어 있듯, 198cm의 장신이다. 왠만한 센터들과 붙어도 높이에서 밀리지 않는 신장. 더군다나 국내에는 2미터 대의 신장을 가진 선수가 거의 없어서 토스 타이밍이 잘 맞았을 경우에는 역으로 블로킹보다 훨씬 위쪽에서 타점을 잡고 공격을 때릴 수 있다.[13] 이후 2013년 드래프트부터 이 조항이 삭제되어 고교졸업 예정 선수들도 드래프트에 응할 수 있게 되었다. 이 개정에 따라 지명된 선수가 송림고등학교 졸업 후 대한항공의 지명을 받아 입단한 정지석이다.[14] 사실 박철우의 고졸 프로 진출보다 더 파격적인 사례가 있었다. 그 주인공은 1990년대 초반 중학교 졸업 후 럭키화재에 입단했던 이상욱. 그러나 이상욱은 이렇다 할 활약을 보이지 못한 채 1994-1995 슈퍼리그 직전 슬그머니 방출되었다.[15] 여담으로 훗날 부인이 되는 신혜인은 '''부정맥''' 판정을 받아 심장 수술을 받으며 현역에서 은퇴하고 말았다. 즉, 운동선수 부부끼리 하나씩 부실한 파트가 있다는 것.....[16] 명목상 레프트일 뿐이지 실제로 레프트 공격수가 받아야 할 대부분의 리시브는 가빈의 대각에 서 있는 석진욱이나 신으뜸이 담당했다.[17] 前 여자농구 선수였다.[18] 비슷한 예로, 최고참급 현역선수가 코치보다도 나이가 많으면 코치를 존중해주는 것처럼 말이다. (예. 김병지, 박찬호)[19] 손석범이라든가, 윤관열이라든가, 백승헌이라든가. 이들은 모두 공익으로 복무한 후 복귀했지만 결국 은퇴했다.[20] 이것이 화근이 되어 FA가 된 여오현이 삼성화재로부터 2억 6천만원을 연봉으로 제시받았는데, 여오현은 이를 거부하고 천안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와 연봉 2억 9천만 원에 3년 계약을 맺는다. 그리고 여오현은 KOVO컵에서 여실히 그 존재감을 드러내며 현대캐피탈을 우승으로 이끌었다.[21] 김정환은 소속 팀과 국가대표팀에서 거의 노예급으로 굴리긴 하지만 아직까지 큰 부상이 없다. 또한 라이트 치고 서브 리시브 능력까지 출중해 당장에 리시버가 아쉬운 국가대표팀으로서는 정말 중요한 자원이다.[22] 다만, 김명진은 시즌 중 부상으로, 그리고 황동일은 변칙적인 더블 세터 시스템이란 옵션으로 분명한 한계가 있었다.[23] 원래 곽승석도 2016년까지 왼손으로 올렸으나 2017년부터 오른손으로 올리고 있다.[24] 여담으로 신치용 역시 현역 시절 한국전력 소속으로 뛰었고 코치 생활을 오랫동안 하면서 실질적인 감독 역할을 했다.[25] 이호건은 다시 3:4 트레이드로 우리카드로 이적했다.[26] 정규시즌이 6경기 남은 이 시점에 본인이 찾아가 제대로 된 사과 및 재발방지 약속을 하기는 커녕 '시즌 아웃'이라는 말로 과장해가며 잠시 경기에서 물러나는 핑계 이상으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 배구팬들의 주 여론이다. 애초에 감독에 선임될 때부터 솜방망이 징계마저 무력화 시키는 거 아니냐는 말이 대단히 많았었고...[27] 참고로 박철우는 경상북도 구미시 출신이고 대구광역시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