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선수
1. 개요
대한민국의 남자 배구인이자 인천 대한항공 점보스의 세터.
현재는 황택의 선수에게 리그 연봉 1위자리를 내줬으나 사실상 대한민국 남자 배구 현역 최고의 세터.
이름이 좀 특이한데, 한선수의 형제 및 사촌들이 '수'자 돌림이라서 자연스럽게 지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항렬이 굉장히 높다[4] . 한승수 前 국무총리와 같은 항렬.
정말 잘 벗긴다.
2. 데뷔
경기도 부천시 출신으로, 화성 송산중학교를 거쳐 수원 영생고등학교에서 2002년 대한배구협회장기 우승을 기록했고 한양대학교에 04학번으로 입학한다. 영생고 동기로는 KEPCO45의 미들 블로커였던 황설민 선수가 있다.
2.1. 드래프트 지명
한양대학교 시절 대한항공 입단 동기 진상헌(1년 후배로 드래프트에 일찍 참가), KEPCO45의 미들 블로커 최석기, , 현대캐피탈의 리베로 박종영, 승부조작 파문으로 영구제명된 국가대표 레프트 등과 같이 뛰었고, 2007~2008 드래프트에 참가했다.
한양대학교 재학 시절에는 인하대학교의 세터 유광우에게 가려져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일단 대학 전관왕을 이끈 실적면에서 유광우의 상대가 되지 않았고, 대한민국 배구 특성상 유광우처럼 지능적이고 손재주에 능한 세터가 우대받는 환경에서 장신을 앞세운 힘의 토스가 주가 되는 한양대식 거포 배구를 지휘한 한선수는 감독들이 원하는 선수가 아니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한선수는 드래프트 전만 해도 삼성화재로 지명될 게 확실시됐다. 로터리 순위에서 앞섰던 대한항공은 전통적으로 상위 드래프트에서 웬만하면 같은 재단 소속인 인하대학교 출신의 선수를 뽑기로 유명했는데,[5] 당시 문용관 대한항공 감독은 팀의 최대 약점인 세터진을 보강하기 위해 대학 리그 최대어이자 인하대학교 배구부 감독 시절에 직접 키워 왔던 유광우를 지명하기로 밝혔다. 김요한은 전체 1지명권을 가진 LIG가 지명할 게 유력했는데, 유광우 역시 당시 인하대학교의 전 대회 우승을 일궈낸 1등 공신이기도 했기에 LIG가 유광우를 지명해야 한다는 견해도 만만치 않았다. 당시 드래프트의 주역들은 앞에 언급한 대학 리그 전관왕의 주역들인 김요한, 유광우, , 그리고 당해 드래프트 최고의 미들 블로커인 진상헌의 4명이 경쟁했고, 한선수는 유광우에게 밀린 2인자 위치로 2라운드 지명이 유력한 선수였다.
하지만 드래프트 1라운드에서 삼성화재가 2순위 지명권을 가지는 행운을 얻었다. LIG가 이변없이 김요한을 1순위로 지명한 후 삼성화재는 기다렸다는 듯이 유광우를 지명했다. 그 전년도까지의 배구 드래프트는 프로야구에서 보는 일반적인 드래프트였다.[6] 그런데 기존 시스템이면 2순위가 무난했던 대한항공은 LIG→삼성화재에 이어 3순위로 밀려나게 되었다. 이 때문에 대한항공은 문용관 감독이 직접 키운 제자들 중 핵심 그대로를 통째로 날렸고[7] 3순위에 센터로 진상헌을 지명한 뒤 4순위의 현대캐피탈이 세터진이 넉넉한 팀의 사정상 한선수를 2라운드에 지명하지 않으면서 2라운드 2순위에서 대한항공이 유광우의 대안으로 한선수를 지명하게 되었다.
그런데, 사실 한선수는 애초에 드래프트에 안 나올 뻔했다. 바로 한국전력 때문. 당시 프로화하지 않아 실업 초청 팀 자격으로 V-리그에 참가한 한전은, 프로 팀이 아니다 보니 드래프트에 참가하지 못해 우수한 선수가 없었고, 수련선수까지 다른 팀이 싹쓸어 간 다음 남은 선수를 겨우 데려오다 보니 선수층이 얇아 승점자판기로 전락해 버리고, 그 전력 차이 때문에 프로화를 못하겠다고 나오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었다. 한전은 다른 팀과의 전력 균형을 맞출 수 있어야 준 프로화를 하겠다고 하고, 기존 구단들은 반대하면서 2007-2008 시즌 시작 직전에는 리그 불참 얘기까지 나올 정도로 갈등이 심했다.
특히 2007-08 시즌 직전에는 한전의 주전 세터이자 거의 유일한 세터였던 가 상무에 입대하게 되면서, 세터가 없어져 버리는 문제가 발생했다. 그래서 한전에서 한 얘기가, "우리 팀에 당장 세터가 없다. 우리도 양심이 있으니 유광우까지는 바라지도 않겠다. 그러니 한선수라도 줘야 프로화하겠다" 라는 거였다.
결국 최종 협상에서 한선수를 한전에 주는 것까지는 한전과 타 구단의 타협이 이뤄졌다. 하지만 다음 시즌 드래프트 때 한전은 1라운드 2명 지명을, 다른 구단은 2라운드 전체 지명을 내세우던 입장이 좁혀지지 않아 결국 최종 협상이 결렬되었고, 한선수에 대한 합의까지 없던 것이 되어 버리면서 한선수는 그냥 신인 드래프트로 나오게 되었다.관련기사[8]
그 다음해의 최종 타협안(1라운드 1순위(문성민) 지명 + 2라운드 3명 지명)이 2007-08 시즌 때 양쪽의 요구 사항의 중간 정도가 되며,[9] 그 이후에도 한전은 문성민 효과를 누리지 못했다는 것을 고려하면, 그때 타협이 되어서 문성민 지명 대신 한선수가 한전으로 갔다면 지금 배구판이 어떻게 바뀌었을지는 아무도 모를 일.
2.2. 루키 시즌
2007-2008 시즌 대한항공은 브라질 출신의 보비와 기존의 , 김학민, 신영수를 앞세워 언제든지 우승을 노릴 전력을 갖추게 됐다. 하지만 문용관 감독은 드래프트에서 유광우를 놓친 미련 때문에 한선수, 진상헌-유광우의 2:1 트레이드를 추진하기도 했다. 그러나 삼성화재의 신치용 감독은 쿨하게 트레이드 제안을 거절했다.[10] 문용관 감독은 어떻게든 한선수를 트레이드 카드로 써서 좋은 세터를 데려오려 별 짓을 다 했으나 결국은 모두 수포로 돌아갔다. 2007-2008시즌 정규 리그가 끝날 무렵 대한항공 주전 세터 은 경기 중 발목이 돌아가는 심각한 부상을 당하게 되자 문용관 감독은 백업 세터 한선수를 기용하게 된다. 그리고 '''행운의 여신은 한선수의 손을 들어줬다'''.
한선수를 트레이드 카드로 쓰려다가 포기한 후 기용하기 시작한 문용관은 브라질 출신의 세터 코치 슈파를 영입하며 한선수의 전담 코치로 붙여 준다. 유광우는 데려올수 없고 한선수라도 써먹어야 했기 때문에 외국에서 세터 코치를 영입하고 키워보려 시도한 것. 문용관은 세터 출신이 아니기 때문에 세터분석 능력이나 쿠세를 가르치는 능력이 없었고, 이 부분을 세터코치를 영입하여 해결하려 한 것이다. 슈파 코치의 영입은 성공적이었다. 슈파 코치의 지도아래 한선수는 속공, 시간차, 시원하고 빠른 퀵오픈 등 과감한 세트 플레이를 펼쳐 단숨에 주전 세터를 차지하여 의 빈 자리를 채웠고 포스트 시즌에서 주전 자리를 꿰차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노련한 최태웅의 삼성화재를 넘지 못했다. 이 시즌에 대한항공은 삼성화재에 밀려 정규 시즌 2위, 플레이오프는 현대캐피탈에 밀려 탈락했다. 그러나 한선수의 깜짝 등장으로 대한항공은 그동안의 고질적인 문제였던 세터 문제를 한 번에 해결했다. 하지만 문용관 감독은 이 시즌을 마지막으로 대한항공의 감독에서 물러났다.
2.3. 2008-09시즌
과거 고려증권을 이끌었던 명장 진준택 감독이 대한항공 감독으로 부임했다. 진준택 감독이 한선수를 한 단계 더 성장시켜 줄 거라고 기대했지만, 한선수를 지도 했던 슈파코치를 세터코치에서 전력분석관으로 보내버렸고 그 빈자리를 신영철을 인스트럭터로 데려와 메꾸게 되면서 한선수는 꼬이기 시작한다. 슈파코치는 스파이크 서브시대 이후 트렌드로 자리 잡은 스피드 배구의 원조인 브라질 출신이고 브라질 국대 출신 세터를 키워낸 경력이 있다. 즉, 낮고 빠른 퀵오픈 토스 위주의 세터를 키워내는데 능력이 있었고 한선수 역시 그렇게 지도를 했지만 후임인 신영철의 경우 전형적인 구식배구 쿠세세터 지도자다. 다시 말해 한선수는 신영철에 의해 다시 쿠세를 이용한 토스를 코칭 받게 되었고 결국 이 시기의 한선수는 퀵오픈도 아닌 오픈도 아닌 어정쩡한 토스를 보여주며 신인 때와는 달리 실력이 저하되기 시작한다. 게다가 한선수의 토스는 기본적으로 속도가 빨라 빠른 공격을 이끌어낼 수 있지만 볼 끝이 뚝 떨어지는 토스라는 치명적인 약점도 있었다. 당연히 공격수들은 한선수의 들쭉날쭉한 토스에 적응하지 못했다. 거기에 세트 초반에 잘 하다가도 20점만 넘어가면 갑자기 범실 퍼레이드를 펼치는 등의 멘탈에서도 문제를 들어냈다.
세터를 중시한 진준택 감독은 한선수의 플레이에 질책하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주전 라인업에서도 빼는 강경한 모습을 보이기까지 했다. 이후 한선수는 코트보다는 웜업존에서 자주 몸 푸는 모습이 보였다. 당장의 성적에 욕심을 낸 나머지 안정적인 토스웍을 요구한 진준택 감독과 한선수의 과감한 플레이는 당연히 물과 기름과 같았다. [11] 결국 대한항공은 정규시즌 3위, 플레이오프 탈락에 머물렀다.
결국 세터 코치를 슈파에서 신영철로 바꾼게 패착이 됐다. 우리나라 V리그에서는 강력한 스파이크 서브로 리시브를 초토화시키는 대세와는 달리 일명 소녀서브, 아리랑 서브 같은 약한 서브를 하기 때문에 리시브만 강력하게 연습하면 많은 감독들이 꿈꾸던 퍼펙트 리시브가 가능하다. 그 퍼펙트 리시브를 바탕으로 과거 슈파코치시절 퀵오픈만 쏴주면 대한항공이 우승하는건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진준택 감독 부임이후, 그리고 신영철이 세터코치로 부임한 이후 과거 구식배구 스타일로 돌아가면서 모든게 엉망이 되었다. 한선수에게는...
2.4. 2009-10시즌
대한항공은 시즌 전 백업요원을 보강했다. 그러나... 막상 시즌이 개막되니 대한항공은 개막 2연패에 빠지는 등 초반부터 삐걱대기 시작, 이후 9경기에서 4승 5패로 부진하자 진준택 감독이 사퇴했다. 그리고 그 뒤를 신영철 세터 코치가 감독대행을 맡아 팀을 이끌었고 시즌 중 정식 감독으로 승격되었다. 신영철 대행이 맡은 후 대한항공은 12경기에서 11승 1패를 기록하여 180도 달라졌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는 한선수가 있었다. 명 세터 출신인 신영철 감독대행의 무한 지원사격에 한선수는 이전 시즌의 2년차 징크스를 털어낼 수 있었고 한 단계 성장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시즌도 대한항공은 3위(...)[12]
그러나 한선수나 팀이나 희망은 보였던게, 한선수가 리그 최고의 인기선수로 자리잡게 된 시즌이기도 하고 대한항공도 점점 안정된 전력으로 우승까지 노려볼 희망이 생겼던 시즌이기도 했다.
2.5. 2010-11시즌
한선수는 2010-2011 시즌 개막 전 펼쳐진 아시아 남자선수권대회에서 세터상을 수상하고 광저우 아시안 게임에서 동메달을 따내는 등 국제무대에서도 맹활약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광저우 동메달에 그쳐 병역 특례를 받지 못했고, 이는 결국 2013년에 한선수 본인은 물론 팀에게 발목을 잡게 된다.[13]
월드리그와 아시안 게임을 뛰며 국제대회에서 백업 이상의 활약을 보여 준 한선수는 드디어 진가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2~3년차 때 미숙했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고, 블로커를 피해 공격수에게 전달해주는 빠른 토스는 감탄을 일으킬 정도. 거기에 올스타전 팬투표 전체 1위를 기록하며 '''자타공인 KOVO의 아이콘'''이 됐다. 이렇게 한선수가 각성하고 급성장한 배경에는 한선수 스스로 문제 해결능력을 기르는데 초점을 맞춘 신영철 감독의 지도 때문이었다. 거기에 강한 서브를 구사할 수 있다는 점이 타팀의 세터들과 비교가 됐다. [14]
한선수는 팀의 공격수를 십분 활용하는 토스웍을 보여줘 팀을 정규 시즌 1위로 이끌었지만... 대한항공은 챔피언 결정전에서 신세계의 甲人을 내세운 삼성화재에게 시리즈 0-4의 업셋을 당하며 대차게 털렸다(...).
2.6. 2011-12시즌
V-리그가 끝나고 한선수는 현대 배구의 패러다임인 스피드 배구를 강조하는 박기원 국가대표팀 감독의 주목을 받아 국가대표팀의 주전 세터로 월드리그에서 활약하고 있다. 그의 빠른 토스는 전광인, 최홍석, 신영석, 김정환 등의 빠른 공격을 이끌어냈고 난적 쿠바와 프랑스를 잡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기복이 심해 가끔 교체되긴 하지만 2011 월드리그를 계기로 국내 No.1 세터로서 자리를 굳히기 시작했다.
2.7. 2012-13시즌 및 이후
변함없이 주전 세터로 활약했으나 챔피언 결정전에서는 3연속으로 준우승하면서 다시 좌절했다. 게다가 주 공격수 마틴 네메크와의 불화 의혹까지 있었으니. 하지만 시즌 후 마틴은 재계약에 실패했다.
시즌이 끝난 뒤 FA 자격을 얻어 1차 협상에서 연봉 5억 원이라는 거액에 계약하며 대한항공에 잔류했다. 지나치게 많은 금액이라는 얘기가 있으나 프랜차이즈 스타에게 그 정도는 충분히 줘야 하지 않겠느냐는 옹호론도 만만치 않다. 문제는 그가 군 '''미필'''이라는 점. 한선수는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 동메달에 그쳤고 2014 인천 아시안 게임 금메달을 목표로 입대를 계속 연기하고 있었는데, 상무에 입대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는지라 잘못하다가는 김학민, 신영수처럼 될 수 있기에 여러 모로 위험 부담이 큰 계약이 될 가능성이 높다. 다행히 신영수는 사회복무요원으로 복무하는 동안 관리를 잘 하고 돌아와서 팀에서 주장을 맡고 있지만.
결국 2013년 11월 5일 상근예비역[15] 입대를 선언했다. 병역 특례를 목표로 입대를 계속 연기해 왔지만, 더 이상 연기가 불가능하게 되었다고 한다. 결국 대한항공은 황동일이 주전으로 될 가능성이 높아졌지만, 문제는 황동일도 '''미필'''이라는 것(...). 이로 인해 대한항공은 한동안 세터난을 겪었다. 대한항공에 입단했다가 데뷔 시즌도 치르기 전에 은퇴 공시된 뒤 특공부대에 입대하여 현역으로 복무를 마치고 긴급 복귀한 세터 백광언까지 가세하여 대한항공 세터진에 때아닌 경쟁 구도가 찾아오게 됐고, 황동일도 부진하자 결국 신인으로 입단한 조재영까지 때아닌 경쟁에 뛰어들 정도였다. 입대하기 전 2013년 11월 2일 대전에서 열렸던 삼성화재와의 개막전이 고별전이 되었다. 그리고 황동일은 이듬해 1월 17일 대전 삼성화재 블루팡스에 수련선수 출신의 군필 세터 강민웅을 상대로 결국 트레이드되고 말았다. [16]
그런데, 2014년 국제 대회를 앞두고 한선수에게 희소식이 전해졌다. 국방부가 문화체육관광부의 요청으로 한선수의 아시안게임 출전을 허락했다. 국방부 장관의 최종 승인이 떨어져야 하지만. 만약 남자 배구 국가대표팀이 2014 인천 아시안 게임에서 우승하게 된다면 한선수의 병역도 해결된다. 그러나 군 팀 소속이 아닌 선수의 차출이라는 점에서 편법이라는 논란을 부를 여지가 큰 데다가, 다른 종목에서도 형평성 문제를 제기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우려하는 반응이 있었다. 일단 4월 11일 발표된 2014 FIVB 월드리그 및 인천 아시안 게임 예비 엔트리에 포함됐고, 5월 18일에 대표팀 훈련에 합류하게 된다.
그러나 대한민국이 2014 인천 아시안 게임 준결승전인 일본전에서 패해 또 다시 동메달에 그쳤고, 결국 한선수는 '''2015년 8월 4일로 전역일이 확정됐다.''' 거기에 '''동갑내기 미필 선수도 자동으로 군대 확정.'''[17] 거기에 대한항공에서는 이미 군 복무 중인 김학민과 함께 한동안 군 입대 선수 중 상근예비역만 2명이었다.
아시안 게임 이후에는 오른쪽 어깨 수술을 받는 등 재활과 병역을 병행했으며, 2015년 8월 4일에 군 복무를 마치고 복귀했다. 복귀 후 신영수로부터 대한항공의 주장직을 넘겨받았다. 아직까지 어깨 회복이 덜 되어서 그런지(중계진도 덜 됐다고 말했다), 한선수의 경기 장면을 보면 부항 자국이 꽤 있다.
하지만 2015-2016 시즌에는 김학민과 함께 팀 몰락에 크게 일조한 실질적인 주범으로 지목되고 있다. 복귀 후 경기력이 많이 나빠졌으며, 일부 배구팬들은 경기에 임하는 그의 태도를 지적했다. 김종민 감독이 자진 사퇴했을 때도 김학민과 한선수에게 책임을 돌리는 의견이 상당할 정도인 데다가, 심지어는 태업도 의심받고 있다.
심지어 장광균 감독대행이 부임한 이후 맞는 천안 현대캐피탈전에서 감독이 작전타임을 불렀을 때 본인이 작전지시를 했다!! 이에 팬들은 김수겸과 비교하여 '''한수겸'''이라고 까는 중.[18][19]
다만 이 건은 2016년 6월 인터뷰서 박기원 감독과 장광균 코치가 강하게 부정했다. 기사 그리고 발리볼스타에서 본인이 '''해명한 바 있다.'''
2.8. 2016-17시즌
전 시즌과 같은 선수가 맞나 싶을 정도로 맹활약을 펼치고 있다. 시즌 초반에는 몇 경기 너무 단조로운 토스로 팀 패배를 막지 못하며 비판을 받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이 왜 주전 세터인지를 입증해보이고 있다.
세터로서 기본적으로 안정적이고 정확한 토스를 구사하고 있음은 물론, 대담한 토스플레이도 자주 선보이고 있다.[20] 경기운영을 부드럽게 하여 팀이 선두를 달리는데 김학민과 함께 1등공신이라고 할 수 있다.
2017년 2월 1일 KB전에서 KOVO 통산 3호이자 '''역대 최연소 10,000세트'''를 기록했다.
맹활약에도 불구하고 팀은 결국 챔피언전에서 현대에 무릎을 꿇게 되는데, 아쉬움에 눈물을 흘리면서도 문성민, 신영석 등과 포옹하며 우승을 축하해주는 모습이 찍혔다. 서로 친한 이유도 없지 않아 있지만 주장으로서 한선수의 높은 품격과 인성을 보여준 장면이었다.
2.9. 2017-18시즌
2017년 7월 1일, 선수등록 공시 다음 날 남자부 연봉 1위의 타이틀을 3년째 지키고 있다는 기사가 올라왔다.
17-18 시즌 초반 원래 빨랐지만 더욱 빨라진 한선수의 토스 속도에 공격수들이 적응하지 못해 대한항공은 초반 난항을 겪게 되었다. 한선수 역시 백업 세터인 황승빈과 자주 교체되는 모습을 보였고, 몇 경기는 아예 황승빈을 선발로 내보내기도 했다. 이후 토스 속도를 원래대로 돌려 놓으며 점차 다시 공격수들과의 호흡을 찾아가는 모습을 보였다.
초반 고전으로 인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올스타 브레이크 이후 팀은 5라운드 전승을 하며 단숨에 플레이오프를 확정지었고, 준플레이오프를 무사시키며 정규 2위 삼성화재와의 플레이오프에서 2-1로 승리하며 챔피언 결정전에 진출했다. 시즌 후반 보여준 토스워크는 훌륭했지만, 대한항공 선수들이 전체적으로 나이가 많아 체력적으로 힘든 점이 걸림돌이었다. 한선수 역시 85년생으로, 적지 않은 나이에 다수의 팬들이 체력 걱정을 했다.
2018년 3월 16일, 둘째 딸을 득녀했다.
2018년 3월 30일, 드디어 무관의 한을 풀고 우승을 달성했다.
챔프 1차전을 풀세트 접전 끝에 현대캐피탈을 상대로 3-2로 내주며 시작했지만, 연이은 2, 3, 4차전 동안 상대 블로커를 교묘히 속이는 좋은 토스워크를 보이며 세 경기를 모두 셧아웃으로 이기고 마침내 대한항공의 창단 첫 우승을 이끌었다. 기자단 투표[21] 로 챔피언 결정전 MVP를 수상했다. [코보티비] 10년을 기다린 한 선수의 이야기
17-18 시즌 종료 후 세번째 FA 자격을 취득한다. 본인이 팀에 지니는 상징성이나, 5억이라는 높은 연봉으로 보아 다수가 항공과 재계약을 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본인도 인터뷰에서 재계약을 암시하는 말을 남겼다.
2.10. 2018-19시즌
17-18 챔피언 결정전 MVP답게 6억 5천만 원에 재계약을 했다. 2019년 2월 25일, 세트 13000개를 달성했다. 이는 권영민에 이어 두 번째 기록이다. #
2.11. 2019-20시즌
비시즌 기간 백업세터 황승빈이 군에 입대하고 아직 프로 레벨에서 통한다고 보기 힘든 최진성과 함께 한 시즌 내내 세터 역할을 소화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었으나, 유광우가 우리카드에서 트레이드로 입단하면서 한결 부담을 덜게 되었다.
유광우가 왔어도 대한항공의 주전 세터는 이견없이 한선수였고, 실제로 시즌 초 대부분 경기에 주전으로 출전했다. 하지만 11월 10일 대전에서 열린 삼성화재전을 소화하다가 손가락 미세골절로 2~3주간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게 되었다. 이후 12월 19일 서울에서 열린 우리카드전에서 교체로 출장했고 22일 한국전력을 상대로 한 홈경기에 주전 세터로 출장하며 복귀했다. 한선수가 부상으로 정규시즌 경기에 출장하지 못하고 있을 당시 대한민국 배구 국가대표팀이 2020 도쿄 올림픽 아시아 지역예선 선수단에 한선수를 포함시키며 대한항공 팬들 사이에서는 "부상으로 소속팀 경기도 못 나오는데 대표팀이 왠말이냐"며 대표팀 선발에 다소 불만을 가지는 모습을 보였다.[22] 아무튼 22일 경기 종료 후 대표팀 훈련을 위해 진천선수촌에 입소하고 국가대표 경기를 소화한 후 1월 14일 복귀했다. 이후 한선수다운 꾸준한 모습을 계속해서 보여줬으며, 코로나19 사태로 5라운드로 시즌이 종료된 이후 베스트7 세터에 2년 연속 선정되었다.
2.12. 2020-21시즌
정규시즌 첫 경기에서 V리그 남자부 역대 최초 14000세트를 기록했다.
그 뒤 5라운드 삼성화재전에서 역대 통산 세트 성공 15000개를(1호) 기록했다.
안드레스 비예나의 대체 선수인, 요스바니 에르난데스가 팀에 합류하고 나서 이상하게도, 요스바니와 호흡이 맞지 않는 모습이 자주 드러나고 있다. 유독 경기 초반에 연이어 호흡이 맞지 않아 리드를 빼았기고, 유광우와 교체되는 건 덤. 페넌트레이스가 거의 끝나가는데도 호흡에 문제가 있다면 단기전인 봄배구에 굉장한 타격을 준다. 베테랑 세터 인 선수 본인은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아마 무릎 부상의 여파가 있는 듯하다.
3. 기타
- KOVO의 자타공인 아이콘으로 굳혀가고 있는데, 여기에 부응이라도 하듯이 염색을 자주 하고 있다.
- 잘생긴 외모 덕분에 스캔들이 끊이질 않았다. 대표적으로 여자배구의 아이콘 황연주와 KBS N 스포츠 아나운서 최희. 여담으로 황연주와는 어릴 때부터 친분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2012년 들어 새로 여자친구가 생겼고 마침내 결혼에 골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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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군가 SK 와이번스 팬이냐고 물었는데, 롯데 자이언츠 팬이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2017-18 시즌 소속 팀의 우승으로 인천SK행복드림구장에서 박기원 감독과 함께 시구/시타자로 나섰다.
- 수년간 남자부 연봉킹이었으나 2020년 황택의가 7억 3천만원을 받게 되면서 연봉킹 자리를 내줬다.
- 배구계에서 잘 쓰진 않던 2번[23] 을 데뷔 이래 쭉 달았다. 현재는 2번을 다는 선수가 많아지며 옛날 이야기가 되었지만 이전에는 2번을 쓰는 선수가 정말 드물었다.[24][25]
4. 관련 문서
[1] 한! 선! 수! 대한항공 한선수 화이팅~ (X3) 대한항공 점보스의 승리를 위해~ 한!선!수![2] kt wiz의 황재균 응원가와 똑같다.[3] 대한항공 점보스 한선수~ (한! 선! 수!) 대한항공 점보스 승리를 위하여~ (×2)[4] 시조 31세손 '洙'자 항렬.[5] 물론 드래프트 제도가 정착되고 프로화가 된 이후에는 타 학교 출신 선수들이 자주 지명되긴 했지만 '대한항공 - 인하대학교' 라인은 그야말로 난공불락이다. 실업 시절에는 100% 인하대학교 출신으로 오랫동안 채웠다가 드래프트 이후에는 점차 타 대학교 출신들도 수용했다.[6] 1라운드 지명은 4위→3위→2위→1위 식으로 前 시즌 성적 역순 지명이었고, 2라운드에서는 다시 성적순 지명이었다. 그런데 2004년 황연주와 2005년 김연경의 지명 때 흥국생명과 GS칼텍스의 병림픽이 발생하자 2007 드래프트부터 前 시즌 최하위 팀이 1순위를 가져가는 시스템에서 전년도 2,3,4위 팀이 추첨을 통하여 각각 15%와 35%, 50%의 확률로 신인을 뽑는 확률 추첨제로 변경되었다.[7] 은 당해 레프트 최대어였으나 아시다시피 대한항공 날개공격수진은 과포화 크리. 결국 은 현대캐피탈에 입단하였다가 문성민을 상대로 하경민과 함께 트레이드되어 KEPCO 45로 이적한다. 그리고 그 이후는 다들 아시다시피......[8] 이후 한전은 리그 불참을 선언했으나 KOVO의 읍소에 못이겨 겨우 2007-08 V-리그에 참가했고, 원래 세터였으나 가 있어서 리베로로 뛰던 용환승이 주전 세터를 맡으며 간신히 버텼지만, 역시나 승점자판기 역할에 머물렀다.[9] 물론 이 때는 우리캐피탈의 창단이 맞물렸기 때문에 더 큰 요구를 하기 어려웠다.[10] 삼성화재의 입장에서도 노쇠화가 슬슬 보이기 시작한 최태웅을 대신할 세터가 필요했다. 그리고 2010-2011시즌 FA로 영입한 박철우의 보상 선수로 최태웅을 내주고 유광우를 주전 세터로 썼다. 유광우의 주전 첫 해는 평이 영 좋지 않았으나 2011-12시즌 후반 들어서는 예전의 기량을 되찾았다는 평을 듣고 있다. [11] 올드 팬들 중에는 고려증권 시절 세터들(이경석-이성희)의 안정적인 세팅은 현재도 자주 회자되곤 한다.[12] 성에 차지 않았던 외국인 선수 밀류세프를 레안드로(2006-07시즌 삼성화재의 주전 외국인 선수)로 바꾼 시도 자체는 괜찮았지만, 그의 합류 후 이어진 3경기 연속 몰빵은 오히려 좋지 않은 방향으로 작용하고 말았다.[13] 한선수 외에도 신영수와 김학민이 병역 특례를 받지 못했다. 신영수는 2010-2011시즌 종료 후 공익요원으로 입대한 뒤 2013-2014시즌에 복귀했다. 이전의 다른 선수들과는 달리 몸 관리는 잘 한 듯하지만. 김학민은 2년 더 입대를 미룬 뒤(원래는 1년만 미루려고 했으나 이 승부조작에 연루되면서...) 2012-2013시즌 종료 후 상근예비역 입대.[14] 물론 이것은 장점만 적어 놓은 것이고, 단점을 적자면 중요할 때마다 뼈아픈 실수를 자주 저지른다. [15] 결혼한 후 자녀가 생겨서 상근예비역으로 빠진 것. 그 전에 김학민도 같은 이유로 인해 상근예비역으로 빠졌기 때문에 2년이 아닌 1년 9개월 간 복무했다.[16] 그럼에도 답이 없다고 생각한 신치용 감독은 2014-2015 시즌에 황동일을 세터에서 라이트로 바꿔서 기용했다.[17] 다만 박철우는 고질적인 기흉 때문에 공익으로 복무했다.[18] 몰론 감독이 작전지시를 안 한 건 아니고 감독의 작전지시 이후 일어난 일이다.[19] 그 날 경기 해설에 따르면 한선수와 장광균 감독대행은 형 동생하는 사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감독이 있는데 본인이 작전지시를 하는 건 감독을 무시하는 행위나 다름없다. 고참으로써 팀을 추스리는 것과 본인이 작전지시를 하는 건 분명히 다르다.[20] 속공을 써서 상대 블로킹에 막혀서 다시 넘어오자 또 똑같은 선수에게 속공을 맡겨 점수를 따오는 플레이 등.[21] 29표 중 13표[22] 그도 그럴 것이 한선수를 제외하고도 대한항공은 주전 센터 1명과 주전 레프트 2명을 국가대표로 보낸 후 우승 경쟁팀이었던 우리카드와 맞붙어야 했다.[23] 2번을 달면 유난히 부상을 크게 당하거나 잘 안 풀리는 경우가 많았다고 해서, 배구인들 사이에서는 비선호 번호였다.[24] 20-21시즌 기준 남자배구에서 2번을 달고 있는 선수는 한선수, 황택의, 곽명우, 이호건, 이승원, 이승호, 최은석이다. 최은석을 빼면 모두 세터.[25] 여자배구의 경우 도로공사나 기업은행만 2번이 없다. 현무린, 하효림, 양시연, 이현이 2번을 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