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미술

 



現代美術
1. 개요
2. 변화의 원인
2.1. 기술 환경의 변화: 사진의 등장과 재현 메타의 몰락
2.2. 사회 환경의 변화: 민주주의에 어울리는 새로운 형식이 요구됨
2.3. 예술의 자율성 자각: 예술만이 할 수 있는 것을 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생김
3. 현대미술에 대한 비판
4. 관련 문서


1. 개요


현대미술은 보통 1970년대부터, 길게 잡으면 1950년대부터 현재까지의 미술을 일컫는다.
이 시기 미술의 가장 큰 특징은 사진이 등장하면서 회화가 더 이상 대상을 사실적으로 재현하는 임무를 맡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후 미술은 대상을 얼마나 사실적으로 그리느냐의 문제에서 벗어나 조형미나 개념을 탐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다. 점선면색의 아름다움 그 자체를 탐구한 추상미술이나, 마르셀 뒤샹 이후 미술의 주요 경향이 된 개념미술이 대표적인 예.
현대미술은 탈근대미술(포스트모던 미술)과 그 시기가 겹친다. 그러나 그 둘이 개념도 겹치는 건 아니고, 탈근대미술이 현대미술에 포함된다. 포스트모더니즘의 경우 더이상 '미술'이라고 부르기 어려울 정도이다. 기존 미술 장르인 회화, 조소, 판화 등에서 벗어나, 소리, 촉감, 냄새, 맛 같은 요소까지 끌어들여 종합예술화 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포스트모더니즘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반면, 일부 사람들은 포스트모더니즘도 끝났다고 말하기도 한다.

2. 변화의 원인


현대미술이 왜 이렇게 되었는지에 대해 이해하려면 19세기 이후 변한 시대 상황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자세한 내용은 모더니즘 미술 참고) 카메라의 발명으로 더 이상 묘사적인 부분이 중요하지 않게 되었고, 추상적이며 관념적인 것들이 중요시하게 됐다.

2.1. 기술 환경의 변화: 사진의 등장과 재현 메타의 몰락


“이제 회화는 망했어. 저 프로펠러보다 멋진 걸 누가 만들어 낼 수 있겠어? 말해보게, 자넨 할 수 있나?”

—마르셀 뒤샹, 1912년 항공 공학 박람회를 관람한 뒤 친구(콘스탄틴 브랑쿠시)에게 [1]

우선 기술적으로 19세기에 나타난 가장 큰 변화는 사진이 등장했다는 것이다. 당시 화가들에게 그 충격은 알파고를 본 바둑기사들이 느낀 충격 그 이상이었다고 말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사진이 등장하면서 예술가들이나 대중은 한가지 고민을 하게 됐다는 점이다. 왜 굳이 사진을 찍으면 되는 걸 그림을 그려서 복제를 하겠는가? 서양화와 사진이 거의 동시에 들어온 한국에서는 이 둘의 관계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지만, 사진이 등장하고 인쇄 기술과 결합하면서 기존 미술판의 재현 메타는 사실상 완전히 엎어졌다. 사진이 나오기 전 까지만 해도 예술가는 예술보다는 기술자에 가까운 시절이었던 것이다.
사진뿐 아니라 이후 영화를 위시해 등장한 각종 영상 기술들 역시 이런 재현 메타의 몰락을 촉진시켰다. 80년대 이후에는 컴퓨터 그래픽 기술이 여기에 가세했으며, 가까운 미래에는 HMD를 이용한 가상현실 기술이 추가로 가세할 것으로 보인다. 쉽게 요약하면 기성 화가들은 굴삭기삽질의 대결을 하게됐다. 조각가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설계도와 CNC 밀링 머신만 있으면 얼마든지 복제할 수 있고, 최근에는 3D 프린터가 여기에 가세했다. 이러한 기술의 발전 덕분에 과거에 각 지역별로 한 명씩있던 가내 수공업 혹은 도제식 수공업으로 작업하던 예술가들의 수요는 사실상 사라졌다.
이런 기술 변화가 엄청난 영향을 끼칠 거라는 점은 이미 여러 사상가들이 고민한 문제였다. 발터 벤야민은 이 문제를 '복제'라는 측면에서 파고들었고, 명저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에서 유명한 아우라 개념을 제시하였다. 오늘날 벤야민의 저작은 현대미술가들이라면 한 번쯤 읽고 고민해볼 만한 내용을 담았다.
이런 상황에서 열심히 그리면 잘될거라고 말하는 건 노오력 해서 삽질해 굴삭기를 이기라는 말이나 다를 바 없게됐다. 생각해보면 오늘날 흔히 볼 수 있는 길거리 초상화는 연필이나 붓이 주는 '분위기'로 어필하는 것이지, 대상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기 때문에 돈을 지불하는 서비스는 아니다. 그럴려면 사진을 찍는게 훨씬 낫다. 경제적으로 따져보면, 사람 얼굴을 극사실적으로 그리겠다고 몇 주를 붙잡고 있는건 비효율적이다. 그렇게 그린 그림이나 사진기로 찍은 사진이나 결과 면에서는 별 차이가 없다. 사실 상당수 사람들은 손으로 직접 그리면 뭔가 더 뛰어날 거라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전통에 호소하는 오류, 혹은 잘못된 유추의 오류일 뿐이다. "과거 우리 장인들은 한땀한땀 정성들여 붓질해 작품을 완성했다. 그런데 현대미술은 그러지 않고 날로먹으니 저질이다." "수제품은 공산품보다 질이 좋다. 따라서 수제작하는 고전미술이 작가가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찍어내는 현대미술보다 더 우수하다." 과거에 수제작을 했다고 현대에도 수제작을 고집해야 할 이유는 없고, 작가의 수제작이 기계제작이나 주문제작보다 더 우수하다는 보장도 없다. 사실주의 화가였던 귀스타브 쿠르베가 생전에 천시받았던 것은 작품이 너무 파격적인데다가 거만한 성격 탓도 있지만 '사진이 있는데 왜 그런 뻘짓을 하냐?'고 무시당했기 때문이다.
물론 예술계에서도 극사실주의 같은 예외가 있지만, 그것도 엄밀히 말하면 대상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것에 집중한게 아니라, 극사실적 작품을 현실과 가상의 관계를 생각해보도록 유도하는 매개체로 사용한 경우가 많다. 이에 관한 설명은 다음의 영상을 참고하자. 극사실주의 화가들은 대부분 '사진을 보고' 그림을 그린다. 이전에는 현실-그림의 관계였지만 이제는 현실-사진-그림의 관계가 된 것이다. 극사실주의 화가들이 그 과정에서 제기하는 물음은 과연 그렇다면 가상은 대체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우리가 대중매체로 보고 들은 이미지 정보들이 과연 진실인가?' 라는 철학적 물음에 대해 묻고 있는 것이다. 쉽게 비유를 매트릭스를 떠올리면 된다. 결과물이 사진과 무슨 차이인지 납득시키지 못하고 미적인 평가만을 한다면, 극사실 주의는 별로 높은 평가를 받기 어렵다. 일반인들이야 그런것을 보고 진기해하며 좋아할지 몰라도, 수 천, 수 만개의 이미지를 본 전문가들의 입장에서는 진부하다고 평가받을 가능성이 높다.
간단히 말해, 전문가들은 거의 모든 이미지에 '질린'사람들이다. 미식가가 웬만큼 특별한 요리가 아닌 이상 높은 평가를 주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권태의 역치를 넘어서는 특출난 차이가 있어야 인정받는다는 말이다. 연줄로 쉴드쳐주는 것도 한계가 있지, 계속 그런 진부한 작업을 반복하면 시간이 지날수록 작가에 대한 평가는 떨어지게 되어있다.
그렇다면 왜 일반 대중들은 전문가들이 '질린' 작품을 현대미술 작품보다 더 선호하는가? 이는 아래에 언급할 '게으른 대중'과 '게으른 미술인'들 모두의 책임이 있다. 대중들은 새로운 미학과 기법, 제반 조건을 고려하지 않고 기존의 취향에 안주하며 현대미술에 반감을 품게 된다. 한편 미술인들은 부조리한 주종관계나 권력, 자본에 연루되는 등의 문제로 이러한 새로운 미학, 기법을 대중들에게 제대로 알려주고 싶어도 여건이 되지 못하거나 '''아예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타락하기도 한다.

2.2. 사회 환경의 변화: 민주주의에 어울리는 새로운 형식이 요구됨


기술 변화 외에도 사회 변화 면에서 보면 프랑스 혁명의 영향을 빼놓을 수 없다. 프랑스 혁명은 왕정을 무너뜨리고 민주주의에 입각한 공화국이 시작된 대사건이었다.
그러나 한동안 미술은 이런 시대 변화를 따라가지 못했다. 신고전주의낭만주의 같은 예술이 여전히 과거 왕정시대의 형식을 답습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예술은 1) 신이나 천사나 영웅같이 현실과 동떨어진 대상들을 미화했고 2) 그리스 로마같이 먼 과거의 것들을 미화했으며 3) 종교나 권력자 같은 특정 대상을 이상적인 것으로 미화해 숭배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이는 혁명 이후의 현실에 걸맞지 않았다. 이 새로운 시대는 이성과 합리의 시대여야 했고, 서열없이 누구나 동등하게 존중받는 사회여야 했으며, 그러기 위해서는 특정 대상을 미화하는 표현은 등장해선 안됐다. 그러나 나폴레옹을 절대신인 마냥 묘사한 그림들을 보면 이와는 거리가 멀었다.
상당수 예술가들이 이런 꼴을 못마땅해 했다. 때문에 이를 거부하려 시도했는데, 문제는 그러려면 사실적인 그림을 포기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사실주의자쿠르베는 1을 거부했다. 쿠르베는 자기 눈에 보이지 않는 허깨비는 안그리겠다고 했다. 마네 같은 인상주의자들은 나아가 2를 거부했다. 그들은 신화나 이국적인 것을 그리지 않고 자기 주변에서 놀고 먹는 일상의 모습을 그렸다. 그리고 3을 위해 이후의 예술가들은 'XX중심주의'에서 벗어나려 애썼다. 기존의 색채를 벗어나거나(마티스), 기존의 형태를 벗어나(피카소), 아예 형태 자체를 없애려는 시도를 했다(추상미술). 왜냐면 십자가 같이 간단한 상징 조차도 미화나 숭배의 대상이 될 수 있고, 이들은 그걸 피하기 위해서는 '인간 형태'의 묘사를 포기하는 것 외에는 답이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때마침 당시는 세계대전이 벌어지던 시대였고, 전쟁과 이념대립에 지친 예술가들은 '이럴거면 그냥 형상 안그리고 점,선,면,색만 그리고 말겠다'라는 생각으로 추상에 대거 몰리기 시작했다. 당시에 예술가들은 고답적인 고전미술을 그리거나, 아니면 파시즘 찬양 선전, 아니면 공산주의 찬양 선전, 그도 아니면 자본주의 광고나 그려야 하는 상황이었으니 순수하게 예술적 자유를 누리며 그리고 싶은 거나 그리고 싶다는 바람이 매혹적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조각상이나 초상화를 그렸는데 정권이 바뀌어서 파괴되면 착잡한걸 넘어서 목숨이 위태로울 수도 있으니 말이다. 입체주의가 피카소 한 사람에 의해 창안된 것과는 달리, 이상하게 추상화가 유럽 여러 지역의 여러 사람에 의해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으로 보인다.
추상화가들이 이렇게 꼴보기 싫은 형상 자체를 배제하면서도 회화라는 매체는 유지하는 쪽으로 갔다면, 다다이스트 들은 새로운 매체를 활용하는 방향으로 새로운 형식 실험을 했다. 신문지를 오려 콜라주를 한 것이 그러한 예이다. 존 하트필드는 이 콜라주 기법을 이용해 당대 나치 독일 사회를 풍자하는 작품을 남겼다. 그리고 이는 아래에 나올 예술의 자율성으로 이어진다.

2.3. 예술의 자율성 자각: 예술만이 할 수 있는 것을 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생김


나아가 이들은 이를 통해 기존 예술로는 표현하는 것이 불가능했던 것을 표현할 수 있을지를 실험했다. 재현 메타로 더 이상 돌아갈 수 없다면, 새로운 메타를 개척하려 한 것이다.
한 예로 칸딘스키는 추상회화를 통해 '음악의 선율'을 표현하려 했다. 연주회장의 모습을 그리면 되지 않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우리는 그 연주하는 모습만 봐서는 베토벤 교향곡을 연주하는지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독주곡을 연주하는지 짐작할 수가 없다. 연주회장의 모습을 그린 그림은 음악 자체를 그린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다른 예로 뒤샹은 변기에 사인을 해 '예술의 정의와 예술가의 권한'에 대해 질문하게 만들었다. 뒤샹은 <샘>이란 작품에서 그냥 시중에서 파는 변기를 사다가 R. Mutt라고 사인하고 전시하기만 했다. 이 미친 또라이 짓을 까려는 사람들은 도리어 혼란에 빠지게 됐는데, 왜 <샘>이 예술작품이 아닌지 따지다가 머리를 쥐어뜯었기 때문이었다. 더러운 변기라서? 변기를 전시해서? 작가가 직접 만들지 않아서? 첫번째 질문은 변기는 한번도 쓰지 않은 신상품이었기 때문에 더럽지 않다고 하면 그만이었다. 설령 썼어도 깨끗이 씻으면 그만이다. 두번째 질문은 그럼 변기가 아니라 다른 해괴한 걸 전시하면 예술이냐는 질문에 막혔다. 실제로 뒤샹은 자전거 바퀴나 병걸이를 전시하기도 했다. 어떤 사물은 전시할 만 하고 어떤 사물은 전시하지 말아야 하는지 일일히 기준을 세우는게 불가능하기 때문에 이 질문은 무효가 되어 버렸다. 세번째 질문은 자연 현상이나 공산품과 비교하면 말이 안되기에 의미가 없었다. 석양이나 오로라는 인간이 만든 것이 아니지만 아름답게 느껴진다.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고 기계로 찍어낸 유리잔이나 프로펠러도 인간은 아름답다도 느낄 수 있다. 직접 만들지 않아도 아름답다고 느낄 수 있는 것들이 이렇게 많은데 예술가(artist)가 굳이 장인(artisan)처럼 자기 손을 써서 무언가를 만들어야 하는가? 뒤샹은 아름다움만을 추구하던 전통 예술을 그냥 망막이나 자극하는 예술이라고 깠고, 진정한 예술은 뇌를 사용하는 예술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뒤샹의 이 또라이 짓은 후대에 뒤샹식 유명론(nominalism)이라 불리며 개념예술 등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
현대미술을 하는 작가들이 이전 미술가들과 달리 대상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것에 별로 관심이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럴려면 사진과 포토샵을 배우는게 훨씬 나은 시대가 현시대이다. 특히 형상 자체보다 개념에 더 집중하는 경우 더욱 관심이 없을 수밖에 없다. 조형미술에서 개념미술로 트렌드가 이동한 것도 결과적으로 놓고 보면 추상 등의 조형실험이 한계에 다다랐기 때문이다. 생각이나 개념같은건 이해하긴 어렵긴하지만 무한하기 때문에 많은 예술가들이 그 가능성을 실험했던 것이다. 그 결과 현대미술 작가들에게 재현하는건 개념을 표현하기 위한 부차적인 수단에 불과하게 되었다.
현대미술 작가들은 직접 작품을 만드는 장인이 아니라 작품을 구상하고 계획하는 설계자에 더 가깝다. 현대미술에서 작품 자체는 개념을 설명하기 위한 일종의 워프게이트(?) 같은 것에 불과하다. 오늘날 현대미술 관람자는 작품의 외형을 보고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디어'를 보고 평가하게 되었다. 굳이 같은 자극이라면 머리로 고민하는 것이 더 오랫동안 자극이 되고, 그렇다면 단순히 같은 그림찾기 식으로 '어 나 저거 봤어? 저거 사과지?' 생각하고 끝나게 만드는 예술이 아니라, '이 사람 평소에 하던 짓을 생각하면 이건 아마 이런 의도로 만들었을거야.' 하고 생각하게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하게 된 것이다. 쉽게 비유하자면 고전미술에 비해 현대미술은 스무고개 같은 수수께끼에 더 가깝다. 수수께끼 질문이나 그림 그 자체는 수수께끼를 푸는 사람을 끌어들이기 위한 중간장치일 뿐이다. 현대미술의 작품들도 마찬가지이며, 따라서 현대미술을 이해하려면 작품 그 자체만 보고 끝낼게 아니라, 전시장에 마련된 서문을 읽고 작가 약력을 검색해 보면서, 작가가 무슨 생각을 하고 만들었고 작가가 어떤 환경에서 작업했기에 이런 작품이 나왔는지 이해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사실 그렇게 '짐작'하는 과정 자체가 어떻게 보면 현대미술을 감상하는 에티켓 중 하나다. 이런 '맥락을 생각해보려는 시도'없이 표피적인 외형에 대한 흥미로만 접근하면 현대미술은 당연히 재미없고 무의미한 것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과정에서 대중들이 왜 '맥락을 생각하지 않는지, 혹은 못하는지'에 대해서도 살펴봐야 한다. 이 또한 아래에 언급할 대중들의 책임과, 미술계의 책임으로 나뉜다.

3. 현대미술에 대한 비판




4. 관련 문서


[1] 마르셀 뒤샹은 대중들에게 현대미술에 대한 편견을 안겨준 예술가 중 가장 중요한 인물이다. 좋게 말하면 시대를 앞선 사람이라는 것, 친구인 콘스탄틴 브랑쿠시는 조각가인데, 공학 기술의 조소 작품인 프로펠러를 마치 보라는 듯 말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