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숙공주

 


'''조선 예종의 왕녀
현숙공주 | 顯肅公主
'''
'''출생'''
1464년(세조 10년)
장소 불명
'''사망'''
1502년(연산군 8년) 5월 18일
(향년 39세)
장소 불명
'''부왕'''
예종
'''모후'''
안순왕후 한씨
'''부군'''
풍천위 임광재[1]
1. 개요
2. 독살 자작극
2.1. 사건의 진실은?
2.2. 사건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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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조선 예종안순왕후의 적장녀. 이복오빠인성대군이고, 동복동생제안대군이다. 그리고 월산대군성종은 사촌이 된다.
아버지 예종은 현숙공주의 나이 6세에 승하하였고, 임사홍의 아들 임광재와 혼인하였지만 슬하에 자녀는 없다.

2. 독살 자작극


남편은 풍천위(豊川尉) 임광재(任光載)로, 임사홍의 차남이다.
성종예종의 적통 장자인 제안대군을 제치고 왕위에 올랐기 때문에 두 남매에게 잘 대해 주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게 지나쳤는지 자작극을 만들 정도였다. 어느날 현숙공주의 여종이 공주의 모후인 안순왕후에게 현숙공주의 유모와 그 아들, 그리고 보모가 공주를 독살하려 했다고 보고했다. 당연히 궁은 발칵 뒤집혀서 안순왕후성종은 용의자들을 국문했지만 그들은 혐의를 부인했다. 그래서 사건은 해결되지 않았고, 성종부마가 현숙공주가 독살 사건에 연루되었다고 생각하고, 부마가 양갓집 규수를 으로 둔 적이 있었는데, 그에 대해 잘 이야기하면 풀어주겠다고 회유했다.
이후 부마가 양첩을 둔 사실이 밝혀지면서 부마가 귀양을 가고 현숙공주의 유모 등이 부마에게 회유되어 저지른 사건이라고 일단락내렸다.

2.1. 사건의 진실은?


그러나 조선왕조실록에는 남편의 외도를 질투한 현숙공주의 자작극이라고 기록되어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현숙공주는 투기하고 사나워 임광재를 공경하지 않고 원망하였다. 그래서 보모와 유모가 직언한 걸 되려 원망하여 이와 같은 자작극을 벌였다. 그리하여 억울하게 죽은 자가 7명 ~ 8명이나 되니, 그 참혹감을 차마 말할 수가 없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게다가 조정 대신들은 남편을 공경하지 않고 마중 나가지 않은 현숙공주를 비난하는 상소를 올렸다.

2.2. 사건 이후


결국 공주는 평생 슬하에 자녀없이 연산군 8년에 사망했다. 임광재보다 8년정도 오래 살았다

[1] 본관은 풍천(豊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