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세 산타마리아
1. 개요
우루과이 국적의 축구 선수 출신 감독. 선수 시절 포지션은 센터백이다.
선수 시절 1950년대 유럽 무대를 호령하며 '''저승사자 군단'''으로 불렸던 레알 마드리드 CF의 주축 수비수였으며,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 페렌츠 푸스카스, 레이몽 코파, 프란시스코 헨토와 함께 팀의 유러피언 컵 5연패에 기여했다. 또한 저승사자 군단의 주축들이 은퇴를 한 이후에도 헨토와 함께 1966년 유러피언 컵 우승을 이끌었다.
또한 우루과이 축구 국가대표팀에서는 FIFA 월드컵 4강과 코파아메리카 우승을 이뤄내는 등 '''우루과이와 레알 마드리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수비수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다. 이후 RCD 에스파뇰과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았다.
2. 선수 경력
2.1. 클럽 경력
2.1.1. 클럽 나시오날
1948년 우루과이의 클럽 나시오날에서 데뷔한 그는,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에서 5차례 우승하는 맹활약을 하였고, 1954년 스위스 월드컵에서 4강에 든 것을 계기로,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리게 된다. 이후 레알 마드리드의 오퍼를 받아 1957년부터 합류하게 된다.
2.1.2. 레알 마드리드 C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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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 사자 군단의 방패'''
1957년 레알 마드리드에 합류한 산타마리아는, 디 스테파노, 푸스카스, 레몽 코파, 헨토 등으로 이루어진 저승 사자 군단의 주전 수비수로 자리매김했다. 그가 합류하기 전 이미 레알 마드리드는 유로피언 컵 2회 우승을 기록하고 있었고, 산타마리아가 합류한 이후로 3차례의 우승을 추가하면서, 역사상 최초이자 현재까진 유일한 유로피언 컵 5회 연속 우승의 위업을 달성했다. 이후 1959/60 시즌 유로피언 컵 우승 이후로 팀의 주축 선수들이 하나 둘 씩 팀을 떠나갔으나, 산타마리아는 헨토와 함께 팀의 주축 선수로 남았다. 이후 레알 마드리드는 아만시오 아마로 중심의 팀으로 개편되었고, 아만시오가 팀의 에이스로 자리매김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산타마리아와 헨토는 팀의 정신적 지주로서 남아있었고, 결국 1965/66 시즌 유로피언 컵 우승을 이루게 된다. 레알 마드리드로서는 6번째 우승 트로피였고, 산타마리아 개인으로서는 4번째 우승이었다. 1966년에 유로피언 컵 우승을 이뤄낸 이후, 산타마리아는 현역에서 은퇴하게 된다.
2.2. 국가대표 경력
1952년부터 우루과이 축구 국가대표팀에 차출되었다. 우루과이는 1950년 월드컵에서 우승을 차지했던 강호였고, 산타마리아는 이러한 축구 강국의 주축 수비수로 자리매김할만큼, 이 시기부터 이미 우루과이의 전국구 스타 수비수에 위치하여 있었다. 이후 그의 첫 월드컵이었던 1954년 스위스 월드컵에서 4강까지 진출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4강에서는 푸스카스가 이끄는 ' 매직 마자르 ' 헝가리에게 패배하면서 결승 진출은 좌절되었지만, 산타마리아는 대회 올스타 팀에 선정되는 영광을 누리었다. 그리고 1956년에는 코파 아메리카에서 우승을 차지하게 된다.
이후 1957년에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하였고, 스페인의 귀화 요청을 받으면서, 귀화를 한 1957년부터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에 차출되었다. 하지만 스페인 국적으로는 메이저 대회에서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고, 1962년 칠레 월드컵이 끝난 후 국가대표에서 은퇴한다.
3. 플레이 스타일
정확한 태클 능력과 빈틈 없는 대인 방어 능력을 소유한 선수로, 팬들에게 '''벽''' 이라는 애칭으로 불리었다. 특별히 발 기술이 좋은 선수였다는 기록이 없는 것으로 보아, 스위퍼보다는 스토퍼에 가까운 유형이었다고 판단된다.
4. 커리어
4.1. 대회 기록
- 클럽 나시오날(1948-49~1956-57): 5회 우승
-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우승(5): 1949-50, 1951-52, 1954-55~1956-57
- 레알 마드리드 CF(1957-58~1965-66): 11회 우승
- 우루과이 축구 국가대표팀(1952~1957): 1회 우승
4.2. 개인 수상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