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소카와 토루

 

이름
호소카와 토오루(細川亨/Toru Hosokawa)
'''생년월일'''
1980년 1월 4일
'''출신지'''
아오모리현 히가시츠가루군 히라나이정
'''포지션'''
포수
'''투타'''
우투우타
'''출신학교'''
아오모리대학
'''프로입단'''
2001년 희망 입단 프레임(세이부)
'''소속팀'''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2002~2010)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2011~2016)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2017~2018)
치바 롯데 마린즈 (2019~2020)
'''등장곡'''
サザンオールスターズ - 東京VICTORY
1. 소개
2. 선수 경력
3. 플레이 스타일
4. 여담


1. 소개


일본프로야구 치바 롯데 마린즈에서 뛰는 야구선수. 포지션은 포수.

2. 선수 경력


고등학교 2학년 때 내야수에서 포수로 전향, 어깨가 강하고 장타력을 가진 포수로 평가받았으나 코시엔 출전은 없었다.
아오모리 대학 진학 이후 특이하게 1번 타자로 자주 나왔다. 2학년 때는 유격수 전향을 했으나 3학년 때 다시 포수로 돌아왔고, 북토호쿠대학야구 베스트 나인에도 선발된 적이 있다.[1] 또한 2학년 때는 전일본 대학야구선수권 준결승에 진출하였으나 와세다 대학에 패했고, 3학년 때는 같은 대회에서 8강까지 진출했다. 4학년 때 가을리그에서는 1번타자로 나와 타율 .333에 7타점으로 준수한 타격을 보여주고 팀은 우승하였다. 본인은 MVP와 베스트나인까지 수상.

2.1.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시절


2002년에는 주로 2군에서 지내면서 65경기에서 타율 .230에 6홈런으로 컨택은 떨어지지만 일발장타를 가진 포수로 활약하고 2003년부터 1군에서 고정적으로 출전하기 시작했다. 그 후로 부상을 입은 2009년을 제외하고 7년동안 주전포수로 활약했는데 도루저지율 1위를 세 번이나 차지하는 등 수비에서는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으나 타격이 좋지 못했다. 힘은 좋았기 때문에 종종 홈런을 쳐주기는 했으나 컨택과 선구안 모두 프로에서 먹히지 않았기에 커리어하이는 2008년에 기록한 타율 .238에 16홈런 OPS .674. 시즌 100안타를 기록한 해는 한 해도 없었다.
그래도 수비력이 좋은 포수였기에 WBC 예비명단까지는 오른 적도 있었고 공갈포긴 해도 간간히 터지는 홈런 덕에 괜찮은 평가를 받았다. 커리어하이인 2008년에는 골든글러브와 베스트나인도 수상. 2010년 시즌 이후 FA를 선언하고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로 이적했다. 4년 총액 보장금액 2억 5천만엔에 옵션 최대 8억엔.

2.2.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시절


타자 친화인 메트라이프돔에서 투수 친화인 야후돔[2]으로 간 후 홈런마저 급감하면서 FA 이적 이후에는 타격성적이 더 안 좋아졌다. 이적 첫 해에 골든글러브와 베스트나인을 수상하기는 했으나 예전에 비해 확연히 떨어진 성적.[3]
2014년에 FA였으나 이적 없이 소프트뱅크에 잔류하면서 2년 계약을 맺었다. 그러나 백업으로 추락하면서 먹튀가 되었고, 2년 계약기간이 끝나자 구단에서는 배터리 코치직을 제안하였다. 하지만 코치직을 거부하고 현역 연장 의지를 보였기에 방출당했다.

2.3.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시절


방출 이후 라쿠텐과 계약하며 현역 연장에 성공, 백업포수로 2017년 개막 로스터에 들어갔다. 타율은 .100으로 좋지 못했지만 그럭저럭 정신적 지주 겸 백업포수 역할을 하면서 클라이맥스 시리즈까지 출장하였다. 고향인 아오모리에서 열린 경기에서는 특별히 선발로 출장하여 안타까지 쳤다. 이날 경기는 29년만에 아오모리에서 열린 프로야구 1군 경기였으며 호소카와의 온 친척이 모두 직관을 하러 왔다.
그러나 2018년에는 1군에 2경기밖에 나오지 못하면서 라쿠텐에서도 방출당했다. 라쿠텐에서는 코치 자리를 제의했으나 호소카와가 또 현역 연장을 선언하는 바람에 자유계약으로 풀렸다.

2.4. 치바 롯데 마린즈 시절



2.4.1. 2019년


2018년 12월 6일 치바 롯데 마린즈 입단이 발표되었다. 1년 1500만엔. 치바 롯데는 포수진이 전원 20대라 2군에서 선수들의 멘토가 되어줄 베테랑 포수를 원해서 영입한 것으로 보인다.[4]
2군에서 주로 백업포수로 나오다가 5월 21일 오릭스 버팔로즈 원정경기 때 콜업되었다. 그러나 대수비로 딱 한 경기 나오고 카키누마 토모야가 콜업되면서 2군행.
6월 8일 요시다 유타 대신 1군 복귀. 주로 경기 후반에 대수비로 나오지만 롯데가 맨날 9회에 지고 있다 보니 보통 1-2이닝 정도 수비를 보고 대타로 교체되어 내려가는 것을 반복하고 있다(...) 그런데 수비력 자체는 카키누마 토모야보다 훨씬 나아서 역시 베테랑임을 보여주고 있다.
8월 14일 시즌 첫 적시타를 쳤다.[5] 덕아웃의 선수단과 팬들마저도 호소카와가 적시타를 칠 줄 몰랐는지 단체로 폭소.
안타는 2안타로 끝났지만 대수비로 그럭저럭 활약하면서 현역을 연장했다.

2.4.2. 2020년


1군 기록이 없다. 어차피 정신적 지주를 할 베테랑도 토리타니 타카시가 영입됐으니 은퇴를 준비해야 할 듯.
예상대로 방출 통보를 받고 그대로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1군 기록 없이 2군에서 12경기 출장에 그쳤으며 1타석도 못 선 걸 보면 전부 대수비였던 듯.
바로 은퇴를 선언해서 그런지 클라이맥스 시리즈 진출을 확정짓고 소화시합으로 남은 1경기를 앞두고 1군에 콜업되었다. 은퇴특례 콜업이라 사실상 은퇴경기로 해 주는 듯.[6]
이날 8회 말 대타로 나왔고 결과는 삼진. 이후에는 9회 초에 1이닝 포수 수비까지 보았다. 팀은 아쉽게도 패배하였지만 이미 CS진출이 확정되었으니 상관 없던 상황. 경기 후에 시즌 종료 세레모니와 함께 은퇴식을 하였다.

3. 플레이 스타일


컨택과 선구안이 좋지 않다. 타율은 2할 안팎으로 컨디션이 좋으면 2할대 초반(...), 컨디션이 나쁘면 1할대 중후반(...) 정도의 타율을 기록한다. 그러나 힘이 좋아서 제대로 맞으면 홈런이 꽤 잘 나오는 편으로[7] 타격만 보면 전형적인 공갈포다.
또 다른 특징으로는 당겨치기 위주의 타격을 하는 극단적인 풀 히터이며, 번트 능력이 좋아서 작전에 쓰이기에도 능한 타자이다.
타격만 보면 간간히 홈런 나오는 것과 번트를 잘 대는 거 외에는 장점이 없기 때문에 꾸준히 주전으로 나오기에는 어려워 보이지만 수비력이 굉장히 좋다. 타자의 약점을 잘 분석할 줄 알며, 공격적으로 던지게 하다보다는 타자가 약한 부분에 주구장창 던지게 하는 신중한 리드를 선호한다. 노무라 카츠야는 "퍼시픽 리그에서 가장 포수다운 포수."라고 했으며, 죠지마 켄지보다 호소카와가 더 수비가 뛰어나다고 평가했었다.[8] 그 외에 블로킹도 뛰어나며 어깨도 강했다. 또한 굉장히 학구적인 포수라서 경기를 위해서 적은 메모가 전화번호부 두께를 넘을 정도로 많다고 한다.
결론적으로는 타율과 출루율이 낮음에도 불구하고 수비력, 작전 수행력, 간간히 터지는 일발장타 덕에 한국 나이로 40세가 되도록 선수생활을 이어오고 있다.

4. 여담


  • 엔카 가수 히카와 키요시와 닮아서 별명이 키요시였다. 세이부 시절에는 히카와 키요시의 노래를 등장곡으로 썼을 정도.
  • 2018년에 롯데에서 입단 제의가 왔을 때 장남이 도쿄 디즈니랜드가 가까워진다며 좋아했던 것이 롯데 입단의 계기 중 하나였다고 한다.
  • 지바 팬들이 가장 싫어했던 선수 중 나카지마 히로유키와 함께 대표적으로 뽑혔다. 이유는 NPB에서 벤치 클리어링을 많이 일으키는게 롯데가 라이벌시하는 옆동네 사이타마의 세이부 라이온즈이고, 성깔 있는 나카지마와 빈볼을 지시한다 여겨진 주전 포수 호소카와가 분노를 많이 샀기 때문이다... 이제는 롯데맨이라 벤클이 일어나는 일은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 2020년 롯데 선수단 중 유일하게 사이클링 히트를 기록한 경험이 있다. 다만 이 사이클링 히트는 세이부 시절 친 것이라 롯데 소속으로 친 것은 아니다. 참고로 롯데는 1976년 이후 토종 선수가 사이클링 히트를 친 적이 없고, 2007년의 즈레타가 용병까지 따져도 유일하다.
  • 2020년 초 아내의 불륜 의혹 기사가 나왔다. 다만 본인은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1] 3학년 봄 시즌, 4학년 봄 시즌.[2] 2014년까지만 투고타저 구장이었고 2015년부터는 타자친화 구장이 되었다.[3] 세이부 때는 그래도 2할 정도는 쳐 줬는데 소프트뱅크 시절에는 2011년을 제외하면 1할 대 중후반 타격이었다.[4] 2018년까지만 해도 카나자와 타케시가 있었는데 은퇴하고 코치가 되었다.[5] 1사 3루 상황에서 3유간 안타.[6] 롯데가 만약 전날 경기에서 패했으면 이날도 총력전을 해야 했기 때문에 아마 1군에 올라오지 못했을 것이다. 그야말로 기적의 콜업.[7] 혹자는 힘만 갖고 보면 거포들 사이에서도 최고수준이라고 평가했다. 그런데 제대로 맞추지를 못 하니 홈런 갯수에서 엄청 손해를 본 케이스.[8] 단 노무라 카츠야는 조지마 켄지와 서로 증오하는 수준의 악연이기 때문에 조지마를 폄하하기 위해서 호소카와를 띄워줬을 수도 있다. 당장에 호소카와는 올림픽이나 WBC에 뽑히지도 못했으니... 호소카와와 거의 동년배(3년 선배)고 플레이 스타일도 비슷한 사토자키 토모야만 해도 2006년 WBC와 베이징 올림픽에 국가대표로 뽑혔다.(수비력은 둘 다 좋았고 둘 다 15홈런 정도의 장타력을 가지고 있었는데 타율은 사토자키가 3~4푼 이상 더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