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카지마 히로유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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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PB 복귀 선언후 오릭스 입단식에서의 모습.
요미우리 자이언츠 No.5
나카지마 히로유키 (中島宏之 / Hiroyuki Nakajima)
'''생년월일'''
1982년 7월 31일
'''국적'''
일본
'''출신지'''
효고현 이타미 시
'''포지션'''
우익수, 유격수, 3루수, 1루수, 지명타자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2000년 드래프트 5순위
'''소속팀'''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2001~2012)'''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산하 마이너 (2013~2014)
오릭스 버팔로즈 (2015~2018)
요미우리 자이언츠 (2019~)
1. 개요
2. 선수생활
2.1. 일본프로야구 1기 :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의 올스타 유격수
2.3. 일본프로야구 2기 : 오릭스 버팔로즈의 먹튀, 그리고 요미우리 자이언츠
3. 기타


1. 개요


일본 프로야구 요미우리 자이언츠 소속의 야구선수. 세이부시절 등번호는 3번, WBC에서는 6번, 오릭스에선 1번
요미우리에선 5번을 달고 뛸 예정.애칭은 '''나카지'''.

2. 선수생활



2.1. 일본프로야구 1기 :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의 올스타 유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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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시절에는 우익수와 투수로 활약했고 고교 졸업 후 2000년 드래프트에서 5위로 지명을 받아 세이부 라이온즈에 입단한다.
2001년 2군에서 외야수로 뛰었고, 2002년 10월 6일 1군 무대에 첫 출전했다. 2003년 1군 44경기에 출장하며 3루수로 20경기에 기용되기도 했다.
첫 풀타임 1군이었던 2004년에는 주전 유격수로 시즌을 시작을 하는데, 타율 .287 27홈런 90타점 18도루의 호성적으로 중심타선을 뒷받침하며 세이부의 일본시리즈에 우승에 공헌했다. 타격에서만큼은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에 진출한 마쓰이 가즈오의 공백을 메워줄 만한 활약이었고, 차세대 공격형 유격수로 주목을 받게 된다.
2005년에는 히로시마와의 교류전에서 부상을 당하기도 하며 타격 부진과 함께 유격수로 리그 최다 에러수를 기록하는 등 저조한 성적을 거둔다.
2006년과 2007년에는 3번 타자로 3할 타율과 두 자릿수 홈런을 기록. 다만 리그 탑의 실책수는 이때까지 지속되었다.
2008년에 베이징 올림픽 일본 대표팀 선수로 출전했다. 리그에서는 타율 .331 21홈런 25도루의 커리어 하이 시즌을 보내며 팀을 일본시리즈 우승에 올려놓는다. 출루율 .410은 리그 수위였으며, 특히 수비에서 돌글러브의 오명을 벗어내며 골든글러브에 선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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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듬해인 2009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일본 대표팀 선수로 출전, 대한민국과 맞붙었던 대회 결승전에서 고영민의 2루 수비를 방해하는 슬라이딩으로 국내야구팬들에게 강하게 각인됐다.[1] [2] 이로 인해 나까지마라는 패러디로 합성에 쓰이며 많은 웃음을 자아냈다.
2009년 2년 연속 출루율 1위와 3할의 타율, 20-20을 달성했고 2010년에는 타율 .314 20홈런 15도루를 기록했다.
2011년 타율 .297 16홈런 100타점 21도루, 수비에서는 3년만에 골든글러브를 수상한다. 오프시즌엔 MLB 진출 선언을 하고 포스팅을 한 결과, 브라이언 캐시먼 단장이 2백만불을 써낸 뉴욕 양키스가 협상권을 얻었는데... 이 팀 내야는 유격수뉴욕의 황태자, 3루수통산 홈런기록에 도전하는 MLB 최고 연봉 자, 2루수아메리칸리그 최고의 2루수가 버티고 있었다(...) 안습. 포스팅 액수로 보나 팀내 사정으로 보나, 잘 풀려봐야 유틸리티맨 입지라서 정말 MLB를 갈지는 미지수였는데 결국 협상이 최종 결렬되었다.
세이부에서의 마지막 시즌이었던 2012년, 타율 .311 13홈런을 기록하며 통산 4번째의 베스트나인과 3번째 골든글러브를 수상.
전반적으로 흠잡을 데 없는 공격력에 비해 수비력이 딸리고 어이없는 실책이 잦아서 이시게 히로미치-타나베 노리오-마쓰이 카즈오로 이어지는 세이부 라이온즈의 철벽 유격수의 계보에 먹칠을 한다는 평이 있다. 위에 열거한 선수들도 대부분 공격력이 출중했지만 수비력은 그보다 더 출중했기 때문에 공격력만 놓고 보면 특급선수인 나카지마조차도 수비 못한다고 까이는 것. 그러나 고교 때 투수와 외야수로 뛰었기 때문에 프로에 와서야 유격수를 보고 있다는걸 생각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평가할만 하다.

2.2. 실패한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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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시즌 종료 후 FA 자격을 취득했고, 11월에 한신 타이거즈 구단 측에서 4년간 '''20억엔'''이라는 충공깽스러운 계약을 준비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본인은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도전을 선언했고 스티븐 드류와의 재계약에 실패한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와 2년 650만 달러의 조건으로 계약했다. 한신에서 언급했던 액수에 비하면 적은 액수이지만 메이저리그 진출에 뜻을 뒀기 때문에 액수에 상관없이 미국으로 간 듯 하다.
하지만 스프링 트레이닝부터 1할대의 타격과 여타 일본인 내야수들이 그렇 듯이 눈물나는 수비를 보여주더니 결국 부상까지 겹치며 25인 로스터에 들지 못하고 폭풍 마이너리그행(...) 부상에서 회복 이후 AAA팀으로 배치되긴 했으나 구단에서도 유틸로 보고 있는지 수비 포지션이 고정되지 않고 유격수, 3루수, 2루수를 전전했고 타격은 타격친화리그 PCL에서 뛰었음에도 OPS가 7할도 넘기지 못하는 인상적이지 못한 성적을 냈다. 게다가 이 팀 내야엔 제드 라우리조시 도날드슨같은 준수한 선수들이 버티고 있어서 2013년 내내 단 한번도 메이저리그에 올라오지 못하고 8월 16일부로 40인 로스터에서 완전히 빠져버린다. 안습.

2.3. 일본프로야구 2기 : 오릭스 버팔로즈의 먹튀, 그리고 요미우리 자이언츠


2년 계약이 종료될때까지 메이저리그에는 한번도 못 올라간 채 복귀하게 생겼고, 메이저리그에 가기전부터 러브콜을 하던 한신 타이거스가 팀의 레전드인 카케후 마사유키의 등번호 31번을 준비하고 교섭한다고 밝혔다. 물론 한신 팬들은 대 폭발 중.[3] 세이부 팬들조차 덩달아 멘붕했었는데, 세이부에게도 콜이 왔으나 정중히 거절했다라는 카더라가 있다. 그리고 한신으로 간다는 예상과 달리 오릭스 버팔로즈로의 이적이 확정되었다. 그나마 본인이 뛰어본 퍼시픽리그에서 뛰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던 듯.
2014년 12월 5일, 오릭스 입단을 발표했다. 계약조건은 3+1년 총액 14억엔(추정). 등번호는 1번.
2015년 시즌에는 기대를 안고 시즌을 시작했으나 햄스트링 부상, 요통 등으로 부진했고 1군에서 117경기 출장, 타율 0.240, 10홈런, 46타점을 기록했다. 같은 해 9월에 결혼하여 10월에 첫 아이(딸)을 얻게 된다. 그리고 11월에 등록명 이름 부분의 한자를 宏之로 변경했음을 발표했다. 읽는 법은 동일.
2016년 시즌 초반에는 개막전을 포함, 4경기 연속 선발 유격수로 기용되었으나 이후 경기에서는 지명타자나 1루수로 출장했다. 그러나 경기 도중 종아리 부상을 입었고 그 이후 타격 부진, 3번의 2군 강등 등 작년보다 더한 부진을 겪었다. 1군 출전 기록은 96경기에서 타율 0.290, 8홈런, 47타점. 일본프로야구 역사상 119번째 통산 1,500안타와 61번째 통산 1,000삼진 등의 기록을 세웠다.
2017년 시즌에는 지명타자로 주로 기용되었으나 7월 9일 롯데와의 홈경기를 앞두고 돔 천장에서 떨어진 철 파이프(...)에 맞아 타박상을 입었고 7월 18일에 그라운드로 복귀했다. 1군 출전 기록은 124경기, 타율 0.285, 9홈런을 기록했다.
2018년 시즌에는 타격부진으로 1군에서 말소되기도 했고 부상으로 인해 오릭스 이적 후 최소인 77경기 출전에 그쳤고 타율 0.289, 5홈런, 34타점을 기록했다. 오릭스는 감액 제한(1억엔 초과 연봉자는 40%까지만 감액 가능하며 이 이상 감액하려면 본인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을 초과하는 금액을 제시했고, 나카지마는 구단에 탈퇴 의사를 전달하였다.
WBC 제패 당시 감독이었던 하라 다쓰노리가 다시 지휘봉을 잡은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관심을 보였고, 11월 22일 정식으로 입단을 발표하였다. 등번호는 5번, 연봉은 대략 1.5억엔 정도로 추정.
허나 요미우리에 얼마나 도움이 될진 의문... 흔히 요미우리는 타팀에서 잘나가는 선수들만 죄다 쇼핑하는걸로 유명하지만 나카지마는 이미 노쇠화가 뚜렷한 선수라 팬들도 왜 데려왔는지 이해할수 없다는 반응이 대부분이다.[4]
2019년 시즌 요미우리의 내야 양코너엔 4번타자로 기용될 오카모토와 18시즌 MLB에서 20홈런을 기록한 빌라누에바가 있다. 그리고 유격수 자리에는 NPB 최고 유격수로 평가받는 사카모토가 버티고 있으니 많은 출전기회를 얻기는 힘들 전망. 내야 백업 및 대타자원으로 우선 기용될 것으로 보이며 이후 로스터 상황과 활약 정도에 따라 달라질 가능성도 있다. 일단 2루수가 구멍이라 출전기회는 의외로 꽤 있을지도 모른다. 하라가 나카지마를 무리하게 데려온 것도 아직 확실한 2루수 주전후보가 없는 것도 이유로 작용했다.
2019년 시즌 초반, 주로 백업 및 대타로 활용되고 있는데 예상보다도 출전기회가 적은 편이다. 이럴거면 요미우리가 뭐하러 영입한 건지 궁금할 지경. 결국 1년 내내 유력한 전력외후보 통고로나 꼽히며 방출이 기정사실화된 상황까지 가버렸으나 극적으로 살아남았다.
2020년 시범경기에서 4홈런을 치면서 나름 살아나는 모습을 보여주고 개막 엔트리에 들었다. 100경기 312타석 타출장 .297 .369 .419 7홈런 OPS .788을 기록하며 멋지게 살아났다. 코너내야부터 사카모토의 백업, 대타 등등 이곳저곳 땜빵으로 굴러다니며 전성기의 모습까진 아니더라도 상당히 좋은 성적을 올리며 뜬금없는 부활로 팀의 리그 우승에 일조했다. 일본시리즈 엔트리에도 포함되었는데, 전 경기 지명타자제 도입이라 하라 감독은 나카지마를 지명타자 후보로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파리그 출신이라 지명타자로 풀 시즌을 치뤄본 적도 있는 경험많은 선수이기 때문. 여튼 데려왔을 때만 해도 여러 사람이 의문을 표한 영입이었는데 어찌어찌 부활했다.

3. 기타


  • 나가시마 시게오 감독은 타격지도를 할 때 알 수 없는 의성어와 의태어를 동원하여, 배우는 입장에서 대체 뭔소리를 하는 건지 알 수 없는 상황을 만드는 것으로 유명하다. 일본 대표팀 타자들에게 나가시마가 타격지도를 한 일이 있었는데 다른 선수들은 모두 대체 뭐라는겨.. 하는 상황에서 나카지마 혼자 "의문이 풀렸다!"라고 기뻐했다고 한다(...).
  • 코나미의 야구 게임 프로야구 스피리츠 2011에서는 종합평가치 99(최고치다!)를 기록하는 쾌거를 달성했다. 야수 중 유일한 99이며, 투수 중에서는 사기 유닛 다르빗슈 유가 99.
  • 크레용 신짱 747화(세이부 라이온즈가 등장하는 편으로 나카무라 다케야가 주연으로 나온다.)에서 경기 중 대타 노하라 신노스케와 교체된다(...). 그 경기는 신짱의 내야안타와 후속타자 나카무라의 역전홈런으로 세이부가 이기긴 한다.
  • 2012년 3월 31일 삿포로 돔에서의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와의 경기 3회초에 일본프로야구 사상 유일의 1이닝 2도루실패라는 진기록을 세웠다. 상황을 설명하자면 좌전안타를 치고 출루한 나카지마가 다음 타자인 나카무라 타케야 타석에서 도루를 시도하다 투수 다케다 마사루의 견제구에 걸려 런다운 상황에 처했는데, 이 상황에서 닛폰햄의 2루수 다나카 켄스케가 송구실책을 저질러 나카지마는 1루로 귀루에 성공했고, 기록지상으로 도루자 + 2루수 실책이 되었다. 나카지마는 다음 타자인 시마 시게노부의 타석에서 또 도루를 시도했다 한 번 더 견제구에 걸렸는데, 이번에는 1루수 이나바 아츠노리가 제대로 송구해 나카지마를 2루에서 아웃시키며 진기록이 완성되었다. 영상
  • 보통 체구에[5] 순하게 생겼지만 성깔이 아주 격렬하고 겁이 없어서 벤치클리어링이 발생하면 앞장서서 달려든다. 2008년 일본시리즈 당시 요미우리 소속이던 세스 그레이싱어에게 사구를 맞자 1루로 걸어가면서 랩배틀을 하며 주먹을 휘두르려 달려드는데 세이부 동료들의 저지로 물리적인 충돌은 일어나지 않았으나 다른 자국선수들 처럼 쫄지않고 그레이싱어에게 달려들려해 깊은 인상을 심어주었다. 과거 일본인 선수가 외국인 선수에게 시비만 붙으면 허구한날 쳐맞기나 하는 일본프로야구 무대에서 정말 보기드문 장면.[6] 그로부터 몇개월전 정규리그 치바롯데전에서도 빈볼시비로 인해 나카지마가 날뛴적이 있었는데 당시 롯데 외국인선수 베니 아그바야니가 3타자 연속 사구의 희생양이 되자 격분한 나머지 당시 세이부 포수였던 호소카와 토루에게 물리적인 폭력을 가해 양팀이 서로 뒤엉켜붙던 찰나에 나카지마가 베니에게 달려들었지만 코칭스태프와 롯데측의 제지로 조용히 들어갔다.
  • 세이부 시절엔 온화하고 부드러운 인상의 훈남이기도 했고, 야구도 잘 했는지라 여성팬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하지만 위의 일화 탓인지 치바 롯데 마린스 팬들에겐 상당히 미움 받던 선수였다.
  • 나름 뜻밖의 일화로 2010년 시즌 후 김태균김석류의 결혼식을 축하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했었다. 나카지마 외에도 김태균의 팀 동료였던 니시오카 츠요시와 오기노[7]도 함께 한국에 왔다.
[1] 2015년 야쿠르트의 다케우치 신이치 역시 이런 슬라이딩으로 수비방해 아웃되어 항의하다가 퇴장[2] 일본 구글에 검색해보면 일본 국내 리그 경기에서도 2루 슬라이딩 때 이런 그림이 꽤 많이 나온다. 아마 습관인듯하다(...)[3] 그 당시 한신 팬들은 가뜩이나 내야 자원이 넘쳐서 니시오카 츠요시를 3루수(니시오카의 주 포지션은 유격수)로 돌리고 있는 판국인데 정작 필요한 외야 자원은 안채우고 그냥 이름값만 보고 선수를 영입한다면서 신나게 디스했다. 그리고 니시오카는 돌아올때 나이라도 젋었으나 나카지마는 2014년 기준으로 만 32세.. 하지만 니시오카나 나카지마나 둘 다 부상과 타격 부진이 겹치며 먹튀가 되었다. 그나마 다른 점은 장타력이 남아있는 나카지마는 요미우리의 부름을 받으며 프로 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지만 그런 것도 없는 니시오카는 부르는 구단이 없어서 결국 독립리그행..[4] 물론 계약규모나 기대치로 봤을 때 리스크가 큰 영입은 아니다.[5] 물론 센터 내야수로써 180cm면 장신축에 속하긴 한다.[6] 그러나 이로부터 5년뒤인 2013시즌엔 당시 야쿠르트의 아이카와 료지와 당시 한신의 외국인 야수 맷 머튼이 홈 플레이트에서 충돌하였는데 이땐 아이카와가 머튼을 가격하였다.[7] 당시 치바롯데에는 오기노라는 성씨의 선수가 두 명이 있었는데(오기노 타다히로, 오기노 타카시) 기사에선 '오기노'라고만 언급된 탓에 둘 중 누가 왔는지는 불확실하다. 나이만 보자면 동갑내기였떤 오기노 타다히로가 좀 더 가능성이 높으나(실제로 롯데 입단 직후의 스프링캠프 때 김태균이 배탈이 나서 하루 휴식을 취한 적이 있었는데, 전날에 82년생 선수들끼리 모여서 야키니쿠를 먹었다고 한다. 즉 팀내 82년생 멤버들과 특히 사이가 각별했을 것이라는 것.), 오기노 타다히로는 2010년~2011년은 재활 때문에 2년간 1군에 올라오지 못했기 때문에 같이 플레이를 한 경험이 없다. 반대로 오기노 타카시는 김태균이 일본에서 뛸 때 부상때문에 2군에 꽤 오래 있었지만 1군에서 주전으로도 꽤 뛰었기 때문에 김태균과의 플레이 경험이 꽤 많지만, 이쪽은 1985년생으로 나이 차이가 좀 난다.